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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어버린 여름 - 늙음에 대한 시적이고 우아한,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지음, 양영란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평점 :

"갑작스럽게, 그 여름에 늙음을 보았다. 제일 먼저 나 자신의 늙음을. 그리고 주변 곳곳에 널려 있는 다른 사람들의 늙음을."
20~30대에 병원에 가면 병의 원인이 주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40이 넘어서 생전 처음 경험하는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쌤은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진단을 내린다.
'오 마이 갓! 이게 무슨...!'
이 책의 이자벨 작가님도 나와 같은 경험을 마주하고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군.ㅎㅎ
며칠 전 시한부 인생이 담긴 에세이를 읽었기에 자연스럽게 늙는다는 것이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일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아본다. 어차피 늙는 것이라면 이왕이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몸이 단언하듯 명백한 사실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노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늘 신체적, 심리적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왔다고 자부했으며,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독립심과 자유로운 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새로운 상황과 대면해야 했다. 이 현실과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다른 수단을 찾아내야 할 터였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다른 지표가 필요했다."
하버드대학, 웰즐리대학, MIT를 호령하던 시크 만렙 교수님,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자라며 미국의 반문화와 페미니즘 열풍을 마주하면서 전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히피,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던 그녀였기에, 무방비하게 마주한 홀로 늙어버린 자신의 삶이 낯설다. 그러나 서투른 조언 따위는 하지 않는다. 현재 진행형인 삶의 회고록이자 솔직하게 써 내려간 중간 정리 보고서 같은 느낌.
몸은 늙고 있지만 아직 굳건하다는 외침이 들린다.
나도 같은 고민을 하면서 늙어가겠지.
"약하고 닳아버린 나. 앞으로 다가올 세월에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세월이 나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위협적인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토록 믿고 있던 나 자신에게 이보다 더 큰 수모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도 몰라보게 된 몸과 세상 앞에서 점점 더 자기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겁 많은 노파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