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괜찮아
니나 라쿠르 지음, 이진 옮김 / 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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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느낌의 소녀, 그리고 '우린 괜찮아'라고 말하는 제목에 내용이 궁금해졌다.

2018년 영미권 최고의 문학상인 프린츠상을 수상한 이 책에는 한 명의 소녀 마린이 나온다.

그녀는 어릴 때 엄마를 잃고, 할아버지와 살아가고 있었지만 가장 마음이 섬세하고 여린 시기에 할아버지마저 잃게 된다.


"당신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녀에게 아름다웠던 순간, 함께 했던 메이블이 있었다.

첫사랑처럼 충동적인 욕망이 있었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단순히 '퀴어 로맨스'를 넘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마린은 할아버지의 실종 이후 거대한 상실감에 도망치듯 뉴욕으로 숨어버렸고, 그렇게 아무도 그녀를 찾을 것 같지 않았지만 방학이 되어도 돌아갈 곳 없는 그녀에게, 첫사랑 메이블이 40시간을 날아 그녀를 만나러 온다.

그리고 말한다. 네가 돌아올 곳이 있다고, 나와 함께 가자고...


혼자 남겨진 그녀는 처절하게 외로운 자신과 마주하고 그 고통을 혼자 삼키지만, 제목의 '우린 괜찮아'처럼 당신이 미처 알지 못한 순간에도 누군가 당신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괜찮다고, 괜찮은 삶이라고,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작가는 전한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메이블을 들이마시고, 우리 중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집을 생각하고, 벽난로 불길이 타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방과 메이블의 온기를 느끼고, 이제 우린 괜찮다.

우린 괜찮다."


성소수자의 문학에 대한 선입견은 없지만, 이 소설을 단순히 퀴어 문학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담긴 것이 더 많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마음이 힘들거나 외로운 순간이 온다면 이 책을 꺼내 읽고 싶다.

마린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위의 내 편들이 다시금 떠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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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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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도스토옙프스키, 체호프, 푸시킨 등 고전의 거장들이 쟁쟁한 러시아에서 현대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책이 내게 왔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표지에서 느껴지는 뭔가 우울한 느낌과 제목에서 연상되는 주인공의 자기 비약? 이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책에는 중단편 다섯 편이 실려 있고, 맨 처음 이 제목과 같은 '티끌 같은 나'가 버티고 있다.

한마디로 시골 촌뜨기인 안젤라. 그녀는 갑자기 모스크바로 떠나고 싶어졌다.

그런데 안젤라의 형편이 구구절절 나쁘다는 구차한 설명도 없다.

그가 사는 곳은 천국이 따로 없는 에덴동산이었지만, 역시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먹고살아야 한다는 작가의 신념이 반영되었을 뿐.

전체적인 작가의 문체가 정말 깔끔하면서도 맛깔난다는 표현이 어울리듯 읽는 내내 정말 빠져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쓸 수가 있나...


가진 것 없는 안젤라는 모스크바에 와서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 가사 도우미부터 시작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꿈이 있었고, 비굴하게 자신의 미래를 구걸하고 싶지 않은 단단한 자존심이 있었다.


안젤라는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사이 진정한 사랑을 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남은 것은 철저히 나 혼자였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그동안 누렸던 상황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엄마인 나타샤의 성격과도 닮았다. 없어졌다면 어차피 내 몫이 아니라는 것.

안젤라는 젊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 내 몫이기에...


"바다는 흔들리지 않는다.

바다는 달에 의해서만 동요될 뿐이니까..."


정말 오랜만에 나와 스타일이 아주 잘 맞는 작품을 만났다.

이 책의 다른 단편들에서도 주체적인 여성(안하무인이기도 하지만)에 대한 재치있는 문체와 러시아식 은유, 그리고 문학의 나라답게 곳곳에 드러나는 작가들의 이름들도 눈에 띈다.

읽다 보면 작가가 주인공인 여성의 생각에 대해 단호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약간 거친 듯한 이런 문체를 거슬려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거침없는 표현들이 좋았다.

1937년생이라면 우리 증조할머니뻘인데 왠지 작가와 얘기를 나눈다면 아주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싶어 찾아봤는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은 많이 없는 듯했다.

이런 멋진 작가들의 책이 더 많이 번역되어 나의, 그리고 우리의 독서 생활이 좀 더 풍요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은 좋은 책과 나쁜 책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책과 맞지 않는 책으로 나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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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2020 10호 - Vol.10 : 변화는 예고 없이 온다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10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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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향후 우리나라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선거 날이다.

그동안 예고 없이 밀어닥친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변화가 있었고, 코로나 그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건 누구나가 안다.

사실 코로나는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할지 모른다.


우리가 이것에 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터넷이 발달해 집에서 화상으로 교육을 받고, 원격 진료가 이뤄지며, 마트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 주문으로 먹을 것 걱정없는 생활을 하면서 변화는 우리도 모르게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 어떤 것도 멈춰 있지 않는다."

(헤라클레이토스)


인상 깊었던 것은 쌍둥이에 관한 사진과 변화를 담은 중국 예술가의 작품.

쉰 살 쌍둥이의 사진을 조사했는데, 중국이라 그런가 다들 너무 늙어 있었다 ㅜㅜ

왜 쉰 살인가? 그 나이가 되면 자신의 인생이 얼굴에 드러난다는 것.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앞에 앉아계신 나이 든 어른들의 얼굴을 보면 그 말을 이해할 것 같다.

인상은 그 인생의 변화를 새긴 나이테와 같은 것.

그런데 내 인상이 달라졌다고 해서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 말할 수 있을까?


"누구나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톨스토이)


이 책에는 다양한 변화들과 여러 담론이 담겨 있어 변화에 관한 토론을 보고 있는 듯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계속될 것이고 그에 따른 우리의 선택도 달라질 것이다.

다만, 변화에 대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를 묻는다면?

변화가 일어난 순간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생존을 위해 자신을 재빨리 바꾸는 것 정도?

여기에 후회라는 것은 나의 정신만 피폐해지게 할 뿐!

변화가 항상 긍정적이지는 않겠지만 이 또한 내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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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된 아이 - 시련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
미하엘 빈터호프 지음, 한윤진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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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1990년대의 수업 시간에 대한 사례로 처음이 시작된다.

사례의 내용이 흥미롭긴 하지만,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덜컥 겁이 났다.


"물질적인 측면으로 보면 요즘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잘 지낸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성장을 위한 최상의 기회를 제공받고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부정적으로 답할 것이다."


우리 집에는 장난감이 정말 많다.

여기저기서 얻은 것도 많고, 선물 받은 것도 많고, 간단한 것들은 사주기도 하면서...

킨더조이 같은 건 소소한 보상 차원에서 자주 사줬기에 시리즈별로 다 있고, 먹는 것에 유난히 관심 없는 애들이라 해피밀을 먹는다고 해도 흔쾌히 허락해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제는...

아이들이 이런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 뭔가 갖고 놀 것이 많아도 항상 새로운 것만 찾는다는 것, 주말에는 심심하다고 투덜투덜, 부모가 뭔가 새로운 것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즐겁게 해야 하는 건 부모님의 몫이 아니었다.

심심하다고 투덜댔다면 아마 집안 일을 도와야 했을 것이다."(p.46)


자녀가 성장해도 아이 주위를 맴돌면서 모든 것을 챙겨주는 '헬기콥터 맘', 아이 앞에 놓인 장해물은 모조리 치워주는 '컬링 부모', 자식을 무섭고 혹독하게 다루는 '타이거 부모'

이들 모두의 마음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

그런데 받아들이는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몸만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사소한 결정을 할 때에도 부모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했고, 작은 문제에 부딪혀도 쉽게 포기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잦았다."

(프롤로그)




우리는 보통 우리나라의 교육은 비판하면서 유럽의 교육에 대해 동경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독일 사람이 쓴 것이지만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세대, 공간을 막론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많은 책임이 드는 일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여기에는 생후 30개월 된 아기의 사례가 나오는데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보육 교사의 규정상 아이가 교사에게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해야만 새것으로 갈아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가...

이게 만약 소위 후진국의 얘기라면 "걔네들 진짜 웃긴다" 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독일의 사례라니...

작가는 그런 그 나라의 제도를 비판하며, 자녀와 동반자 관계적 사고를 버리고 치료 교육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반자 관계를 끊임없이 경계함과 동시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해야 한다고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이자 관심사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생각을 퍼트리고 그런 어른들을 격려하는 것이다."(p.248)


시중에 나와 있는 부모교육 책들을 보면 '자녀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의 내용이 많은데, 그에 앞서 그 방식이 과연 내 아이들에게 맞는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만능 해결사'일까? '상호 조력자'일까?

아이를 인격으로 인정하는 것은 좋으나, 자라나는 시기에 따라 부모가 개입해야 할 부분이 있고, 이런 땐 적절한 원칙과 단호한 규칙을 정해야 한다는 것!

아이에게 끌려다니기 보다 옳은 부모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

이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해야 할 것이다.

내 아이가 단단한 생각을 하는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게 하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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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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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중국 작가의 책이 도착했다.

제목이 '인간의 피안'인데... 피안이란 단어가 궁금하여 검색해보니 여러 뜻 가운데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아니하는 관념적으로 생각해 낸 현실 밖을 세계'를 의미하는 듯하다.


앞으로 인공지능 세상이 도래한다면 현재 남아있던 많은 직업이 사라지겠지만, 예술가, 작가, 감독, 디자이너 등 '인간의 감성에 기초한 예술 관련 직업'은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기술이 발달해 인공지능이 이런 인간의 감정까지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면...?


이 책에는 인간만의 감정이 가지는 섬세함을 바탕으로 한 6편의 단편이 있는데, 읽으면서 섬뜩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재미있게 읽어 나갔다.


특히 인상깊었던 챕터는 <영생 병원>이었는데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그 이름도 유명한 '묘수 병원'을 두고 펼쳐지는 미스터리.

어머니의 죽음과 눈앞에 나타난 신인(新人) 사이에서 갈등하는 첸루이.

병원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백두루미와 연대해 병원을 압박하는데, 뜻밖에 밝혀진 사실 앞에서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과연 우리가 알고 싶은 것과 알아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어떤 것이 진실이고, 무엇이 원하는 바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고, 이 작가가 새삼 돋보였던 작품이다.


<사랑의 문제>에서는 인간의 집사인 천다가 그의 주인 가족과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인간의 감정에 대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함이 때로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천다는 왜 인간은 때때로 고통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법을 빤히 알면서도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려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인공지능 기기는 이제 스스로 지식을 받아들이며 업그레이드를 하고, 신들과의 접선을 통해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이들이 보기에 한없이 나약하고, 한편으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선택과 방황, 그리고 결코 이해되지 못할 후회와 반성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나 스스로도 인간의 이런 감정들에 대해 놀랍기도 했고, 갑자기 나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이 무슨 조화인가 ㅡ.,ㅡ;;)


"인공지능 시대에 모든 보통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일지도 모른다.

하나는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오징팡의 인간의 피안.

단순히 SF미스터리 소설쯤으로 치부하기엔 구성이 너무 치밀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가 실제로 인공지능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박사이자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도 했다. (건곤과 알렉도 이런 경험에서 나왔음이리라...)

그녀가 바쁜 일상 속에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이런 소설을 쓴 이유는 뭘까?


"저 멀리 피안을 바라보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차안을 비춰보기 위함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하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을 것이다.

실패, 좌절, 애착, 반항, 비이성 등 인공지능은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인간을 더 인간다워지게 한다는 것을, 우리 마음의 소중하고 고귀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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