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생각 - 대중을 사로잡은 크리에이터의 창작 비결
양유창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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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기자는 어느날 문득 생각한다. 카메라 앞이 아닌 뒤에 선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그런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인터뷰에는 창조적인 일이 하고 싶었던,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해도 될까 망설이던 사람이 답을 구하기 위해 찾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양유창과 마주한 그들은 영화 감독이기도 하고, 방송사 PD이기도 하며, 때로는 싱어송라이터기도 하고,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제각각의 직업을 가지고 각자만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들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기자가 한 인터뷰여서일까, 던져진 질문들은 어느 때보다도 정확히 핵심을 파고들어 그들의 목소리를 끌어낸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이 '나는 옳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독자에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게 목적인 책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때로는 그 사실이 불편하다. 누군가가 특별한 방법을 이용해서 성공했고, 그 방법을 공유하고 싶어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때로는 내가 힘겹게 구르며 얻은 교훈을 남들에게는 그런 고생 없이도 알게 하고픈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랬어, 그러니까 너도 이래야 해, 라는 전제는 언제나 위험하다. 그것은 때로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소위 '꼰대'의 언어로 변질되고 말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던 생각'은 그런 측면에서 참 색다른 자기계발서였다. 10명이나 되는 자기 개성 뚜렷한 인물들이 등장해서일까, 이 책에는 왕도가 없다. 10인의 창작자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자기만의 노하우로 커리어를 이어간다. 때로는 두 사람의 의견이 서로 대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생각은 전부 다르다. 모두가 각자 얻은 가장 큰 교훈을 툭툭 던져놓을 뿐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마음이 편해진다. 누구에게도 강요당하지 않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만화가 윤태호는 한번 자리에 앉으면 끝을 보기 전까지 절대 일어나지 않고 버티는 게 작품을 완성하는 힘이라고 말하는 반면 애니메이션 감독 우경민은 하루에 1%씩, 아주 조금만 해내더라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한 책에 등장하는 두 거장이 서로에게 굴복하지 않는데 책을 읽는 독자라고 그들의 이야기를 신앙마냥 따를 필요가 있을까. 그 짐에서 홀가분해지는 순간 자기계발서는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읽으며 진심으로 와닿는 메시지만 흡수할 수 있는 따뜻한 텃밭으로 변모한다. 어느 정도 바탕에 깔려있던 불편함은 사라지고 나보다 앞서 어떤 길을 걸어간 사람의 이야기에 순수한 동경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갈림길에서, 혹은 꽉 막힌 골목길에서, 또는 빛도 들어오지 않는 긴 터널 속에서 창작 작업을 하나의 옵션으로 두고 고민 중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 갈림길에서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골목길을 우회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혹은 어떤 방향으로 걸어야 터널의 끝이 나오는지 알려주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은 아마 어떤 답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잠시 모든 고민을 내려두고 한때 비슷한 고민을 하며 치열하게 지금의 자리까지 이른 10명의 선배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아마 마음이 조금쯤 가볍고 후련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 중 어떤 사람의 인생관이 자신과 하도 비슷해서 내가 이렇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구나, 하는 위로를 얻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런 마음가짐으로도 저런 작품을 만드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나 싶은 오기가 발동할 수도 있다. 뻔한 '꼰대질' 대신 담백하고 때로는 건조하기까지 한 인터뷰를 내세운 이 책을 통해, 나도 간만에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이 세상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글을 남기고 싶다고 혼자 생각하며 카페 창가에서 책을 덮었다.


우리는 모두 한번쯤 크레이티브했다

 

   그 유명한 '무한도전'조차 보지 않는 나도 나영석 PD의 이름은 안다. 웹툰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미생'의 윤태호 작가 역시 친숙한 이름이다. 차세정, 이라는 이름에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에피톤 프로젝트, 하는 소개가 덧붙었을 때는 반가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우경민의 애니메이션도 친숙했고 장유정이 연출한 뮤지컬도 여러 편 보았다. 유튜버 대도서관의 얼굴이 낯익었고,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도 잘 아는 영화였다. 김찬중이 설계한 한남동 오피스 건물은 내가 지난 몇년간 유일하게 길에서 우연히 보고 궁금해서 스트리트뷰를 뒤져가며 검색해본 건축물이었다. 박웅현 카피라이터는 정말 모르겠다 싶었는데 그가 쓴 카피 몇 개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이미 너무 유명해서 한 개인이 생각해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바로 그 카페에서 판매하는 보틀에 퍼엉의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었다. 참 운명적이게도.

   책을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 중 모르는 이름이 과반수 이상이라 내가 참 창의적인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자괴감이 들었었는데, 의외로 읽어나가다 보니 양유창이 만난 사람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내 일상과 맞닿아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꼬박꼬박 보던 '삼시세끼', 캡쳐된 명대사를 몇번이나 읽었던 '미생', 1학년 시험기간에 반복재생해서 듣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2집 앨범. 그런 것들을 떠올리니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더 부지런해졌다. 한장씩 넘길수록 데면데면하게 알던 사람과 더 친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의 첫인상이 내가 받은 것과 똑 닮았을지도 모른다. 참여한 사람 중 겨우 한둘의 이름만 알아보겠는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마 당신의 삶과 당신이 모르는 어떤 곳에서 꽤나 긴밀하게 얽혀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사소한 매듭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굳이 하던 일을 때려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려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현실이라는 벽 앞에 꿈을 포기해야 했던 경험이 없다고 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창의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크리에이터의 메시지

 

좋은 대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발견된다. 인물과 상황을 성숙하게 만들다 보면 언어 자체를 꾸미지 않더라도 그 순간에 맞는 적절한 대사가 나온다. 가장 좋은 대사는 의외로 아주 소박한 문장이더라.

- 윤태호, p. 33


음반을 만들 때는 장대높이뛰기 선수 같은 심정이 된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멀리, 원대하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때는 내가 만든 것들이 장애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걸 넘어야 하니까 부담스럽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새 앨범을 만들 때마다 의지가 점점 강해진다.

- 차세정, p. 67


어떤 현상을 볼 때 '저건 왜 저러지?'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나이가 들면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들에 대해 의심한다. 나는 잔 다르크처럼 반항하거나 앞에 나서서 바꾸자고 외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겠지'라며 받아들이는 편이다. 다만 '그 이유가 뭘까'라고 의심한다.

- 나영석, p. 86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루려고 할 때 밤을 새워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는 그런 것보다는 휴식도 취하고 즐길 건 즐기지만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금씩 열심히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더 롱런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하루에 1%씩만 하면 된다. 조바심을 내거나 쉽게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 우경민, p. 120


궁금한 게 많아서 그렇다. '이 정도면 됐잖아'라며 나도 모르게 안주하지 않기 위해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거다. 누구나 나를 보고 "넌 잘 할 거야"라고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렇게 되면 나도 모르게 자만하게 된다.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그곳이 어디든 가보는 게 내 스타일이다.

- 장유정, pp. 133-134


내 나이에는 이미 부모가 된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은 아이와 대화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도 그걸 왜 좋아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알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를 좋아한다고 하면 나는 직접 그걸 일일이 다 본다. 장난감도 사본다. 이걸 이래서 좋아하는구나 분석도 해본다. 말을 잘하는 능력은 공감능력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아이들과 소통하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대도서관, p. 169


예를 들어, 수십 명의 여자를 만나는 바람둥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를 가볍다며 쉽게 비난하지만 실제로 그는 그 순간만큼은 매우 진실하다. 그는 그 많은 여자들을 한 명 한 명 다 설득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진심을 담아 고백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 상대가 넘어온다. 그 사랑이 가짜라고 느끼면 여자들은 바로 등을 돌릴 것이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짜를 이야기하면 벌써 말할 때 눈빛이 흔들린다. 한 사람 한 사람 진실하게 설득해야 한다.

- 김성훈, pp. 199-200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일탈이다. "저건 무슨 건물이지?"하며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물을 계속 짓고 싶다. ... 무표정한 도시인들이 내가 지은 건물을 보고 잠깐이라도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반려견을 보살펴주듯 쓰다듬어주고 가는 그런 건물을 짓고 싶다.

- 김찬중, p. 229


유레카를 외치는 비등점이 있다고 해보자. 일단 그 근처까지는 어떻게든 올라가야 한다. 물의 비등점은 100도다. 그렇다면 90도까지는 가줘야 한다. 30도에서 아무리 손가락을 튀겨도 유레카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걸 90도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성실함이다.

- 박웅현, p. 244


물론 사랑이 늘 긍정적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사랑은 이 그림들처럼 일상 속에서 함께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그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내게는 그게 사랑이다.

- 퍼엉, p. 269


* 더난프렌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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