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아주 가볍게 - 과체중 인생, 끝내기로 결심했다
제니퍼 그레이엄 지음, 김세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에세이를 읽으며 작가와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니퍼 그레이엄의 이야기는 너무도 매력적이고,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녀의 글솜씨는 더더욱 그렇다. 번역을 한번 거쳤다 해도 한때는 무척 아팠을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녀의 문장들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아마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1분도 채 되지 않아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거라고 확신하며 책을 읽었다.

   아이 넷을 키우는 이혼녀, 자유기고가, 당나귀 두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와 보더콜리 한 마리, 그리고 70kg의 몸무게. 그것이 제니퍼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는 열두살 때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다이어트의 연속에 관한 것이다. 더불어 달리기에 진심으로 중독된, 내 다리로 땅을 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을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것은 자신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가장 아픈 순간에도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는 간단하게 말해서 뚱뚱한 사람이 달리기를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이 간단한 설명조차도 여러 문제에 봉착한다. 그녀가 에필로그에서 밝히듯 어떤 사람들은 167cm에 글을 연재할 당시 67kg였던 그녀의 몸무게를 뚱뚱하다고 부를 수 없다는 지적부터 시작한다. 늘 뚱뚱한 몸 때문에 고민하며 살아온 그녀는 이제 '충분히 뚱뚱하지 못한' 것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뚱뚱함은 제니퍼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상대적인 것이고, 사춘기가 오기 훨씬 전부터 몸매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었던 사람에게 '충분히 뚱뚱하지 않다'고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뚱뚱한 사람이 달리기를 하는 이야기. 대개의 사람들은 거기에서 다이어트 성공이나 콤플렉스 극복 같은 행복한 결말을 떠올린다. 이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이 맞다. 하지만 제니퍼가 날씬해져서 3호 사이즈의 원피스를 입을 수 있게 되어서도, 혹은 살이 빠지지는 않았다 해도 몸매에 대한 콤플렉스를 완전히 떨칠 수 있게 되어서도 아니다. 책을 쓰는 시점에도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그림자에 깜짝 놀라고, 전신거울 앞에 서는 게 불쾌하고, 스스로를 뚱뚱하다 여긴다. 때로는 그것이 그녀를 위축시키기도 한다. 하프 마라톤을 뛴 다음날에도 몸무게가 3키로나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그녀는 충격 없이 받아들인다. 그녀가 행복한 이유는 달리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달릴 수 있는 한 제니퍼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고, 그렇기에 그녀는 계속 달린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주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그 사실이 힘을 준다. 제니퍼의 몸무게가 '가볍게 아주 가볍게'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은 그녀의 인생에 아무 타격을 미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뚱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 그 말은 여전히 어떤 저주보다도 살벌하게 그녀의 마음을 괴롭힌다. 우리는 다 그렇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혹은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에만 존재한다). 어릴 적 우리를 아프게 했던 말들은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듣기 괴롭고, 세상에는 죽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 모든 걸 끌어안고도 제니퍼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가볍게 아주 가볍게'가 주는 가장 행복한 메시지다.


러너스 하이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를 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걸 일컫는 용어다. 주기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러너스 하이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이의 과학적 근거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달릴 때 체내에서 엔돌핀이 팡팡 솟구친다는 이야기도 사실은 검증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과학적으로 어떨지는 몰라도, 아무튼 대다수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러너스 하이는 실재한다. 달리기 초반의 괴롭고 힘든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숨이 차고 다리가 터질 듯 아파도 자꾸 더 뛰고만 싶은 그런 기분이 드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우리를 계속 달릴 수 있게 한다. 불가능한 거리일지라도, 도전할 수 있게 한다. 준비도 없이 하프 마라톤을 뛰었던 제니퍼 그레이엄처럼.

   어쩌면 산다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살아가는데에도 러너스 하이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계속 달려야만 하는 삶은 아마 변함없이 고단하고 힘들겠지만, 어느 고비를 넘어서면 머릿속을 치고 들어오는 어떤 기분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인지도. 제니퍼에게는 달리기가 그 역할을 했다. 그녀처럼 각자 자기 인생이라는 레이스의 러너스 하이를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무척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제니퍼의 멋진 문장들

 

   달리기에는 출발점과 결승점이 있다. 그러나 주자들 사이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선이 있다. 경기에 참가하지 않아도 예외는 아니다. 바로 '절대 옛날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라는 선이다. 그 선을 넘은 이상 감옥에 가거나,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기 전까지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게 된다. 나는 달리기를 시작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 그 선을 넘었다.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 p. 65


   임신을 할 때마다 특정 시간에 먹어야 하는 몇 가지 음식이 있었다. 갤런이 뱃속에 있을 때는 오전 9시부터 10시 사이에 맥도널드에서 파는 소시지 에그 플래터를 먹었다. 캐서린을 임신했을 때는 이른 오후마다 버섯을 곁들인 중화풍 닭요리를 먹었다. 나는 자궁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했다. 그래야만 무고한 나무덤불에 토하지 않을 것이었다. 여기를 빌어 말하건대, 당시 설리번 아일랜드 타운 공원에서 풍경을 즐기던 죄 없는 이들에게 오래전부터 미뤄왔던 용서를 빌고 싶다.

- p. 75


   입덧 때문에 몸무게가 좀 줄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임신할 때마다 30킬로그램씩 늘어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겠지. 천만의 말씀. 나는 살찌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 pp. 75-76


   나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준비 계획을 짰다. 열심히 연습한다. 천천히 몸을 만든다. 매주 달리는 거리를 10퍼센트 이하씩 늘려나간다. 하하하! 이런 충고를 하는 전문가들은 아마 애가 없겠지!

- p. 95


   달릴 때의 내가 진정한 자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걷기에도 장점은 있지만, 달리기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달릴 수 있으며,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은 비록 말은 못하지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무신론은 치유할 수 있지만, 무지외반증은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시간 동안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셀러리보다 아이스크림이 몸에 좋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 둘을 가장 친한 친구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가 꽉 찬 상태에서는 황홀감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칠 때까지 움직이면 불면증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들이 행복하게 잘 자라는 가정에서 이혼은 예외 없이 잘못된 선택이며, 결혼에는 중독이나 남용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바깥에서 들이마시는 공기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프리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 pp. 343 - 344


   '양은 뚱뚱하지 않아. 푹신푹신한 거야.'

   뭐, 양은 뚱뚱하긴 하지. 하지만 호수를 달릴 수는 있어. 물에도 둥둥 뜰 수 있고. 이 세상에 좀비의 재앙이 닥쳐 지구상에 먹을 것이 없어지면 동족을 찾아 나서리라. 우리는 최후의 순간까지 저장지방의 힘을 빌려 살아남으리라. 우쭐거리며 폐허 사이를 걷고, 쓰레기를 치우고, 좀비를 없애고, 지구를 되찾으리라. 우리 뚱보들이 이 모든 것을 해내리라.

   그나저나, 푹신푹신하다는 것은 좀 과장된 표현이다.

- p. 357


   오늘은 70킬로그램으로 복귀했다.

   그래도 위스키 피칸 아이스크림이라면 1킬로그램과 바꿀 가치가 있다.

- p. 370


written by. 가비

* 더난프렌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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