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시대에도 폭력과 학살로 점철된 세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세계질서의 구성성분들인 국민국가가 ‘정체성 정치의 환상’에 기초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정체성 정치는 자아의 존립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타자를 만들어내고 없애버림으로써 존재하며, 그것이 인종말살과 집단적 성폭력 등의 양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행사되는 정치 폭력은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과 존립에 있어 일탈적인 사태가 아니라, 중심적 사태로서 즉, ‘구성적 요소’로 기능한다. 이러한 정치 폭력의 기술체계는 파시즘의 형태를 띠고, 이는 인간의 몸을 매개로 권력이 행사되는 ‘몸의 정치’로 구현된다. 즉 ‘몸의 정치’는 주민의 몸을 국가에 귀속 혹은 배제하는 과정을 통해 전면적으로 규율화함으로써 국가 통치권이 형성되는 정치이다.

남한에서는 한국전쟁 직전에 발발한 ‘제주 4.3 학살’이 신생 근대적 국민국가가 특정 구성원을 배제함으로써 이후 정치적 안정성의 보루인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수립하고, 자신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는 정치적 장소였다. 국민국가 내의 개인들은 모두 ‘국민’이라는 기표로 호명되지만 그것은 동질적인 집단을 의미하지 않으며, 국가로의 전면적인 귀속과 배제라는 양극단 속에서 차별적으로 규정된다. 국가권력은 ‘국민의 복지’라는 명분 하에 ‘특정 집단’을 차별적으로 억압하거나 말살한다. 저자는 4.3사건을 ‘폭동’이나 ‘항쟁’으로 보는 입장 모두에서 한 발 비껴서, 대다수의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국가 폭력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학살 과정에서 여성들은 ‘빨갱이’에 대한 증오와 성적 가학의 쾌락이 체현된 ‘육체(몸)’로 재현되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한다. ‘빨갱이’, ‘주민’, ‘여성’의 기표들은 곧잘 중첩되며, 각각의 ‘타자성’들이 결집되는 장소인 여성의 몸은 성폭력과 고문의 장소가 된다. 빨갱이에 대한 공포와 증오는 여성의 몸을 학대함으로써 상상적으로 정복된다.

직접적인 성폭력과 성고문의 피해자인 여성들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고통을 몸에 각인한 채 살아가며, 그것이 언어화될 때조차 그것은 남성주체에 의해 발화된다. 여성은 자신의 찢겨진 나체를 볼 수 없으며, 남성은 그 고통을 바라보는 관객이다. 여기서 고통의 재현의 한계가 존재하며, 때로 고통을 전달하는 남성의 시선은 고통 속에서 욕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전시상태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폭력의 구조는 평시의 가부장적 질서와 연속적이다. 전시에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남성공동체인 가문의 수치로 인식되어 여성의 고통은 은폐되고, 침묵을 강요당한다.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여성피해자의 목소리는 굿의 형태를 통해, 즉 종교적 상상계에서나 연약하게 이루어진다.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의 경험을 증언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한 여성이 자신의 몸을 통해 다른 여성의 고통을 담지할 때, 즉 레비나스의 말을 빌어 “타인을 위한 볼모가 되어 줄 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통의 연대’만이 새롭고도 낡은 세계의 폭력적 질서를 와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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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대학 재편과 대학 공간의 변화

- 고려대의 공간 분석을 중심으로 -


1. 문제 제기




최근 몇 년 사이에 진행된 대학 공간과 풍경의 변화는 소위 ‘대학의 정체성’에 어떤 단절이 있었음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경쟁하듯 신축되고 있는 기업 기부 건물들, 대자보 대신 게시판을 가득 메운 취업정보 포스터, 대학 공간 내에 입점하는 다국적 기업의 체인점들. 이러한 풍경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대학 공간의 ‘소비 공간화’, 즉 ‘자본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문제적’ 현상인가? 혹시 대학이 직업훈련소가 되어버렸다는 이데올로기적 수사가 그러한 풍경들보다 더욱 낯설게 다가오지는 않는가? 우리의 잠정적인 대답은 ‘그렇다’이다. 대학 공간의 소비 공간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항담론’의 부재는 그것이 현재의 대학주체들에게 ‘문제’로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즉 지금과 같은 대학의 공간 배치와 풍경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 ‘저항의 진지’를 상징했던 대학 공간의 의미가 그와 대립되는 ‘자본주의적 소비 공간’으로 급격히, 아무런 단절의 고통 없이 전화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1)

삶의 물질적 토대인 공간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주체를 둘러싸고 있어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거리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 근대 학문체계에서도 시간담론에 비해 공간담론은 부차적인 지위를 차지해왔다. 이는 “자신이 공간적인 은유에 사로잡혀 있다고 고백하는 푸코(Foucault)조차도 ‘공간은 죽은 것, 고정된 것, 비변증법적인 것,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반면, ‘시간은 풍부하고 비옥하며 살아있는 변증법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언제 그리고 왜 발생했는가에 대하여 의아해”2)했다는 데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르페브르(H. Lefebvre)는 이렇듯 공간을 무엇인가로 채워져야 할 단순한 ‘빈 공간’으로 인식하는 일상적 사고의 공허함을 비판하면서, 전통적인 논리적-수학적 공간론의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공간 개념과 대비되는 실천적-감각적 영역으로서의 ‘사회적 공간(social space)’ 개념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공간은 사회적 생산물이며, 따라서 특정한 사회적 관계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공간을 생산한다. 예컨대 가치증식이라는 보편법칙 하에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사회적 관계를 측정 가능한 상품들(교환가치)의 관계로 추상화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그에 상응하는 ‘추상 공간(abstract space)’을 생산해낸다.3)

이렇듯 공간이 사회적 ‘생산물’이라면, 공간은 사회적 (재)생산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와 계급투쟁을 반영하여 만들어지고, 따라서 공간의 생산과정은 곧 권력구조를 재배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공간은 공간의 의미를 둘러싼 재현과정에서의 권력관계를 함축하며, 공간의 배치와 주체화의 기제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4) 따라서 공간에 대한 인식은 자본의 축적 전략이라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그에 상응하는 국가의 제도적/정책적 개입, 그리고 공간의 의미를 둘러싼 담론상의 재현과정과 공간의 배치에 의한 주체화의 과정으로서 총체적으로 사고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글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대학 공간의 변화가 대학 발전의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맑스를 좇아 ‘왜 그 내용이 그러한 형태를 취하는가?’, 즉 ‘왜 현 시점에서 기업 자본에 의한 건물 신축과 소비 공간화라는 형태로 대학 공간의 변화가 진행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을 통해 대학 공간이 자본의 이해관계와 사회적 역학관계를 반영하는 갈등의 장소라는 것, 그리고 대학 공간의 변화가 그에 따른 일종의 구조적 효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대학 공간의 변화가 노동의 유연성을 지상 목표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노동력 재생산의 메커니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대학 공간의 재편에 있어 가장 극명한 변화를 보여주는 고려대의 공간 분석을 중심으로 대학 공간을 소비 공간으로 재편하는 흐름 이면에 깔린 자본의 노동력 재생산 전략 및 신자유주의적 대학 정책과의 친화성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역공간(liminal space)/추상공간/가시성의 배치 등의 개념을 통해 변화된 대학 공간의 성격이 의미하는 정치적 함의, 그리고 그러한 공간적 배치가 대학주체의 주체화 과정에 끼치는 영향을 추적할 것이다.




2. 대학 공간의 상품화와 신자유주의적 대학 재편




르페브르의 문제의식을 경유하여 공간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한 하비(D. Harvey)는 자본주의 사회의 공간생산 논리가 ‘공간의 상품화’에 다름 아님을 설파한다. 공간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자본의 끊임없는 이윤창출의 도구로서 공간이 이용된다는 것을 말한다. 즉 과잉축적의 위기를 벗어나 자본회전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해 물리적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에 자본투자를 한다든지(이른바 ‘공간적 돌파 spatial fix’), 상품소비 공간을 세련되게 꾸며 소비를 가속화하는 것(이른바 ‘문화적 돌파 cultural fix’) 등을 말한다.5)

바야흐로 대학 공간은 명시적이고 노골적인 ‘상품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학 공간의 변화를 자본 축적 전략이라는 일면적 요인만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우선 이론적 난점으로서 그러한 관점은 자본의 일반적인 축적 전략이 어째서 상이한 사회적 공간 형태를 구성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관철되는가에 대해서 명확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6) 따라서 대학으로의 기업 자본 침투는 이윤창출을 위한 자본투자라기 보다는 기업이 원하는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자본의 전략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에 의한 제도적 보완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개념적 구분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대학 공간의 상품화’ 과정을 각각 대학 공간의 소비 공간화와 대학 자체의 상품화(소위 말하는 ‘대학 마케팅’)라는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인식론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용하다. 물론 그 둘은 서로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별개의 과정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상호적 관계이다. 이를 통해 연구 공간으로서의 대학 공간을 마치 쇼핑몰처럼 세련되게 치장하는 논리와 대학의 건물 신축 열풍이 주로 기업자본의 투자에 의존하는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대학 공간의 소비 공간화 - 고려대를 중심으로




먼저 대학 공간의 소비 공간화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가장 첨예한 변화를 보여주는 고려대를 찾아가도록 한다.

새롭게 개통된 지하철 6호선을 타고 ‘고대입구’ 역에서 내린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에스컬레이터의 출구는 고대로 들어가는 진입로와 곧장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외벽을 끼고 돌아 새롭게 단장한 정문을 통해 들어가는 길을 택하겠다. 정문으로 가는 동안 길 건너편 상가들을 보니 몇 년 전과 다를 바 없이 낡고 궁색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정문에 도달하니 전혀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흙먼지 날리던 예전 대운동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시원스런 분수대를 필두로 잘 정리된 푸른 잔디밭이 구획을 이루고 있는 깔끔하고 웅장한 중앙광장이 펼쳐진다. 유럽의 잘 가꾸어놓은 공원에 들어선 듯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저 멀리 소실점의 끝에 유서 깊은 본관건물이 올려다 보인다. 전체적으로 본관과 분수대를 축으로 대칭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어 차분하고 질서정연한 느낌을 준다. 잔디밭 구역 주변에 조경해 놓은 나무 그늘 밑으로는 벤치들이 들어서 쉴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제 중앙광장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 보자. 중앙축선을 기준으로 좌우측에 각각 입구가 있으나, 우리는 좌측 입구를 이용하겠다. 지하로 내려가면 로즈버드 커피전문점과 서점, 24시간 편의점, PC방 등의 편의시설이 보인다. 우측으로 나있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는 각종 행정편의시설과 열람실이 들어서 있다. 열람실은 학생증이 없으면 못 들어가니 복도를 따라 우측으로 계속 이동해보자. 잠시 걷다 보면 어느새 100주년기념 삼성관 지하 라운지에 도달해 있다. 원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고미술 전시실, 고려대의 역사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 최첨단 환경을 갖춘 멀티미디어실 등이 나온다.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와 지하철 환승통로를 연상케 하는 복도를 따라 계속 걷도록 하자. 복도 중간 지점 내려가는 계단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또 다시 작은 규모의 라운지가 등장하고, 학생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LG-POSCO 경영관이다. 한 층 올라가니 유명한 ‘이명박 라운지’가 나온다. 이쯤에서 지하공간을 벗어나 건물 밖으로 나가기로 하자. 현관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면 경영대생을 위한 고급스런 도서관을 볼 수 있다. 현관 라운지를 지나가다 보니 벽에 걸린 여러 대의 대형 LCD에서 세계 각국의 뉴스를 방영해주고 있다.

꽤 먼 거리를 이동해서 피곤하다면, TIGER PLAZA에 입점한 스타벅스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실 수도 있다. TIGER PLAZA에는 그 외에도 던킨 도너츠나 패밀리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이공계 캠퍼스에는 고려대의 등록금 수납 은행인 하나은행에서 자금을 댄 하나스퀘어가 지난해 공사를 마쳤다. 역시 지하의 넓은 공간을 활용한 하나스퀘어에는 열람실, 세미나실과 함께 버거킹과 영풍문고, 피트니스 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지금까지의 동선을 반추해보면 새로운 공간 배치와 구성이 대형몰(mall)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코엑스몰이나 고속터미널 센트럴파크와 같은 대형몰들은 광대한 공간 안에 백화점, 쇼핑몰, 문화 공간, 지하철 등의 공공 공간이 한데 혼합되어 있는 구조를 취한다. 이러한 몰의 공간 구성은 폐쇄성과 근접성을 특징으로 한다. 몰은 외부와 분리된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공간으로서, 외부의 더운 날씨, 짜증스런 교통 혼잡과 대비되는 깨끗하고, 안전하고, 화려한 천국 같은 내부이다. 또한 몰은 쇼핑, 문화생활, 사회적 상호작용 등 방문객의 다양한 필요와 욕망의 대상들을 서로 인접한 곳에 배치함으로써 최대한 방문객의 발길을 사로잡아 놓는 곳이다.7)

한 고려대생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 사이 학교에 학생 수가 많아진 것 같다는 느낌을 피력한다. 정원이 늘지 않은 이상 학생 수가 늘어나진 않았을 테고, 몰링(malling)의 효과로 더욱 많은 학생들이 한정된 공간 안에 머물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일 것이다. 이제 굳이 학생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러 학교 앞 커피숍에 들르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과 PC방에 가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며, 운동을 하기 위해 집근처의 스포츠센터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고려대에 사람이 많아진 이유는 방문객의 증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하철과 연계되어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아름다운 캠퍼스를 찾는 발길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대학 공간의 상업화, 소비 공간화는 비단 고려대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연세대 학생회관 2층의 글로벌 라운지를 보면 “한쪽 벽면은 LG LCD TV 14대와 대형 TV 한 대로 구성돼 있고, 입구 쪽에는 스탠딩 PC가 즐비”하다. “모니터가 붙어 있는 보드마다 STX, 동아제약 등 지원 기업의 이미지(CI)와 광고가 반복되는 LCD 화면이 붙어 있다.” 이화여대에는 지난 2004년부터 ‘Ewha Campus Center(ECC)’ 건설이 한창인데, 학교측은 이 건물에 “푸드코트를 마련하기 위해 모 기업과 접촉 중이라고” 한다. 심지어 “부산대학교는 캠퍼스 안에 쇼핑몰 건물을 짓는 공사를 시작하고 임대분양 광고를 냈다.”8)

이러한 현상들에 비추어볼 때 이제 대학 공간의 소비 공간화는 주지의 사실이며,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인 듯이 보인다. 소비 공간은 질적으로 현격한 차이, 즉 미학적 차별성을 강조하게 되고, ‘필요’의 원칙이 아닌 ‘욕망’의 원칙을 이용한다. 소비 공간화의 행로를 따르고 있는 대학 공간 또한 대학 구성원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자치 활동 공간이나 학습 편의 시설보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각종 상업시설을 유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욕망 창출의 가장 효과적인 기제로서 ‘스펙터클’9)이 동원되고, 그에 따라 대학 풍경이 스펙터클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학 공간의 상품화와 스펙터클의 동원은 그 공간을 점유한 주체들에게 은연중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한다. 몇 년 만에 고려대를 방문한 한 여학생은 “하이힐을 신고, 잘 차려 입은 후 학교에 나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과거 대학 공간의 특징이었던 공동체성이나 저항성은 ‘이미지’와 ‘스타일’을 중시하는 소비 자본주의적 개인주의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 고려대 곳곳에 들어서 있는 라운지들은 특정 소속원들의 공유 공간인 동아리 방이나 과실과 달리 익명의 다수가 불규칙적으로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공간이다. 그 곳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큰소리를 내지도 않고, 조용히 이어폰을 꽂은 채 책을 읽거나,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 원하기만 하면 각 개인들은 열람실, 라운지, 커피숍 등을 오가며 공동체에 휩쓸리는 법 없이 개인주의적 대학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 성향은 이런 공간 구성과 그로 인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공간의 변화는 공간의 ‘의미’의 변화를 수반하고, 매일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다국적 기업의 체인점과 상업시설들은 대학을 ‘소비 공간’, ‘자본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데에 아무런 불편함을 유발하지 않는다. ‘이명박 라운지’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100주년기념 삼성관에서 취업 공부를 하는 주체가 정치적 활동을 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그의 라이프스타일과 좀처럼 조화를 이루기 힘들 것이다.




  2) '대학 마케팅'과 기업 자본의 침투




자본의 욕망에 몸을 맡긴 공간은 단순히 상품의 소비를 촉진하는 수준을 벗어나 직접 공간 자체를 소비의 대상으로 구성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대학 자체를 소비자(수험생)에게 적극적인 구매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학 경쟁력 강화’를 기치로 내건 각 대학들은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에 나서고(모교 연예인을 활용한 홍보 전략), 지하철 역명을 둘러싼 갈등을 벌이고10), 스펙터클한 외관의 캠퍼스로 수험생을 유혹한다. 이는 실질적인 교육 여건이나 교육의 질보다 대학의 이미지를 광고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후기 자본주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욕망 창출의 가장 효과적인 기제는 스펙터클의 동원이다. 고층빌딩과 상업광고로 도시공간을 장악한 스펙터클이 뒤늦게 대학 공간에 이식된다. 따라서 변화는 무엇보다도 우후죽순 솟아오르는 신축 건물과 리모델링으로 인한 대학 풍경의 변화에서 첨예하게 감지된다. 빛바랜 외벽과 우중충한 콘크리트 건물로 표상되던 대학 캠퍼스들은 바야흐로 환골탈태중이다. 고려대의 경우 주요 건물의 외형을 중세시대의 고풍스런 석재 건축물처럼 리모델링하여 마치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레고 블록을 연상케 한다.

대학은 이러한 건물 신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부분 대기업의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한 경제 주간지 조사에 따르면 삼성의 경우 “90년대 서울대 호암관을 시작으로 2008년 완공예정인 연세대 120주년 기념도서관까지 포함해 지원 규모가 총 1000억여원에 달하”며, “LG는 고려대 LG-POSCO 경영관 등을 포함해 총 600억원가량을 지원했다.” 또한 “포스코 500억원, SK는 300억원가량을 지원했고, 신세계도 이화신세계관 건립을 위해 150억원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다시 각 대학별로 살펴보면 서울대는 “포스코생활체육관, SK경영관, LG경영관, CJ어학연구소, LG연구동, SK텔레콤연구동, 호암관”을 지원받았고, 연세대는 “삼성관, 상남경영관”, 이화여대는 “이화SK텔레콤관, 이화삼성교육문화관, LG컨벤션홀, 이화포스코관, 이화신세계관, 이화삼성캠퍼스”을 기업으로부터 기부 받았다.11)

고려대의 경우 2005년에 발간한 「개교 100주년 기념 건축사업 보고서」12)에 따르면 2001년도 이후 100주년기념 삼성관, LG-POSCO 경영관, TIGER PLAZA 등 1캠퍼스에만 총 12개의 건물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했다. 이 중 기업 명칭이 들어간 건물들은 기업 기부금에 의해 지어진 건물들이며, 그 외 동문들의 발전기금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기도 했다.

기부금 액수에 따라 기부자에게는 일정한 예우가 제공되는데, 단일 건물의 건축비를 기부하면 “기부자의 의사에 따라 건물 명칭에 기부자의 이름을 명명”해주고 “기부자의 기념물을 제작 비치하여 고귀한 뜻을 영구히 보존”하며, 10억원 이상을 기부하면 “기부자의 사진, 약력, 기념물, 유품 등을 본교 내에 소장하여 영구히 기리”는 정책을 시행중이다. 심지어 기자재 구입비용을 기부해도 “기자재에 기부자의 명패를 부착해”주는 예우조항에 있으니, 학내의 책․걸상 하나에도 동문들의 고귀한 뜻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할 수 있겠다.13)

LG-POSCO 경영관 내로 들어서면 호텔 로비를 방불케 하는 고급스런 양식의 라운지를 볼 수 있다. 모든 테이블에 노트북을 연결할 수 있는 전원장치가 내장되어 있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스탠딩 PC들이 따로 늘어서 있다.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마치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로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그 곳이 바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이명박 라운지’이다. LG-POSCO 경영관내 강의실 정문마다 기부자의 이름이나 기업명을 딴 강의실명이 새겨져 있는 것도 이러한 예우정책의 일환이다. 

이러한 기업의 건물 기부를 단순히 기업 이미지 제고와 홍보 효과를 위한 것이라거나, 기업과 대학당국이 내세우듯 교육 여건 개선과 학술 진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순진한 판단이다. 기업은 건물을 기부하는 대신 ‘산학협동’이라는 명목으로 대학에 침투해 그들이 원하는 ‘인재 맞춤형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노동력의 초기 교육비용을 일정 부분 대학에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서강대는 최근 삼성전자와 반도체 전문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반도체 트랙’ 협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서강대에 5억원의 운영기금과 30여명의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을 제공하고, 대학은 삼성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제공하는 식이다. 하이닉스는 한양대 전자, 재료, 물리, 화학 분야 학부생 중 20여 명을 선발해 반도체 관련 교과목을 집중 수강케 하고 졸업 후 입사기회를 부여한다. 고려대의 경우 공과 대학원 진학을 앞둔 4학년 때부터 2년간 대학원에서 LG가 주는 과제 연구를 수행하고 장학금을 받는다. 이른바 ‘주문형 석사’ 제도이다.14) 이는 대학이 취업 전부터 기업의 인력 교육을 대신해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기업의 기부금을 받는 대학, 기업으로부터 직접적인 장학금 혜택과 과제를 받는 대학생, 그리고 그 기업의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신자유주의적 대학 재편과 노동력 재생산




‘대학의 상품화/기업화’는 대학에 경쟁원리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의해 적극적으로 지지되며, 또는 그러한 정책의 결과이기도 있다. 앞서 인용한 경제 주간지의 기업 기부금 관련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기업과 대학은 자본주의의 양 축이다. 대학에서 좋은 인재가 나와야 기업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고, 열악한 재정에 허덕이는 대학들은 기업의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 대학의 역할이 무엇보다 기업이 원하는 경쟁력 있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임을 자명한 당위적 사실로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당위적 진술 앞에 교육의 공공성이나 전인교육에 대한 논의는 설자리를 잃게 된다.

교육부가 발표한 문서와 제정한 법령을 중심으로 한국 대학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분석한 임재홍에 따르면 “최근 10여년간 전개된 우리나라 대학교육정책의 흐름을 정리하면 대학의 국제화와 경쟁력강화이며, 그 구체화는 신자유주의정책을 대학에 이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자유주의대학정책의 최상위개념은 지식기반사회에 걸맞는 유능한 인재의 양성”15)이다. 이러한 취지는 “2001년 1월 종래의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명칭을 개정한 것”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16) 즉, 대학 제도의 합리화나 교육 여건의 개선보다 ‘경쟁력 있는 노동력의 창출’이 최상위의 목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인적자원’을 양산하기 위한 교육부의 해법은 간단하다. 대학에 ‘경쟁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것이다. 임재홍은 교육부가 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들을 크게 ‘대학(원)의 국제적 경쟁’,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간의 경쟁’, ‘대학 내에서의 경쟁’, ‘교수간의 경쟁’으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교육의 공공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음을 비판한다.17) 예컨대 대학 내 경쟁에 해당하는 학부제의 경우,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1~2년간 대학생활을 한 후 자신의 세부전공을 선택하게 한 결과 학생들의 수요가 적은 과목이나 전공은 폐지되거나, 폐지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외형적으로 총장의 중앙집권적 권력을 각 단과대학으로 이전하는 듯이 보이는 독립채산제의 경우에도 형식적인 권력분배 이면에 단과대학별 경쟁을 도입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18)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과 대학에 침투한 기업 자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이 바로 ‘경쟁력 있는 노동력의 창출’이라는 지상최대의 목표에서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최선의 방편은 무차별적인 경쟁의 도입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자본의 공간 이동성이 가속화되고, 금융자본에 의한 자본의 국제화와 단일한 세계시장이 형성되면 지역 내부투자를 유인하려는 ‘지역간 경쟁’이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19) 이런 맥락에서 대학의 상품화 또한 신자유주의적 경쟁 메커니즘의 도입에 따라 표출된 ‘대학간 경쟁’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유연적 축적을 자본 축적 전략으로 삼는다. 유연적 축적 하에서의 노동조건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구조적 실업’, 급격한 숙련의 파괴 및 재구성, 실질임금의 적당한 상승, 그리고 포디즘 체제의 정치적 기둥 가운데 하나인 노동조합 세력의 통제를 의미”20)한다. 노동의 유연성에 의한 고용 조건의 불안정과 노동 강도의 강화는 노동주체에게 있어 견딜 수 없는 억압으로 다가온다. 신자유주의가 강조하는 경쟁 메커니즘은 이러한 노동의 유연성을 강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신자유주의가 부과하는 불안정하고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은 경쟁의 압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인적 자원의 창출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밑바탕에 깔린 진정한 의도는 ‘경쟁을 감내하는’ 노동력, ‘노동의 유연성을 받아들이는’ 순응적이고 타협적인 노동력의 창출이다. 이는 최근 기업들이 직무 내용과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토익 점수와 높은 학점을 요구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높은 토익 점수가 영어 실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높은 학점이 우수한 업무 능력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기업들이 요구하는 것은 창조적이고 전인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기존 체제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 그 목적이나 가치를 따지지 않고 묵묵히 따르는 체제 순응적 노동력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노동력 재생산 전략과 앞서 살펴본 대학 공간의 상품화가 대학주체들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데에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구조적 병폐인 학벌주의와의 관련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벌 경쟁 속에서 대학주체는 대학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하기에 대학간 경쟁의 수단인 대학의 상품화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대학으로의 기업 자본 투입과 대학 공간의 상품화가 대학 발전의 지표라고 인식한다. 이는 이들이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내세우는 경쟁력의 이데올로기 또한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개별 자본가간의 ‘경쟁’은 추상적인 수준의 가치법칙을 현실에 구체화시키고, 이후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작동하면서 자본의 비인격적 운동을 촉발시키고, 상품들의 관계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이에 따라 경쟁에 편입된 개별 자본가는 끊임없이 특별잉여가치를 생산해내야 하는 구조적 압력에 처하게 되고, 그 영원한 순환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경쟁은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공간을 끊임없이 자본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에(세계시장의 형성), 이 흐름을 끊으려면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공간이 새롭게 생산되어야만 한다.

반면 학벌경쟁의 경우 평준화나 국․공유화 등의 정책을 통해 경쟁의 흐름을 끊을 수 있는 빈 공간이 존재한다. 이윤추구의 논리인 경쟁의 논리는 동등하고 평등한 교육 여건의 제공을 목표로 하는 대학 공공성의 이념과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학 공공성 확보는 이러한 무한경쟁의 고리를 끊는 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21) 




3. 역공간(liminal space), 추상적 공간으로서의 대학 공간




대학 공간이 단순히 소비 공간과 노동력 재생산의 장이라는 성격만 갖는 것은 아니다. 대학 공간은 다른 사회적 공간과 마찬가지로 배치의 변화와 그로 인한 의미 변화가 발생하는 장소이며, 공간의 전유와 활용을 둘러싼 투쟁의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역공간, 추상 공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최근 진행되고 있는 대학 공간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분석하고, 그 정치적 함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공간의 배치에 따른 고유한 가시성의 배치는 그 자체 특정한 권력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보는 자는 언제나 보이는 자보다 우월하다. 이에 따라 대학 공간에서 은폐된 풍경을 찾아냄으로써 그 이면에 놓인 권력 관계를 드러낼 것이다.

역공간이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문화와 경제, 시장과 장소 등을 가로지르고 결합하는 공간”22)이다. 이러한 역공간의 대표적인 사례가 소비문화공간이다. 예컨대 코엑스몰이나 센트럴파크는 노동공간도, 문화공간도, 소비만을 위한 공간도 아닌 복잡한 영역으로서 역공간의 성격을 띤다. 마찬가지로 지하철역과 연계된 백화점들은 사적 공간도 아니고 공공 공간도 아닌 모호한 경계를 생산한다.23) 이러한 역공간 개념은 모두에게 열린 중립적 사회공간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모순을 은폐하는 부르주아적 경관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했다.

고려대의 공간 배치에서 우리는 이러한 역공간적 성격을 볼 수 있다. 고려대 중앙광장은 재학생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출입이 허용된 공간이다. 분수대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물장난을 하고, 고풍스런 대학 건물을 배경으로 중고생들이 핸드폰 사진을 찍으며, 산책 나온 주민들이 한가로이 거닐곤 한다. 방문객들은 지하 광장의 커피전문점, 화장실, 편의점 등에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있으니 중앙도서관과 열람실들이다. 각 단과대학 열람실을 비롯하여 모든 도서관과 열람실에는 입구에 바코드 인식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고대 재학생이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중앙도서관을 제외한 외부 열람실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는 대학들이 많았으나, 이제 대부분의 대학들이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이 공간을 지배하는 논리가 선택과 배제의 변증법임을 의미한다. 이는 대표적인 소비 공간인 백화점의 전략과도 유사하다. 백화점은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며, 지하철역과 연계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지나쳐가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출입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거지나 노숙자 등은 출입이 제한된다. 그래서 백화점 공간으로 진입하지 못한 거지와 노숙자들은 백화점과 지하철역의 경계 부근에서 배회하는 것이다. 고려대 방문객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 또한 실질적으로 중앙광장 외에는 상업시설에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차별적 접근성은 그 공간을 점유한 구성원들에게 고유한 정체감을 형성한다. ‘고대인의 자부심’은 차별적으로 공간을 향유하는 데에서도 그 근거를 마련한다.

이러한 광장 개방의 효과는 부수적인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광장이 일종의 지역 공원화되면서 과거 대학을 특징짓던 광장 정치를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재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평화로운 산책 장소로서의 중앙광장은 그 곳을 정치 투쟁의 장소로 점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한다. 이는 예컨대 집회 공간으로의 공간 전유를 막기 위해 여의도 공원이나 시청 앞 광장을 공원화한 것과 유사하다. 과거 거리로 뛰쳐나가는 출발점이었던 고려대 정문 앞 대운동장이 중앙광장으로 변한 것은, 그 공간의 정치적 의미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제 ‘대학생들이 정문을 뛰쳐나왔다’는 표현은 예전과 같은 울림을 주지 못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광장의 소멸은 민주주의의 소멸, 그리고 그 자리를 전유한 소비 자본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례로 중앙대의 경우 학우들의 이동이 가장 빈번한 곳이며 시선이 집중되는 위치로서 각종 집회의 장소였던 해방광장이 어느 날부터 주차장으로 전용되었다. 그 후로는 학내에서 집회를 조직하려 해도 광범위한 참여와 관심을 끌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폭력적인 개입이나 이데올로기적 억압 없이 단지 공간의 용도를 전환시킨 것만으로 정치적 행위의 조직 가능성을 불식시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 공간을 지배하는 논리로서 ‘합리성의 논리’가 개입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광장의 주차장으로의 공간 전용은 ‘관료적 합리성’의 담론에 의거해 그 정당성을 주장한다. 최근 각 대학들은 사법고시나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별도의 공부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런 공간 주변에서는 소음 생산이 엄격히 금지된다. 여기서도 타인의 사적 공간에 대한 침입을 금기시하는 부르주아적 추상 공간의 ‘합리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24) 따라서 최근 대학 공간의 재편에는 자본주의적 소비 공간으로의 변화와 함께 ‘근대적 합리성’에 입각한 추상 공간으로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시각이론에 따르면 근대적 공간인 “원근법의 공간은 내용이 사상되고 형식만 남는 추상화와 사물화라는 의미에서 합리화된 공간이고 또 의미 상실과 계산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목적 합리성에 의해 조직되는 합리화된 공간”25)이다. 즉 원근법적 공간은 “외부의 관찰자에 의해 포착된 공간이며, 그 내부의 인간적 삶이 거세된 탈-육화된 공간이자,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해 등질적으로 분할된 추상 공간”26)이다. 이러한 원근법적 공간에서 바라보는 주체가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외부 세계를 연장으로서의 순수 공간으로 환원하여 그것에 보편적 질서를 부여하는 근대적 합리적 주체, 즉 데카르트적 주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려대 중앙광장의 구도가 일종의 원근법적 경관을 구성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고대 중앙광장은 정문에서부터 소실점의 자리에 위치한 본관에 이르기까지 대칭적으로 구획된 잔디밭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높아지다가 본관 근처에 이르러서는 계단식 층을 이루는 구조이다. 이러한 가시성의 배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본관에 모종의 권위를 부여하게끔 하며, 그 공간이 합리적으로 질서 잡힌, 따라서 그러한 질서를 보존해야 할 공간임을 암암리에 드러내게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가시성의 배치, 즉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은폐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 기저에 작동하고 있는 권력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예컨대 “풍요와 화려함을 전시하고 기표들의 유희로 가득 찬”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소비 공간들(압구정, 홍대 앞)은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사회적 무대 뒤편으로 추방하고 보이지 않게 덮어버리는 공간들이기도 했다.” 예컨대 대단위 쇼핑공간과 아파트 단지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도시 빈민들의 판자촌을 밀어내면서 지어지고, 박정희정권은 “많은 고물상들이 밀집해 있던 황학동 시장이 고가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에서 보이지 않게 가려버렸다.”27) 

그렇다면 대학 공간에서 은폐되는 풍경은 무엇일까? 바로 대학 공간의 환경미화나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들 대부분은 대학본부가 아닌 외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 법적 책임이 없는 대학은 그들의 노동조건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에겐 휴식공간조차 마련되지 않거나 눈길을 끌지 않는 곳에 겨우 자리 잡는다. 대학 공간의 합리적이고 세련된 외관은 이른 새벽부터 행해지는 그들의 노동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4. 마무리




과거 대학의 공간은 그 의미가 유동적이고, 불변적이며, 개방된, 일종의 ‘카니발적인’ 공간이었다. 광장은 축제의 장이자 정치 집회의 장이었고, 잔디밭에서는 주점이 펼쳐졌으며, 대학 본관은 상황에 따라 점거해야 할 공간이었다. 동아리방이나 학생회실은 늦은 밤 아무 때나 들어가 쉬는 곳이었고, 공동체 생활의 터전이었다. 반면 의미가 선험적으로 고정된 것으로 간주되는 추상 공간에서는 주체가 그 장소에서 취할 수 있는 행위의 스펙트럼이 일정하게 제약을 받는다. 금줄 쳐진 잔디밭을 주점 장소로 활용한다든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평화로운 중앙광장에서 정치 집회를 연다든지, 등록금 투쟁을 위해 본관을 점거한다든지 하는 공간적 실천은 이제 그 공간의 본질과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불합리한 행위가 된다. 따라서 공간을 새롭게 전유하려는 공간적 실천은 공간의 의미/상징을 변화시키는 것부터 시작된다.

부정적 의미에서 대학 공간의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고려대에서 우리는 공간의 의미를 변용시키려는 정치적 실천의 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고려대 본관 앞에는 다소 흉물스럽게 보이는 파란색 천막 한 채와 흰색 천막 두 채가 1년 넘게 들어서 있다. 작년 4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박사학위 수여식에 반대했던 7명의 학생들이 이후 보건대 투표권 논란과 관련하여 교수들을 ‘감금’하였다는 이유로 출교조치를 당한 사건이 벌어졌었다. 이에 불복하는 학생들이 본관 앞에서 1년 넘게 천막 농성중인 것이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본관 앞을 농성장으로 택함으로써 중앙광장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시각장 내에 일종의 오점/얼룩을 형성한다. 이들 천막의 존재로 인해 합리적이고 등질적인 추상적 공간이라는 신화가 깨지고, 그 곳이 갈등과 투쟁을 은폐하고 있는 기만적인 장소임이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르페브르는 “예전에 비해 오늘날에는 계급투쟁이 더욱더 공간 속에 각인되고 있다. 실제로 오로지 계급투쟁을 통해야만 추상적 공간이 지구 전체를 접수하고 급기야 모든 차이들이 말소되어버리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28)고 설파한다. 계급투쟁만이 모든 공간의 장소적 특질/차이를 무시하고 상업화의 공간으로 등질화하는 자본의 공간생산 전략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정치 투쟁의 장이었던 대학 공간은 자본주의와 관료적 합리성에 의해 마름질되지 않은 차별적인 질적 특징을 지닌 공간이었다. 그러한 대학 공간의 의미를 복원시키는 것 또한 공간적 실천을 통해 대학 공간에 갈등적, 투쟁적 성격을 기입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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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종교사회주의자 폴 틸리히

일요일에 한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폴 틸리히(1886-1965)를 전공하신 분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저명한 신학자 정도로 알고 있는 내게 덕분에 '지적 거인'이란 이미지 하나가 더 보태졌다. 마침 레디앙에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를 다룬 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참고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레디앙(07. 06. 09) 인간소외 극복 사명 띤 두개 공동체, 종교사회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체제만 종교를 인정한다? 어떤 자리에서 ‘체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사회주의적 정책’을 펴는 것이 그 나라의 ‘바른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이야기하곤 한다. 내가 목사라는 것을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감출 것도 아니기에 나랑 서너 번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예의 ‘체제’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될 때 예외 없이 말한다.

목사님이 왜 사회주의를?

“목사님인데... 사회주의에 호의적이신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한 나라가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또 대외적으로 인정되는 ‘체제’가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그 나라에서 펼치는 각종 정책이 ‘사회주의적’일 수 있다는 것, 특히 ‘속세 국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빈부 격차를 좁히려는 정책들은 ‘사회주의적 정신’에 기초하여 입안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 그들은 다시 말한다.

“어떻든 사회주의국가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잖습니까?” 왼쪽 가슴에 손수건 달고 다닐 때부터 들었던 말이다. 이론적으로 사회주의체제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어이없는 말이려니와 자본주의체제가 종교를 인정한다는 말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이다. 세상 어느 ‘체제’가 종교를 인정하나?

주지하는 대로, 이 나라에서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는 것’과 ‘미국을 모국으로 삼는 것’을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모이는 집회에는 예외 없이 성조기가 등장한다. 미국을 반대하는 것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빨갱이일 수는 없을 터, 그네들 입장에선 당연한 행동일 수 있겠다.

그러나 과연 기독교 신앙은 친미적이어야 하는지(그게 꼭 미국이래서 뿐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특정한 나라를 추종하는 것이 가능한지),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인지 돌이켜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단한 이론가들의 주장을 빌지 않더라도 내가 남을 짓밟아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체제,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뒤처지는 체제가 성경의 여러 ‘말씀’들과 맞아 떨어지는지 그 정도는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나라에서 신앙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할 겨를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유럽에 있는 ‘신앙인’들은 그런 고민을 심각하게 했던 것 같다. 교회를 다닌다면,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을 믿는다면, 그래서 이 땅을 이끄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기독교사회주의와 종교사회주의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연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사회주의’를 떠올린다. 그러나 기독교사회주의와 종교사회주의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이론이다. 기독교사회주의는 19세기 중엽에 자본주의 사회의 악마적 착취와 그에 따른 위기의 장기화 등을 타개하려고 영국의 킹슬리(Charles Kingsley), 모리스(F.D.Maurice), 루드로(J.N.Ludlow) 등이 주창한 운동이다. 1850년에 ‘기독교사회주의’라 불린 이 운동은 신자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것을 배격하고, 경제적 사회악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기독인의 의무이자 하느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미국, 일본 등으로 번진 이 운동은 본질적으로 ‘교회를 위한 운동’이며 교회의 신앙 부흥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곧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예언자적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가난한 자, 눌린 자, 학대받는 자, 약한 자들을 위한 교회의 저항 운동이었으며, ‘전투적 교회’라는 모델을 채택했다. 반면 패배와 절망의 궁지에서 헤매는 자들에게는 적극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임으로 그들을 그 상황에서 구출해 내는 것, 곧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와 달리 종교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교회를 위한 운동이 아니고, 교회와 사회의 벽을 허무는 운동이었다. 교회가 되었든 세계가 되었든 모두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 있기 때문에 교회와 세계를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없으며, 오히려 ‘주권’ 아래에 있다고 인정되는 교회보다 교회 밖, 속세에서 ‘주권’을 더 많이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 밖의 여러 ‘운동’, ‘현상’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찾자면 어떤 ‘이론’이 가장 ‘성경적’인지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사회주의는 사회 현상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전통교회보다 세계 혁명을 부르짖는 사회주의의 실천적 역동성 속에서 종교적 의의를 찾았다. 그러므로 종교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사회주의자들처럼 마르크스주의를 교회에 반하는 이론으로 생각하지 않고 포용하려 했다.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반종교성이나 무신성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더 특별한 하느님의 경륜과 손길이 있다고 믿었다.

종교사회주의의 발흥

자본주의가 전성하던 시대에 노동자들의 참혹한 삶을 목도한 요한 블룸하르트(John Blumhart)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설교에서 종교사회주의의 불씨를 지폈고, 그의 아들인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Christoph Blumhart)는 ‘하느님의 사랑’이 교회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종교가 없는 사회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영역이고, 그렇다면 마땅히 사회주의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생각했다.(세계의 사회주의자 28-"예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참조) 하느님의 사랑은 그만큼 깊고 넓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당시 유일한 사회주의 정당인 사회민주당의 당원이 되고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영향으로 나중에 종교사회주의의 지도자가 된 요(Joh), 뮬러(Mueller), 로츠키(Lhotzky), 쿠터(Kutter), 라가츠(Ragaz), 젊은 시절의 칼 바르트(Karl Barth), 에밀 부르너(Emil Brunner), 틸리히(Tillich), 하이만(Heimann), 멘니케(Mennicke), 덴(Dehn) 등이 뒤따랐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한 사회민주당을 적극 지지했다는 점이다. 라가츠나 쿠터는 사회민주당이 사회 정의에 아무런 관심도 영향력도 없는 기성 교회에 대한 “하느님의 가차 없는 채찍질”이라고 했다. 특히 라가츠는 사회주의를 “장차 도래할 하느님 나라의 빛”이라고 했다.

물론 이들이 모두 같은 생각과 행동 방식을 취했던 것은 아니다. 혹은 정치 일선에 직접 나서기도 했고, 혹은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만 했다. 나중 모습도 모두 같진 않았는데, 라가츠의 경우, 1차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 운동에 환멸을 느끼고 종교사회주의를 종교적 의미로만 국한했다. 칼 바르트도 후에 “하느님의 의지를 특정한 정치적 지향점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면서 종교사회주의를 떠났다.



종교사회주의자 틸리히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1886년 8월 20일 ~ 1965년 10월 22일)는 1918년 독일혁명 이후, 여러 교수들을 규합하여 ‘종교사회주의신문’을 발간하면서 종교사회주의와 관계를 맺었다. 틸리히가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이유는, 첫째, 그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이 있다. 1차대전 중 틸리히는 국민들이 계급적으로 분열되고 적대적인 관계로 대립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상황을 수수방관하며 오히려 지배계급과 결탁하였다. 틸리히는 기성 교회가 무산자의 인권에 무관심한 것을 개탄하였다.

둘째, 그는 1차대전에 참전한 경험으로, 사회주의 혁명만이 제국주의의 ‘계급 분화’를 타파할 것으로 믿었다. 혼돈과 전쟁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아침은 밝아오고 있었다. 부르주아 시대는 가고 프롤레타리아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초월적 메시지와 사회주의 혁명을 연결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음을 알았고, 그것이 종교사회주의였다. 틸리히는 이러한 ‘시대의 징표’를 ‘제2의 카이로스(kairos)’라고 했다. 틸리히에 따르면,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느 순간에 이르면 하느님 나라의 핵심적인 현시가 역사 안으로 임하는데, 바로 이런 성숙한 시간을 신약에서 ‘시간의 성취’ 곧 카이로스라고 한다. 이 두 번째 카이로스는 새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창조적인 시간이었다. 틸리히는 카이로스라는 개념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진가를 평가하려 했다.

틸리히가 본 마르크스주의

틸리히는 세계적 위기상황에서 종교사회주의를 받아들였고, 이것만이 부르주아 문화, 사회로부터 프롤레타리아의 인간소외를 극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틸리히는 사회주의 운동을 외적인 경제적 제도의 변혁이나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자기 소외를 철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운동의 본래적인 사명을 자각시키며 인간소외를 치유하는 처방이었다. 사회주의가 외적 혁명만 아니라 부르주아로 인해 발생한 인간소외, 더 구체적으로 비인간화에 대한 항거로 발생한 것이라면 종교와 반목될 수 없으며 적대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종교란 인간소외에 대한 해방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틸리히에겐 종교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인간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 최대의 사명을 띤 공동체”였다.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가 계급이기주의를 강화하고 지나치게 적의를 발산할 때, 종교사회주의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부도덕한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며 공동운명을 개척하는 역할을 한다고 봤다.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실존이 본래 가져야 할 위치에서 빗나갔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외형은 인간이나 인간으로 누릴 자유가 없는 사물이나 다름없다고 봤다. 곧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생산과 교환이라는 경제적 메커니즘에 의해 노동자들은 ‘인간 상실’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를 두고 틸리히는 ‘프롤레타리아의 상황’이라고 했다.

틸리히는,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유일한 도구인 노동력마저 위협받게 되며 상시적으로 실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며, ‘고독’하다고 봤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절망’에 빠져 있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는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동력의 사유화를 반대하며 생산이 공유되는 사회의 확립을 추구하게 된다.

또 하나의 일치된 지점은 ‘돈’에 대한 입장이다. 돈 때문에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결국 인간의 소외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틸리히와 마르크스는 일치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노동력을 파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그로 인해 인간성이 파괴되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누려야 할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점에서 둘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공통점이 있었고, 실제로 틸리히가 마르크스주의에서 받은 영향도 크지만 최종 해결점은 차이가 있다.



인간소외를 극복하는 신률(神律)

틸리히가 평생의 과업으로 생각했던 것은 “인간의 소외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하는 점이었다. 소련에서 시도한 공산세계 건설도 인간을 소외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봤다. 틸리히는 공산주의를 자율에 반하는 타율적 체제로 규정하였고, 그 타율이 절대화되어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것을 개탄하였다. 그는 타율적인 ‘제도’, 곧 전체주의, 공산주의로는 인간의 소외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그는 종교사회주의를 통해 인간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고 봤으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사회주의 운동 속에 불어 넣음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자율도 타율도 아닌 ‘신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신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자율의 현상들인 자기 만족성, 개인주의 등이 종적을 감출 것이며, 타율에 의한 비인간화, 물건화(物件化), 도구화 등이 극복될 것으로 확신했다.

이런 이론을 기초로 틸리히는 그런 신률이 지배하는 날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의 '거룩한 공백기론(Sacred Void)'이다. 그러나 그 날은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오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처지를 보면 조만간 그 날이 올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면서 소외되고 착취 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면, 틸리히의 사상이 꽤 중요한 교과서가 될 듯하다.(서민식/ 목사,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

07.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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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되돌아가기 vs 반복하기

'되돌아가기 대 반복하기'는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2006)의 결론이다. '되돌아가기'와 '반복하기'의 목적어로 걸려 있는 것은 '레닌'이다. 즉, 지젝이 대비시키고자 하는 것은 '레닌으로 되돌아가기'와 '레닌을 반복하기'의 차별성이고, '레닌을 반복하기'야말로 지젝 고유의/특유의 정치적 전략 혹은 프로그램을 집약해주는 표현이다.

 

 

 

 

비록 작년 여름에 출간된 책이지만, 그리고 때로 부당한 폄하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혁명이 다가온다>야말로 지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에서 '혁명'이 갖는 의미와 그 가능성을 질문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익한 책이며(왜냐면 분량이 제일 만만하니까!) 특별히 10월 혁명 90주년이 되는 올해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87년 6월을 기념하는 일은 한 30년쯤 뒤로 미뤄두면 안될까?).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를 좀 훑어보면서 올 여름에 이 두권의 책을 정리해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거기에 밀린 숙제를 보태자면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와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를 마저 읽어야겠다). 그것이 몇 차례 관련 페이퍼를 쓴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이 책을 손에 든 한 가지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이 책이 생각만큼 널리, 그리고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 이면에서 분량만큼 만만치는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읽히고 너무 쉽게 평가되고 너무 쉽게 제쳐놓여진다는 점(그래서 그들은 전진하고 있는가?). 지젝은 비의적인 저자가 아니기에 대단한 수수께끼나 퍼즐, 음모 등을 숨겨놓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책들은 굳이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읽으면 된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상으로는 그냥 읽어나가는 게 대놓고 수월하지만은 않다(수월하게 읽히는 가라타니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번역이 낳는 예기치 않은 장애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지젝에 대한 오해의 일부는 그러한 장애에 기인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읽어 넘어가기', 혹은 '넘어/너머 읽기'이다. 일단은 '결론'부터 넘어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덕분에 시오랑에 관한 페이퍼가 당분간 미뤄지게 됐다). 혹 몇 분의 독자가 이 책을 좀더 재미있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국역본 외에 내가 참조한 건 영어본(2002)과 러시아어본(2003)이다. 이전에 적었지만 국역본은 독어본(2002)를 옮긴 것이며, 이 독어본은 러시아본과 일치한다. 하지만 영어본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영어본은 레닌의 1917년 문건 선집에 지젝인 붙인 후기로 구성돼 있고, 이 후기의 내용이 <혁명이 다가온다>와 대략 일치한다. 하지만 차이가 나는 대목들도 적지는 않다.

"소련의 전체 역사는 프로이트의 로마에 대한 이미지와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로마의 이미지에는 현재가 고고학적 유물의 서로 다른 층위라는 겉모습으로 침전되어 있다. 마치 트로이의 일곱 층위(서로 다른 모델)처럼 새로운 층은 앞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덮고 있어 역사는 더 오래된 시기를 향한 회귀에서 점점 더 깊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고고학자같이 된다."(265쪽)

프로이트는 생전에 로마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돼 있는데(특히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에 많은 감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 도시의 역사가 여러 겹의 고고학적 지층이 퇴적돼 있는 걸로 봤다는 것이고 지젝에 따르면 소련사가 바로 딱 그러한 이미지-모델과 비슷한다. 혹은 '또다른 모델(another model)'을 찾자면('서로 다른 모델'이 아니다) '트로이의 일곱 지층'에 비유될 수 있다('층위'보다는 '지층'이 낫겠다). '일곱 지층'이라고 돼 있지만 백과사전의 내용을 참고해보면 전체로는 '아홉 개의 지층'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 중 트로이에 해당하는 것만을 카운트한 듯하다.  

슐리만과 되르펠트는 집들이 건설되어 사람들이 살다가 마침내는 파괴되어 버린 아홉 기(紀)를 나타내는 9개 주요지층의 순서를 밝혀냈다. 제1~7기 트로이는 요새, 트로아스의 수도, 왕의 가족·신하·노예들이 살았던 왕의 거주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1~5기는 청동기시대 초기(BC 3000경~1900)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 기간 동안의 주민들이 에게 해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 헬라도스 문화기의 그리스 본토에 살던 주민들의 선조였을 것이며, 아나톨리아 남서부 또는 시리아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된다. 트로이 제6·7기는 청동기시대 중기와 말기(BC 1900경~1100)에 해당한다. 불과 한 세대 동안 지속되었던 제7a기는 BC 13세기경 발생한 화재로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이때의 트로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묘사된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의 파괴 이후 약 400년간 이곳은 사실상 버려졌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정착한 것은 제8기이며,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일리온은 제9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소련사는 어째서 이러한 도시들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가?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 역사는 배제의, 인간의 비인간으로의, 역사의 회고적인 다시 쓰기와 동일한 축적이 아닌가?" 즉, 공식 이데올로기상으로 소련사는 지속적인 배제의 축적이요, 사람들을 비인간으로 내모는 일의 축적이자, 거듭 역사 다시쓰기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탈스탈린화'는 '복권', 즉 당의 과거 정치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반대의 과정이라고 신호되었다." '신호되었다'고 옮겨진 단어는 영어본에서는 '지시되었다(indicated)'로, 러시아어본에서는 '수반되었다'로 옮겨졌다. 내 식으로 다시 옮기면, "'탈스탈린화'가 정반대의 과정, 곧 점차적인 '복권'과 당의 과거 '오류들'에 대한 인정을 통해 표시되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논리적이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것은 '점차적인' 복권의 과정/순서이다.

"악마처럼 취급되던 볼셰비키 옛 지도자들의 점진적인 '복권'은 아마 소련의 '탈스탈린화'가 어느 정도(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민감한 지표로 기능할 수 있다." 해서 가장 먼저 복권된 사람들이 1937년에 총살당한 (투하체프스키 같은) 군 지도자들이고 맨마지막으로, 그러니까 고르바초프 시기 공산주의 정권 붕괴 직전에 복권된 이가 부하린이었다.

미하일 투하체프스키(1893-1937)는 소련군 최고사령관(1925-28)을 지낸 고위 장성이지만 1936년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을 순방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이듬해 군내 트로츠키파 조직을 건설하고 독일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그리고 저명한 볼셰비키 니콜라이 부하린(1888-1938)은 혁명직후 <프라우다>지의 편집장을 지냈고 여러 권의 사회주의 경제이론서를 집필했다. 1921년 신경제정책(NEP)을 주도적으로 지지하면서 '우파'의 우두머리가 된다. 역시나 1937년 트로츠키파란 혐의를 뒤집어쓰고 비밀리에 체포되어 이듬해에 처형당했다. 국내엔 <과도기 경제학>(백의, 1994) 등이 번역돼 있으며, 단행본 연구서로는 김남국의 <부하린: 혁명과 반혁명 사이>(문학과지성사, 1993)가 유일한 게 아닌가 싶다. 부하린의 복권은 1988년에 이루어졌다.

"이 최후의 복권은 자본주의로 돌아간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복권된 부하린은 1920년대 '부자가 되자!'라는 유명한 구호를 내걸고 노동자와 농민 간의 동맹을 주창했고 강제 집산화에 반대했다."  이 유명한 구호(슬로건)이 영어로는 "Enrich yourselves!"이다. 딱 "부자되세요!"이다. 부하린의 복권과 함께, 그리고 '부자되세요!'란 구호의 부활과 함께 러시아는 다시 자본주의 사회로 돌아가게 된 것.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절대 복권될 수 없는 인물,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반공주의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에게도 배제되는 한 사람, 레온 트로츠키, 혁명의 '떠돌아다니는 유대인', 진정한 반스탈린주의자, '일국 사회주의 건설'의 아이디어에 대립되는 '영구혁명'을 주창한 철천지원수가 있다."(266쪽) '철천지원수'란 표현은 영어로는 'arch-enemy'이며 러시아어로는 '저주받은 적'('불구대천의 원수')이라고 옮겨져 있다. 1920년대 권력암투의 트로이카 '부하린(우파)-스탈린(중도파)-트로츠키(좌파)'에서 트로츠키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복권될 수 없는 인물(포지션)로 남아 있는 것. 

 

 

 

 

"우리는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근원적(기초적) 억압과 무의식 속에서의 부차적 억압 사이의 구별과 위험을 무릅쓰고 나란히 다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물론 트로츠키는, 트로츠키의 배제는 '근원적 억압'에 해당한다. "1990년 이전의 현존 사회주의에서뿐 아니라 1990년 이후의 현존 자본주의에서 심지어는 공산주의에 대해 향수를 가지는 경우도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트로츠키는 어떤 자리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아마 '트로츠키'라는 기표는 레닌주의의 유산에서 다시 찾을 가치가 있는 가장 적절한 호칭일 것이다."(266-7쪽)

분량상 레닌주의의 유산으로서의 트로츠키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07.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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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

이번 주 나온 가장 눈에 띄는 신간은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이다. 출간 소식은 이미 이달초부터 접했고 '물건'이 나오기만을 고대하던 참이었다.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 2006)에 이어서 근 1년만에 가라타니의 책이 출간된 것인데, 출판사에서는 연이어 그의 책들은 낼 모양이다(표지에서 큼지막한 '1'자가 뜻하는 바이다). 이번 타이틀이 '세계공화국'인데, 그의 비평은 막바로 '비평의 세계화'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국내 비평집들이 초판을 소화하기도 어려운 시절에 유독 그의 비평집들만이 독자들로부터 환대와 환영을 받아온 탓이다. '비평'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그간에 불철저했던 것이 아닌가 돌이켜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책은 내일 역자에게 받기로 했는데, 그 전에 리뷰 먼저 읽어둔다. 마침 오늘자 한겨레의 '책과 생각'의 1면을 다 책임지고 있군...  

한겨레(07. 06. 09) 국경을 지워라, 느린 혁명으로 

가라타니 고진(66)은 일본 지성계를 대표하는 비평가다. 1970년대까지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가 누렸던 지위를 1980년대 이후 가라타니가 대체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마루야마가 ‘사상계의 천황’이었다면, 가라타니는 그 천황의 자리를 뒤엎은 전복자다. 그는 무리를 거느리지 않은 단독자다. 그는 자객처럼 지배적 사상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심장을 겨냥한다. 그의 무기는 전방위로 뻗친 지식과 불온한 비판성이다. 문학에서부터 철학·경제학·역사학·언어학, 심지어 건축학과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르네상스적 지식의 힘으로 그는 현실이라는 괴물의 딱딱한 외피를 뚫고 탄환처럼 그 속살을 관통한다. 그의 최근 작업은 그 괴물이 고꾸라지고 난 뒤에 열리는 시야를 보여준다. 그의 2006년 저작 <세계공화국으로>에서 그 시야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1845년 카를 마르크스가 쓴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는 <세계공화국으로>를 쓴 가라타니의 경우에 정확히 대응한다. 이제까지 그의 작업이 불온성을 내장한 해석이자 비판이었다면, <세계공화국으로>는 명백히 ‘변혁’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 책은 마르크스가 ‘테제’를 쓰고 3년 뒤 작심하고 집필한 <공산당 선언>과 동일한 성격을 지녔다. 말하자면 이 책은 팸플릿이고 선언문이며 새 세계를 향한 이행 전략론이다. 팸플릿 성격이 강한 만큼 이 책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의 다른 책들이 무수한 전문용어의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길을 잃기 십상이었지만, 이 책은 그런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지은이는 고등학생을 포함한 일반인이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가 당대의 여러 사회주의 조류와 대결했듯이, 가라타니도 이 선언문에서 기존 이념과 비판적으로 대결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그의 대결 지점은 마르크스와 이마누엘 칸트다. 기존의 변혁 운동이 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논거로 마르크스가 동원된다면, 칸트는 마르크스를 넘어 세계 변혁의 방향과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칸트의 한계를 마르크스가 뛰어넘었다는 전통적 견해를 거의 정반대로 뒤엎은 꼴이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마르크스 이론의 치명적 약점은 ‘국가론’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체제 분석에서는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었지만, ‘국가’에 관한 한 시종일관 프루동주의의 한계 안에 갇혀 있었다.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국가 없는 세상을 꿈꾼 근대 아나키즘의 시발점이다. 프루동은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뒤엎고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 곧 생산자 협동조합 체제를 만들면 국가가 소멸할 것이라고 보았다.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보장하는 외부적 장치일 뿐이므로 자본주의가 무너진다면 국가라는 껍데기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루동의 생각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프롤레타리아가 연합해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무너뜨리면 국가는 사라진다고 믿었다. 두 사람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면,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일시적 국가기구를 상정했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독재론은 혁명의 구체적 상황에서는 국가기구를 일시적으로 틀어쥐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었지, 국가의 자연스런 소멸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가라타니는 프루동-마르크스가 국가 안에서 국가를 생각했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에 이르렀다고 단언한다. 그가 보기에, 국가란 다른 국가에 대항해서 존립한다. 국가를 내부의 힘으로 해체한다고 해도, 다른 국가들이 먹어치워 더 큰 국가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다른 국가들이 있는 한 국가는 해체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 프루동의 아나키즘은 순진한 사상이다. 그렇다면, 세계동시혁명으로 일거에 모든 국가를 철거해 버리면 되지 않는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제국>에서 그런 가능성을 내비쳤는데, 가라타니는 단호하게 이 책의 주장을 부정한다. <제국>은 1990년 이후 세계가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제국이 됐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수많은 국민국가들의 갈등과 경합 체제다. 다중의 반란이 제국의 그물을 찢어낼 것이라는 전망도 가라타니가 보기엔 환상이다. 다중의 반란은 세계혁명을 일으키기는커녕, 개별 국민국가만 더욱 강화시키고 말 것이 틀림없다.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은 프루동-마르크스를 그대로 이어받은 ‘국가론 없는 아나키즘’이다.

그렇다면 변혁의 전망은 없는 것인가. 여기서 가라타니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주목한다. 개별 국민국가들의 팽창 욕구를 억누를 수 있는 외부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국가 내부에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그것대로 계속해야 하지만, 인류적 차원의 집합적 힘으로 국민국가의 준동을 억누르고 궁극적으로 그 국가를 소멸시켜야만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총체적으로 넘어설 수 있다. 칸트는 그런 외적 장치로서 ‘세계공화국’이란 이념을 내놓았다. 현재의 국제연합(유엔)이 장래의 세계공화국 모태라 할 수 있다. 그 실천의 첫발은 국민국가들의 군사 주권을 국제연합으로 넘기는 것이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세계공화국은 먼 미래에야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변혁이라기보다는 점진적 이행에 가깝다. 그러나 이 점진성이야말로 진정한 변혁의 경로다. 인류를 이끌어주는 이념 또는 이상 아래서 오늘의 현실과 싸우는 것, 가라타니가 그의 선언문에서 밝히는 전략이다.(고명섭 기자)

삐딱이는 나의 힘!
가라타니, 주류에 끊임없이 저항…‘퇴물 공산주의’ 부활 나서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에서 이력을 시작한 사람이다. 1969년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에 관한 글로 비평계에 입문한 뒤 1972년 첫 비평집 <불안에 떠는 인간>을 출간했다. 문학비평가로서 그의 이력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2005년 <근대문학의 종언>을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비평가라는 규정은 가라타니라는 지식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의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의 삶을 일관하는 것은 ‘주류에 대한 저항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70년대 일본 지식계에 프랑스 탈구조주의 운동을 소개하고 퍼뜨린 사람이었다. 뭉뚱그려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 흐름을 앞장서서 받아들인 것인데, 그것은 근대주의적 억압 질서에 대한 지적 저항의 한 방식이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 시절에 쓴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은 그 저항의 학문적 결과라고 할 만하다. 이 책에서 그는 미셸 푸코의 고고학 방법을 원용해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파고들어갔다. 근대적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난 뒤 국민문학이 성립됐을 거라는 상식적 믿음을 깨뜨리고, 제도로서 형성 중이던 근대문학이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했음을 입증했다. 국민이라는 관념이 성립한 것이 최근의 일임을 문학 연구로 보여준 것이다.

1978년 출간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도 시대 흐름을 삐딱하게 보는 그의 반골 정신이 밴 작품이다. 그 시절 일본 지식계에서 ‘마르크스’ 하면 퇴물 취급을 받았는데, 이 책에서 그는 마르크스를 혁신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내려 했다. 1980년대까지 프랑스 철학의 영향 아래 ‘해체주의’를 실천하던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비평적 태도에 깊숙한 변화를 겪었다.

해체주의란 사실상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의 영향력에 맞서 그 이념의 억압성을 고발하는 것인데, 그 사회주의가 파산해버린 것이다. 일본 안에서도 사회당과 공산당이 몰락하고 좌파가 궤멸했다. 현실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고 난 뒤에도 계속되는 해체주의란 사실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바지가 될 뿐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가라타니는 모두들 ‘공산주의는 끝났다’며 돌아선 지점에서 다시 ‘코뮤니즘’을 되살리는 작업에 나섰다. “현실을 비판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변화시키는 이론”이 필요함을 절감한 것이다. 10년 가까운 작업 끝에 내놓은 <트랜스크리틱>이 그의 새로운 관점을 담은 책이다. <트랜스크리틱>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려는 과정에서 칸트를 만났다. 내가 하려고 한 것은 마르크스를 칸트적 ‘비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었다.”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칸트가 말하는 ‘자유의 왕국’이나 ‘목적의 왕국’이 코뮤니즘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코뮤니즘은 그런 도덕적 계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트랜스크리틱>의 후속 작업으로 그가 하고 있는 것이 <트랜스크리틱 2> 저술인데, 이 저술을 대중적 문체로 풀어내 미리 보여준 것이 이번에 출간된 <세계공화국으로>다. <트랜스크리틱>에서 그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보면 오히려 아나키스트 쪽”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 아나키즘을 비판한 <세계공화국으로>는 일종의 자기비판인 셈이다. 그 자기비판으로써 가라타니는 새로운 세계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고명섭 기자)

07.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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