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시대에도 폭력과 학살로 점철된 세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세계질서의 구성성분들인 국민국가가 ‘정체성 정치의 환상’에 기초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정체성 정치는 자아의 존립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타자를 만들어내고 없애버림으로써 존재하며, 그것이 인종말살과 집단적 성폭력 등의 양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행사되는 정치 폭력은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과 존립에 있어 일탈적인 사태가 아니라, 중심적 사태로서 즉, ‘구성적 요소’로 기능한다. 이러한 정치 폭력의 기술체계는 파시즘의 형태를 띠고, 이는 인간의 몸을 매개로 권력이 행사되는 ‘몸의 정치’로 구현된다. 즉 ‘몸의 정치’는 주민의 몸을 국가에 귀속 혹은 배제하는 과정을 통해 전면적으로 규율화함으로써 국가 통치권이 형성되는 정치이다.

남한에서는 한국전쟁 직전에 발발한 ‘제주 4.3 학살’이 신생 근대적 국민국가가 특정 구성원을 배제함으로써 이후 정치적 안정성의 보루인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수립하고, 자신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는 정치적 장소였다. 국민국가 내의 개인들은 모두 ‘국민’이라는 기표로 호명되지만 그것은 동질적인 집단을 의미하지 않으며, 국가로의 전면적인 귀속과 배제라는 양극단 속에서 차별적으로 규정된다. 국가권력은 ‘국민의 복지’라는 명분 하에 ‘특정 집단’을 차별적으로 억압하거나 말살한다. 저자는 4.3사건을 ‘폭동’이나 ‘항쟁’으로 보는 입장 모두에서 한 발 비껴서, 대다수의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국가 폭력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학살 과정에서 여성들은 ‘빨갱이’에 대한 증오와 성적 가학의 쾌락이 체현된 ‘육체(몸)’로 재현되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한다. ‘빨갱이’, ‘주민’, ‘여성’의 기표들은 곧잘 중첩되며, 각각의 ‘타자성’들이 결집되는 장소인 여성의 몸은 성폭력과 고문의 장소가 된다. 빨갱이에 대한 공포와 증오는 여성의 몸을 학대함으로써 상상적으로 정복된다.

직접적인 성폭력과 성고문의 피해자인 여성들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고통을 몸에 각인한 채 살아가며, 그것이 언어화될 때조차 그것은 남성주체에 의해 발화된다. 여성은 자신의 찢겨진 나체를 볼 수 없으며, 남성은 그 고통을 바라보는 관객이다. 여기서 고통의 재현의 한계가 존재하며, 때로 고통을 전달하는 남성의 시선은 고통 속에서 욕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전시상태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폭력의 구조는 평시의 가부장적 질서와 연속적이다. 전시에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남성공동체인 가문의 수치로 인식되어 여성의 고통은 은폐되고, 침묵을 강요당한다.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여성피해자의 목소리는 굿의 형태를 통해, 즉 종교적 상상계에서나 연약하게 이루어진다.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의 경험을 증언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한 여성이 자신의 몸을 통해 다른 여성의 고통을 담지할 때, 즉 레비나스의 말을 빌어 “타인을 위한 볼모가 되어 줄 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통의 연대’만이 새롭고도 낡은 세계의 폭력적 질서를 와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