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thirsty > 더블린 사람들 (1) 자매(The Sisters)

 

마비(paralysis)라는 책 전체 주제를 잘 제시하고 있는 첫 번째 단편이다. 역시 책 전편을 통해 자주 나타나는, 색깔의 이미지도 주목하라.

 

여기서 신부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단편 The Dead(죽은 자)로 순환하는 죽음(death)이 우선 눈에 띄지만, 노처녀(여기서의 Nannie와 Eliza 자매)에서 노처녀(The Dead Julia와 Kate)로 끝나는 내용 역시 불모(不毛)의 순환을 보여준다. Dubliners는 단순한 단편 모음집이 아니고 전체로서의 통일성(unity as a whole)을 가진, 단편으로 이루어진 장편이다.

 

<범례> * 이 글 시리즈의 처음인 더블린 사람들 (序) - 꼼꼼한 텍스트 읽기 참조.

김병철: 더블린 사람들, 문예출판사, 3판 1쇄, 1999. 2

김종건: 더블린 사람들 비평문, 범우사, 2판 4쇄, 2005. 8

김정환: 더블린 사람들, 창작과 비평사, 2쇄 1995. 9

임병윤: 더블린 사람들, 소담출판사, 초판 1쇄, 2005. 7

민태운: 조이스의 더블린: 더블린 사람들 읽기, 태학사, 2005. 4

전은경: 전은경 홍덕선 민태운, 조이스 문학의 길잡이: 더블린 사람들, 동인, 2005. 6

Gifford: Don Gifford, Joyce Annotated: Notes for ‘Dubliners’ and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2nd e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2

Brown:James Joyce, Dubliners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Terence Brown, Penguin Classic, 1993에 있는 테렌스 브라운 교수의 서문(introduction) 및 주석(notes).

(대조검토용으로 표시하고 있는 원문의 페이지도 이 책의 것이다.)

Companion: Derek Attridg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James Joyce, 2nd ed. 3rd print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Gifford, Brown 외국 저자의 책이나 영문 웹사이트의 한글 번역은 모두 필자가 )

 

1. 제목 복수형 명사의 취급

 

우리말에서 명사의 복수형 어미()는 셀 수 있는 명사라도 앞에 수사(數詞)가 없을 경우에만 쓰이고, 앞에 수사가 있으면 중복(redundancy)으로 보아 쓰지 않는다. 즉, 두 사람들이 아니라 두 사람으로 쓰지만, 사람들, 그 사람들한 사람, 그 사람과 구분을 위해 쓴다. 또 자체로 복수의 의미를 지닌 자매* 같은 말에 대해 을 붙이면 이는 여러 집에서 온 자매 1, 자매 2…’의 뜻이 되지만, 워낙 요즘은 영어 영향으로 구분 없이들 쓰니까(아래의 자매들, 두 건달들, 두 한량들) 굳이 이걸 시비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The Dead의 번역은 내용 해석과도 관계되므로 단복수 여부가 중요하다**. 넷은 복수로, 둘은 단수로 썼는데, 이 내용 및 다른 몇몇 제목은 그 이야기를 다룰 때 다시 거론하겠다.

 

구분

Dubliners

The Sisters

Two Gallants

Counterparts

The Dead

김병철

더블린 사람들

자매

두 부랑자

분풀이

사자(死者)

김종건

더블린 사람들

자매들

건달들

짝패들***

죽은 사람들

김정환

더블린 사람들

자매

두 건달

상응

죽은 사람들

임병윤

더블린 사람들

자매

두 건달들

분풀이

사자(死者)

민태운

더블린 사람들

자매

한량들

대응

죽은 사람들

전은경

더블린 사람들

자매

두 한량

대응

죽은 사람들

 

* 다음은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네이버에 탑재되어 있다) 설명이다.

자매(姉妹) [명사] : 여자끼리의 동기(同氣). 언니와 아우 사이를 이른다.

그녀들은 꼭 닮은 쌍둥이 자매다.

두 계집아이는 항상 붙어 다녀서 마치 자매처럼 보였다.

** 필자는 이야기 속의 실제로 죽은 사람들과, 육체적으로 살아 있으면서도 정신적으로 죽은 삶들을 통칭함으로써, 이 제목을 복수로 읽는다. (김종건, pp.370-371)

*** 짝패는 짝을 이루는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를 가리킬 수 있다.

 

 

2. Malapropism (말의 오용: 誤用)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비문: 非文)이 아니라, 헷갈리는 비슷한 단어를 대신 씀으로써 우스워진 표현을 말하며, 화자(話者)의 낮은 지식수준을 암시하거나 또는 풍자를 위한 기법이다. 우리 쪽에도 이런 것이 있는데, 흥미진진(興味津津)흥미률률(興味律律), 호시탐탐(虎視眈眈)호시침침(虎視沈沈)으로 쓴다면(실제 1974년 우리들의 시대라는 청춘소설-요새말로 고딩소설이다-에서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길 없는 길, 잃어버린 왕국, 왕도의 비밀의 작가 최인호가 썼던 표현으로 필자 기억에 남아있다), 이는 헷갈리는 한자음을 이용한 malapropism이다. 전편을 통해 이 첫 번째 이야기에서만 두 번 나오며, 여기서는 화자인 Eliza 할머니의 낮은 교육수준을 암시한다. 역주로 달아줘야 번역본을 보는 독자들이 이해를 할 수 있지만, 번역본 중에서는 한 군데만 역주를 단 책이 딱 한 권, 두 군데 다 역주를 단 책은 하나도 없었다. 한편 해설서 두 권을 보면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수업시간에 다룰 계획으로 보이는데*, 영어교수님들 수업 밑천까지 터는 것 같아 약간 죄송하다.

* 프리만스 저널(Freemans Journal)을 프리만스 제너럴(Freemans General)이라고 하는 둥 두 번이나 말을 오용함으로써 무식을 드러낸다. (민태운, p.38)

* 일라이저는 몇 번 잘못된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그곳을 지적하고, 그와 같이 잘못된 어휘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은경, p. 79, 토론 주제 4번 문제)

 

(1) the Freemans General (p.8) ⇒ the Freemans Journal (and National Press):

 

A Mother(pp.142-143): 김병철(p.192-193), 김종건(pp.175-176), 김정환(pp.182-184), 임병윤(pp.236-238)에도 나오고, Grace(p.157, p.172): 김병철(p.211, p.230) 김종건(p.191, p.208), 김정환(p.201, p.220), 임병윤(p.258, p.285)에도 나오는 실제 더블린 일간지 이름으로 중하층 카톨릭계 민족주의 신문. 교회사 및 성직자의 사망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실었다고 한다. 역자들이 조금만 더 꼼꼼했더라도 하는 아쉬움이 있다.

 

『프리맨즈 저널』(김병철, p.17) 역주 없이 아예 고쳐서 번역해버렸다.

《프리먼즈 제너럴》(김종건, p.28) “더블린에서 발간되는 주요 일간지 《프리먼즈 저널》을 잘못 말한듯함”이라고 각주를 달았다.

『프리맨즈 제너럴』지(誌) (김정환, p.14) 역주가 없을뿐더러 한자도 틀렸다. 일간지(일간신문)의 지는 ‘종이 紙’를 쓰고, 잡지의 지는 ‘기록할 誌’를 쓰는데, 일간신문을 ‘誌’라고 했다.

《프리먼즈 제너럴》(임병윤, p.22) 아무 설명이 없다. 

(2) If we could only get one of them new-fangled carriages that makes no noise that Father O’Rourke told him about - them with the rheumatic wheels - for the day cheap, he said, at Johnny Rush’s over the way there…(p.9)

 

오로크 신부님이 오빠에게 얘기한, 바퀴에 바람을 넣은 그 소리나지 않는 신식마차 하나를 저 길 건너 조니 러시네 가게에서 그날 하루 싸게 빌려서 (김병철, p.19)

오러크 신부님이 오라버님한테 말한 적이 있는, 바람 넣은 바퀴가 달린 그 신식 마차를 길 건너 조니 러쉬 상점에서 하루 동안 값싸게 빌려가지고(김종건, p.29)

오루크 신부님이 그에게 얘기해주었다는 그 소리 안 나는 최신형 마차, 바퀴에 바람을 넣은 푹신푹신한 그 마차를 우리가 한 대 구할 수만 있었으면 (김정환, p.16)

오로크 신부님이 이야기해준, 소리 나지 않는 고무바퀴로 가는, 그 최신식 마차를 길 건너편 조니 러시네 가게에서 하루 동안 싸게 빌리기만 하면(임병윤, p.24)

 

rheumatic이란 단어는 류머티즘에 걸린이란 뜻이 전부다. 역주를 단 책는 없지만 어쨌든 바람을 넣은으로 번역은 되어 있고, 한술 더 떠 고무로 만든으로 해놓은 책도 있다(어딘가에서 베낀 증거 중 하나). 이는 발음이 비슷한 pneumatic(공기의, 공기가 들어있는, 압축공기가 든)이란 단어를 malapropism으로 쓴 것으로 보통 해석하며, 또 이를 인정하면서도, 그냥 되지도 않는 넌센스로 볼 수 있다는 사람도 있다. (Brown, p.244). 류머티즘에 걸린 바퀴라면 주제인 마비와도 잘 관련되므로, 필자는 Brown의 단서의견에는 찬성하지 않는데, 유명한 조이스 전기인, James Joyce, Richard Ellmann, 2nd edition, Oxford University Paperback with corrections, 1983, p.43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Joyce has in mind the fact that Eddie Boardman(*조이스가 North Richmond Street, Dublin에 살던 12살 때, 같은 동네의 친구 필자) was famous through all north Dublin because his was the first pneumatic-tired bicycle in the neighborhood.

 

 

3. the third stroke (p.1)

 

stroke뇌졸중(apoplexy) (전은경, p.62)이 가장 가까운 뜻이지만, 쉽게 발작(김정환 p.5, 전은경 p.57)이라는 표현도 쓸 수 있다. 뇌졸중이 모두 뇌출혈( = 뇌일혈. bleeding/hemorrhage in brain) (임병윤 p.9)인 것은 아니지만, 졸도( = faint, swoon, syncope) (김병철 p.7, 김종건 p.19)는 그보다 더 먼 느낌이다. 보통 발작의 결과가 마비이지만, 거꾸로 (일부 견해에 따르면 조이스 자신을 평생 괴롭히고 삶과 문학을 결정지은*) paresis(매독성 진행마비)에서 발작이 온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Gifford, p.29)

* Kathleen Ferris, James Joyce and the Burden of Disease, Lexington: The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1995. (이 책을 요약한 Vivian Pigott의 아래 웹 페이지 글에서 재인용. 이는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원 조이스 강의 보고서지만 웹 페이지의 특성상 언제까지 계속 실려있을지는 알 수 없다.)

(http://www.uncg.edu/eng/courses/relangen/eng657/reports/vpiggott.htm)

 

 

4. It(=Paralysis) had always sounded strangely in my ears, like the word gnomon in the Euclid and the word simony in the Catechism. But now it sounded to me like the name of some maleficent and sinful being. It filled me with fear, and yet I longed to be nearer to it and to look upon its deadly work. (p.1)

 

유명한 구절이다. 다른 책들은 비교적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한 반면, 임병윤의 번역은 젊은 층의 기호에 맞게 매끄러울 지는 몰라도 충실성이 많이 떨어지므로, 영어학도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 전체를 통해 그의 이런 경향은 계속된다.

 

그것(=마비)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경절형(磬折形: 평행사변형의 한 귀퉁이에서 닮은꼴의 평행사변형 하나를 잘라낸 모양-역주)*이나 교리문답의 성직매매라는 단어처럼 언제나 내 귀에 이상하게 들렸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어떤 나쁜 짓을 하는 죄받을 존재의 이름처럼 내게 들렸다. 그것이 나를 두려움으로 가득 채웠고, 그런데도 난 좀더 가까이 가서 그것의 치명적인 작업을 구경하고 싶었다. (김정환, p.5)

 

그건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말하는 노몬(gnomon, 평행사변형의 한 모서리를 전체와 닮은 꼴로 잘라낸 그 나머지 부분)이라는 말이나 교리문답서에 나오는 시모니(simony, 성직매매죄)라는 말처럼, 알 듯하면서도 아주 헷갈려버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뭔가 죄악으로 가득 찬 존재들이 겪어야 하는 숙명적인 업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무시무시한 고통이 과연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임병윤, p.10)

 

* 경절형(磬折形)김정환의 역주대로 평행사변형의 한 귀퉁이에서 닮은꼴의 평행사변형 하나를 잘라낸 모양이라는 것은 어디서 나온 이야긴지, 그 근거가 궁금하다. 경절(磬折)석경(石磬)처럼 몸을 90도로 꺾어 삼가 공경하는 예를 표하는 것. 석경은 고대의 악기(樂器)로서 모양이 기역자처럼 생겼음(네이버 용어사전)이 필자가 찾아본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경절형은 아무리 gnomon처럼 이상하게 들리는 효과는 있어도 그 다른 뜻인 해시계의 침(침과 땅 위의 그림자는 항상 기역자, 즉 90도를 이룬다. 경절형 해시계란 용어도 확인할 수 있었다)이다. 그렇다면 gnomon은 그냥 노몬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더 이상 뜻은 나오지 않지만, 혹 우리나라, 일본, 아니면 중국의 수학계(數學界)에서 이런 생경한 용어를 쓰는지는 모르겠다.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시길.

 

 

5. - Let him learn to box his corner. Thats what Im always saying to that Rosicrucian there. (p.2)

 

우선 box his corner는 무슨 뜻일까? Gifford(p.30)에 따르면 여기서 cornershare(몫) 또는 proceeds(수익)을 뜻하는 slang(속어)이라고 한다. 또 box는 동사일 때 상자 같은 곳에 채워 넣다. 따라서, 자기 몫을 하다, 세상사에 영악해지다(go out and learn to make a living and get ahead in the world)는 뜻. 뒤의 저기 있는 저 장미십자회원 같은 애란 바로 앞의 him이며, 이 이야기의 화자(I)인 소년이다. box his corner의 번역은 김정환만 그나마 비슷하게 했고, 뒤의 Rosicrucian 번역에서도 김정환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치 소년이 정말 장미십자회원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소년의 몽상적인 면을 놀리면서 이대로 가면 향후 성직으로 진출할지 모른다는 암시라고 봐야 한다. (Gifford, p.30, Brown, pp.239-240)

 

아이들이란 아이들 분에 맞도록 해야죠. 이건 내가 밤낮 여기 장미십자회원에게 말하고 있는 말입니다. (김병철, p.10)

아이들은 제 분수를 지킬 줄 알도록 해야 해요. 이건 내가 언제나 장미십자회원*한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김종건, p.21): *근세 유럽에 있었던 신비주의적 국제 비밀결사 회원. 그들은 세속적 관심에서 탈피하여 일종의 심미론을 그 이상으로 삼았음.

제 앞가림은 제가 하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항상 저 장미십자회원(1866년경 다시 유행한 중세의 교파 중 하나. 세속적인데 무관심하며, 사변적이고 몽상적이라는 의미 역주) 같은 애한테 맨날 그래요. (김정환, p.7)

애들은 애들답게 자라야 한다는 거죠. 이건 제가 장미십자회원인 저 조카애에게 정말 귀가 따갑도록 하는 이야기랍니다. (임병윤, p.13)

 

 

6. I felt that I too was smiling feebly as if to absolve the simoniac of his sin. (p.3)

플린 신부가 죽었다는 것을 안 바로 그날 밤 소년이 잠을 잘 때 꿈을 꾸는 장면이다. 신부의 성직매매죄(simony)를 사면(absolve)할 수 있는 것은 교황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성직매매자로서의 그의 죄를 씻어주려는 듯이 나도 한없이 미소를 짓고 있음을 느꼈다. (김병철, p.11) : 한없이힘없이의 오기/오타/오식일 것이다.

 

나 또한 마치 그의 성직매매의 죄를 사면(赦免)이라도 해주는 듯 픽픽 웃고 있음을 알았다. (김종건, p.22) : 사면이라는 용어는 정확하지만, 픽픽이란 여기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도 희미하게, 마치 성직매매자의 죄를 사해주는 것처럼 미소짓고 있다는 걸 느꼈다. (김정환, p.8)

 

덩달아 실없이 웃음을 흘리고 있는 내 얼굴이 보였는데, 마치 그가 저지른 성직매매죄도 뭐 그럴 수 있다 표정이었다. (임병윤, p.14) : 역시 번역의 충실도 면에서 떨어진다. 아무리 읽기 쉬어도 충실도 없는 가독성은 영어학도에게는 가치가 없다. 또 진지한 문학 독자라면 충실하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번역을 원하지 않겠는가?

 

 

7. Great Britain Street(p.3), July 1st, 1895(p.4), Irishtown (p.9)

 

소년이 다음날 아침 그레이트 브리튼(대영제국)가에 있는 플린 신부의 상가(喪家)로 가서 신부가 1895년 7월 1일 사망했음을 안다. 영국의 지배를 상징하는 이름을 가진 거리가 사실은 당시 더블린 최하층민이 사는 빈민가이며, 카톨릭에서도 거의 축출(파문?)당한 신부가, 원래 이 근처 아이리시타운에서 태어났다가, 인생유전을 거쳐 다시 말년에 여기서 비참하게 살았다는 사실은, 당시 영국과 카톨릭의 공모, 유착에 의한 아일랜드 지배의 불모성과 순환을 풍자한 것이라고 보인다. 이 거리는 지금은 아일랜드 애국자이자 조이스의 영웅이었던 Charles Stewart Parnell(13번째 단편 A Committee in Committee Room 참고)의 이름을 따서 Parnell Street가 되었다고 한다(Gifford, p.31, Brown, p.240). 한편 이 날이 카톨릭의 축일(The Church Feast of the Most Precious Blood)이자, 1690년 보인 전투(Battle of Boyne)에서 카톨릭 아일랜드가 영국에 져서 식민지로 전락한 날짜라는 의미가 있는데(Gifford p.18, Brown p.240), 이에 대한 역주/해설은 번역본 아무데도 없지만, 민태운의 해설서( p.37)에는 언급되어 있다. 또 Irishtown은 고유명사인데 김종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번역을 아이리시 타운으로 띄어서 했다.

 

김병철(pp.11, 19), 김종건(pp.22-23, 29), 김정환(pp.8-9,16), 임병윤(pp.14-15, p.24)

 

 

8. The reading of the card persuaded me that he was dead and I was disturbed to find myself at check. (p.4)

 

(플린 신부의 상가에 붙어 있는 사망을 알리는 )카드를 보고 비로소 신부의 죽음을 확신하게 되고, 그러자 자신이 (신부가 정말 죽었나) 확인/점검(check: an act of inspecting or verifying)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기분이 나빠졌다는 뜻이다. 소년이 여기 온 목적이 무엇인지, 왜 몇 줄 뒤 슬프지도 않고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고 했는지 앞뒤 문맥을 생각해 보면, at checkchecking the death of the Father로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런 역자는 아무도 없고, 모두 하나같이 checked by something으로 보았는데, 한 사람이 틀리면 죽 틀린다는 것이 확인된다. 어째 돌려 베끼기라는 의심이 들지 않는가?

 

이 카드를 읽고 나니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이 나서, 나는 별안간 길이 막힌 것만 같아 그 집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김병철, p.12) : check의 다른 뜻인 방해, 저지, 억제로 잘못 해석하다 보니 원문에도 없는 엉뚱한 구절이 추가되었다.

 

이 쪽지를 읽고 나자 그분이 정말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어떤 방해를 받고 있는 듯한 성가신 느낌도 들었다. (김종건, p.23)

 

그 쪽지를 읽으니 비로소 그가 죽었다는 것이 실감났고 나는 무엇엔가 제지당한 느낌에 혼란스러웠다. (김정환, p.9)

 

카드의 내용을 보고 나자 비로소 그가 죽었다는 걸 실감하였는데, 뭔가가 앞을 가로막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집 안으로 들어서기가 망설여졌다. (임병윤, p.15)

 

 

9. I walked away slowly along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reading all the theatrical advertisements in the shopwindows as I went. (p.4)

 

theatricaltheater의 형용사이기도 하지만, exaggerated(과장된), histrionic(연극조의)이란 뜻도 있어, theatrical advertisements극장/연극 광고일 수도 있지만, 과장된/연극조의 광고일 수도 있다. 당시 이 거리(Great Britain Street. 위의 7 참고)가 빈민가로서 영세한 상점이 많았다는 것과,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60년대 구멍가게 유리창에는 주로 극장의 영화광고로 도배되었다는 사실에서 유추하여 극장광고 쪽으로 기울기는 해도(상품이나 가게 자체 광고가 나온 것은 훨씬 뒤다), 정확히 어느 쪽인지는 필자도 자신이 없다.

 

김병철(p.12), 김종건(p.24), 임병윤(p.16)은 극장 광고, 김정환연극조의 광고(p.10)로 번역했다.

 

 

10. He had studied in the Irish college in RomeHe had told me storiesabout Napoleon Bonaparte(p.5)

텍스트에는 college가 소문자로 되어 있지만, the Irish college in Rome은 사실 고유명사. 로마에 여러 개의 아일랜드계 신학교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1628년에 설립된 것이 딱 하나 있었으며, 19세기말에는 가장 촉망받는 신부들만 여기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책에도 역주가 없고 모두 그냥 보통명사로 취급하여 번역했다. Gifford(서문 p.viii 및 p.31의 해설에서는 아예 중간의 College를 대문자로 시작한다). Brown(p.241) 및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라. 민태운에서만 이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Irish_College_in_Rome

http://www.newadvent.org/cathen/08157a.htm

 

또 바로 뒤 뜬금없이 나온 나폴레옹 이야기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 이는 1789년 나폴레옹이 이 학교를 폐교시켰기 때문이다. 1828년 이 학교는 다시 문을 열었다(Gifford, p.33 및 위 사이트 참조). 이 사실 역시 역주로 단 책은 없다.

 

로마의 아일랜드계 신학교 (김병철, p.13)

로마의 아일랜드계 대학 (김종건, p.24)

로마의 아일랜드 성직자들을 위한 대학 (김정환, p.10)

로마에 있는 아일랜드계 신학교 (임병윤, p.17)

로마에 있는 아일랜드 신학대학(Irish College) (민태운, p.37)

 

 

11. The duties of the priest towards the Eucharist and towards the secrecy of the confessional seemed so grave to me (p.5)

여기서 confessional은 명사로 뜻은 고해소, 고해실이다. 김정환만 제대로 번역했다.

 

성찬식과 고해의 비밀에 관한 신부의 여러 가지 의무가 나에게는 엄숙하게 생각되어서 (김병철, p.13)

성찬식과 고해의 비밀에 관한 신부의 여러 가지 의무가 나에게는 너무나 준엄하게 느껴졌기(김종건, p.24)

성체성사에 대한, 그리고 고해소의 비밀에 대한 사제의 의무는 어찌나 장중해보였던지 (김정환, p.11)

성찬식을 주재하는 지위에 다다르기까지, 또 비밀을 끝까지 안고 가야 하는 고해성사를 담당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성직자들이 지켜야 하는 그 많은 의무들이 너무나 힘겹게 느껴졌기 (임병윤, p.17) : 역시 충실하지 않은 대충 번역으로 원문에 없는 이상한 표현이 삽입되었다.

 

 

12. Nannie received us in the hall; and, as it would have been unseemly to have shouted at her, my aunt shook hands with her for all. (p.6)

 

뒤의 문맥을 보면 Nannie는 귀가 멀거나 좋지 못한(deaf or hearing impaired) 상태이다(another paralysis!). 따라서 보통 때 같으면 큰 소리를 질러 인사했겠지만, 상가에 와서 그렇게 하기가 뭣했으므로 이번에는 그저 손을 잡는 것으로 끝냈다는 뜻의 문장이다(for all = once and for all = for once in a way = just for this once). 1904년 8월 The Irish Homestead라는 잡지에 실린 이 단편의 원본을 보면, 아예 Nannie가 almost stone deaf라서 it was no use saying anything to her이라고 나온다(Gifford, pp.289-293에 1904년 원본이 실려 있고, 이는 인터넷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1914년 첫 출간된 책에 실린 지금의 텍스트는 1906년 5-6월 사이에 개작한 것이라고 한다. (Gifford, p.30, Brown, p.227)

 

그녀에게 큰 소리를 지른다는 것도 이런 경우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아주머니는 그냥 내니의 손만 잡고 말았다 (김병철, p.14)

그녀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기에 아주머니는 그녀와 악수를 함으로써 모든 뜻을 알렸다 (김종건, p.25)

그녀한테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볼썽사나울 것이므로 아주머니는 그녀와 그냥 악수만 했다 (김정환, p.12)

그녀에게 큰 소리로 애도를 표한다는 것이 왠지 이상할 것 같아서인지, 숙모님은 하릴없이 내니의 손만 잡고 있었다. (임병윤, p.19)

 

 

13. So one night he was wanted for to go on a call and they couldn't find him anywhere. They looked high up and low down; and still they couldn't see a sight of him anywhere. So then the clerk suggested to try the chapel. So then they got the keys and opened the chapel and the clerk and Father O'Rourke and another priest that was there brought in a light for to look for him. (p.10)

 

굵은 부분 양쪽 다 문법적으로 for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for toin order to/so as to 정도의 뜻으로 쓰였으며, 필자가 보기에는 이 말을 하는 Eliza의 지식수준을 나타내는 비문으로 생각된다. so then이나 and가 어색하게 계속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앞 12에서 말한 1904년본(the Irish Homestead version)을 한번 보자.

One night he was wanted, and they looked high up and down and couldnt find him. Then the clerk suggested the chapel. So they opened the chapel (it was late at night), and brought a light to look for him. (Gifford, p.293)

 

그런데 이는 조이스가 일부러 화자의 수준에 맞춘 말을 하는 것으로, 마지막 단편 The Dead에서 관리인의 딸 Lily가(하녀 정도로 생각됨) The men that is now is only all palaver(p.178)라고 주어, 동사의 수의 일치를 틀리는 것과 같은 기법이며, narrated monologue, free indirect discourse, empathetic narrative, stylistic inflection, 또는 the "Uncle Charles Principle"*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2년 전의 원본과는 확실히 달라진 문체 기법의 발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Uncle Charles Principle: 조이스 연구자 Hugh Kenner가 Joyce's Voices (Faber and Faber, 1978)란 책에서 쓴 표현으로, 소설 속 인물(= Uncle Charles)이 저자 같은 선택을 하기 시작하여 작가의 글 쓰는 스타일을 전염시킨다(the fictional character begins to make authorial choices, that the character "infects" the prose style of the writer)는 뜻. 월러스 그레이 교수의 http://www.mendele.com/WWD/WWD.dubintro.html 에서 재인용.

 

 

14. They say it(= breaking of the chalice) was the boys fault…” (p.10)

 

죽은 플린 신부가 성찬배를 깨뜨린 이후로 정신이 이상해졌는데, 이는 the boy(여기서는 복사服事가 가장 정확한 용어)의 잘못이라는 Eliza의 말이다. the boy는 대개 성찬식의 시중을 드는 일하는 아이(김병철, p.20), 복사(服事, 김종건 p.29, 민태운 p.36), 소년(김정환, p.17), 시동(侍童, 전은경, p.71) 등으로 해석하며, 외국 선학들도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그런데, 임병윤은 본문에서는 같이 있던 애(p.25)로 해석하며, 역자 후기에서는 대담하게 속내를 토로한다. (pp.392-394)

 

 

  그래도 번역을 하면서 좀더 자세하게, 또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옮기고 싶어 입과 손이 들먹거리던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매」에서 줄거리가 끝나갈 무렵 엘리자가 플린 신부가 성배를 깨뜨리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 it was the boy’s fault…”(‘같이 있던 애가 잘못해서 그랬다고 하더군요’라고 번역되어 있다)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 the boy는 여기 딱 한번 언급될 뿐이다.

   그러면 the boy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혀져야 작품 전체의 내용이 보다 명확하게 이해되고 나아가 주인공인 소년의 심리상태까지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이때 the boy는 막연히 신부와 같이 있던 아이를 지칭하지만, 엘리자와 숙모의 대화를 보면 두 사람 모두 이 아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물론 영문법적으로는 정관사 the의 표현으로 이 사실이 바로 드러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 이 아이는 누굴까? 바로 주인공 소년이다. 그렇지만 조이스의 의도로 보면 the boy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지 않은 것 같다.(중략), the boy를 통해 플린 신부의 죽음에 대한 소년의 죄의식을 이해할 수 있으며, 꿈속에서 플린 신부와 만나는 장면과 플린 신부의 성직매매에 대한 관용의 심리 역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플린 신부의 죽음을 확인하고 난 뒤에, 플린 신부의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고 양지바른 길을 따라 극장 포스터를 즐기면서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걸어가는 모습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이 부분에 이르러 엘리자의 말에 의해 문득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며 이를 받는 숙모의 말에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소년 자신으로 인해 플린 신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바로 the boy가 이런 모든 정황과 심리상태를 연결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바로 번역의 어려움이며 한계인 듯하다. 조이스의 작품은 특히 이런 표현들과 상징이 많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재미도 없는 것일 거다.

 

 

우선 영문법적으로는 정관사 the의 표현으로 이 사실( = 그 소년의 진짜 정체)이 바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은 오해다. 꼭 정체가 밝혀진 소년이라기보다, 그냥 아무 소년이 아니라 성찬식에서 시중 드는 소년 = 아무 복사라는 뜻으로도 the boy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을 보자.

Then I saw a car park by the side of the road. The driver was asleep.

여기서 the driver가 꼭 신분이 밝혀져 있어 the를 썼을까? 그게 아니라 앞의 차의 운전수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그냥 아무 운전수가 아닌 앞에 나온 차의 아무 운전수)에 의해 지시 대상이 결정된 경우이다. 이는 정관사 사용 중에서 가장 미묘한 것으로 앞에 나온 명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명사 앞에 사용되며, 영어로는 associative anaphoric use(관련조응적 사용 - 필자)라고 칭한다(영어관사의 문법, 한학성, 태학사, 수정판 2쇄, 2003. 9, pp.71-73). 이런 관점에서, the boy는 꼭 주변 사람들이 다 정체를 아는(대상이 결정된) 소년일 수도 있지만, 앞의 신부와 성배와의 관련에서 지시 대상이 결정된, 그냥 아무 소년이 아닌 아무 복사(服事)도 될 수 있는 것이다.

The boy is an acolyte or server who assists the celebrant(사제) at the altar. (Gifford, p.34, Brown, p.244)

 

 

물론 이 the boy를 바로 화자인 주인공 소년으로 보는 것은 가능하고, 더 나아가 성찬배를 깨뜨린 것이 성찬식에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는 제의실(vestry) 또는 성구실(sacristy)에서 플린 신부가 (아마도 반강제로) 소년과 성적 교섭을 가지려다가 그런 것으로까지 볼 수 있으며(타락한 동성애), 이렇게 되면 플린 신부의 타락과 꿈속에서의 플린 신부 모습이 암시하는 성적 의미를 쉽게 꿰뚫어 설명할 수 있으므로, 확실히 매력적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단정짓는 것은 이 단편 전체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gnomon을 너무 가볍게 볼 위험이 있다. closure란 말이 있는데, 종결, 토론 종결의 뜻 외에도, 게스탈트 심리학에서는 빠진 부분을 채워 넣어 전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일컫는다. 시기적으로 조이스가 이 심리학에 영향을 받았을 리는 없지만 이 개념을 빌려 설명하자면, 누구나 gnomon을 보고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closure할 위험, 또는 즐거움은 항상 있다는 것이다(아래 gnomon그림 참조). 다시 말해 여기서 빠진 부분을 규모가 작고 닮은꼴의 평행사변형으로 메우면 반드시 원래의 큰 평행사변형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너무 기계론, 결정론에 휘둘린 19세기적 사고라서, 조이스가 추구했던 modernism 또는 post modernism과는 대척점(對蹠點, antipode)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평행사변형일 수도 있지만, 삼각형일 수도 있으며, 또 원형인들 어떻고, 원래부터 빠진 게 없었다면 또 어떤가? 어떤 하나의 상징 해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마다 스스로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생각하도록 맡겨두는 것이 바로 모더니즘적 불확정(modernistic indeterminacy*)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단편을 이 소설에서 가장 난해한 것 중 하나로(민태운, p.31), 또는 이 소설을 Ulysses의 전조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 조이스에게는 상징이란 그렇게 중요하지도, 따라서 신성하지도 않았고, 또 정해진 진실에 도달하는 방법도 아니었다. 상징을 뒤쫓는 주석가들은 예이츠적인 본질주의나 초월주의에서 나온 기계론적이고 종종 통속적인 해석을 제시하는데, 조이스적인 방법론의 미묘한 불확정성과 세속성과는 맞지 않는다 (For Joyce, a symbol was not so essential and therefore sacred a thing, nor was it a means to definitive truths (the symbol-hunting exegetes offer a mechanical and often vulgarized version of the Yeatsian essentialism and transcendentalism, out of key with the subtle indeterminacy and this worldliness of the Joycean method). (Brown, xxxiii)

 



더블린 사람들의 첫 번째 이야기는 열다섯 개의 단편모음 가운데서 가장 붙잡기 어려운 놈이다. 비평가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마치 물고기와 같아서,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평가의 손에서 빠져나가 암시, 풍자로 가득한 불투명한 웅덩이 속으로 도망쳐버린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이 이야기 속의 소년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이 이야기로부터 의미를 짜내려 애쓰고 있다. (The first story of the Dubliners is the most elusive of the set of fifteen stories. Despite many critics efforts, the story behaves like a fish, wriggling its way out of the critics hand to recede into a pool of allusions, innuendo and opacity. After 100 years, we are just like the boy in the story still struggling to extract meaning from this story.) (Carsten Blauth*, Father Flynn and the Boy: A Relationship in Joyces The Sisters, Trinity College/Dublin, School of English; Course: Anglo-English Literature; 1993/94 (Revised Essay), http://www.james-joyce.de/d_essays.shtml)

* Carsten Blauth, 첫 번째 글에서 소개했던 웹 사이트 www.james-joyce.de의 운영자. 독일 Trier 대학 졸업. Trinity College에서 David Norris 및 Terrence Brown 밑에서 수학. 현재 Romania에 거주.

 

 

더구나 이 부분에 이르러 엘리자의 말에 의해 문득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며 이를 받는 숙모의 말에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소년 자신으로 인해 플린 신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라는 해석은 필자가 보기에는 통속적인 에피파니(현현: 顯現, 계시: 啓示) 포착에 지나지 않는다.

* epiphany: 찾아온 동방박사 세 사람에게 구유의 예수가 신성(divinity)을 드러낸 일. 조이스는 이를 사물의 영혼 또는 본질이 외양이라는 허물을 벗고 우리에게 갑작스런 정신적 계시를 보이는 순간(a sudden spiritual manifestation when the soul or whatness of an object leaps to us from the vestment of appearance)의 뜻으로 사용한다(Stephen Hero, Gifford, p.2에서 재인용).

 

 

드디어 조이스의 어떤 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이고, 또는 그 구조, 또는 도덕적 입장이 무어며, 또는 그 작품에서 상징이 가진 힘을 다 알았다고 주장하는 어떤 비평/해설이라도, 따라서, 믿으면 안될 것이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지금 바로 그 작품을 읽음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작품의 완전한 이해라는 불가능한 목적을 향해 당신이 다가갈 때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키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지금이든 언제인지 모를 미래에서든, 그 작품을 읽는 다른 모든 방법을 배제해버릴 그런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Any critical text which claims to tell you (at last) what a work of Joyces is about, or what its structure, or its moral position, or its symbolic force, is, has to be mistrusted, therefore; not because it will not be useful to you in a reading of the work in question, adding to your pleasure as you move toward that impossible goal total understanding, but because it is making a claim that, taken literally, would exclude all other ways of reading the work, now and in the unpredictable future. (Derek Attridge, Companion, p.3)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임병윤 번역본을 지금까지 논의에 포함해 왔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가독성만 앞세우고 충실성을 경시한 번역은 우리 목적인 영어공부와 맞지 않으므로, 다음 글부터는 이 번역본을 빼도록 하겠다.

 

(봐서 알겠지만, 대개 책의 순서대로 따르고 있고, 단편들이라 번역본에서 어디쯤인지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따라서 다음부터는 번역본은 역자 이름만 표시하고, 페이지수는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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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thirsty > 더블린 사람들 - 원문 텍스트 (1) The Sisters

* 앞의 서문 말미에서 밝혔듯이 독자 여러분께 숙제할 시간을 드리기 위해 다음 글에서 다룰 “자매(The Sisters)”의 원문을 미리 올린다. 이 텍스트는 웹 상의 public domain에서 가져온 것이므로 저작권 문제는 없다. 필자가 원본으로 사용하는 Scholes본과 주로 구두법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영어공부의 목적상은 큰 차이가 없다. Scholes본은 판권이 있는 것이라서 함부로 올릴 수 없다. 또 아래에서는 영국식 표기법을 쓰고 있다(예: 철자법 또는 작은 따옴표를 큰 따옴표 대신 사용). 조이스는 대화에서 따옴표 대신에 ‘독자를 향한, 또는 화자간의 서로를 향한 화살’이라는 의미로 긴 대시(dash)를 사용했는데, 요즘 독자들로서는 오히려 아래 텍스트가 쉽게 읽힐 것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원문 뒤에는 어려운 단어 및 용어 해설을 실었는데, 본문에 나오는 순서대로이다. 여기에 없는 단어는 기본적인 것들이니까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해야 한다. “더블린 사람들”에서 문법적으로 복잡한 구문이라서 해석이 어렵다 이런 부분은 없다. 그만큼 간명한 문장의 모범을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조이스의 문장기법으로, 가장 적은 수의 단어로 엄청나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내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The Sisters

 

 

There was no hope for him this time: it was the third stroke. Night after night I had passed the house (it was vacation time) and studied the lighted square of window: and night after night I had found it lighted in the same way, faintly and evenly. If he was dead, I thought, I would see the reflection of candles on the darkened blind, for I knew that two candles must be set at the head of a corpse. He had often said to me: `I am not long for this world,' and I had thought his words idle. Now I knew they were true. Every night as I gazed up at the window I said softly to myself the word paralysis. It had always sounded strangely in my ears, like the word gnomon in the Euclid and the word simony in the Catechism. But now it sounded to me like the name of some maleficent and sinful being. It filled me with fear, and yet I longed to be nearer to it and to look upon its deadly work.

 

Old Cotter was sitting at the fire, smoking, when I came downstairs to supper. While my aunt was ladling out my stirabout he said, as if returning to some former remark of his:

 

`No, I wouldn't say he was exactly... but there was something queer... there was something uncanny about him. I'll tell you my opinion... '

 

He began to puff at his pipe, no doubt arranging his opinion in his mind. Tiresome old fool! When we knew him first he used to be rather interesting, talking of faints and worms; but I soon grew tired of him and his endless stories about the distillery.

 

`I have my own theory about it,' he said. `I think it was one of those... peculiar cases... But it's hard to say... '

 

He began to puff again at his pipe without giving us his theory. My uncle saw me staring and said to me:

 

`Well, so your old friend is gone, you'll be sorry to hear.'

 

`Who?' said I.

 

`Father Flynn.'

 

`Is he dead?'

 

`Mr Cotter here has just told us. He was passing by the house.'

 

I knew that I was under observation, so I continued eating as if the news had not interested me. My uncle explained to old Cotter.

 

`The youngster and he were great friends. The old chap taught him a great deal, mind you; and they say he had a great wish for him.'

 

`God have mercy on his soul,' said my aunt piously.

 

Old Cotter looked at me for a while. I felt that his little beady black eyes were examining me, but I would not satisfy him by looking up from my plate. He returned to his pipe and finally spat rudely into the grate.

 

`I wouldn't like children of mine,' he said, `to have too much to say to a man like that.'

 

`How do you mean, Mr Cotter?' asked my aunt.

 

`What I mean is,' said old Cotter, `it's bad for children. My idea is: let a young lad run about and play with young lads of his own age and not be... Am I right, Jack?'

 

`That's my principle, too,' said my uncle. `Let him learn to box his corner. That's what I'm always saying to that Rosicrucian there: take exercise. Why, when I was a nipper, every morning of my life I had a cold bath, winter and summer. And that's what stands to me now. Education is all very fine and large... Mr Cotter might take a pick of that leg of mutton,' he added to my aunt.

 

`No, no, not for me,' said old Cotter.

 

My aunt brought the dish from the safe and put it on the table.

 

`But why do you think it's not good for children, Mr Cotter?' she asked.

 

`It's bad for children,' said old Cotter, `because their minds are so impressionable. When children see things like that, you know, it has an effect... '

 

I crammed my mouth with stirabout for fear I might give utterance to my anger. Tiresome old red-nosed imbecile!

 

It was late when I fell asleep. Though I was angry with old Cotter for alluding to me as a child, I puzzled my head to extract meaning from his unfinished sentences. In the dark of my room I imagined that I saw again the heavy grey face of the paralytic. I drew the blankets over my head and tried to think of Christmas. But the grey face still followed me. It murmured; and I understood that it desired to confess something. I felt my soul receding into some pleasant and vicious region; and there again I found it waiting for me. It began to confess to me in a murmuring voice and I wondered why it smiled continually and why the lips were so moist with spittle. But then I remembered that it had died of paralysis and I felt that I too was smiling feebly, as if to absolve the simoniac of his sin.

 

The next morning after breakfast I went down to look at the little house in Great Britain Street. It was an unassuming shop, registered under the vague name of Drapery. The drapery consisted mainly of children's bootees and umbrellas; and on ordinary days a notice used to hang in the window, saying: Umbrellas Re-covered. No notice was visible now, for the shutters were up. A crape bouquet was tied to the door-knocker with ribbon. Two poor women and a telegram boy were reading the card pinned on the crape. I also approached and read:

 

1st July, 1895

The Rev. James Flynn (formerly of St Catherine's Church,

Meath Street),

aged sixty-five years.

R.I.P.

 

The reading of the card persuaded me that he was dead and I was disturbed to find myself at check. Had he not been dead I would have gone into the little dark room behind the shop to find him sitting in his arm-chair by the fire, nearly smothered in his great-coat. Perhaps my aunt would have given me a packet of High Toast for him, and this present would have roused him from his stupefied doze. It was always I who emptied the packet into his black snuff-box, for his hands trembled too much to allow him to do this without spilling half the snuff about the floor. Even as he raised his large trembling hand to his nose little clouds of snuff dribbled through his fingers over the front of his coat. It may have been these constant showers of snuff which gave his ancient priestly garments their green faded look, for the red handkerchief, blackened, as it always was, with the snuff-stains of a week, with which he tried to brush away the fallen grains, was quite inefficacious.

 

I wished to go in and look at him, but I had not the courage to knock. I walked away slowly along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reading all the theatrical advertisements in the shop-windows as I went. I found it strange that neither I nor the day seemed in a mourning mood and I felt even annoyed at discovering in myself a sensation of freedom as if I had been freed from something by his death. I wondered at this for, as my uncle had said the night before, he had taught me a great deal. He had studied in the Irish college in Rome and he had taught me to pronounce Latin properly. He had told me stories about the catacombs and about Napoleon Bonaparte, and he had explained to me the meaning of the different ceremonies of the Mass and of the different vestments worn by the priest. Sometimes he had amused himself by putting difficult questions to me, asking me what one should do in certain circumstances or whether such and such sins were mortal or venial or only imperfections. His questions showed me how complex and mysterious were certain institutions of the Church which I had always regarded as the simplest acts. The duties of the priest towards the Eucharist and towards the secrecy of the confessional seemed so grave to me that I wondered how anybody had ever found in himself the courage to undertake them; and I was not surprised when he told me that the fathers of the Church had written books as thick as the Post Office Directory and as closely printed as the law notices in the newspaper, elucidating all these intricate questions. Often when I thought of this I could make no answer or only a very foolish and halting one, upon which he used to smile and nod his head twice or thrice. Sometimes he used to put me through the responses of the Mass, which he had made me learn by heart; and, as I pattered, he used to smile pensively and nod his head, now and then pushing huge pinches of snuff up each nostril alternately. When he smiled he used to uncover his big discoloured teeth and let his tongue lie upon his lower lip - a habit which had made me feel uneasy in the beginning of our acquaintance before I knew him well.

 

As I walked along in the sun I remembered old Cotter's words and tried to remember what had happened afterwards in the dream. I remembered that I had noticed long velvet curtains and a swinging lamp of antique fashion. I felt that I had been very far away, in some land where the customs were strange - in Persia, I thought... But I could not remember the end of the dream.

 

In the evening my aunt took me with her to visit the house of mourning. It was after sunset; but the window-panes of the houses that looked to the west reflected the tawny gold of a great bank of clouds. Nannie received us in the hall; and, as it would have been unseemly to have shouted at her, my aunt shook hands with her for all. The old woman pointed upwards interrogatively and, on my aunt's nodding, proceeded to toil up the narrow staircase before us, her bowed head being scarcely above the level of the banister-rail. At the first landing she stopped and beckoned us forward encouragingly towards the open door of the dead-room. My aunt went in and the old woman, seeing that I hesitated to enter, began to beckon to me again repeatedly with her hand.

 

I went in on tiptoe. The room through the lace end of the blind was suffused with dusky golden light amid which the candles looked like pale thin flames. He had been coffined. Nannie gave the lead and we three knelt down at the foot of the bed. I pretended to pray but I could not gather my thoughts because the old woman's mutterings distracted me. I noticed how clumsily her skirt was hooked at the back and how the heels of her cloth boots were trodden down all to one side. The fancy came to me that the old priest was smiling as he lay there in his coffin.

 

But no. When we rose and went up to the head of the bed I saw that he was not smiling. There he lay, solemn and copious, vested as for the altar, his large hands loosely retaining a chalice. His face was very truculent, grey and massive, with black cavernous nostrils and circled by a scanty white fur. There was a heavy odour in the room - the flowers.

 

We crossed ourselves and came away. In the little room downstairs we found Eliza seated in his arm-chair in state. I groped my way towards my usual chair in the corner while Nannie went to the sideboard and brought out a decanter of sherry and some wine-glasses. She set these on the table and invited us to take a little glass of wine. Then, at her sister's bidding, she filled out the sherry into the glasses and passed them to us. She pressed me to take some cream crackers also, but I declined because I thought I would make too much noise eating them. She seemed to be somewhat disappointed at my refusal and went over quietly to the sofa, where she sat down behind her sister. No one spoke: we all gazed at the empty fireplace.

 

My aunt waited until Eliza sighed and then said:

 

`Ah, well, he's gone to a better world.'

 

Eliza sighed again and bowed her head in assent. My aunt fingered the stem of her wine-glass before sipping a little.

 

`Did he... peacefully?' she asked.

 

`Oh, quite peacefully, ma'am,' said Eliza. `You couldn't tell when the breath went out of him. He had a beautiful death, God be praised.'

 

`And everything... ?'

 

`Father O'Rourke was in with him a Tuesday and anointed him and prepared him and all.'

 

`He knew then?'

 

`He was quite resigned.'

 

`He looks quite resigned,' said my aunt.

 

`That's what the woman we had in to wash him said. She said he just looked as if he was asleep, he looked that peaceful and resigned. No one would think he'd make such a beautiful corpse.'

 

`Yes, indeed,' said my aunt.

 

She sipped a little more from her glass and said:

 

`Well, Miss Flynn, at any rate it must be a great comfort for you to know that you did all you could for him. You were both very kind to him, I must say.'

 

Eliza smoothed her dress over her knees.

 

`Ah, poor James!' she said. `God knows we done all we could, as poor as we are - we wouldn't see him want anything while he was in it.'

 

Nannie had leaned her head against the sofa-pillow and seemed about to fall asleep.

 

`There's poor Nannie,' said Eliza, looking at her, `she's wore out. All the work we had, she and me, getting in the woman to wash him and then laying him out and then the coffin and then arranging about the Mass in the chapel. Only for Father O'Rourke I don't know what we'd done at all. It was him brought us all them flowers and them two candlesticks out of the chapel, and wrote out the notice for the Freeman's General and took charge of all the papers for the cemetery and poor James's insurance.'

 

`Wasn't that good of him?' said my aunt.

 

Eliza closed her eyes and shook her head slowly.

 

`Ah, there's no friends like the old friends,' she said, `when all is said and done, no friends that a body can trust.'

 

`Indeed, that's true,' said my aunt. `And I'm sure now that he's gone to his eternal reward he won't forget you and all your kindness to him.'

 

`Ah, poor James!' said Eliza. `He was no great trouble to us. You wouldn't hear him in the house any more than now. Still, I know he's gone and all to that.'

 

`It's when it's all over that you'll miss him,' said my aunt.

 

`I know that,' said Eliza. `I won't be bringing him in his cup of beef tea any more, nor you, ma'am, send him his snuff. Ah, poor James!'

 

She stopped, as if she were communing with the past, and then said shrewdly:

 

`Mind you, I noticed there was something queer coming over him latterly. Whenever I'd bring in his soup to him there, I'd find him with his breviary fallen to the floor, lying back in the chair and his mouth open.'

 

She laid a finger against her nose and frowned; then she continued:

 

`But still and all he kept on saying that before the summer was over he'd go out for a drive one fine day just to see the old house again where we were all born down in Irishtown, and take me and Nannie with him. If we could only get one of them new-fangled carriages that makes no noise that Father O'Rourke told him about, them with the rheumatic wheels, for the day cheap - he said, at Johnny Rush's over the way there and drive out the three of us together of a Sunday evening. He had his mind set on that... Poor James!'

 

`The Lord have mercy on his soul!' said my aunt.

 

Eliza took out her handkerchief and wiped her eyes with it. Then she put it back again in her pocket and gazed into the empty grate for some time without speaking.

 

`He was too scrupulous always,' she said. `The duties of the priesthood was too much for him. And then his life was, you might say, crossed.'

 

`Yes,' said my aunt. `He was a disappointed man. You could see that.'

 

A silence took possession of the little room and, under cover of it, I approached the table and tasted my sherry and then returned quietly to my chair in the corner. Eliza seemed to have fallen into a deep reverie. We waited respectfully for her to break the silence: and after a long pause she said slowly:

 

`It was that chalice he broke... That was the beginning of it. Of course, they say it was all right, that it contained nothing, I mean. But still... They say it was the boy's fault. But poor James was so nervous, God be merciful to him!'

 

`And was that it?' said my aunt. `I heard something... '.

 

Eliza nodded.

 

`That affected his mind,' she said. `After that he began to mope by himself, talking to no one and wandering about by himself. So one night he was wanted for to go on a call and they couldn't find him anywhere. They looked high up and low down; and still they couldn't see a sight of him anywhere. So then the clerk suggested to try the chapel. So then they got the keys and opened the chapel, and the clerk and Father O'Rourke and another priest that was there brought in a light for to look for him... And what do you think but there he was, sitting up by himself in the dark in his confession-box, wide-awake and laughing-like softly to himself?'

 

She stopped suddenly as if to listen. I too listened; but there was no sound in the house: and I knew that the old priest was lying still in his coffin as we had seen him, solemn and truculent in death, an idle chalice on his breast.

 

Eliza resumed:

 

`Wide-awake and laughing-like to himself... So then, of course, when they saw that, that made them think that there was something gone wrong with him... '

 

 

 

 

 

<단어 해설>

 

Entry

Definition

Remarks

1. The Sisters

gnomon

1. 그노몬(고대의 천문 관측기)

2. 해시계의 지시침(경절형: 磬折形)

3. 평행사변형 귀퉁이에서 닮은 꼴 평행사변형을 잘라낸 나머지 부분

1. silent ‘g’

2. an aesthetic process utilised by James Joyce in his set of short stories Dubliners, whereby the whole of the character is revealed by a part, the part that reveals.

simony

성직매매(에 의한 이익) 

(a. n. simoniac)

사도행전(Acts of the Apostles) 8장에 나오는 마술사 Simon Agnus에서 유래. 베드로(Peter)에게 돈을 주고 성령의 은사를 구함.

stirabout

oatmeal porridge (보통 오트밀로 만든 죽)

 

Catechism

교리 문답집; 문답식 교육; 질문 공세

v. catechize, n. catechist,   

a. catechetical, catechismal, catechistic

faint

the crude, impure spirits given off in the first and last stages of the distillation of liquor.

술 증류 과정에서 나오는 질 낮은 알코올

worm

the coil of a still (=distiller. 증류기. or distillery 증류식 양조장).

증류기의 일부분으로 비비꼬인 관(나선관)

Rosicrucian

장미 십자 회원(의)

17-18세기 유럽 신비주의 종교 개혁가들의 비밀 결사

nipper

(英) 소년, 사동

꼬집는 것(사람); 핀셋, 겸자

all very fine and large

정말 같은, 그럴듯한; (비꼬아) 참 잘된

 

take a pick

have/make a pick, choose

pick = choice

safe

금고; = meatsafe. 쥐나 파리가 드나들지 못하게 문이 달린 찬장

 

spittle

spit, saliva; foam, lather, bubble

; 거품

drapery

포목상

 

crape

crepe. 상복, 상장에 쓰이는 쭈글쭈글한 검정 비단.

 

R. I. P.

(L.) May he/she/they rest in peace.

편히 쉬소서/잠드소서. 영면(永眠)

High Toast

아일랜드산 코담배 상표명

 

vestment

, 의복; 정복, 예복; 제의(祭衣)

 

venial

용서/참작되는, 죄가 사소한/가벼운

 

Eucharist

(카톨릭) 성체, 성체 성사, 성찬식; (성체/성찬용) 빵과 포도주, 성찬

 

suffuse

fill

 

chalice

성찬배, 성배(grail, the Holy Grail)

 

in state

당당히 (= stately)

 

decanter

식탁용의 마개 있는 유리병 (물, 포도주)

 

sherry

스페인산 백포도주

 

when all is said and done

결국 (after all, in the long run)

 

beef tea

환자용 진한 쇠고기 수프

 

latterly

lately; afterward

 

breviary

(카톨릭) 성무일도서(聖務日禱書)

a book of prayers

newfangled

최신 유행의; 신기한

 

rheumatic

류머티즘(rheumatism)에 걸린

 

of a Saturday

토요일에 (= on a Saturday)

 

mope

울적해지다;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 맨 앞 entry 단어에서 이탤릭체로 표시된 모음은 여기에 강세가 있다는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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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thirsty >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序) - 꼼꼼한 텍스트 읽기

1. 논술대비 초등학생용 율리시스라는 책이 있다고 한다. 필자는 처음엔 에이, 그리스 신화 오디세이의 모험(율리시스는 오디세이의 라틴 즉, 로마식 이름) 말이겠지, 하였으나 그 책이 바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원저라는 것을 알고 기겁을 했다. 그런 책을 내놓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2. 난해하기로 소문난 조이스의 소설 중에서도 그래도 인간적(?)인 더블린 사람들(이하 Dubliners)를 가지고 영어공부를 시작해보자.

 

 

3.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이하 Portrait) 율리시스(이하 Ulysses) 피네간의 경야(經夜: 밤샘)(이하 Finnegans Wake)으로 이어지는 조이스 문학의 출발점이자, 조이스나 그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이 바로 이 소설이기 때문이며,

* 미국에서 조이스 연구의 선구자인 위대한 고(故) 윌리엄 요크 틴달(William York Tindall: 1903-1981) 교수는 강연에서 모든 조이스의 작품은 하나라고 즐겨 말했다(The great late William York Tindall, who pioneered Joyce studies in this country, was fond of saying in lectures that all of Joyce's work was one work)고 한다. 이 말을 한 월러스 그레이(Wallace Gray : 1927-2001) 교수는 틴달의 컬럼비아 대학 제자로 역시 컬럼비아에서 수십 년 조이스를 강의했던 사람이다. (Wallace Gray's Notes for James Joyce's "The Dead")

(http://www.mendele.com/WWD/WWDdead.notes.html#literally)

 

 

4. 조이스가 한 젊은 작가에게 나로 말하자면, 항상 더블린에 대해서 쓴다. 왜냐하면, 더블린의 중심에 이를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도시들의 중심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것 안에 보편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For myself, I always write about Dublin, because if I can get to the heart of Dublin I can get to the heart of all the cities of the world. In the particular is contained the universal. (Richard Ellmann, James Joyce, revised ed., Oxford University Press Paperback, with corrections, 1983. p.505. 이 유명하지만 또 비판도 받아온 조이스 전기는 2권으로 나뉘어 국내에도 번역이 되어 있다. 제임스 조이스 1, 2, 민은경 옮김, 책세상, 2002. 1)고 했듯이,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우리 서울의 마비(paralysis)도 그 시대 더블린 못지않기 때문이고,

 

 

5. 영문학이나 (영어)언어학을 하기 이전에, 모국어 화자들은 이미 일상적으로 영어를 구사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춘 데 비해, 영어가 외국어인 우리로서는 사정이 그렇지 못하므로, 먼저 텍스트(text)의 단단한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6. 영어 자체에 대한 왈가왈부보다도 문학의 이론이나 텍스트의 숨은 의미, 기호, 상징, 시대적 배경, 사상 같은 것들은 훨씬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에 관한 것은 텍스트의 이해에 필수적으로 도움이 될 때만 언급하기로 하는데, 다시 말해, 여기서는 이 책을 텍스트 삼아 영어공부를 우선으로, 문학공부는 이에 도움이 되는 만큼만 하려는 것인데, 텍스트의 꼼꼼하고 정확한 이해가 번역과 작가 연구보다 먼저, 즉 해당 언어의 이해가 문학에 먼저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7. 전문(全文)을 해석해보는 무지막지한 방법(우리 말로 막고 푼다는 물고기 잡이 방식. 물목을 앞뒤로 막고 그 사이의 물을 몽땅 퍼낸 후 남는 물고기를 건져내는 법)이 아니라, 국내의 몇 가지 번역본을 원본과 대조해 보고, 오류나 어색한 부분을 검토하는 방법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전문번역가의 작업영역인 번역이 아니라 그냥 영어공부에 따른 해석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8. 번역작가가 원본의 텍스트를 모두 소화 흡수한 후, 그 내용을 본인의 이해도, 논리 전개, 모국어 실력, 문학적 감수성으로 다시 풀어내는 것이 번역이라면,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그냥 원본의 자구 그대로 뜻을 해석하고, 올바른 주석(notes, annotations)소개*하는 작업일 뿐이다. 필자는 영어학도이지 번역가가 아니다. 한편 이 주석 작업의 중요성에 관한 Gifford 교수의 말은 의미가 있으므로 소개한다. 그러나, 조이스가 그렇게 작품 속 언어의 구사에 있어서 의존했던 그 시대 더블린 특유의 언어세계가 급속도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으며, 그것이 영원히 소멸되기 전에 그들 어휘의 뉘앙스를 붙잡아두려는 노력은 시의(時宜) 적절한 중요성을 가진다(But the vernacular world of the Dublin on which Joyce so heavily depended for his vocabularies is rapidly receding out of living memory, and the effort to catch the nuances of those vocabularies before they are permanently lost is timely in its importance. (Gifford, p.1)

* 소개: 필자의 능력이 독자적으로 주석을 달 정도도 아니지만 굳이 그런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선학(先學)들이 해놓은 일들이 많으니 비교, 종합해서 소개하겠다는 뜻이다.

 

 

9. 대학 영문과에서 자주 교재로 사용된다는 Dubliners이지만, 문학 텍스트가 아니라 영어공부 텍스트로서 대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0. 원본의 텍스트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쉽게 무료로 구할 수 있으며, 책도 외국의 유명 출판사 여러 군데서 싼 값에 나오고 있다. 조이스는 1941년 1월 13일에 사망했으므로, 벌써 사후 66년이 지났다. 저작권(estate)을 저자 사후 50년 인정하는 나라(예를 들어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우리나라 등)에서는 이미 기간이 넘었고(따라서 public domain이다), 70년을 인정하는 경우는 아직 몇 년 남았지만, 이는 저자 생전 출판된 작품들에만 해당되며, 사후 출판된 서한집 같은 것들이나 특정 연구가의 이름이 붙은 개정본, 예를 들어 Ulysses의 Gablers edition 같은 것들은 물론 사정이 다르다. 텍스트를 보거나 복사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는 아래 13을 참고하라.

 

 

11. 이 책은 출판의 역사가 비록 Ulysses만큼 파란만장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가 될 정도*라, 아래 책의 서문에서 브라운 교수는 dismal chapter in publishing history (출판 역사의 음울한 장)이라고 썼다(브라운 교수는 조이스의 모국인 아일랜드 트리니티 대학교 출신으로 현재 모교 교수). 원본의 판본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글에서 번역본과의 대조를 위한 원본으로는 필자의 편의상 아래의 책을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인 영어공부를 위해서는 이미 인터넷 상에서 public domain으로 유통되고 있는 어떤 판본을 사용해도 별 지장이 없다.

James Joyce, Dubliners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Terence Brown, Penguin Classic, 1993.

- 이 판본의 텍스트는 Richard Ellmann의 자문, Jack Dalton의 의견제시를 참고하여, Robert Scholes, Walton Litz 두 사람이 편집한 Viking Critical Library edition(1969)이다(스콜즈 교수의 최종 교정본).

* 김종건(pp.367-369, 375), 민태운(pp.13-16) 참고.

 

 

12. 대조를 위한 국내의 번역본으로는 아래의 책을 사용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의 약력을 병기했다. (편의상 존칭이나 경어는 생략). 이중 원본을 밝히고 있는 책은 (3)밖에 없지만, 역시 우리 목적상은 어떤 원본을 사용했든 별 문제가 없다.

(1) 더블린 사람들, 김병철 옮김, 문예출판사, 3판 1쇄, 1999. 2 (초판 1977. 5, 2판 1994. 6) (이하 김병철) 중국 국립 중앙대학 대학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 더블린 사람들 비평문, 김종건 옮김, 범우사, 2판 4쇄, 2005. 8 (초판 1988. 11, 2판 1997. 3) (이하 김종건) 미국 Tulsa대 영문학박사, 전 고려대 교수, 한국제임스조이스학회 고문

(3) 더블린 사람들, 김정환 성은애 옮김, 창작과 비평사, 2쇄 1995. 9 (초판 1994. 12) (이하 김정환) 김정환: 서울대 영문과, 시인, 한국문학학교 교장, 성은애: 서울대 영문과 박사, 단국대 교수

* 이 책은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이 그래도 여타 번역본보다 낫다고 추천하는 책이다(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창비, 2005. 5, pp.411-423). 하지만 이 책도 2등급으로 추천에 턱걸이했으니, 다른 책들은 모두 3~6등급의 신뢰가 떨어지는 책이라는 말이겠다. 그런데 안타깝게 이 책은 현재 품절이며, 필자는 몇 차례 창비에 이메일로 재인쇄 또는 개정 계획을 문의했으나 감감 무소식이다.

(4) 더블린 사람들, 임병윤 옮김, 소담출판사, 초판 1쇄, 2005. 7 (이하 임병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번역가

 

 

13. 참고문헌 및 웹 사이트

 

(1)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창비, 2005. 5

(2) 민태운, 조이스의 더블린: 더블린 사람들 읽기, 태학사, 2005. 4 (이하 민태운) 미국 Southern Illinois대 영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 이 책은 필자가 강추하는 책이다. 조이스와 더블린 사람들 해설에 관심이 있는 초중급자들에게 좋다. 또 위 김종건 책의 뒤에 붙은 해설 더블린 사람들에 나타난 에피파니(pp.367-424)” 참고하라.

(3) 전은경 홍덕선 민태운, 조이스 문학의 길잡이: 더블린 사람들, 동인, 2005. 6 (이하 전은경) 전은경: 미국 Wisconsin-Milwaukee 영문학박사, 숭실대 교수, 홍덕선: 미국 South Carolina 영문학박사, 성균관대 교수

* (2), (3), 책은 번역본이 아니라 해설 비평서이고, 저자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중복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속에는 원본의 일부 번역 내용 소개도 있으므로 부분은 12 준하여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4) Don Gifford, Joyce Annotated: Notes for ‘Dubliners’ and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2nd e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2 (이하 Gifford)

(5) Derek Attridg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James Joyce, 2nd ed. 3rd print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이하 Companion)

(6) “James Joyce, Dubliners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Terence Brown, Penguin Classic, 1993에 있는 테렌스 브라운 교수의 서문(introduction) 및 주석(notes). (이하 Brown)

* 외국서적 영문 웹사이트의 한글 번역은 모두 필자가 것이다.

 

* 사이트

(http://www.themodernword.com/joyce/joyce_papers.html) 유명한 Brazen Head 사이트.

(http://joycean.org/) 이 사이트에는 조이스 중요 작품의 텍스트가 다 들어있다.

(http://www.james-joyce.de/) 조이스 책의 각종 판본 리스트 및 중요 서지(bibliography)가 있다.

(http://education.yahoo.com/homework_help/cliffsnotes/dubliners/) 미국의 John Wiley & Sons 출판사의 문학 교재 브랜드인 클리프노츠가 제공하는 미국 중고생 학습참고용 웹사이트. 초급자들에게는 이런 오히려 쉽다.

 

14. 원본을 읽던 중 까다로운 부분에서 우리 번역본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되었다가, 약간은 참담한 심정으로(이유는 점점 밝혀진다) 일일이 원본과 대조하게 된 이 작업이 사실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에서, 위 13의 (1)의 존재를 알게 되어 읽어보게 되었으며,

 

15. 동기나 목적에서 비슷한 점이 많지만 위 13의 (1)과 필자의 글이 다른 점은, 우선 번역과 영어공부라는 기본적 입장의 차이 외에도, 위 책에서는 아마 지면의 제약과 편집 방침 때문에 전체 텍스트가 아닌 일부의 대조, 평가만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필자는 전체 텍스트를 대상으로 삼은 점과, 위 책과는 달리 번역의 묘미보다는 꼼꼼한 텍스트 읽기 및 해석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즉, 번역상의 기교*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언급은 우리 목적에 비추어 보아 꼭 필요한 부분 외에는 가능하면 피하려 하는데, 역시 이는 필자가 전문번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머리말에 보면, 영미고전문학 번역평가사업: 번역문화 혁신을 위한 현황점검이라는 보고서(2004. 1)를 단행본의 규모에 맞게 축약해서 내놓은 것이 이 책이라는데, 필자는 이 보고서는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 충실성(faithfulness: 번역문이 원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번역했는가)과 가독성(readability: 번역문의 우리말 구사 수준을 판단하는 영역)이라는 두 차원을 놓고 볼 때 충실성 쪽에 관심을 두겠다는 뜻이다. 덧붙여, 누락, 추가, 역주 등 해설의 제공을 포함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위 책의 pp.21-25와 번역은 반역인가, 박상익, 푸른역사, 초판 2쇄, 2006. 3, pp.138-143 참고.

 

 

16. 위 12의 (2) 역자는 반평생 아니 반세기를 조이스 연구에만 바치고 있으며, 조이스 전집을 내놓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이스 학자인데, 어째서 이 책이 아닌 12의 (3)이 추천되었을까? 우선 간단히 말하면, 위 (12)의 (1), (2)는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여러 본을 참고하여, 서로 베끼고 윤문(潤文)한 책에 지나지 않은데다가(그 증거는 뒤에 차츰 제시하겠지만, 같은 곳을 같은 식으로 틀린 번역이 많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어조마저 생경한 번역투 같다는 데서 온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17. 또 이 역자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UlyssesFinnegans Wake에 수십 년 매달리느라, 이런 초기의 비교적 쉬운 작품까지 다시 손보기에는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지만, 지금 번역본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는 개정판(1997. 1)의 서문에서, 역자는 이 번역에 있어서, <더블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많은 영문학도는 물론 이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일반 독자들을 위해 번역의 정확성과 세련된 문학적 표현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조이스의 후기 작품들인 <율리시스>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 그리고 조이스의 시들을 번역하면서 경험했던 아일랜드 특유의 표현들을 이 작품에서도 살리려고 최대한 애를 썼고, 이미 나와 있는 몇 가지 번역서들에서 발견되는 잘못을 보완하거나 수정했다(pp.14-15),라 했으며, 그 이후는 개정이 없으므로 필자로서는 이 책을 지금까지 이 역자의 최종 번역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18. 하지만 지금부터 필자가 시작하는 대조, 비교, 비평은 번역자 개인의 학문 또는 그 일생의 업적이 아닌 이 Dubliners 번역서에만 한정된다는 점을 반드시 이해해야 쓸데없는 오해가 없을 것이다. 즉, 여기서 언급되는 문제는 이 책의 문제일 이라는 말이다. 한편 위 15의 박상익에 따르면, 오역 비판은 되도록 넌지시 해주는 편이 효과가 크다고 한다. 사실 비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아도 번역자는 충분히 부끄럽기 때문(위의 책, p.137). 하지만, 그건 꾼들끼리의 이야기일뿐더러, 어디 모든 번역자가 넌지시 해준들 받아들이겠는가? 더군다나 넌지시 한들 또는 중뿔나게 한들 그게 뭐 대순가? 맞는 지적이면, 고맙다고 고치면 그만인 것을. 필자의 시선은 번역자나 출판사 쪽을 향해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있다.

 

 

19. Dubliners은 어떻게 보면 간단한 단편소설 모음집, 일종의 성장소설(Bildungsroman), 사회의 단면을 그린 사실주의 작품집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모더니즘(modernism)과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을 연 대가의 작품답게, 사실주의와 상징주의의 혼용에 의해 마치 양파처럼 다중의 차원을 지닌 작품*이며, 단편들끼리의 관계도 아는 만큼 달리 보이는 복잡한 소설**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월러스 그레이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이런 종류의 복잡하지만 미묘한 연결이 당신을 귀찮게 하면 조이스를 그만 읽는 게 낫다. 반면 이런 일이 즐겁게 느껴지면, 주의하라! 당신은 조이시언이 될 수도 있으니까. (If these kinds of complicated yet subtle connections annoy you then read no further in Joyce; if they delight you, than be forewarned: you could turn into a Joycean***.) (앞의 3에서와 같은 웹 페이지에서 인용)

* Garry Leonard(캐나다 토론토대학교 교수)는 이를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이들 단편의 특징(the protean quality of these stories)이라 했다(Companion, p.87).

** (더블린 사람들) 단편들은 정교한 십자말풀이(가로세로 낱말퀴즈)이다(the stories are an elaborate crossword puzzle (Leonard, 위의 책, p.101)

*** Joycean: 조이시언. 조이스 학자. 조이스 연구가. 조이스의 열성 팬/광 팬. 조이스 폐인.

 

 

20. 이제부터 필자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15개의 단편을 차례로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하나의 단편이지만 길이 때문에 몇 개로 나눠야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1904년 George Russel이라는 사람의 권유로 The Irish Homestead라는 잡지에 The Sisters가 발표되면서 시작된 이 단편집의 목적은 조국의 도덕사의 한 장(章)을 쓰는 것이었고, 더블린이 마비의 중심지로 보였기 때문에 더블린을 선택(민태운, p.14)했으며, 따라서 더블린 중하층 시민의 신산(辛酸)한 삶을 비열할 정도로 꼼꼼하게(with a scrupulous meanness) 묘사함으로써,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릴까 두려워한 편집자 및 인쇄공에 의해 계속 출판이 지연되어(다 완성된 책을 없애버린 인쇄공도 있었다!), 결국 무려 10년 후인 1914년 출판되었다. 이 기간에 조이스는 1904-1905년 사이에 완성된 원래 계획 10개 작품 외에도, 2개를 추가했다가, 다시 2개를 더, 마지막으로 The Dead를 추가하여, 결국 지금과 같은 15개의 단편이 모아진 것이다. 이 단편들은 개별적으로도 의미를 지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의해 하나로 엮어지는 통일성을 가졌으며, 조이스는 이를 더블린 사람들이 통과하는 네 개의 시기로 구분했다. (민태운, p.14, pp.24-27, 단, 한글 제목은 필자의 것이며, 이 글 시리즈를 통해 이렇게 사용하고, 그 이유는 각각을 다룰 때 상론하겠다.)

(1) 유년기(childhood) 자매(The Sisters), 우연한 만남(An Encounter), 애러비(Araby)

(2) 청소년기(adolescence) 이블린(Eveline), 경주가 끝난 후(After the Race) 두 건달(Two Gallants), 하숙집(The Boarding House)

(3) 장년기(maturity) 작은 구름(A Little Cloud), 분풀이(Counterparts), 진흙(Clay), 가슴 아픈 사건(A Painful Case)

(4) 공적 생활(public life) 선거사무실에서의 파넬 추모일(Ivy Day in the Committee Room), 어떤 어머니(A Mother), 은총(Grace), 죽은 사람들(The Dead)

* 위 1-3은 개인의 성장에 따른 시간 순서에 따른 것이지만, 4는 그렇지 않다. 내용상 4는 3과 중복되는 시기이다.

 

 

이제, 원본 text와 번역본을 가진 사람은 가진 대로,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조이스를 통한 영어공부의 길로 떠나 보자. 저작권 침해 문제를 피하기 위해 웹 상의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공유. 저작권의 권리소멸 상태)에 있는 영어 text를 해당 단편 검토에 앞서 미리 제공하도록 할 것이니(숙제는 미리 내주는 법이다).

 

 

* Dubliners에 관한 질문이나 이 글에 대한 근거 있는 비판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만, 위 글에서 언급한 외의 복잡한 상징 및 그 해석, 문학이론, 문학사에 관한 이야기는 이 글의 목표를 넘어선 것이며, 제 능력 밖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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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소쉬르와 언어학 참고문헌

국어학을 공부하시는 어느 분이 소쉬르 관련 문헌들에 대해서 조언을 구해오셨다. 아마도 이번에 <일반언어학 강의>가 재간된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조언은 '서평꾼'이 아닌 언어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에게 구하여 마땅한 것일 테다. 그럼에도 정중히 마다하지 못한 것은 그간에 이런저런 아는 체를 많이 해온 탓에 무작정 발뺌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듯하기 때문이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예전에 써둔 걸 옮겨놓는다. 원래는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라캉182님이 소개한 내용에 몇 글자 더 보탠 글이기에 필자는 두 사람으로 해야겠지만('비평고원'은 어제 언론의 '직격탄'을 맞고 신입회원이 600여명 가까이 늘어났다. 나도 즐찾이 16명 늘어나긴 했지만 비할 바는 아니겠다. 한겨레의 힘(?)을 보여주는 일례일 텐데 후유증(?)은 없으려나 걱정된다), 일단은 임의로 올려둔다. 이미지는 이번에 새로 붙인 것이다. 

 

 

 



1. 그의 저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샤를르 발리, 알베르 세쉬에 편집, 최승언 역(민음사, 1990 초판)(샤를르 발리(Bally)는 (불어식으로) '바이이'라고도 표기됩니다.) 오원교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형설출판사)도 번역돼 나왔는데, 역시나 도서관에 의존해야 할 듯싶고(*민음사판은 이번에 다시 나왔다),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 대해 경악한 얘기는 제가 다른 글에서 썼습니다.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는 서두에 마우로 교수의 강의 주석본도 곧 번역돼 나오는 것으로 예고돼 있는데, 12년이 지나도록 아직 안 나오고 있습니다...

 

 

 



2. 입문서
조더선 컬러, <소쉬르>, 이종인 역(시공사, 1998). 조나단 컬러는 영미권에 소쉬르와 구조주의를 처음 소개한 이로서(<구조주의 시학>이 대표작) 신뢰할 만한 비평가입니다(<바르트>와 <문학이론>도 그의 책이다). 우리말 번역서는 이 책의 증보판을 옮긴 것인데,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서는 소쉬르 입문서로서 많이들 추천하는 책입니다...

C. 샌더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김현권 역(도서출판 만남, 1996)는 말 그대로 일반언어학 강의의 주요 개념들을 정리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김현권 교수의 번역. 저는 이 책으로 <일반언어학 강의> 읽기를 때웠었는데, 요즘 다시 소쉬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르트도 그랬지만, 저도 랑그 연구자로서의 소쉬르보다는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더 흥미를 갖게 됩니다.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대해서 그래도 가장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은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의 <존재와 언어>(민음사, 2002)입니다. 원제는 '생명과 과잉'이고, 저자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소쉬를 연구자의 한 사람입니다. 1장은 그런가보다 했는데, 2장부터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단행본 연구서
요하네스 페르, <소쉬르 언어학과 기호학 사이>, 최용호 역(인간사랑, 2002) 저도 아직 구입하진 않았지만(2만원!) 서점에서 몇 번 들춰보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언어학자이면서 (퍼스와 더불어)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인 소쉬르를 다루고 있습니다(*퍼스의 기호학에 대해서는 <퍼스의 기호사상>(민음사, 2006)을 참조할 수 있고요).

김현권 외 편역, <비판과 수용:언어학사적 관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연구 제1권)>(도서출판 역락, 2002) 마침 오늘 산 책이네요. 제목대로 소쉬르에 대한 그간의 비판(1부)과 각국의 수용(2부)에 대한 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2부에는 일본과 한국에서의 소쉬르 수용에 관한 장들도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여구> 총서는 4권으로 기획돼 있는데, 2권은 "비교역사언어학: <논고>를 중심으로"이고, 3권은 "일반언어학: 일반어어학 이론, 문헌비판적 연구"이며 4권은 "기호학: 아나그람, 전설, 기호학, 철학 등"입니다. 제가 제일 기대하는 건 역시나 4권입니다.

프랑수와 가데, <소쉬르와 언어과학>, 김용숙 역(동문선, 2001). 라캉 182님이 "소쉬르 연구의 결정판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큰 연구서..김성도 교수가 자주 인용한 저자. 부담없는 가격과 두께! 내용은 두께에 반비례할 수도 있음!"라고 상찬하셨는데, 저로선 너무 비싸보이는 책이어서(!) 소쉬르 '쇼핑'을 나간 오늘도 사지 않았습니다...

 

 

 

 

김방한, <소쉬르>(민음사, 1998). 작고한 김방한 교수는 우리나라 1세대 언어학자입니다. 제자인 김현권 교수와 방통대의 언어학 강의를 맡기도 하셨고, 그 강의를 TV에서 몇 본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반언어학 강의>를 평이하게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2차 일반언어학 강의'가 발췌지만 부록으로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김방한 교수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 <한 언어학자의 회상>(민음사, 1996)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김성도,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한길사, 1999). 고대 김성도 교수는 외대 최용호 교수와 함께 본토에서 소쉬르를 전공한 '전문가'입니다(*김현권 교수는 국내에서 소쉬르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아직까지는 국내 소쉬르 연구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을 거 같군요. 한길사에 다니던 후배의 부탁으로 이 책을 절반쯤 읽고 서평을 쓴 바 있습니다...

김현권 외, <소쉬르의 현대적 이해를 위하여>(박이정, 1998). 국내 소쉬를 학자들의 논문과 번역모음입니다. 아마도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 모양인데, 그 결과를 묶어낸 책입니다. 오래전에 산 책인데,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듯하군요...

로이 해리스,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고석주 역(도서출판 보고사, 1999) 라캉182님에 의하면, "저자 Roy Harris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1983년 영역과 주석을 출판한 저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부담은 없어서 사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않은 책입니다.

미셀 아리베, <언어학과 정신분석학:프로이드, 소쉬르, 옐름슬레우, 라깡을 중심으로>, 최용호 역(인간사랑, 1992) 아리베는 최용호 교수의 지도교수입니다. 최교수가 유학중에 번역한 책인데, 한동안 미뤄두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최교수는 <라캉의 재탄생>(창작과비평사, 2002)에 '라캉과 소쉬르'란 논문을 싣고 있기도 합니다.

 

 

 



루이 옐름슬레우, <랑가쥬 이론 서설>, 김용숙/김혜련 역(동문선, 2000) 흔히 '언어이론 서설'로 알려진 책인데, 주의할 것은 이때의 언어가 '랑그'가 아니라 '랑가주'란 것입니다. 불어에서는 이 둘을 구별하는데, 영어나 독어, 그리고 우리말에도 이 둘은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냥 랑그/랑가주를 언어/언어활동 정도로 옮기고 있습니다. 크리스테바의 <언어, 그 미지의 것>(민음사, 1997)도 원제는 '랑가주, 그 미지의 것'입니다. 어쨌든 엘름슬레우의 이 책은 얇지만, 그레마스가 '이 한권의 책!'으로 꼽은 책입니다(*그레마스의 책과 연구서로는 <의미에 관하여>와 <구조에서 감성으로>가 있다).

 

 

 



에밀 벤베니스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1, 2>, 황경자 역(민음사, 1993) 한불문화출판에서도 김현권 교수의 번역으로 1권이 번역돼 나왔었는데, 현재는 절판됐습니다. 적어도 구조주의에 대해서 말하려면, 소쉬르와 야콥슨 그리고 벤베니스트를 읽어야 합니다. 참고로 벤베니스트는 A. 메이예의 제자이고, 메이예는 바로 소쉬르의 제자입니다. 메이예의 책으론 <일반언어학과 역사언어학>, 김현권 역(어문학사, 1997)이 번역돼 있습니다.

벤베니스트, <인도 유럽사회의 제도 문화 어휘연구 1,2>, 김현권 역(아르케, 1999) 작년에 맘먹고(!) 산 책중의 하나입니다(*러시아어본도 구했다). 사실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고 고급 교양서 정도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인데, 그냥 '사전'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군요.

앙투안 아르노/클로드 랑슬로, <일반이성문법>, 한문희 역(민음사, 2000) 얇은 책이지만, 저도 아직 사지는 않은 책입니다. 참고로 언어학 관련서 중에서 욕심이 나는 책은 훔볼트 관련서들입니다. 그의 책들과 그에 관한 책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혹시 읽으신 분이 있다면, 정보를 주시길...)

4. 영어
<초보자를 위한 소쉬르('Saussure for Beginners)>, W.Terrence Gordon, Abbe Lubell, Writers & Readers, 1996.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데리다가 한 얘기들은 실제로 소쉬르도 다 한 얘기다라는 지적이 들어 있습니다. 평이하기 때문에 번역 소개되면 좋을 거 같군요. 단, '정치적인' 소쉬르 얘기는 없습니다.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Francoise Gadet, trans. Gregory Elliott. 라캉182님 덕분에 알게 된 책이군요.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책은 정말 많고도 많습니다(하지만, 없는 책들은 더 많습니다!).

 

 

 



덧붙임: 서정철 교수의 <기호에서 텍스트로>(민음사, 1998)는 평이한 구조주의/기호학 입문서이다. 소쉬르에서부터 옐름슬레우, 바르트, 그레마스 등에 이르는 언어학/기호학 사상을 해설하고 하고 있는 책이다. 서교수의 후속작으로는 <인문학과 소설텍스트의 해석>(민음사, 2002)가 있다. 여타 구조주의/기호학 참고문헌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03. 01. 30./ 07.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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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thirsty > 언어와 번역의 한계를 묻는다 – 피네간의 경야 엿보기
피네간의 경야(經夜)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범우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미야타 교코를 기다리며

 

우리는 이제 이 연속물의 우리들 애인들 사이에 확급擴及하고 있나니 (그대에게! 당신에게!) 농弄나이팅게일의 노포露包의 노래를 (알리스! 알리스델시오 미녀여!) 그들의 은신처로부터, 장미경薔薇景의 건초 속에 숨어, 매력림魅力林의 헤더 측구側丘 위에, 성聖 존 산山, 지니(신령神靈)땅, 우리들의 동료는 무어 마루공원으로부터 황혼박黃昏箔에 의하여 어디로 날랐던고, 스위프트(급急) 성소聖所를 찾아서, 일몰 시우時友 뒤를 (오보에! 여기저기에! 가위 휘청대는 점보点步! 나는 대쉬돌突해야 하나니!) 그들의 평화를 부분음部分音에 쏟아 붓기 위해 (프로프로 프로프로렌스), 달큼하고슬픈 경쾌하고유쾌한, 쌍이雙二조롱노래구애저求愛低. 한 피치의 모든 소리를 공명共鳴속에 조용히 보관할지라. 흑인까마귀, 갈가마귀, 첫째 및 둘째 그들의 셋째와 함께 그들에게 화가 미칠진저. 이제는 넘치는 류트 악기, 이제는 달시머, 그리하여 우리가 페달을 누를 때(부드럽게!) 그대의 이름을 골라내고 모음母音을 더하기 위해. (이 책, 359.31-360.6)* (이하 경야 經夜**).

* 여기 역문의 페이지와 글줄은 페이버 앤드 페이버(Faber and Faber)(런던) 출판사의 1939년 피네간의 경야의 원판본(세계 유일의)의 페이지를 그대로 따랐는데, 이는 독자는 물론 원본과 역본을 대조하는 연구자의 편의 도모를 위한 배려이다. (위 책, 역자 서문, p.28)

** 우리말로는 밤샘의 개념이 wake와 가장 가깝기는 해도, 우리 풍습과 서양 풍습이 1:1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므로, 경야(經夜)라는 한자말을 쓰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역자의 선택이라고 본다.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또는 가장 번역이 어려운) 문학작품이라고 할만한, 제임스의 조이스의 이 소위 Black Book은 세계적으로 번역본이 불어본, 독어본, 일어본 3종밖에 없었는데, 2002년 위 책이 나옴으로써 우리도 4번째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위 글의 추천사 및 서문). 노학자(老學者)의 반세기에 걸친 그야말로 필생의 노작(勞作)에 대해, 아직 율리시스도 잘 모르는 비전문가인 아마추어가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인 줄은 잘 알지만, 작품의 난이성과 연관하여 언급하거니와, 우리에게 외국문학은 결코 외국문학이 아니요, 원전은 우리의 자국문학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 역자의 노력은 보통의 독자들을 위한 가능한 한의 보편화를 위한 것이다(위 책 작품 소개, p.652)에 힘입어 진짜 보통 독자 입장에서 서평을 쓴다.

* 5년이 지난 지금은 이태리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헝가리어 등 다른 언어 번역본이 추가된다.

 

 

위의 번역문에 해당하는 원문의 꼭지를 보자.

 

 

We are now diffusing among our lovers of this sequence (to you! to you!) the dewfolded song of the naughtingels (Alys! Alysaloe!) from their sheltered positions, in rosescenery haydyng, on the heather side of waldalure, Mount Saint Johns, Jinnyland, whither our allies winged by duskfoil from Mooreparque, swift sanctuary seeking, after Sunsink gang (Oiboe! Hitherzither! Almost dotty! I must dash!) to pour their peace in partial (floflo floreflorence), sweetishsad lightandgayle, twittwin twosingwoolow. Let everie sound of a pitch keep steel in resonance, jemcrow, jackdaw, prime and secund with their terce that whoe betwides them, now full theorbe, now dulcifair, and when we press of pedal (sof!) pick out and vowelise your name. (359.31-360.6)*

* Finnegans Wake(이하 Wake)는 1939년 런던 Faber and Faber에서 출판된 이래 재편집된 적이 없어, 그 이후 모든 판본의 페이지 및 줄이 원래 책과 똑 같다. 그래야만 연구자들이 서로 같은 곳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표시는 359페이지 31행부터, 360페이지 6행에 걸친 텍스트라는 뜻이다. 필자의 인용은, 위 Faber and Faber (London)의 1939년본과 동시에 미국에서 나온 Viking 판을, 1999년 다시 찍은 Penguin판에서 나왔다.

 

 

위의 두 단락 각각의 의미는 고사하고라도, 그들 둘 사이의 필연적인 대응성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필자 같은 범부(凡夫)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더구나 역자가 연구자들을 위해 한국어번역판을 원본과 페이지, 줄까지 그대로 맞춘 것을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이 부분은 뒤에 다시 언급하겠다).

 

 

여기서 다음 해설(guide)을 한번 보자. 좀 길기는 해도 이 서평의 논리상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 독자들이 모인 독서모임 장면을 생생하게 그리는 방법으로 경야를 엿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편안히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Derek Attridge*, Reading Joyce, in Derek Attridg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James Joyce, 2nd edition 3rd print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p.10-17)

* 데렉 애트리지는 영국 요크대학(the University of York)의 영어교수로 유명한 조이스 학자이다. 번역은 필자가 직접 한 것이며, 괄호 속 해설에 필자 표시가 있는 것은 필자가 단 것이고, 표시가 없는 나머지 괄호 안 설명은 원래 있는 것이다.

 

 

경야를 꼭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일군(一群)의 독자들이 있어, 다른 부분보다 다중(多重)의 의미가 덜 빼꼭 찬 부분부터 읽기로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자원해서 위의 부분을 큰 소리로 읽는다. 그러면 반응은, 계속되는 명백히 말도 안되는 소리에 대한 썰렁함과 아무리 우습든 일말의 센스가 보인다는 데 대한 낄낄거림이 섞인 것이리라. 괄호와 현란한 수식에 의해 방해를 받기는 하지만, 구문의 문법적 뼈대는 아주 단단해서, 1인칭 복수(we)의 화자(話者)가 2인칭 청자(聽者)에게 무언가를 선언하며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면, 이해를 위한 발판이 확보된 것이다. We are now diffusingthesongs of the naughtingalesfrom their sheltered positionswhither our allies wingedto pour their peaceLet everie sound of a pitch keep stilland when we press of pedalpick out and vowelise your name(우리는 퍼뜨리고 있다나이팅게일의 노래를그들의 보호된 위치로부터그곳에서는 우리 동맹들이 날아올랐다그들의 평화를 쏟아 붓기 위해한 음조의 모든 소리를 조용하게 하라그리고 우리가 페달을 밟을 때골라내서 네 이름을 말하라).구문의 안정성경야의 특징이며, 단락의 의미를 풀어냄에 있어서, 이 풍부한 말 잔치가 매달려 있는 뼈대의 구조를 추적하는 것을 종종 도와준다.

 

이 독서그룹의 멤버들이 다음으로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서로 관련된 용어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며, 그 중 어떤 것들은 말장난(pun)과 합성어(portmanteau)에 반쯤 숨겨져 있다. 이들 집합 중 가장 뚜렷한 것은 와 관련이 있다. 모든 이들이 naughtingelsnightingales로 들었고, 텍스트를 보지 않고 듣기만 한 사람은 lightandgayle에서도 똑 같은 단어를 들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경야를 읽어줄 때는 책을 내려놓은 것이 종종 도움이 되는데, 시각적으로 모습을 그리다 보면, 청각적인 울림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서에 이어, 이탈리아어를 아는 한 회원은 이상한 단어 twosingwoolow가 이탈리아어 usignolo를 잘못 발음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역시 nightingale이 된다. 이 집합에, winged(날아올랐다), swift(칼새), bird sanctuary(조수 보호구역)의 의미인 sanctuary(금렵구), crow(까마귀), jackdaw(갈가마귀), 이런 단어를 덧붙이는 데는 암호 해독이 필요 없으리라. 또 누군가가 Hitherzither이란 아마도 칼새 같은 새들이 여기저기(hither-and-thither) 비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 어쨌든 독서그룹은, 새들이 내는 소리에 중점이 주어져있다는 사실과, 많은 반복어구들이 새들의 울음소리에 대한 전통적인 표현을 생각나게 한다는데 동의한다. 즉, to you! to you!to whit!(짹짹 새소리 필자) to whoo(부엉이 같은 후우우 울음 소리 필자)!를 반영하는데, 이 사실은 나이팅게일에 더해서 또 다른 밤새인 부엉이의 존재를 나타낸다. 그리고 twittwin짹짹거리는(twittering) 새 울음을 암시한다. 다른 구절도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Alys! Alysaloe!floflo floreflorence가 그것들이다. 누군가 이 단락이 songtwosingwoolow에 숨겨진 sing 양쪽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나이팅게일의 울음에는 가끔 pour(to flow in a stream. 쉴새 없이 떠들다, 노래하다)라는 표현이 쓰인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제 구문의 구조로부터 점점 의미 형태가 갖춰지고 있지만, 그 의미는 영어문법의 어순에 의해 제한되는 가능성을 훨씬 넘치기 시작한다. 이해 불가능한 것들이 갑자기 의미를 드러내고, 모순되는 것들이 어떤 패턴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마다, 이 발견들은 뭔가 드러내주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만족을 주는가 하면 괜히 들뜨게 만들기도 한다.

 

잠시 쉰 뒤, 누군가 Florence가 또 다른 Nightingale이라는 걸 알아차리고(유명한 간호사 Florence Nightingale - 필자), 곧 이어 19세기의 유명한 소프라노 Jenny Lind(여기서는 분명히 지명을 나타내는 Jinnyland로 바뀌어져 있다)가 영국에서 스웨덴의 나이팅게일(the Swedish Nightingale)(여기서는 sweetishsad lightandgayle로 되었다)로 불렸다는 걸 기억한다. 신화학에 관심을 가진 다른 멤버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지만 동의를 얻지 못한다 - 혹시 terce Tereus가 Philomela를 강간한 것(그리스 신화에서 나쁜 형부 Tereus, 언니 Procne, 동생 Philomela를 둘러싼 치정 및 복수극 필자)과 관련이 없는지? 필로멜라 역시 나이팅게일로 변했다. 새 울음에 관련된 집합은 인간의 노래로, 여자에게로, 아마도 육체적 욕망까지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lovers, 그럼 오페라와 다른 인간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 또는 성적 의미에서의 연인들이 아닌가?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해석들이 글과의 관련하에서 주장되어질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모든 가능성을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통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미묘한 성조(聲調)도, 어떤 상상된 인간의 상황도 이 모든 의미를 동시에 유효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 경야는 언어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단일한 의도와 주관성에 복종해야 한다는 믿음을 깨뜨린다.

 

이제 그룹이 인간의 노래에 주목하게 되자, 새로운 용어들의 집합이 나타난다. 한 사람이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는 rosescenary haydyng가 가장 다산(多産)한 오페라 작곡가 중 두 사람인 로시니(Rossini)와 하이든(Haydn)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twosingwoolow가 연인의 슬픔을 나타내는 노래인 sing willow(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 옛날 버드나뭇가지나 고리를 가슴에 달고 그 뜻을 나타냈다고 한다 - 엣센스 영한사전. 필자)의 버전을 포함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며, 오셀로(Othello: 세익스피어의 희곡 필자)에서 데스디모나(Desdemona)의 Willow Song, 다시 새들로 돌아가서, 미카도(The Micado: 영국의 작곡가 아서 S. 설리번(Arthur S. Sullivan)의 오페라- 필자)에서 자살하는 곤줄박이류 새에 관한 코코(Ko-Ko)의 노래를 인용한다. 세 번째 사람은 서구 교회(로마 카톨릭 교회 필자)의 전통에 익숙한데, prime(아침기도)terce(3시경)가 각각 성무일도(聖務日禱) 중 처음 두 기도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는 또 vowelisevocalise와 비슷하여 영어동사로서는 sing의 뜻을, 불어의 명사로서는 노래하는 것(또는 노래연습)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인다. 토론이 계속됨에 따라, 인간의 노래에서 음악과 소리에까지 점차 보편적으로 확대되어 간다. pitch(음조)resonance(공명)은 분명히 이 집합에 속하며, 사전을 찾아본 누군가가 sequence에는 곡조의 반복 외에도 서구 교회의 영창 또는 악곡의 뜻이 있다고 알려준다. 또 partials에는 화음의 고성부(또는 부분음部分音)라는 뜻이 있다는 것도. 이들은 곧, 글에 있는 약간 낯선 오케스트라 악기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gang에는 gong(벨, 공)이, Oiboe에는 oboe(오보에)가, Hitherzither에는 zither(치터: 기타 비슷한 현악기 필자), theorbe에는 theorbo(일종의 류트)(중세 현악기 - 필자)가, dulcifer에는 덜시머(현을 때려 소리를 내는 악기로 피아노의 원형 필자)가, 그리고 암시적으로 pedal(sof!)에는 피아노가 들어 있다. 그리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다른 종류의 조직적 소리가 Almost dotty! I must dash!에 이해 드러나는데, 바로 모스부호이다. (모스부호는 점(dot. 단점短點)과 대시(dash. 선 또는 長點)로 이루어져 있다 필자).

 

다음으로 (sexuality) 문제가 다루어져, 이것 역시 일련의 연결된 의미로 이끄는지 볼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들어온다. 여러 멤버가 naughtingelsnightingales뿐만 아니라, naughty girls(행실 나쁜 계집애들)(또는 영국 상류층 발음을 빌면 gels) (『더블린 사람들』의 “하숙집(The Boarding House)”에서, 딸 폴리 무니는 이렇게 노래한다. “I’m a naughty girl. You needn’t sham: You know I am.” – 필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같이 지적한다. 또 다른 의견도 나오는데, waldalure에는 allure(유혹하다)는 단어가 숨어 있고(그리고 성적 유혹이 공중에 떠 있다면, 아마 lure(미끼))(낚시 장면을 상상하라 필자), twosingwoolow에는 woo(구애, 구혼)이 있다. 여자 이름은 매력과 욕망의 내포(connotation)을 위한 그럴듯한 보고(寶庫)가 아닌가? 그래서 그룹이 Alys! Alysaloe!에 주목하는 것도 당연한데, 이는 allies(동맹국)에 의해 뒷받침되어, Alice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 때 누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의 작가(루이스 캐럴. Lewis Carroll - 필자)가 어린 소녀들과 놀아주고 사진 찍어주기를 즐겼다는 걸 기억한다(바로 이 사람이 portmanteau word(합성어)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러자 극장 쪽에 밝은 사람이 1930년대 무대 스타 중에 Alice Delysio가 있었고, Gaby Delys라는 프랑스의 현장 미술가도 있었다고 전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한 회의주의적 참가자가 어떻게 조이스가 이 모든 의미를 텍스트 속에 집어넣는 것이 가능했겠느냐?고 반박하자, 두 개의 대응이 나온다. 하나는, 우리는 어떤 특정한 (단어의) 경우라도 조이스가 그렇게 의도적으로 집어넣진 않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사 우리가 (조이스가 그런 의도로 이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 하드라도 달라질 것은 없는데, 왜냐하면 어쨌든 조이스는 그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자아내는 힘을 가진 텍스트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그룹의 한 멤버는 격리(seclusion)(특히 자연환경 속에서의)와 어둠의 의미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나이팅게일 집합과 성적인 타락 둘 다에 관련이 되는 것이다. Dewfolded는 밤과 둘러 막는 것 양쪽을 의미한다(dew = 밤에 내리는 이슬, fold = 접다, 포개다; 둘러싸다 필자). sheltered position(보호된 위치)은 그대로 알 수 있는 말이다. rosescenery haydyng은 이미 앞에서 발견한 작곡가 이름과 더불어 장미정원에 숨겨졌다는 느낌(hiding in rose scene 필자)을 준다. 그리고 other은 적절하게 heather(히스꽃)으로 바뀌어져 있다(on the heather side of가 on the other side of라는 영어표현에서 왔다는 말 필자). 독일어를 할 줄 하는 사람이 의 독일어인 waldwaldalure에 있다고 하고,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은 duskfoil이 어둠이 내리는 것(the fall of darkness) ( = dusk 어둠+ foil 얇은 판, 막, 박箔 필자)과 잎들(leaves = 프랑스어 feuilles)을 결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Mooreparque에는 분명히 park(공원, 보호구역, 숲 속의 평지 필자)가 있으며, 그 뒤에는 앞서 말한 sanctuary가 따른다. 그리고 일몰(sunset), 즉 Sunsink가 있으며, Sunsink gang에는 똑 같은 현상을 독일어로 표현한 Sonnenuntergang이 메아리치고 있다. 어둠에 관한 제안은 그룹의 관심을 어둠(blackness)을 나타내는 단어로 돌린다. 즉, Moor(오셀로와의 연상작용을 다시 일으키는) (오셀로가 바로 베니스의 무어인(흑인)이 아닌가? 필자), pitch(피치, 역청. 콜타르 비슷한 것), crow(까마귀), jackdaw(갈가마귀)뿐만 아니라 Jim Crow(19세기 중반 미국에서 흑인 얼굴로 노래 부르던 코미디언에서 유래되어, 흑인 차별법안을 Jim Crow laws라 함. Jump Jim Crow, or Jim Cuff. 필자)에 대한 암시도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는 20세기의 인종 차별주의와 관련이 되기는 해도, 19세기 초 (미국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부르던 흑인 노래였다. 그러자 그룹은 이 사실이 gang(갱단, 무리), pick(목화 따기), (whoe에 있는) hoe(쟁기)같은 단어들과 관련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물론 일단 단서가 포착된 이상, 그럴 수도 있다. 이 발견이 그냥 즐기고 끝나는 막다른 골목인지, 또 다른 의미를 드러내는지는 책을 계속 읽어봐야만 한다. 때로는 이와 같이 작은 단서가 수년간 잠자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이것이 장(chapter) 또는 책 전체를 통해 흐르고 있는 연결된 용어 패턴의 부분이라는 걸 문득 깨닫기도 한다.

 

이때 누군가 말한다. 나는 자꾸 이 글이 전투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지적할 수 있는 예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에 관한 것뿐이지만. 그녀는 크림전쟁에서 유명해졌잖아. 다른 사람들이 거든다, “‘peace(평화)라는 단어가 저기 보여. 그리고 allies란 동맹국이란 뜻이고. 앞에서 나왔던 모스부호는 어떻고? 군사 신호를 말하잖아. 이 새로운 발견에 주의하여, 전체가 텍스트를 몇 분간 검토할 때, 새로운 빛이 문득 보인다 이런…’waldalure는 워털루(Waterloo)가 틀림없어! 그러자 그 전투에 관해 좀 아는 친구가 이어받는다. 맞아, 워털루가 틀림없어. 왜냐하면, Mount Saint Johns Mont St Jean으로, 그 전쟁터 가까이 있던 마을이름이며, 영국군들이 이 이름을 사용했거든. 그들은 나중에 거기다가 워털루 기념관까지 세웠거든. 그리고 이제야 allies라는 단어의 중첩된 뜻을 알겠네. 유럽대륙에서는 이 워털루 전투를 그 가까이 있던 다른 마을 이름인 La Belle Alliance라는 이름으로 부르거든. 누군가가 덧붙인다, 아까 그 글을 읽을 때 말이야, sound of a pitch가 내 귀에는 son of a bitch로 들렸는데,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몰랐거든. 근데 지금 보면, 그 용어는 군대 연병장에서는 자주 들을 수 있는 그런 말이지. 그러면 pick out and vowelise your name우렁차게 관등성명을 밝혀라는 명령으로 볼 수도 있잖아.

 

그룹 중 한 멤버에 의해 다른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행위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그런 특정한 장소가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는 데 모두 동의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단락은 수많은 국가를 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이스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던 독자들은 아일랜드, 특히 더블린이 항상 조이스 글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율리시스를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이 Dunsink Time(Dunsink 관측소에서 정해지는 더블린 지방시각)에 관한 레오폴드 블룸의 명상을 기억하고, 그 모습이 Sunsink gang에서 어렴풋이 드러난다고 한다. 누군가 시간secund(식물의 잎이나 꽃이 줄기의 한쪽에서만 생기는이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시간의 단위인 second(초秒) 또는 두 번째란 의미와 관련 있다. 스페인어로는 segundo 필자)에서도 보이고, 정시과(定時課: canonical hours)인 primeterce에도 있다고 덧붙인다. 또 다른 아일랜드와의 연관이 swift에서 지적되는데, 그러자 이 swift는 칼새도 아니고, 속도를 나타내는 형용사(빠른, 신속한 필자)도 아니며, 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Jonathan Swift(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필자)가 된다. 백과사전은 한 때 스위프트가 일했던 영국의 장원 이름이 Moor Park였다는 정보를 전해 준다. 그룹은 스위프트가 almost dotty(살짝 돈)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스위프트는 말년에 정신병을 앓았다 필자).

 

dewfolded라는 단어 역시 코멘트를 불러 일으킨다. 앞에서 dewfolded가 각각 단락의 주제와 관련되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을 했지만, 이 두 단어를 합친 합성어는 아직 설명이 필요하다. 마치 dewfoldedtwofold와 연관되는 느낌을 주고, 이는 독서그룹이 따를 수 있는 또 다른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단락에서 감탄문(새소리를 상기시키는 것?)은 모두 쌍으로 되어있다. to you! to you!, Alys! Alysaloe!, Oiboe! Hitherzither!, Almost dotty! I must dash!, 그리고 floflofloraflorence에도 중복이 있다. 또 twittwin은 중복이 될 뿐만 아니라 twin(쌍둥이)라는 말까지 포함하고, 바로 뒤에 two도 따라온다. 이 단락에는 둘 다 나이팅게일인 두 명의 유명한 여성인물이 나온다. 그러나, 비록 betwidesbetweenbeside 사이에서 왔다갔다할 뿐만 아니라, -twi-에서 아직 이중성을 암시함에도 불구하고, prime and secund with their terce that whoe betwides them에는 분명히 삼중(三重)의 원칙이 작용한다. 두개인 것들(twos)하나의 셋(a three)의 패턴은 중요하게 보이지만, 이 독서그룹으로서는 이 패턴이 책의 다른 부분을 가리키지 않는 한 더 이상 밀고 나갈 밑천이 없다.

 

이 단락은 이제 상호연관된 의미들로 빛나고 있지만, 합성어 중에서 설명이 안된 것도 여럿 있다. 어떤 단어에서 설명이 되지 않는 요소가 남아있는 한 더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변형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끝난 것이 아니다). 곤혹스런 합성어로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을 몇 개 찾아낸 뒤엔, 왜곡/변형 그 자체도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는 참 쉽다. 예를 들어, Mooreparque에서 Moor Park를 찾아낸 후에도, 왜 이런 전환을 거쳤는지를 여전히 질문해야만 하는 것이다. parque의 철자는, 워털루를 다루는 부분과 명백한 연관이 되어 프랑스를 떠올리게 하지만, 불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또, 그 말의 의미인 fate(운명)whoe betwides them에 있는 woe betide them(그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라는 경고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Mooree가 있는 것이 아마도 아일랜드의 시인 Thomas Moore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낸다. 이 의견은 full theorbe, now dulcifer에서 무어의 시 제목인 Fill the Bumper Fair(당당히 잔을 가득 채워라)를 발견하자, 받아들여진다. (이제 우리는 두 나이팅게일 외에도 두 명의 아일랜드 시인을 찾았다.) 그룹은 아직까지도 Oiboe(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마도 의견이 있을 것이다), everie, sof!의 철자에 대한 설명을 찾지 못했다. 또 in partialimpartial인지, in resonancein residence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한편 jemcrowjemmy(영국에서는 jimmy라고 쓰며, 짧은 쇠지레, 즉 a short crowbar를 말한다 필자)와 crowbar(작업 현장에서나 도둑이 쓰는 큰 쇠지레), 그리고 단락 끝쯤에 나오는 pick(곡괭이, 쪼는 기구)로부터 연장(도구)의 집합도 생각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정이다.

 

그러나 이제 잠시 멈추고 다시 정리해보자. 이 단락은 어두운 숲 속 은신처로부터 들리는 나이팅게일 울음을 묘사하는 화자의 목소리를 제시한다. 우리 독자(또는 청자聽者)들은 조용히 할 것을, 그리고는 노래에 같이 참여할 것을 요구받는다. 분명히 이 내용 자체로는 더블린 사람들과 달리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이 목소리의 위로는 중첩된 다른 의미들이 가득 차 있는데, 우리는 이를, 일직선적인 단순성을 가진 보통 말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그 텍스트의 하나의 요소로 취급해야만 한다. (아마도 두 마리의) 나이팅게일은 박명(薄明), 밤, 그리고 어둠을 연상시키는 다른 새들 부엉이, 칼새, 까마귀, 갈가마귀 과 관련이 있고, 또 이를 넘어 여성들과도 관련이 있는데, 특히 노래하는 여성, 전통적으로 성적 유혹을 표상하는 여성(그들은 아마도 오셀로의 여주인공 데스디모나처럼 죄가 없겠지만)과 연결된다. 이 모든 것들이 국제적인 맥락에서 일어나는데, 사용된 복잡한 언어와 지리적 언급은 우리를 스웨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워털루), 영국, 미국 남부, 크림반도로 안내한다. 이 자유시장 개념과 많은 종류의 음악에 대한 주의 환기는 국제간 협력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전쟁의 소리, 노예제의 암시, 최후의 심판(doom)에 대한 경고 역시 탐지할 수 있다. 성적인 차이(sexual difference)가 국가간의 차이 위에 중첩되고 있으며, 군사적 차이 위에 덧씌워지기도 한다. (또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경야에서는 무엇이 문자 그대로이고, 무엇이 비유인지 확실하지 않다.)

 

(중략)

 

(이 글이 나오는 전체 74페이지에 달하는 장면이 어딘지 모를 더블린 바에서 TV와 라디오 방송과 떠들썩한 잡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 글이 라디오 방송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모스부호가 이를 암시하며, broadcast(방송)을 프랑스에서는 diffusion이란 용어를 쓴다는 것도 그렇다. 1930년대 영국 BBC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가 나이팅게일 노래 소리를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이 드러난다.

 

(이하 생략)

 

 

긴 인용이었지만, 어떻게 감이 오시는지(Does that ring a bell?). 애트리지는 이 부분이 그리 복잡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했는데, 그럼 진짜 어려운 부분은 어떨지 과연 짐작이 가시는지? 이 소설이 2차 세계대전 전야인 1939년에 완성되었다는 것, 그가 당시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그래서 조이스 가족이 전쟁을 피해 남부 프랑스로 스위스로 옮겨 다니게 된다)을 고려하여 위의 해설에 한 가지 덧붙이면, 필자 귀에는 Sunsink gang에서 해를 가라앉힌, 세상을 어둡게 만든, 암흑의 독일 나찌스 친위대 SS 무리, Hitherzither! Almost dotty! I must dash!에서 히틀러! 저 미친 놈! 해치워버려야지!라는 소리가 들린다.

 

 

1939년 이 소설이 발표되자 평단이나 독자들의 반응은 무관심이었다고 한다. 누가 이렇게 골치 아픈, 알 수 없는 책에 신경을 쓰겠는가? 2차대전이 막바지인 5년 뒤, 1944년 미국의 (당시 40세의) 젊은 신화학자(神話學者) 조세프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헨리 로빈슨(Henry Morton Robinson)과 함께 첫 번째 가이드를 내놓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도 이 책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A Skeleton(해골) Key to Finnegans Wake: Unlocking James Joyces Masterwork라는 책이다. 집단의 꿈이라는 신화와 중세문학을 연구한 사람이 처음으로 이 암호를 해독한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Tavern Brawl(술집에서의 말다툼)이란 부제가 붙은 이 장면을 캠벨의 일상적인 말로 옮겨보자.

 

Radio Announcement:

   You have just been listening to an excerpt from (중략)

Attention: Stand at!! Ease!!! [The three soldiers.] (attention: 차려, stand at ease 쉬어. 둘 다 군대에서 쓰는 구령이다 필자)

 

   We are now broadcasting to our lovers of this sequence, the twofold song of the nightingales [the Two Girls], from their sheltered positions, hiding in rose-scenery on the hither side of the alluring grove. Silence all! Let every sound keep still; and when we press the pedal pick out and vowelize your name.

(캠벨, 위의 책, New World Library, 2005.10, p.231)

 

 

조이스는 경야율리시스에 비해서도 훨씬 난해하다는 불평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이 암난(暗難이겠지요? 필자)스럽다고 한다. 그들은 그걸 율리시스와 비교한다. 그러나 율리시스의 행동은 대낮에 주로 일어났었다. 나의 새 책의 행동은 주로 밤에 일어난다. 밤에는 만사가 불명확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답했다고 한다. (번역서, 작품 소개, p.631). 해설의 그 장황한 더듬거림도 밤중 꿈 속 잠깐 사이에 스쳐간 생각을 어떡하든 되살려보려는 안간힘에 불과하다고 보면, 왜 이 책의 언어를, 율리시스에서 시도한 의식의 흐름(flow of consciousness)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무의식(또는 잠재의식)의 흐름이며 꿈의 언어(language of dream)(앞의 책, pp.629-630)이라 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역자의 번역 및 원문(각각 10줄에 불과)과 그 아래 해설을 비교해 보면, 과연 언어와 번역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언어와 번역의 관계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책이 특별히 예외적인 만큼, 그에 대한 답을 일반화시킬 생각은 없으며, 이 책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해도 좋다. 애트리지의 해설처럼 구구절절 늘어놓으면 그것을 번역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원문이나 번역문 또는 캠벨의 해골만 남은 1차 암호해독문처럼 던져 놓으면, 도대체 어떤 보통 독자(특별해 봤자 마찬가지리라)가 이를 소화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좋은 번역의 기본 조건은 독자들이(그들이 누구이든)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또 최대한 원본을 반영해야 하며, 형식과 내용이 물론 조화를 이루면 최상이겠지만, 부득이 한 충돌의 경우에는 형식이 내용에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 서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원본과 페이지, 줄 수를 맞추기 위해 역자는 아마도 끔찍한 노력을 했을 것이며, 이로부터 혹간 형식을 위해 내용을 희생하기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역자의 말로 미루어봐도 억측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역자는 하루 평균 7~8시간을 매일 원전原典의 반 쪽 또는 한 쪽, 심지어 한 단락을, 페이지당 100회 이상 각종 사전들을 뒤져야 하고, 수많은 참고서들을 섭렵涉獵해야 하는, 때로는 분통 터지는 노동은 율리시스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성싶었다기나긴 세월 동안 참으로 인고忍苦에 다름 아니었으며, 영상靈想이 떠오르면 밤중에도 발작적으로 일어나야 했던 반半광증, 그것은 정녕코 수도승修道僧의 단말마적斷末魔的 고행과도 같은 경험이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역자 서문, p.27)

 

역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조이스 역시 경제적 어려움과 전쟁의 음울한 그림자 속에, 녹내장(필자는 젊은 시절 아니 어린 시절부터의 방탕으로 인한 매독梅毒(syphilis)이 원인이라고 보는 입장에 기운다)으로 인한 10여 차례의 눈수술로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에서(이게 이 책이 흐릿한 책이 된 원인은 아닐까?), 딸의 정신병 발작에 따른 괴로움 속에서도, 무려 17년에 걸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니(평균 1페이지를 쓰는데 9일 걸렸고, 방금 우리가 본 단락 하나 쓰는데 3일이 걸렸다고 한다. Derek Attridge, 위의 글, pp.18-19), 우리가 이를 접근조차 하기 힘들다든지, 또는 암난하지 못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리라.

 

개그맨처럼 언어에 재치가 있는 사람이면 말을 다룰 때 언어에 내재한 의미의 다중성(多重星)을 이용하여 중의성(重義性: ambiguity)을 지닌 단편적인 말장난(pun)을 할 수는 있겠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대작 소설 전체를 다의적多義的(polysemantic), 다성적多聲的(polyphonic), 60여 개가 넘는 다언어적多言語的(polylingual)인 언어(이를 역자는 경야어라 부른다, 역자 서문, p.25)로, 거기다가 온갖 인류의 꿈, 신화를 다져 넣어 쓸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필자도 위의 해설을 보기 전엔 조이스의 성취에 대해 반신반의했었다. 언어라는 매체媒體(medium)가 이렇게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다중의 뜻을 실을 수 있다니! 수많은 결(channel)을 갖추고 그 결마다 다른 언어와 뜻을 실을 수 있는 조이스의 언어는 요즘 말로 하면 광대역廣帶域(broadband)이자 음성다중방송에 틀림없겠다. 이는 물론 영어와 나아가서 언어의 장인匠人(master)이자, 치열한 문학정신을 가진 천재(天才) 조이스만이 가능했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자의 우공이산(寓公移山)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의미와 한계에 관련된 보통 독자로서의 아쉬움은 해소되지 않는다. 원본이나 해설서 없이 이 번역본만으로 과연 경야원본만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필자의 대답은 아무리 애를 써봐도 안된다는 것이다. 짤막한 위의 원본 해설 예에서 우리가 실제 경험했던, 수많은 언어들과, 그 의미의 중첩, 그 울리는 음성의 반향을 우리가 번역본에서도 대등하게 맛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주관적인 생각 또는 자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역자로서 최선의 등가물(等價物)을 찾았다 말을 의심하자는 것은 아니다.

 

 

잠깐 앞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보자. 번역본이 원본의 뜻을 해설만큼 잘 전해주던가? 혹시라도, 번역본이 오히려 원본의 이해에 지장을 준 것은 아닌가? 이 단락에 대한 여러 해설을 이미 본 입장에서 쉽게 말해, 원문이 쉬웠는가, 번역본이 쉬웠는가? 이에 대한 대답도 딱 정해져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독자의 영어/언어(우리말, 한자) 이해도나 지식은 천차만별일 테니까. 물론 이것도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필자에게는 원본-해설 쪽이, 번역본-원본-해설을 거치는 쪽보다 훨씬 쉬웠다. 번역본-해설의 직접 연결은 (그 missing link로 인해) 필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의 지난한 것으로 보인다. 번역을 통해 한 꺼풀 벗겨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겹이 덧씌워진다면, 도대체 번역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역자도 원저의 시청각성, 음의音義의 동시적 효과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주의했고(번역본, 작품 소개, pp.641-642), 또 나름대로 성과가 있다는 걸 우리 역시 직접 볼 수 있지만, 이 번역본의 울림이 원본의 울림과 동일 또는 등가(等價)라고 한다면 이 역시 필자처럼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겠는가? 산을 옮긴 결과물은 역시 산이로되, 원래 그 산이 아니더라고 하면 비유가 될지 모르겠다. 더구나 한자를 점점 멀리하는 사회풍조인지라 세월이 지난 후 젊은 사람들이 이 번역본을 보면, 그 자체로 원본만큼 아득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아쉬움은 이 책이 another, low-profile Wake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필자의 생각이 기우(杞憂)가 아닌 것이, 이 번역본으로부터 5년 후의 역자는 이런 말을 한다.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김종건 옮김, 3정 최종개정판, 생각의 나무, 2007. 3).

문체와 기법, 언어의 모방은 이질적 문학 작품의 번역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숙제. (위의 책, p.11)

역문의 가독성(可讀性)을 위해 언어의 다기적(多岐的) 변덕성(polymorphous perversity)을 가끔 어쩔 수 없이 해체하기는 했다 이것이 작품의 산문성을 넓혀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것은 사실이나, 텍스트의 본질 또는 정신을 망가뜨리기 일쑤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위의 책, p.11)

 번역상, 복잡한 내용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형식을 파괴하는 일은, 조이스 작품에 관한 한 결코 이상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위의 책 p.12)

조이스는 언어의 대가이며, 이 언어적 주술의 아수라장을 번역하는 역자라면 이런 경험을 토대로 『율리시스』에도 그와 대등한 언어유희의 묘미와 취지를 살리고자 애쓰리라.” (위의 책, p.12)

한글과 한자의 응축을 통한 이런 언어감각이 당분간은 생소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는 친밀감을 통해 작품을 한층 고양시킬 것이요, 그 현란한 (言) 맛은 이내 고전이 되고 역사가 될 것이다. (위의 책, p.13)

 

위의 말들은 앞서 말한 필자의 언어와 번역에 대한 생각과는 정반대 입장으로 보인다. 이질적(異質的)인 문학의 번역에서 내용이 아니고 형식이 우선이 될 수 있을까? 이질적이라는 의미는 뭘까? 성질이 다르다는 것은 내용과 형식이 다르다는 것이리라. 내용을 따르자니 형식이 울고, 형식을 따르자니 내용이 울 판인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떤 번역물의 독자가 전적으로 폐쇄적인 일군(一群)의 전문독자가 아닌 바에야, 5년 전 말대로 어떻게 보통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계속 염려해야 하는 것이 번역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물음이다.

 

필자가 보건대, 역자가 정말 본보기가 되는 존경할만한 학자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부득이 내용까지 희생한 형식미의 전달에 있어서도 그만큼 뛰어난, 예술가로서의 번역가로서도 그런가? 다시 말해 역자의 언어유희는 성공하고 있는가? 그런데 과연 그것이 역자의 언어유희인가? 조이스 언어유희의 번역인가? 역자가 나름으로 정의한 번역의 의미는 정당한가? 라는 물음에 대한 보통 독자로서 필자의 답은 회의적이며(정당한 문학사적 평가는 필자의 능력 한참 밖이다), 괴물(monster) 번역이 아직은 우리 보통 독자에게는 과분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는 보통 독자의 개별 사정이 아니라, 우리말, 우리 번역, 우리 문학의 역사와 내용, 기법, 나아가 우리 문화와 지식 수준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역시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 이 책의 70년이 넘는 장구한 번역 역사에도 불구하고 1991년부터 1993년 사이 처음으로 완간된 야냐제 나오키의 번역본이, 조이스의 언어실험을 그대로 도입하여 해체하고 합성한 일본어를 만들어 번역한데다가, 문학적 격조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고 하여 일본 영문학계의 지지를 받았지만, 일반 독자들은 그 난해함(esoteric nature)에 고개를 돌리게 되고*, 2004년 6월 미야타 교코라는 여류 번역가에 의해서 원본의 절반 분량인 축약번역본(그런데 주석까지 포함하면 흥미롭게도 원래 책과 같은 분량인 628페이지라고 한다) 이 나왔는데, 이는 신조어 없이 평이한 일본어를 사용 가독성을 높이고 어려운 설명은 각주로 처리했다는 데서, 일반 독자의 접근이 쉽고, 반응이 좋다고 한다. 아래 글에 우리나라의 구세대 영문학자라고 할 수 있는 나영균 교수(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나오키의 번역을 극찬했다는 내용과, 신세대 영문학자라고 할 수 있는 전은경 교수(숭실대)는 교코의 방식이 일반독자에게 접근 가능한 방식이라고 호감을 표시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도, 필자의 지금 생각과도 비슷한 간극(間隙)을 보여준다.

* Ito Eishiro: he even translated Joyce's style into Japanese. Yanase's translation is a novel in its own right and a great masterpiece of Japanese literature. However, his translation is too esoteric for the general reader: only a very limited number of academic and patient readers could finish it.

from Two Japanese Translations of Finnegans Wake Compared:Yanase (1991-1993) and Miyata (2004)

- 이 논문은 2004년 11월 한국제임스조이스학회가 서울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되고, 위 학회가 발간하는 James Joyce Journal(JJJ) 2004년 12월호에 실렸다고 되어 있는데, 위 학회 홈페이지(www.joycesociety.or.kr)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자료를 보면, 제목에는 나오는데 내용은 빠져있다(pp.117-162 missing). 이는 아마도 판권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내용은 아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것이며, 판권이 있는 자료(copyrighted material)이다. 지금 일어번역과 관련된 내용은 다 이 자료를 참고하였다. 필자는 일어 능력이 없다.

(http://p-www.iwate-pu.ac.jp/~acro-ito/Joycean_Essays/FW_2JapTranslations.html)

 

 

필자가 이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변죽만 울리고 있는 형편에(사실 다른 방법이 없기도 했다) 서평을 쓰는 만용을 부리는 것은, 필자가 발견한 이 책의 비밀을 여는 키 중의 하나를(물론 키는 하나가 아니라 무수할 것이다)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이며, 이 책과 같이 나온 "김종건, 피네간의 경야 안내, 범우사, 2002. 3"을 다시 사야 하는 고민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일반 독자를 위한 미야타 교코 같은 번역자가 나올 수는 없나 기대를 가져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을 능력도 없고 번역에 대한 기본적 입장마저 다른 처지에, 무슨 서평을 쓰며, 게다가 만점 평점까지 주느냐 욕할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로서는 이 큰 산을 옮긴 노교수의 정열에는 이의(異義)가 없으며, 앞으로 이 위에 연구성과가 계속해서 쌓이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관점이 다르다고 그 존재와 의의마저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더 큰 부분을 놓치기에 딱 좋은 방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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