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thirsty >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序) - 꼼꼼한 텍스트 읽기
1. “논술대비 초등학생용 율리시스”라는 책이 있다고 한다. 필자는 처음엔 “에이, 그리스 신화 오디세이의 모험(율리시스는 오디세이의 라틴 즉, 로마식 이름) 말이겠지,” 하였으나 그 책이 바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원저라는 것을 알고 기겁을 했다. 그런 책을 내놓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2. 난해하기로 소문난 조이스의 소설 중에서도 그래도 인간적(?)인 “더블린 사람들(이하 Dubliners)”를 가지고 영어공부를 시작해보자.
3.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이하 Portrait)” – “율리시스(이하 Ulysses)” – “피네간의 경야(經夜: 밤샘)(이하 Finnegans Wake)”으로 이어지는 조이스 문학의 출발점이자, 조이스나 그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이 바로 이 소설이기 때문이며,
* “미국에서 조이스 연구의 선구자인 위대한 고(故) 윌리엄 요크 틴달(William York Tindall: 1903-1981) 교수는 강연에서 모든 조이스의 작품은 하나라고 즐겨 말했다(The great late William York Tindall, who pioneered Joyce studies in this country, was fond of saying in lectures that all of Joyce's work was one work)”고 한다. 이 말을 한 월러스 그레이(Wallace Gray : 1927-2001) 교수는 틴달의 컬럼비아 대학 제자로 역시 컬럼비아에서 수십 년 조이스를 강의했던 사람이다. (Wallace Gray's Notes for James Joyce's "The Dead")
(http://www.mendele.com/WWD/WWDdead.notes.html#literally)
4. 조이스가 한 젊은 작가에게 “나로 말하자면, 항상 더블린에 대해서 쓴다. 왜냐하면, 더블린의 중심에 이를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도시들의 중심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것 안에 보편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For myself, I always write about Dublin, because if I can get to the heart of Dublin I can get to the heart of all the cities of the world. In the particular is contained the universal. (Richard Ellmann, James Joyce, revised ed., Oxford University Press Paperback, with corrections, 1983. p.505. 이 유명하지만 또 비판도 받아온 조이스 전기는 2권으로 나뉘어 국내에도 번역이 되어 있다. ‘제임스 조이스 1, 2, 민은경 옮김, 책세상, 2002. 1’)”고 했듯이,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우리 서울의 ‘마비(paralysis)’도 그 시대 더블린 못지않기 때문이고,
5. 영문학이나 (영어)언어학을 하기 이전에, 모국어 화자들은 이미 일상적으로 영어를 구사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춘 데 비해, 영어가 외국어인 우리로서는 사정이 그렇지 못하므로, 먼저 텍스트(text)의 단단한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6. 영어 자체에 대한 왈가왈부보다도 문학의 이론이나 텍스트의 숨은 의미, 기호, 상징, 시대적 배경, 사상 같은 것들은 훨씬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에 관한 것은 텍스트의 이해에 필수적으로 도움이 될 때만 언급하기로 하는데, 다시 말해, 여기서는 이 책을 텍스트 삼아 영어공부를 우선으로, 문학공부는 이에 도움이 되는 만큼만 하려는 것인데, 텍스트의 꼼꼼하고 정확한 이해가 번역과 작가 연구보다 먼저, 즉 해당 언어의 이해가 문학에 먼저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7. 전문(全文)을 해석해보는 무지막지한 방법(우리 말로 ‘막고 푼다’는 물고기 잡이 방식. 물목을 앞뒤로 막고 그 사이의 물을 몽땅 퍼낸 후 남는 물고기를 건져내는 법)이 아니라, 국내의 몇 가지 번역본을 원본과 대조해 보고, 오류나 어색한 부분을 검토하는 방법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전문번역가의 작업영역인 ‘번역’이 아니라 그냥 영어공부에 따른 ‘해석’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8. 번역작가가 원본의 텍스트를 모두 소화 흡수한 후, 그 내용을 본인의 이해도, 논리 전개, 모국어 실력, 문학적 감수성으로 다시 풀어내는 것이 ‘번역’이라면,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그냥 원본의 자구 그대로 뜻을 ‘해석’하고, 올바른 ‘주석(notes, annotations)’을 소개*하는 작업일 뿐이다. 필자는 영어학도이지 번역가가 아니다. 한편 이 주석 작업의 중요성에 관한 Gifford 교수의 말은 의미가 있으므로 소개한다. “그러나, 조이스가 그렇게 작품 속 언어의 구사에 있어서 의존했던 그 시대 더블린 특유의 언어세계가 급속도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으며, 그것이 영원히 소멸되기 전에 그들 어휘의 뉘앙스를 붙잡아두려는 노력은 시의(時宜) 적절한 중요성을 가진다(But the vernacular world of the Dublin on which Joyce so heavily depended for his vocabularies is rapidly receding out of living memory, and the effort to catch the nuances of those vocabularies before they are permanently lost is timely in its importance.” (Gifford, p.1)
* 소개: 필자의 능력이 독자적으로 주석을 달 정도도 아니지만 굳이 그런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선학(先學)들이 해놓은 일들이 많으니 비교, 종합해서 소개하겠다는 뜻이다.
9. 대학 영문과에서 자주 교재로 사용된다는 Dubliners이지만, 문학 텍스트가 아니라 영어공부 텍스트로서 대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0. 원본의 텍스트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쉽게 무료로 구할 수 있으며, 책도 외국의 유명 출판사 여러 군데서 싼 값에 나오고 있다. 조이스는 1941년 1월 13일에 사망했으므로, 벌써 사후 66년이 지났다. 저작권(estate)을 저자 사후 50년 인정하는 나라(예를 들어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우리나라 등)에서는 이미 기간이 넘었고(따라서 public domain이다), 70년을 인정하는 경우는 아직 몇 년 남았지만, 이는 저자 생전 출판된 작품들에만 해당되며, 사후 출판된 서한집 같은 것들이나 특정 연구가의 이름이 붙은 개정본, 예를 들어 Ulysses의 Gabler’s edition 같은 것들은 물론 사정이 다르다. 텍스트를 보거나 복사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는 아래 13을 참고하라.
11. 이 책은 출판의 역사가 비록 Ulysses만큼 파란만장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가 될 정도*라, 아래 책의 서문에서 브라운 교수는 “dismal chapter in publishing history (출판 역사의 음울한 장)”이라고 썼다(브라운 교수는 조이스의 모국인 아일랜드 트리니티 대학교 출신으로 현재 모교 교수). 원본의 판본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글에서 번역본과의 대조를 위한 원본으로는 필자의 편의상 아래의 책을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인 영어공부를 위해서는 이미 인터넷 상에서 public domain으로 유통되고 있는 어떤 판본을 사용해도 별 지장이 없다.
James Joyce, Dubliners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Terence Brown, Penguin Classic, 1993.
- 이 판본의 텍스트는 Richard Ellmann의 자문, Jack Dalton의 의견제시를 참고하여, Robert Scholes, Walton Litz 두 사람이 편집한 Viking Critical Library edition(1969)이다(스콜즈 교수의 최종 교정본).
* 김종건(pp.367-369, 375), 민태운(pp.13-16) 참고.
12. 대조를 위한 국내의 번역본으로는 아래의 책을 사용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의 약력을 병기했다. (편의상 존칭이나 경어는 생략). 이중 원본을 밝히고 있는 책은 (3)밖에 없지만, 역시 우리 목적상은 어떤 원본을 사용했든 별 문제가 없다.
(1) 더블린 사람들, 김병철 옮김, 문예출판사, 3판 1쇄, 1999. 2 (초판 1977. 5, 2판 1994. 6) (이하 김병철) – 중국 국립 중앙대학 대학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 더블린 사람들 • 비평문, 김종건 옮김, 범우사, 2판 4쇄, 2005. 8 (초판 1988. 11, 2판 1997. 3) (이하 김종건) – 미국 Tulsa대 영문학박사, 전 고려대 교수, 한국제임스조이스학회 고문
(3) 더블린 사람들, 김정환 • 성은애 옮김, 창작과 비평사, 2쇄 1995. 9 (초판 1994. 12) (이하 김정환) – 김정환: 서울대 영문과, 시인, 한국문학학교 교장, 성은애: 서울대 영문과 박사, 단국대 교수
* 이 책은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이 그래도 여타 번역본보다 낫다고 추천하는 책이다(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창비, 2005. 5, pp.411-423). 하지만 이 책도 2등급으로 추천에 턱걸이했으니, 다른 책들은 모두 3~6등급의 신뢰가 떨어지는 책이라는 말이겠다. 그런데 안타깝게 이 책은 현재 품절이며, 필자는 몇 차례 창비에 이메일로 재인쇄 또는 개정 계획을 문의했으나 감감 무소식이다.
(4) 더블린 사람들, 임병윤 옮김, 소담출판사, 초판 1쇄, 2005. 7 (이하 임병윤) –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번역가
13. 참고문헌 및 웹 사이트
(1)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창비, 2005. 5
(2) 민태운, 조이스의 더블린: 더블린 사람들 읽기, 태학사, 2005. 4 (이하 민태운) – 미국 Southern Illinois대 영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 이 책은 필자가 강추하는 책이다. 조이스와 “더블린 사람들” 해설에 관심이 있는 초중급자들에게 좋다. 또 위 김종건 책의 뒤에 붙은 해설 “더블린 사람들에 나타난 에피파니(pp.367-424)”도 참고하라.
(3) 전은경 • 홍덕선 • 민태운, 조이스 문학의 길잡이: 더블린 사람들, 동인, 2005. 6 (이하 전은경) – 전은경: 미국 Wisconsin-Milwaukee대 영문학박사, 숭실대 교수, 홍덕선: 미국 South Carolina대 영문학박사, 성균관대 교수
* 위 (2), (3), 두 책은 번역본이 아니라 해설 및 비평서이고, 저자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중복되는 부분도 꽤 있다. 그런데 이 속에는 원본의 일부 번역 및 내용 소개도 있으므로 그 부분은 위 12에 준하여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4) Don Gifford, Joyce Annotated: Notes for ‘Dubliners’ and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2nd e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2 (이하 Gifford)
(5) Derek Attridg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James Joyce, 2nd ed. 3rd print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이하 Companion)
(6) “James Joyce, Dubliners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Terence Brown, Penguin Classic, 1993”에 있는 테렌스 브라운 교수의 서문(introduction) 및 주석(notes). (이하 Brown)
* 외국서적 및 영문 웹사이트의 한글 번역은 모두 필자가 한 것이다.
*웹 사이트
(http://www.themodernword.com/joyce/joyce_papers.html) 유명한 Brazen Head 사이트.
(http://joycean.org/) 이 사이트에는 조이스 중요 작품의 텍스트가 다 들어있다.
(http://www.james-joyce.de/) 조이스 책의 각종 판본 리스트 및 중요 서지(bibliography)가 있다.
(http://education.yahoo.com/homework_help/cliffsnotes/dubliners/) 미국의 John Wiley & Sons 출판사의 문학 및 교재 브랜드인 클리프노츠가 제공하는 미국 중고생 학습참고용 웹사이트. 초급자들에게는 이런 게 오히려 쉽다.
14. 원본을 읽던 중 까다로운 부분에서 우리 번역본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되었다가, 약간은 참담한 심정으로(이유는 점점 밝혀진다) 일일이 원본과 대조하게 된 이 작업이 사실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에서, 위 13의 (1)의 존재를 알게 되어 읽어보게 되었으며,
15. 동기나 목적에서 비슷한 점이 많지만 위 13의 (1)과 필자의 글이 다른 점은, 우선 번역과 영어공부라는 기본적 입장의 차이 외에도, 위 책에서는 아마 지면의 제약과 편집 방침 때문에 전체 텍스트가 아닌 일부의 대조, 평가만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필자는 전체 텍스트를 대상으로 삼은 점과, 위 책과는 달리 번역의 묘미보다는 꼼꼼한 텍스트 읽기 및 해석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즉, 번역상의 기교*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언급은 우리 목적에 비추어 보아 꼭 필요한 부분 외에는 가능하면 피하려 하는데, 역시 이는 필자가 전문번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머리말에 보면, “영미고전문학 번역평가사업: 번역문화 혁신을 위한 현황점검”이라는 보고서(2004. 1)를 단행본의 규모에 맞게 축약해서 내놓은 것이 이 책이라는데, 필자는 이 보고서는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 충실성(faithfulness: 번역문이 원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번역했는가)과 가독성(readability: 번역문의 우리말 구사 수준을 판단하는 영역)이라는 두 차원을 놓고 볼 때 충실성 쪽에 관심을 두겠다는 뜻이다. 덧붙여, 누락, 추가, 역주 등 해설의 제공을 포함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위 책의 pp.21-25와 “번역은 반역인가, 박상익, 푸른역사, 초판 2쇄, 2006. 3, pp.138-143” 참고.
16. 위 12의 (2) 역자는 반평생 아니 반세기를 조이스 연구에만 바치고 있으며, 조이스 전집을 내놓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이스 학자인데, 어째서 이 책이 아닌 12의 (3)이 추천되었을까? 우선 간단히 말하면, 위 (12)의 (1), (2)는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여러 본을 참고하여, 서로 베끼고 윤문(潤文)한 책에 지나지 않은데다가(그 증거는 뒤에 차츰 제시하겠지만, 같은 곳을 같은 식으로 틀린 번역이 많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어조마저 생경한 번역투 같다는 데서 온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17. 또 이 역자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Ulysses나 Finnegans Wake에 수십 년 매달리느라, 이런 초기의 비교적 쉬운 작품까지 다시 손보기에는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지만, 지금 번역본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는 개정판(1997. 1)의 서문에서, “역자는 이 번역에 있어서, <더블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많은 영문학도는 물론 이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일반 독자들을 위해 번역의 정확성과 세련된 문학적 표현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조이스의 후기 작품들인 <율리시스>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 그리고 조이스의 시들을 번역하면서 경험했던 아일랜드 특유의 표현들을 이 작품에서도 살리려고 최대한 애를 썼고, 이미 나와 있는 몇 가지 번역서들에서 발견되는 잘못을 보완하거나 수정했다(pp.14-15),”라 했으며, 그 이후는 개정이 없으므로 필자로서는 이 책을 지금까지 이 역자의 최종 번역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18. 하지만 지금부터 필자가 시작하는 대조, 비교, 비평은 번역자 개인의 학문 또는 그 일생의 업적이 아닌 이 Dubliners 번역서에만 한정된다는 점을 반드시 이해해야 쓸데없는 오해가 없을 것이다. 즉, 여기서 언급되는 문제는 이 책의 문제일 뿐이라는 말이다. 한편 위 15의 박상익에 따르면, “오역 비판은 되도록 ‘넌지시’ 해주는 편이 효과가 크다고 한다. 사실 비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아도 번역자는 충분히 부끄럽기 때문(위의 책, p.137)”에. 하지만, 그건 꾼들끼리의 이야기일뿐더러, 어디 모든 번역자가 ‘넌지시’ 해준들 받아들이겠는가? 더군다나 ‘넌지시’ 한들 또는 ‘중뿔나게’ 한들 그게 뭐 대순가? 맞는 지적이면, 고맙다고 고치면 그만인 것을. 필자의 시선은 번역자나 출판사 쪽을 향해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있다.
19. Dubliners은 어떻게 보면 간단한 단편소설 모음집, 일종의 ‘성장소설(Bildungsroman)’, 사회의 단면을 그린 사실주의 작품집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모더니즘(modernism)과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을 연 대가의 작품답게, 사실주의와 상징주의의 혼용에 의해 마치 양파처럼 다중의 차원을 지닌 작품*이며, 단편들끼리의 관계도 아는 만큼 달리 보이는 복잡한 소설**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월러스 그레이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이런 종류의 복잡하지만 미묘한 연결이 당신을 귀찮게 하면 조이스를 그만 읽는 게 낫다. 반면 이런 일이 즐겁게 느껴지면, 주의하라! 당신은 조이시언이 될 수도 있으니까. (If these kinds of complicated yet subtle connections annoy you then read no further in Joyce; if they delight you, than be forewarned: you could turn into a Joycean***.)” (앞의 3에서와 같은 웹 페이지에서 인용)
* Garry Leonard(캐나다 토론토대학교 교수)는 이를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이들 단편의 특징(the protean quality of these stories)”이라 했다(Companion, p.87).
** “(“더블린 사람들”의) 단편들은 정교한 십자말풀이(가로세로 낱말퀴즈)이다(the stories are an elaborate crossword puzzle” (Leonard, 위의 책, p.101)
*** Joycean: 조이시언. 조이스 학자. 조이스 연구가. 조이스의 열성 팬/광 팬. 조이스 폐인.
20. 이제부터 필자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15개의 단편을 차례로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하나의 단편이지만 길이 때문에 몇 개로 나눠야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1904년 George Russel이라는 사람의 권유로 ‘The Irish Homestead’라는 잡지에 “The Sisters”가 발표되면서 시작된 이 단편집의 목적은 “조국의 도덕사의 한 장(章)을 쓰는 것이었고,” “더블린이 마비의 중심지로 보였기 때문에 더블린을 선택”(민태운, p.14)했으며, 따라서 더블린 중하층 시민의 신산(辛酸)한 삶을 “비열할 정도로 꼼꼼하게(with a scrupulous meanness)” 묘사함으로써,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릴까 두려워한 편집자 및 인쇄공에 의해 계속 출판이 지연되어(다 완성된 책을 없애버린 인쇄공도 있었다!), 결국 무려 10년 후인 1914년 출판되었다. 이 기간에 조이스는 1904-1905년 사이에 완성된 원래 계획 10개 작품 외에도, 2개를 추가했다가, 다시 2개를 더, 마지막으로 ‘The Dead’를 추가하여, 결국 지금과 같은 15개의 단편이 모아진 것이다. 이 단편들은 개별적으로도 의미를 지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의해 하나로 엮어지는 통일성을 가졌으며, 조이스는 이를 더블린 사람들이 통과하는 네 개의 시기로 구분했다. (민태운, p.14, pp.24-27, 단, 한글 제목은 필자의 것이며, 이 글 시리즈를 통해 이렇게 사용하고, 그 이유는 각각을 다룰 때 상론하겠다.)
(1) 유년기(childhood) – 자매(The Sisters), 우연한 만남(An Encounter), 애러비(Araby)
(2) 청소년기(adolescence) – 이블린(Eveline), 경주가 끝난 후(After the Race) 두 건달(Two Gallants), 하숙집(The Boarding House)
(3) 장년기(maturity) – 작은 구름(A Little Cloud), 분풀이(Counterparts), 진흙(Clay), 가슴 아픈 사건(A Painful Case)
(4) 공적 생활(public life) – 선거사무실에서의 파넬 추모일(Ivy Day in the Committee Room), 어떤 어머니(A Mother), 은총(Grace), 죽은 사람들(The Dead)
* 위 1-3은 개인의 성장에 따른 시간 순서에 따른 것이지만, 4는 그렇지 않다. 내용상 4는 3과 중복되는 시기이다.
이제, 원본 text와 번역본을 가진 사람은 가진 대로,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조이스를 통한 영어공부의 길로 떠나 보자. 저작권 침해 문제를 피하기 위해 웹 상의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공유. 저작권의 권리소멸 상태)에 있는 영어 text를 해당 단편 검토에 앞서 미리 제공하도록 할 것이니(숙제는 미리 내주는 법이다).
* Dubliners에 관한 질문이나 이 글에 대한 근거 있는 비판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만, 위 글에서 언급한 외의 복잡한 상징 및 그 해석, 문학이론, 문학사에 관한 이야기는 이 글의 목표를 넘어선 것이며, 제 능력 밖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