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 후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서석연 옮김 / 범우사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겉으로 보기에는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 같은 나의 내면에는 항상 그토록 괴로운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주십시오. 
─ 나쓰메 소세키, ≪마음≫(1914년작), 범우사(서석연역, 1990년역), 230쪽



 

△ 나쓰메 소세키식의 사랑의 불가해성에 대해 얘기하기엔 너무나 빛나는
가마쿠라의 바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면이 그렇다.
빛나는 햇살 뒤에는 항상 어둡고 우울한 그림자의 여운이 있는 법.
(사진출처 : 블록그(dddxbbb)님의 블로그)


1.

내가 나쓰메 소세키를 읽은 것은 언제였던가. 아니, 그것은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접한 나쓰메 소세키는 ‘들은 것’이었다. 그건 중학교 시절의 일이었고, 그건 여자 동급생의 집에서 그 애의 언니가 읽어주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십여 살 많았던 그 애의 언니가 읽어준 나쓰메 소세키는 바로 ≪마음≫이었다. 그리고 만난 가마쿠라 ──나는 그때 처음으로 바다 건너 먼 섬에 가마쿠라라는 해안이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건 소설의 이러한 첫문장.


내가 선생과 알게 된 것은 가마쿠라에서였다. (12쪽)


그리고 나는 그 반짝거리는 해안과 더불어 더 많은 이국의 사물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유카타. 

 
언젠가 선생이 여느때와 같이 곧장 바다에서 올라와서 항시 같은 장소에 벗어둔 유카타를 입으려고 했을 때, 어찌된 일인지 그 옷은 모래투성이였다. 선생은 그것을 털기 위해서 등을 돌려 유카타를 두세 번 털었다. 그러자 옷 밑에 두었던 안경이 판자 틈새로 떨어졌다. (16쪽)


아늑한 중학생 시절을, 안녕히... 하고 손 흔들고 흘려보내고서도,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하면 항상 어떤 슬픔이
장마철의 저녁공기처럼 습하고 다정하게 내 손목을 감싸오는 것을 느낀다. 그건 어쩌면 소멸의 냄새였다.

 

 



2.

사실 나쓰메 소세키가 1914년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랑의 불가해성이었다. 비교적 산뜻하고 경쾌하게
시작되는 이 소설은, 진행될수록 어떤 슬픔의 냄새가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범우사판 번역본에 부록으로 실린 평론에서, 와세다 대학의 에토 아쓰이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점점 더 진행될수록 그 의혹은 깊어지고 의혹이 깊어짐에 따라 이상하게도 슬픈 감정이 싹트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초겨울 공기와 같은 맑게 갠 분위기 속에 휩싸이게 한다. 이때 독자들은 비극의 차원으로 발을 내딛게 되고 사물의 핵심, 즉 ‘마음’에 다가가게 된다. …이 작품의 아이러니는, 부족한 것이라곤 없어 보이는 선생이 실은 에고이즘, 고독, 사랑의 불가능성이라는 비참한 숙명의 희생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있다. …소설의 서두에서 그는 가마쿠라의 해안에서 선생을 만난다. 이때 ‘나’는 햇볕이 누부시게 쏟아지는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 자신이 머지 않아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결정적으로 소외될 운명에 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그는 아직 인간성에 잠재해 있는 추악한 진실에 직면한 적 없어 그저 청춘의 환희에 젖어 있다. (범우사판, 470쪽)


그 옛날 중학생 시절, 나는 ‘에고이즘’이나 ‘사물의 핵심’이라든가, 혹은 ‘사랑의 불가능성’이나 ‘비참한 숙명’과 같은
어려운 개념들을 몰랐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평생 이런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로 평온하게 천수를 다하고 머리 위로 묵직한 묘비명을 얹고 영원히 잠들지도 모른다. 

 

 

 


3.

사실, 이 소설 ≪마음≫은, 한 남자가 왜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느냐 하는, 자살을 목적지로 한 마음의 행로를 그리고 있다.


내가 그러한 굴레 속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을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하며 소스라치게 놀랄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내 마음을 꽉 죄고 있는 정체불명의 그 무서운 힘은 나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서 죽음의 길로는 자유로이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230쪽)


그리고 이 남자의 발언의 주요한 시초에는 가마쿠라가 있었다. 빛나는 그 바다.

하여, 온화한 그 바다 가마쿠라는 나의 마음에 기묘하고도 불가사의한 장소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도 죄책감 때문에 죽을 수가 있구나 ──이게 내가 열네살에 깨달은 삶의 잠언이었다.


기억해주십시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가마쿠라에서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도, 당신과 함께 교외로 산책을 나갔을 때도 나는 언제나 우울한 기분에 젖어 있었습니다. …9월이 되면 또 만나자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어 그 겨울이 다 지나더라도 반드시 만날 생각이었습니다.  (231쪽)


하여간, 이 남자는 죽음을 일순 유예하고 자신의 죽음을 글로 남긴다. 어쩌면 사람이 죽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짧거나 긴 글일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2,3일 후 나는 드디어 자살할 결심을 했습니다. 노기 대장이 죽은 이유를 내가 잘 모르듯이 당신도 내가 자살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이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니, 각 개인의 성격 차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에게 나라는 존재를 이해시키기 위해 지금까지의 글을 통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죽으려고 결심한 것도 이미 열흘이나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서전과 같은 이렇게 긴 글을 써서 당신에게 남겨두기 위해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당신을 만나 직접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쓰다보니 오히려 글로 이야기하는 것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좀더 분명히 묘사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이렇게 글로 이야기하는 나는 색다른 분위기에 무조건 젖어들어 쓴 것은 아닙니다. 내 지난날은 나만이 경험한 것으로서 나 외에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거짓없이 서서 남겨두는 것은 나라는 인간을 알아두는 데 있어서 당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와다나베 가잔은 한단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죽을 날을 1주일이나 미루었다는 이야기를 바로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본인에게는 그것이 죽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글을 남기게 된 것도 다만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나 자신의 뜻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받아볼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232-234쪽)

 

 

 

4.

옛날, 내가 들은 나쓰메 소세키가 어떤 번역본인지 모른다. 그건 1980년대의 일이었으므로. 아마 어쩌면 만화가이기도 했던,
동급생의 언니가 읽어준 ≪마음≫은, 일본어 원서를 바로바로 직역해서 일러준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읽어준 게 아니었고 군데군데 마음내키는 대로 몇 문장만을 일러주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높은 작업대 책상에서 그 소설을 읽어주었고, 나는 아랫목 앉은뱅이 책상에서 턱을 괴고 생경한 문장들의 음색과 더불어 가끔은 사전을 찾아보는지 얇은 종이가 팔랑거리는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마치 천상에서 하강하는 그레트헨의 목소리를, 이미 연옥에 한 발을 들여놓은 파우스트가 듣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토록 낭랑한 목소리를 가졌던 그 여자도 결국은 죽어버렸다.
나쓰메 소세키와 다른 점은, 그녀는 아무런 글 따위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무슨 심정으로 자신의 뼈가 강물에
뿌려지는 것을 보는지 모르겠지만, 산 사람에게 그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막 사춘기를 통과하는 한 소년에겐 말이다. 

 

 



5. 

그 후로, 가마쿠라는 나에게 어떤 미지의 불가해한 장소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그 바다에 서면 삶의 모든 의문들이 풀릴 것도 같았다. 아마, 그 바다에 석류빛 노을이 지면 죽은 사람과 재회할 것만 같았고, 모든 의문은 당사자에게 직접 물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날은 그 바다에 서고 싶었어. 죽은 다음에는 그리도 마음이 평안하냐고
따져물을 수 있을 것만 같거든.
(출처 : http://homepage2.nifty.com/gokurakudan/index.htm 의 어딘가)

 

  

Post Script


그래서 오늘도 가마쿠라로 가는 여정을 확인해 봤어. 도쿄까지 두시간 반.
그리고 도쿄역에서 JR 요코스카센을 타고 가마쿠라 역까지 약 1시간. 언제나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순간에 단지 반나절을 소비하면 나는 그 바다에 설 수 있겠지. 그리고 따지듯이 물어볼 거야. 그렇게 대책없이 스스로 생의 붉은 실을 끊어버리면 마음이 편안하냐고. 그리고 그리운 이가 어떤 대답을 하든 간에 나는 그 품에 안겨 엉엉 울어버릴 거야.
아마 그렇게 마음의 슬픔을 그 바다에 덧대고 나면 아마 죽고 싶은 마음이 커피 한 캔만큼은 덜어질지도 모르는 거지.
서울에서부터 출발해 단 반나절만 생의 아늑한 슬픔을 더 견딘다면 말이지.

(원문출처 : http://blog.naver.com/xenoblast/1200569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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