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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에 출간된지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기한 책. 쉼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데는 분명 재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터. 책을 펼쳐보니 아마도 사람들이 주인공 Ben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흔의 젊은 나이에 초고속 승진으로 월스트리트 로펌 부사장 승진을 눈앞에 둔 Ben은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두 아들들을 둔 남부러울게 없는 남자다. 그는 무려 50만불이 넘는 집에 거주하며 (것도 15년전 물가로) 거리낌없이 최고급 음향 시스템이나 최상급 카메라 구입에 수만불을 쏟아부을 정도로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장부터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의 일상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연유인지 아침부터 아내와의 사이에 한랭전선이 흐르고 일터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하다. 회사에 도착하면 고려 인삼ㅋ 및 온갖 위장약을 들이붓는 것으로 시작해 하루종일 상류층 1% 뒤치닥거리에 바쁜 그의 밥벌이는 참으로 지겨울 따름이다.
그런 그에게 작가는 이웃 주민의 입을 빌려 "Life is here. And if you keep hating where you are, you're going to wind up losing it all."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식의 뻔한(?) 전개를 가져간다. 그 뒷 이야기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이 정도로 하고 이 책에서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번 디벼보자.
책읽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작가가 책 첫장에 덧붙인 한줄요약 TL;DR (Too Long; Didn't Read)은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Beware lest you lose the substance by grasping at the shadow - Aesop" 즉 우리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운이 칠할이고 재주가 삼할이라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일이 뜻대로 안풀렸을때 위로의 의미로, 운이 좋아 일이 잘 풀렸을때 웃자고 하는 소리로 생각했다. 운삼기칠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인생을 간결하고도 명쾌하게 풀이한 진리 아닌가 싶다.
운이라는게 뭔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퉁쳐서 부르는 말이다. 날씨 같은 것은 물론이요 나를 낳아준 부모, 같이 자란 형제, 심지어 강남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친구들마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부분 '운'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며, 내 노력으로 들어간듯한 학교나 직장 또한 내 환경에 따른 운빨이 칠할 이상이라고 본다.
심지어 자로 잰듯이 공평할것 같은 '과학'마저도 운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책을 보면 알수 있다. 첫째는 적잖은 발견이 의도치 않은 우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고, 둘째는 운좋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며, 셋째는 어떤 업적의 공이 꼭 최초로 고안하거나 발견한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인생이 순전히 자신의 '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성공한 사람들 혹은 부유층 가운데 쉽게 찾을수 있는 그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며 불'운'한 사람들에게 뭘 그리 징징대냐며 노력하면 안될것이 없다고, 그들의 불운에 함께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사람들에게도 뭐 그렇게 세상 삐딱하게 사냐며 밝게 살라는 조언을 해준다.
'운' 또는 '기'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든 작가는 우리에게 닥친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지 picture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한다. 사진이 주를 이루는 책의 내용상 picture를 '사진'으로만 받아들이기 쉽지만 책의 메시지나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고려하면 picture는 사진을 비롯해 그려지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림'을 의미한다.
'그림'은 실체가 아니다. 재해석의 결과물이다. 그림은 내게 주어진 대상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우리가 평생 그려가는 '인생'이라는 Big Picture 역시 각자에게 주어진 운 또는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김어준의 얘기를 들어보자.
학창시절부터 자신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수많은 친구들을 보며 김어준은 왜 나는 그런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가 내린 답은 자기 자신이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그래서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기'에 해당하는 3은 어떻게든 해보되 '운'에 좌우되는 7은 담담히 받아들인다. "할수 없잖아"라고 말하며.
인생은 운이다. 그리고 이를 감당하는 것이다. 인생은 불공평하며 태어날때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완벽한 세상만큼 따분한 것도 없다는걸 아는 신이 이렇게 세상을 창조해 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나마 '사랑'으로 불운을 메꿀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지만 (이를 암시하는 책의 결말 또한 마음에 쏙 든다) 이를 알고 실천하기엔 우리가 너무 어리석은게 함정ㅋ
내가 바라는 이상형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릴것인가 '우연'히 마주친 그 사람을 '필연'으로 만들것인가? '꿈'의 직장을 찾아 헤맬 것인가 지금 내 직장을 내것으로 만들것인가? '드림온' 류의 꿈타령 책과 같이 내가 '바라는' 삶만 바라볼 것인가, 아님 '빅픽처'와 같이 내게 '주어진' 삶을 되는대로 살아갈 것인가? 당신은 어떤 '큰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이 책이 계속해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사람들 마음 속에 "성공한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이 성공한 것 아닐까" 같은 질문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여러분도 재미도 있고 교훈도 있는 '막장 드라마' 같으면서 상업적인 요소와 철학적인 요소를 교묘히 섞어놓은 '좌파 신자유주의' 같은 이 책 한번 읽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