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 트레이더 김동조의 까칠한 세상 읽기
김동조 지음 / 북돋움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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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빠'를 자처하는 남자 셋이 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고자 했던 노무현, 본능에 충실하며 닥치는대로 살아가는 김어준, 건강한 시민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박경철까지. 아부지를 제외하고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남자들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들이 내놓은 답을 좋아하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아온 그들이라 더욱 좋다. 물론 그들의 인간적인 매력 없이는 이 정도로 애착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말.. 어간이 되는 '인간'이란 단어는 무미건조하고 중성적인데, 희한하게도 인간'적'이 되면 왠지 모를 훈훈함을 풍긴다. 실제로도 사전을 찾아보면 "마음이나 됨됨이, 하는 행동이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맞는"이라고 나온다. 그저 인간이란 단어의 관형사라면 인간의 부정적인 면까지도 내포하는 것이 맞을텐데 말이다. 인간의 부끄러운 면모까지 인간적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나머지 그렇게 인간을 포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동조의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은 그래서 불편하다. 그는 인간을 포장하지 않는다. 그의 책에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가 없다. '인간적'인 인간이 아니라, '실제적'인 인간의 모습을 직시한다. 응당 그래야 하는 면을 담게 되는 인간의 '말'보다 더 많은 효용과 편익을 택하는 인간의 '행위'에 주목한다. "비용이 싸게 먹히는 '말'보다는 비용이 비싸게 먹히는 '행위'가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경제학의 관점이다.


"결혼 제도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는 '어떤 여자와 결혼하고 싶으세요?'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중략) 경제학자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어떤 상대와 결혼하는지에 더 주목한다." 사람들이 결혼을 할 때 사랑이라는 도덕적 '당위'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상대를 선택하는 '현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혼하는 이유를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가 아닌 남편과 부인이 지닌 가치의 균형이 깨지는데서 찾는다.


로알드 달의 소설에 나오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보며 내심 찔렸던 것들이, 이 책을 보면서 돌직구를 맞는다. 내가 매일같이 내리는 자잘한 선택이든, 평생 몇번 오지않는 중대한 선택이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보다는 경제적인 '효용'을 따르는 선택을 해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도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저자 김동조를 모르고 책을 봤다면 아마 조금 읽다가 덮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책 뒤에 크게 써있는 "전략적일 수 없다면 철학적이기라도 할 것" 이라는 문장.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아 책을 읽는 내내 곱씹어 보았다. 전략적이라 함은 경제적으로 최선의 - 효용을 극대화하는 - 선택일 것이고, 철학적이라 함은 도덕적으로 최선의 - 당위를 따르는 - 선택일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철학적일 수 없다면 전략적이기라도 할 것"이 맞을것 같은데.. 내가 아는 김동조는 그저 경제적인 실리만을 좇는 사람이 아닌데 왜 저렇게 썼을까..?


내가 노무현, 김어준, 박경철을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특히 노무현 하면 사람들은 '원칙주의자'를 떠올리지만, 그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명분 있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 노무현에게 반했지만, 그는 '명분 있는 성공'을 위해 최선의 전략을 짜내던 사람이었다. 원칙은 타협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전략은 타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물려주자던 그는. 차마 전략적일 수 없을 때, 철학적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켰다.


우리는 어떤 삶을,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전략적이지도 철학적이지도 못한 '명분 없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 또한 인간적일 것이다.


그러기에.


주변의 모든 수컷들이 살아남기 위한

명분 없는 성공(?)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길을 택할 때


홀로 지지 않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권은희 과장의 선택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녀가 쓰러지지 않길 기도한다.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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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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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떨어져 지낸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난 뒤로 점점 뿔뿔히 흩어져 여동생과 나는 미국에, 남동생과 엄마는 한국에, 아부지는 홀로 방글라데시에 계신다. 이제 동생마저도 곧 장가를 가는 통에 더 찢어질 참이다. 그래서인지 카톡방에선 다들 참 애틋하다. 보고싶다. 사랑한다. 아이고ㅋ

우리 가족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돌이켜본다. 몇년전 집 앞 호프집에 모여 다같이 한잔 할 때가 떠오른다. 우리집 대표 이빨 아부지와 남동생이 열나게 침 튀겨가며 토론을 벌이고, 나와 엄마는 그 반주에 맞춰 이쪽편 들었다 저쪽편 들었다 추임새 한번씩 넣어주고, 여동생은 아마 심판을 보았던가..?

그보다 더 오래전 일을 기억하려 애써본다. 남자의 기억력은 왜 이모양인지 도대체 왜 아름다운 추억은 떠오르지 않고, 중학교 때 새벽에 몰래 거실에서 x급생 게임을 하다가 아부지가 나오셔서 컴퓨터 전원을 사정없이 뽑아버렸던 일부터 떠오를까. 남동생이 아마 옆에 같이 있었던가..?

암튼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뭐하고 있었나며 다시 켜보라는 아부지. 어차피 못보셨을테니 다른 게임을 시작하면 될일을 왜 굳이 그 게임을 다시 켰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알사람은 알다시피 주인공이 방에만 머물러 있으면 얼굴 붉힐(?)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슨 직장 구하는 게임이라고 에둘러 댔던가..?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난 나로서는 같은 밥을 먹는 '식구'라기보다 관찰자에 가깝다. 바다 건너서도 방학 때마다 휴가 때마다 꼬박꼬박 집에 나오긴 했으나, 남는게 시간인 무중력 상태의 나는 원래의 내가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만만한 가족에게 푸는 못난 아들, 형, 큰오빠는 온데간데 없으니.

대신 작년부터 나와 함께 지내는 여동생이 고생이다. 내 머리 속엔 항상 유치원생으로 정지되어 있던 동생이 다 커버린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인지. 알아서 학교에 잘 다니는 것만으로도 기특할 일인데,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차갑게' 혼을 낸다. 그게 동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것임을 직시할 때마다 당황스럽다..

그런게 가족일까? 험한 세상과 싸우다 지친 인간들이 언제고 돌아갈 수 있는 진지. 그렇게 약해진, 아니 악해진 이들이 서로에게 쉬이 상처주는 말을 내뱉고 별것 아닌 말에도 크게 상처를 입는 곳. 그런 그들에게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지도 모른다. 흔히 '가족' 하면 떠올리게되는 "형제간의 따듯한 우애와 건강하고 깨끗한 아이들, 서로에 대한 걱정과 배려, 유순하고 성실한 가족구성원들,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저녁식사"와 같은 것들은 사실 전혀 평범하지 않은, 우리에게 주입된 환상일지도..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은 바로 그런, 하하호호 아름답고 화목하지 않은 가족에 관한 소설이다. 칠순이 넘은 엄마 집으로 하나 둘 모여드는 전과 5범 큰아들, 영화 말아먹고 폐인이 된 둘째 아들, 바람 피우다 두번 이혼당하고 돌아온 막내딸까지, 평균 나이 사십구세의 세련되지도 쿨하지도 않은 콩가루 가족의 이야기.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든다.

요즘 하루종일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우리 엄마. 눈 나빠진다고 몇번을 말씀드려도 능숙히 한귀로 흘리신다. 결국 폰을 뺐고 옆에 앉아 '고령화 가족'을 읽어드린다. 책하고는 담을 쌓은 우리 엄마지만 그래도 아들이 읽어주니 좋단다.

"엄마, 우리도 이렇게 다 중늙은이 되서 돌아오믄 어찌까?"
"나야 좋제. 허허."

몇장을 채 읽기도 전에 금새 잠에 빠져든 엄마. 진작 한 번 읽어드릴걸. 기분이 묘하다.

이제 며칠 있으면 남동생이 새로운 가족을 꾸리러 우리 둥지를 떠난다. 나 대신 평생 우리집을 지키더니 '시원'하게 간다. 십년 뒤에 큰아들 식구, 작은 아들 식구, 막내딸 식구 온가족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꽉차 있을 우리집을 그려본다. 할머니도 계셨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우아래 없는 작은 강아지를 아조 혼꾸녕을 내주셨을텐데 :)

할머니, 오늘따라 보고싶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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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랑이
조영남 지음 / 한길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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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사랑을 꿈꾸고 목 말라해. 그러다가 사랑에 빠지면 덜컥 결혼을 하는 거야. 마치 한꺼번에 장을 보는 기분으로 말야.

그런데 사랑은 장 본 물건처럼 보관도 안 되고 저축도 안 돼. 아무리 근사한 사랑을 풍성하게 마련해둬도 사라져버리고, 아무리 독한 사랑에 상처를 받았어도 새 사랑에 덜컥 또 빠지지.

예방약도 없는 게 사랑이야. 그리고 노력한다고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거나 정답이 있는 것...도 아냐. 늘 살아 있고 변수가 심해서 사랑은 더 절실하지. 그래서 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준 저주이자 은총이야."

- 조영남의 <어느날 사랑이>

올해 가장 날 웃겼던 책 <남자의 물건>에서 김정운 교수가 하도 추천을 하길래 일단 믿고 질렀던 책이다. 그전에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에 출연한 조영남의 이야기를 듣고 내게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그가 조금은 궁금해지기도 했던터.

책은 재밌게 술술 읽힌다. 사랑 얘기만큼 재밌는 얘기가 또 있겠냐만은 마치 글이 아니라 옆에 앉혀놓고 이야기하듯 자신감 넘치는 문장 덕에 책장은 잘도 넘어간다. 술자리에서 직접 들었으면 훨씬 재밌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뭐가 하고 싶냐, 사랑이다. 그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답변인데 보통은 즉답을 피하거나 머뭇거린다. 이유가 있다. 살짝 위험하기 때문이다. 젋은 사람이 그랬다간 그 자리에서 바람둥이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고 나이 든 사람이 뜬금없이 사랑을 말했다간 노망으로 비하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한번씩 사랑을 노린다. 안 노리는 사람은 그만큼 축복 받은 사람이다. 더머나 바보는 고뇌를 모른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가 축복이다. 사랑은 통상 그렇게 빨간색의 위험물질로 분류되기 때문에 늘 경계심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것이 우리 입장이고 딜레마다. 뜨거운 감자가 따로 없다."

이 구절을 읽고 한 라디오 방송에서 타로점을 봐주는 분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부가 점을 보러 오면 항상 가장 먼저 물어보는게 자식 교육 문제란다. 그 다음에 보통 남편 직장 문제가 따라오고,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뒤 더 물어볼 것 없냐고 슬며시 떠보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
.
.

'제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묻는다고. 아무 생각없이 라디오를 듣다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한방 맞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의 삶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일에서부터 돈을 얼마나 써야 하느냐까지 늘 자유롭지 못하다. 명예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학벌에 대해서, 가문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파트 평수나 타고 다니는 차종이 사람과 사람의 교제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건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늘 근심에 싸인다. 늘 외톨이다. 이것이 카뮈나 사르트르가 말한 우리의 실존 상태다. 늘 부자유하다. 부조리에 빠져 있다. 권태롭다. 게다가 사랑문제는 또 얼마나 우리를 지리멸렬케 하는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일찍이 서울미대 출신의 가수 김민기가 만들어낸 말처럼 우리는 늘 모순에 어긋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요즘 참 행복하지가 않다. 몇년째 계속되는 자살율과 저출산율 1위가 이를 말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중 하나가 됐는데 안타깝기 그지 없다. 넘치는 잉여력으로 이거 어떻게하면 바꿀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처음에는 사회 시스템, 즉 정치를 바꾸면 모든 것이 절로 따라올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민주주의의 수준은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의식을 반영할 뿐이구나. 결국 사람이구나. 사람이 먼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린 답이 '사랑'이다. 조영남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로워지는 비결 역시 사랑이다. 그가 사랑 얘기를 하는 것에 얼굴이 찌푸려 지는 사람도 있을줄 안다. 하지만 나나 그가 얘기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너무 뜬구름 잡는, 이상적인 얘기란거 안다. 다만 답만 빨리 찾는게 장땡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로, 상대방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충분히 긴 호흡과 느린 발걸음으로, 호기심 가득한 좋은 질문을 던질줄 아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플 뿐이다. 힐링으로 순간의 위로를 찾지 말고 사랑을 하자. 능동적인 사랑을.

마지막으로 남자들을 위한 팁 :)
"나한테 한때 반했다는 여자가 이렇게 묻고 대답한 적이 있다. '영남 씨, 왜 제가 영남 씨한테 반했는 줄 아세요?' 내가 머뭇머뭇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영남 씨! 그때 우리가 여럿이 음식점에서 밥 먹은 적 있죠? 영남 씨는 기억 못할 거예요.

그때 제가 한참 영남 씨한테 무슨 얘긴가를 하고 있을 때 거기 종업원 여자가 들고 왔던 콜라를 영남 씨 무릎에 쏟은 적이 있어요. 그때 영남 씨는 종업원을 안 쳐다보고 무릎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쓱쓱 쓸어내면서 날더러 얘기를 계속하라고 재촉했어요. 콜라 쏟아진 게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죠.

모르겠어요. 저는 그 순간 이 남자가 참 괜찮은 남자구나 생각하게 된 거예요.' 이건 불변의 법칙이다. 여자는 무조건 자기 얘기 들어주는 남자 좋아한다. 그냥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건데 많은 남자들이 그걸 못한다."

참 쉽죠잉? 어려움ㅠㅜ

ps. 조영남 이름 석자를 들으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나야 워낙 그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책을 읽기 전까지 조용필과 항상 헷갈려했고;; 책을 읽으면서도 이 윤여정이 내가 아는 그 윤여정인가 할 정도) 참 재밌는 사람이네 하면서 읽었다. 중간중간 불편한 부분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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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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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에 읽었던 '나목'이 그녀 인생의 중간 지점인 마흔에 쓴 데뷔작이라면, 이 책은 그로부터 다시 40년뒤 그녀의 삶 끄트머리서 남긴 마지막 산문집이다. '나목'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고독하기 그지없는 황량한 삶을 보여준 그녀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얼마나 변했을지 궁금한 마음에 집어들게 됐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건 그녀의 삶이 참으로 불'운'했다는 것이다. 전쟁 중에 오빠를 잃은 것도 모자라, 어린 시절엔 아버지를 여의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과 아들까지 연달아 떠나 보냈으니 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고 써놓을 정도이니 나같은 사람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이 꼭 불'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불운 때문에 이루지 못한 그녀의 꿈을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그녀는 아직 글을 쓸 수 있어서, 그리고 집 앞 마당을 가꿀수 있어서 매일같이 기쁘다고 책에 적고 있다. 이처럼 '나목'에선 볼 수 없는 그녀의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자연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책을 읽는 나마저 기분좋게 한다.


불'운'했지만 꼭 불'행'하지는 않았던 박완서의 삶은 '결핍'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결핍은 그 자체로는 반갑지 않은 것이지만 극복할수만 있다면 한 개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감옥살이가 그로 하여금 '죄와 벌'이라는 대작을 쓰게 만들고, 박완서의 불운이 그녀를 평범한 학교 선생이 아닌 손꼽히는 소설가의 길로 이끌었듯이 말이다.


물론 이 같은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이고, 대부분의 경우 감당할 수 없는 불운은 곧 불행이 된다.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가 그랬고, 영화 '화차'의 김민희가 그랬듯이 말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나라면 저런 버거운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불운을 안겨주는 '그'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따위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출생의 불'운'이 인생의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누구든지 노력만하면 자신의 결핍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면 이 꿈도 언젠가는 현실이 되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리는 우리대로 지금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박완서가 글쓰기를 통한 '몰입'과 천주교를 통한 '믿음'에 기대어 어떻게든 버텨냈듯이.


답은 각자 찾아나가는 것이겠지만 그리스인들의 태도는 한번 참고할만하다. 박경철에 의하면 그들은 "삶은 기본적으로 행복한 것이며, 인간은 경이로운 존재"라고 그리고 "삶의 과정에 가끔은 행운이 때로는 불운이 교차하지만, 행운/불운과 행복/불행은 다른차원의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저번글에 썼듯 '운'에 좌우되는 칠할은 "할수 없잖아"라며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 아닌가 싶다.


아무쪼록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에 오늘도 잉여력을 발휘하여 끄적여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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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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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출간된지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기한 책. 쉼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데는 분명 재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터. 책을 펼쳐보니 아마도 사람들이 주인공 Ben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흔의 젊은 나이에 초고속 승진으로 월스트리트 로펌 부사장 승진을 눈앞에 둔 Ben은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두 아들들을 둔 남부러울게 없는 남자다. 그는 무려 50만불이 넘는 집에 거주하며 (것도 15년전 물가로) 거리낌없이 최고급 음향 시스템이나 최상급 카메라 구입에 수만불을 쏟아부을 정도로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장부터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의 일상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연유인지 아침부터 아내와의 사이에 한랭전선이 흐르고 일터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하다. 회사에 도착하면 고려 인삼ㅋ 및 온갖 위장약을 들이붓는 것으로 시작해 하루종일 상류층 1% 뒤치닥거리에 바쁜 그의 밥벌이는 참으로 지겨울 따름이다.


그런 그에게 작가는 이웃 주민의 입을 빌려 "Life is here. And if you keep hating where you are, you're going to wind up losing it all."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식의 뻔한(?) 전개를 가져간다. 그 뒷 이야기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이 정도로 하고 이 책에서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번 디벼보자. 


책읽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작가가 책 첫장에 덧붙인 한줄요약 TL;DR (Too Long; Didn't Read)은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Beware lest you lose the substance by grasping at the shadow - Aesop" 즉 우리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운이 칠할이고 재주가 삼할이라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일이 뜻대로 안풀렸을때 위로의 의미로, 운이 좋아 일이 잘 풀렸을때 웃자고 하는 소리로 생각했다. 운삼기칠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인생을 간결하고도 명쾌하게 풀이한 진리 아닌가 싶다.


운이라는게 뭔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퉁쳐서 부르는 말이다. 날씨 같은 것은 물론이요 나를 낳아준 부모, 같이 자란 형제, 심지어 강남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친구들마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부분 '운'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며, 내 노력으로 들어간듯한 학교나 직장 또한 내 환경에 따른 운빨이 칠할 이상이라고 본다.


심지어 자로 잰듯이 공평할것 같은 '과학'마저도 운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책을 보면 알수 있다. 첫째는 적잖은 발견이 의도치 않은 우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고, 둘째는 운좋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며, 셋째는 어떤 업적의 공이 꼭 최초로 고안하거나 발견한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인생이 순전히 자신의 '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성공한 사람들 혹은 부유층 가운데 쉽게 찾을수 있는 그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며 불'운'한 사람들에게 뭘 그리 징징대냐며 노력하면 안될것이 없다고, 그들의 불운에 함께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사람들에게도 뭐 그렇게 세상 삐딱하게 사냐며 밝게 살라는 조언을 해준다.


'운' 또는 '기'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든 작가는 우리에게 닥친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지 picture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한다. 사진이 주를 이루는 책의 내용상 picture를 '사진'으로만 받아들이기 쉽지만 책의 메시지나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고려하면 picture는 사진을 비롯해 그려지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림'을 의미한다.


'그림'은 실체가 아니다. 재해석의 결과물이다. 그림은 내게 주어진 대상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우리가 평생 그려가는 '인생'이라는 Big Picture 역시 각자에게 주어진 운 또는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김어준의 얘기를 들어보자.


학창시절부터 자신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수많은 친구들을 보며 김어준은 왜 나는 그런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가 내린 답은 자기 자신이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그래서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기'에 해당하는 3은 어떻게든 해보되 '운'에 좌우되는 7은 담담히 받아들인다. "할수 없잖아"라고 말하며.


인생은 운이다. 그리고 이를 감당하는 것이다. 인생은 불공평하며 태어날때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완벽한 세상만큼 따분한 것도 없다는걸 아는 신이 이렇게 세상을 창조해 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나마 '사랑'으로 불운을 메꿀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지만 (이를 암시하는 책의 결말 또한 마음에 쏙 든다) 이를 알고 실천하기엔 우리가 너무 어리석은게 함정ㅋ


내가 바라는 이상형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릴것인가 '우연'히 마주친 그 사람을 '필연'으로 만들것인가? '꿈'의 직장을 찾아 헤맬 것인가 지금 내 직장을 내것으로 만들것인가? '드림온' 류의 꿈타령 책과 같이 내가 '바라는' 삶만 바라볼 것인가, 아님 '빅픽처'와 같이 내게 '주어진' 삶을 되는대로 살아갈 것인가? 당신은 어떤 '큰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이 책이 계속해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사람들 마음 속에 "성공한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이 성공한 것 아닐까" 같은 질문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여러분도 재미도 있고 교훈도 있는 '막장 드라마' 같으면서 상업적인 요소와 철학적인 요소를 교묘히 섞어놓은 '좌파 신자유주의' 같은 이 책 한번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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