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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 트레이더 김동조의 까칠한 세상 읽기
김동조 지음 / 북돋움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빠'를 자처하는 남자 셋이 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고자 했던 노무현, 본능에 충실하며 닥치는대로 살아가는 김어준, 건강한 시민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박경철까지. 아부지를 제외하고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남자들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들이 내놓은 답을 좋아하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아온 그들이라 더욱 좋다. 물론 그들의 인간적인 매력 없이는 이 정도로 애착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말.. 어간이 되는 '인간'이란 단어는 무미건조하고 중성적인데, 희한하게도 인간'적'이 되면 왠지 모를 훈훈함을 풍긴다. 실제로도 사전을 찾아보면 "마음이나 됨됨이, 하는 행동이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맞는"이라고 나온다. 그저 인간이란 단어의 관형사라면 인간의 부정적인 면까지도 내포하는 것이 맞을텐데 말이다. 인간의 부끄러운 면모까지 인간적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나머지 그렇게 인간을 포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동조의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은 그래서 불편하다. 그는 인간을 포장하지 않는다. 그의 책에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가 없다. '인간적'인 인간이 아니라, '실제적'인 인간의 모습을 직시한다. 응당 그래야 하는 면을 담게 되는 인간의 '말'보다 더 많은 효용과 편익을 택하는 인간의 '행위'에 주목한다. "비용이 싸게 먹히는 '말'보다는 비용이 비싸게 먹히는 '행위'가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경제학의 관점이다.
"결혼 제도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는 '어떤 여자와 결혼하고 싶으세요?'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중략) 경제학자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어떤 상대와 결혼하는지에 더 주목한다." 사람들이 결혼을 할 때 사랑이라는 도덕적 '당위'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상대를 선택하는 '현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혼하는 이유를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가 아닌 남편과 부인이 지닌 가치의 균형이 깨지는데서 찾는다.
로알드 달의 소설에 나오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보며 내심 찔렸던 것들이, 이 책을 보면서 돌직구를 맞는다. 내가 매일같이 내리는 자잘한 선택이든, 평생 몇번 오지않는 중대한 선택이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보다는 경제적인 '효용'을 따르는 선택을 해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도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저자 김동조를 모르고 책을 봤다면 아마 조금 읽다가 덮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책 뒤에 크게 써있는 "전략적일 수 없다면 철학적이기라도 할 것" 이라는 문장.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아 책을 읽는 내내 곱씹어 보았다. 전략적이라 함은 경제적으로 최선의 - 효용을 극대화하는 - 선택일 것이고, 철학적이라 함은 도덕적으로 최선의 - 당위를 따르는 - 선택일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철학적일 수 없다면 전략적이기라도 할 것"이 맞을것 같은데.. 내가 아는 김동조는 그저 경제적인 실리만을 좇는 사람이 아닌데 왜 저렇게 썼을까..?
내가 노무현, 김어준, 박경철을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특히 노무현 하면 사람들은 '원칙주의자'를 떠올리지만, 그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명분 있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 노무현에게 반했지만, 그는 '명분 있는 성공'을 위해 최선의 전략을 짜내던 사람이었다. 원칙은 타협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전략은 타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물려주자던 그는. 차마 전략적일 수 없을 때, 철학적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켰다.
우리는 어떤 삶을,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전략적이지도 철학적이지도 못한 '명분 없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 또한 인간적일 것이다.
그러기에.
주변의 모든 수컷들이 살아남기 위한
명분 없는 성공(?)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길을 택할 때
홀로 지지 않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권은희 과장의 선택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녀가 쓰러지지 않길 기도한다.
그녀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