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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랑이
조영남 지음 / 한길사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누구나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사랑을 꿈꾸고 목 말라해. 그러다가 사랑에 빠지면 덜컥 결혼을 하는 거야. 마치 한꺼번에 장을 보는 기분으로 말야.
그런데 사랑은 장 본 물건처럼 보관도 안 되고 저축도 안 돼. 아무리 근사한 사랑을 풍성하게 마련해둬도 사라져버리고, 아무리 독한 사랑에 상처를 받았어도 새 사랑에 덜컥 또 빠지지.
예방약도 없는 게 사랑이야. 그리고 노력한다고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거나 정답이 있는 것
...도 아냐. 늘 살아 있고 변수가 심해서 사랑은 더 절실하지. 그래서 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준 저주이자 은총이야."
- 조영남의 <어느날 사랑이>
올해 가장 날 웃겼던 책 <남자의 물건>에서 김정운 교수가 하도 추천을 하길래 일단 믿고 질렀던 책이다. 그전에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에 출연한 조영남의 이야기를 듣고 내게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그가 조금은 궁금해지기도 했던터.
책은 재밌게 술술 읽힌다. 사랑 얘기만큼 재밌는 얘기가 또 있겠냐만은 마치 글이 아니라 옆에 앉혀놓고 이야기하듯 자신감 넘치는 문장 덕에 책장은 잘도 넘어간다. 술자리에서 직접 들었으면 훨씬 재밌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뭐가 하고 싶냐, 사랑이다. 그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답변인데 보통은 즉답을 피하거나 머뭇거린다. 이유가 있다. 살짝 위험하기 때문이다. 젋은 사람이 그랬다간 그 자리에서 바람둥이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고 나이 든 사람이 뜬금없이 사랑을 말했다간 노망으로 비하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한번씩 사랑을 노린다. 안 노리는 사람은 그만큼 축복 받은 사람이다. 더머나 바보는 고뇌를 모른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가 축복이다. 사랑은 통상 그렇게 빨간색의 위험물질로 분류되기 때문에 늘 경계심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것이 우리 입장이고 딜레마다. 뜨거운 감자가 따로 없다."
이 구절을 읽고 한 라디오 방송에서 타로점을 봐주는 분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부가 점을 보러 오면 항상 가장 먼저 물어보는게 자식 교육 문제란다. 그 다음에 보통 남편 직장 문제가 따라오고,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뒤 더 물어볼 것 없냐고 슬며시 떠보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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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묻는다고. 아무 생각없이 라디오를 듣다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한방 맞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의 삶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일에서부터 돈을 얼마나 써야 하느냐까지 늘 자유롭지 못하다. 명예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학벌에 대해서, 가문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파트 평수나 타고 다니는 차종이 사람과 사람의 교제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건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늘 근심에 싸인다. 늘 외톨이다. 이것이 카뮈나 사르트르가 말한 우리의 실존 상태다. 늘 부자유하다. 부조리에 빠져 있다. 권태롭다. 게다가 사랑문제는 또 얼마나 우리를 지리멸렬케 하는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일찍이 서울미대 출신의 가수 김민기가 만들어낸 말처럼 우리는 늘 모순에 어긋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요즘 참 행복하지가 않다. 몇년째 계속되는 자살율과 저출산율 1위가 이를 말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중 하나가 됐는데 안타깝기 그지 없다. 넘치는 잉여력으로 이거 어떻게하면 바꿀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처음에는 사회 시스템, 즉 정치를 바꾸면 모든 것이 절로 따라올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민주주의의 수준은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의식을 반영할 뿐이구나. 결국 사람이구나. 사람이 먼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린 답이 '사랑'이다. 조영남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로워지는 비결 역시 사랑이다. 그가 사랑 얘기를 하는 것에 얼굴이 찌푸려 지는 사람도 있을줄 안다. 하지만 나나 그가 얘기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너무 뜬구름 잡는, 이상적인 얘기란거 안다. 다만 답만 빨리 찾는게 장땡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로, 상대방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충분히 긴 호흡과 느린 발걸음으로, 호기심 가득한 좋은 질문을 던질줄 아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플 뿐이다. 힐링으로 순간의 위로를 찾지 말고 사랑을 하자. 능동적인 사랑을.
마지막으로 남자들을 위한 팁 :)
"나한테 한때 반했다는 여자가 이렇게 묻고 대답한 적이 있다. '영남 씨, 왜 제가 영남 씨한테 반했는 줄 아세요?' 내가 머뭇머뭇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영남 씨! 그때 우리가 여럿이 음식점에서 밥 먹은 적 있죠? 영남 씨는 기억 못할 거예요.
그때 제가 한참 영남 씨한테 무슨 얘긴가를 하고 있을 때 거기 종업원 여자가 들고 왔던 콜라를 영남 씨 무릎에 쏟은 적이 있어요. 그때 영남 씨는 종업원을 안 쳐다보고 무릎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쓱쓱 쓸어내면서 날더러 얘기를 계속하라고 재촉했어요. 콜라 쏟아진 게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죠.
모르겠어요. 저는 그 순간 이 남자가 참 괜찮은 남자구나 생각하게 된 거예요.' 이건 불변의 법칙이다. 여자는 무조건 자기 얘기 들어주는 남자 좋아한다. 그냥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건데 많은 남자들이 그걸 못한다."
참 쉽죠잉? 어려움ㅠㅜ
ps. 조영남 이름 석자를 들으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나야 워낙 그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책을 읽기 전까지 조용필과 항상 헷갈려했고;; 책을 읽으면서도 이 윤여정이 내가 아는 그 윤여정인가 할 정도) 참 재밌는 사람이네 하면서 읽었다. 중간중간 불편한 부분은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