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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성당 친구들과 축구를 시작한지도 벌써 여러 해다. 몇몇이 재미로 공을 차던 것이, SAKA라는 이름을 지은 뒤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다. 내 실력은 여전하지만 - 턱없이 느린 발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발재간, 그리고 1분이면 완전 연소되는 '시리얼 체력'까지 - 있는 힘껏 달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땡큐다. 경기중 대부분의 시간을 입으로 뛰지만 그만큼 필드 안에서 일분 일초가 소중하다.
이런 나도 골을 넣은 적이 한번 있다. 역습 찬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5,6미터 좌측에 팀 동료가 수비수 하나를 달고 공을 몰고 있고 나 역시 나란히 미친듯이 골대를 향해 뛰고 있는 상황. 평소 같으면 두려운 마음에 '공이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동료가 그냥 끝까지 처리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을텐데, 그날 따라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압도했다.
골대는 점점 다가오는데 팀 동료는 수비수에 가려 보이질 않고. 어떡하지? 하는 와중에 공이 수비수를 넘어 나에게로 낮게 쫙 깔려온다. 두렵다. 어디로 차야겠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다. 되는대로 발을 뻗는다. 공이 왼쪽 골대 구석으로 붕 떠서 날아간다. 골대에 맞는다. 헐.. 굴절된 공이 반대편으로 빨려 들어간다. 동료들과 괴성을 지르며 기쁨을 나누는 그 순간을 내 글재주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 골에 기여한 것이라곤 참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공이 내 발에 닿기 전에 팀 동료의 완벽한 드리블과 어시스트가 있었고, 그 전에 상대팀에게서 공을 빼앗은 또다른 동료가 있었으며, 그보다 전에 상대팀이 패스 미스를 하게 만든 압박을 포함해, 경기 시작 순간부터 계속된 열한명의 끝없는 움직임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의 외침이 상대편 골대를 두드리고 두들겨 만든 골이니 말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쓴 줄리언 반스는 이를 "Chain of Individual Responsibilities"라고 한다.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된 배경엔 어떤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각자의 책임이라는 연쇄 사슬'이 이어져 있다고 본 것이다. 맥주잔 안에 불안하게 떠 있는 소주잔을 모두가 조금씩 채워가듯. 누군가 (때론 의도치않게) 시작한 그 사슬을, 또다른 누군가가 이어서 연결하고, 또다른 누군가가 계속해서 연결해 나간다. 결국 소주잔이 가라앉으면 마지막 사람에게 벌주를 몰아주듯, 우리는 마지막 사슬을 채운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손가락질한다.
세월호가 침몰했다.
수많은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이 숨졌다.
정부는 사고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인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것인지 헛발질을 거듭했다.
청와대는 "재난상황 콘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 했다.
굳이 사고 현장까지 와서 선장을 살인자로 지목했다.
"잘못되면 이분들이 물러나야"한다고 책임을 넘겼다.
안행부는 해상 재난은 잘 모르겠다며 책임을 미뤘다.
해수부는 눈치를 보느라 구조에 모든 것을 쏟지 못했다.
해경은 눈앞에 보이는 승객들만 소극적으로 구조했다.
선장과 선원들 역시 그들과 함께 먼저 탈출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선실 안에서 한없이 기다렸다.
안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이 거듭 나왔기 때문이다.
선장이 그러한 지시를 내렸고 누군가 그대로 전달했다.
선장은 배의 문제를 뒤늦게서야 관제소에 신고했다.
청해진해운은 선장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애초에 사고가 나지 말았어야 했다.
세월호는 위험한 지름길로 가면서 과속 운항까지 했다.
안개 속에 아무도 항구서 떠나지 않는데 홀로 출항했다.
배에 싣은 화물을 제대로 결박하지도 않았다.
적정 화물적재량의 무려 3배에 가까운 화물을 싣었다.
그 전에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를 무리하게 증축했다.
기존 세월호 선장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묵살됐다.
간부가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지만 처리되지 않았다.
복원력 검사에 탈락했지만 곧바로 쉽게 재통과했다.
일본서 18년 운행뒤 퇴역했던 배가 한국에 재취역했다.
이명박 정부가 선박 연령 제한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해수부는 청해진해운에 제주 항로 20년 독점권을 줬다.
유병언 전 회장은 재산을 빼돌려 청해진해운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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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긴 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며 부질없이 드는 생각들.
이 중 단 하나. 단 하나의 사슬이라도 끊어졌었더라면.
그리고 어쩌면 나도 이 사슬 어딘가에 엮여있었던 건 아닐까.
혹시 아이들이 그렇게 불안에 떨면서도 선실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건, 위에서 이끌어 주는 가이드라인 밖으로 나가는게 더 두려웠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 밖으로 섣불리 한걸음 내딛었다가 넘어지고 혼날까봐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닐까. 여동생의 조그만 실수에도 심하게 다그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동생에게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줬다면, 우리가 서로의 실수에 조금만 더 관대했다면 달라졌을까.
혹시 배의 선장과 선원들도 제대로 된 안전 교육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해경들도 평소 구조 훈련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닐까. 비행기를 타면 안전 방송은 아예 듣지도 않고, 화재 훈련 때마다 투덜거리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세월호가 무리한 출항을 감행하고 과속까지 하게된건. 매일같이 "빨리빨리"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들 때문은 아닐까. 모두가 조금만 더 여유있게 살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리고 혹시 내가 이리도 분노했던 것은 '나는 잘못이 없다'는 마음 속 한켠의 안도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정부나 선장에게 책임을 전가해 나는 그 어떤 책임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세월호 사고를 지켜보며 미어졌던 내 가슴이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나도 사슬에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들과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3.14159265358979323846…
우리가 보통 3.14라고 부르는 파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 무의미한, 아니 무의미해 보이는 무한한 숫자들의 연속이다. 세월호에 대한 내 책임도 아마 저 소수점 한참 뒤에 있는 숫자 하나만큼 미미할지 모른다. 이 세상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파이의 크기 역시 딱 그만큼일지도.
하지만 우리가 가진 보잘것 없는 이 사슬 하나가 나비효과의 시작일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끔찍한 사고를 향해 쌓여가는 수많은 연쇄 사슬 가운데 대부분이, 누군가의 작은 노력으로 갈때까지 가지 않고 운좋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르는 것처럼.
줄리언 반스는 회한(Remorse)을 수치심이나 죄책감과는 다른. 그 둘보다 드물게 느끼지만 더욱 강렬하고. 더 복잡하게 응고된 원시적인 감정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제와서 어떻게 해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려서, 이미 너무 많은 피해가 입혀져 버려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그리고 '삶의 끝'이란 끝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의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직 젊다. 우리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열려 있다는 뜻이다. 파이와 같은 카오스의 세계에서. 내가 이루는 파이가 아무리 작고 미미하다 할지라도.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경기장 바깥에서 응원을 하고, 물통을 던져주는 것 뿐이라 할지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뛰쳐나갈 수 있도록. 나부터 바꿀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