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쉽게 사랑에 빠진다. 여자의 얼굴, 손, 팔, 다리, 목소리, 냄새 등등등등등. 시각, 청각, 후각 가리지 않고 24시간 반할 준비가 돼있다. 이쁜 여자를 한번만 쳐다보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아예 못 보거나 최소 두번은 쳐다보는게 '남'지상정. 이쁘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한 번, 정말 그렇구나 감탄하며 두 번.

 

생김새를 몰라도 반한다. 아니 몰라야 더 쉽게 반한다. '환상 속의 그대' 때문이다. 소설 속의 '그녀는' 어김없이 '(이쁜) 그녀는' 이 된다. 맛깔나게 글을 쓰는 그녀, 목소리가 톡톡 튀는 그녀, 뒷모습이 아름다운 그녀는 이미 얼굴도 이쁜걸로 머리 속에 기정사실화 돼있다. 아무리 상상력이 빈곤한 남자도 가능, 하다. 이쁜게 뭐라고 참. 괴롭다 나도.

 

여자는 좀 다른것 같다. 아무리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이 정도는 아니다. 섣불리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경계를 한다. 도도하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자야 어떻게든 씨앗을 퍼뜨리는게 장땡이지만, 여자는 아무나 붙잡았다간 낭패를 보았을테니.

 

 여자다 ㅎㅎㅎㅎㅎㅎ

"내가 믿기론, 사랑이란 여자의 입장에서 '능력있는 남자에게 빌붙어서 평생 공짜로 얻어먹고 싶은 마음'이고, 남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건강하게 낳아 양육해줄 젊고 싱싱한 자궁에 대한 열망'일 뿐이었다. 우울한 얘기지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인 것이다."

-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우리가 '사랑'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이 감정. 어찌나 강렬한지 털어내지 않고서는 못배기게 만들고, 글로 쓰든 노래를 하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게 만드는, 다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이 설레고 황홀한 기분. 딱히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딱히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신의 선물 혹은 저주.

 

허나 사랑의 밑바닥은, 그 시작은 정말 천명관이 써놓은 저게 다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내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호르몬이 슬쩍 씌워놓은 콩깍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콩깍지야말로 인류가 끝없이 번식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 아니겠는가. 어찌나 강력한지 아무리 우주선을 발사하니 뭐니 해도 원치않는 임신은 막지 못한다. 유한한 우리의 삶을 무한히 늘리는 법, 바로 생존을 위한 사랑이다.

 

 누가 봐도 이대호 딸, 누가 봐도 이운재 딸

 

이 때문에 '부모의 사랑' 역시 과대평가 된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내 유전자를 지닌 더 젊고 잠재력 있는 생명체를 보전함으로써, 어떻게든 살아남고 번식하도록 설계된 본능을 우리가 사랑이라고 하는건 아닌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도 결국은 다 '나' 잘되라고 하는 소리, <인터스텔라>의 아비 쿠퍼가 목숨을 걸고 우주선에 탄것도 딸내미 머피를 구하기 위해서, 아니 내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해서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며 그게 다가 아니라는걸 깨닫는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멀리 읍내까지 내복을 사러 나오는 장면. 자꾸 큰 사이즈로 넉넉하게 달라시길래 한창 자라는 증손주들 선물인갑다 했더니 (스포주의) 아… 오래전에 세살, 여섯살 먹고 죽은 자식들 주려고 사신거더라. 살아있을 때 내복 하나 못해준게 마음에 걸리신다면서. 할아버지께 저승길에 전해달라고 훌쩍 거리시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금 먹먹해진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中

 

예전에 '결혼은 아무나하고 해서 그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게  핵심'이라는 황상민 교수의 얘기를 듣고 그렇지 싶었다. 최소한 이론상. 실제론 특별한 사람을 만나 아무나가 되버리기 십상이니까. 김어준 말마따나 결혼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인 줄 안 사람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이 두 분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오신 것이 아닌가.

"난 열아홉 살 먹고, 안늙은이는 열네 살 먹고 만났어요."

"그저 일꾼인 줄 알았죠. 어머니가 동상들 보고

'너희는 아재라 해라' 해서 나도 '아재, 아재' 그랬죠."

"처제들이 여섯인데, 다 어리긴 했지만

우리 안늙은이가 제일 이쁜것 같더라구요. 흐하하하핳ㅎㅎ"

귀엽게 앙앙거리는 할머니, 무심한 듯 애정 듬뿍 담긴 할아버지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님은 결국 강을 건너버렸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산소 곁에서 할아버지 옷과 먼저 떠난 자식들 내복을 태운다. 인터스텔라에서 저 멀리 우주 너머 딸 머피에게 전해진 메시지 S.T.A.Y. 처럼 할머니의 애절한 마음 또한 전해지겠지. 할머니가 훌쩍이는 것인지 관객들이 훌쩍이는 것인지 내가 훌쩍이는 것인지 먹먹한 가슴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인생이란)

"졸라 어려운 방정식을 풀었더니 답이 사랑이더라."

- 인터스텔라 왓차 한줄평

 

인터스텔라의 Endurance호처럼

참고 또 참으며 버티는게 인생이지만,

두 영화가 주는 답은 간단했다.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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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1.

매달 두세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혼자 읽는 책 한두권, 함께 읽는 책 한두권. 예전엔 한권만 붙잡고 읽었다면 요즘엔 여러권을 번갈아 읽는다. 틈틈이 읽는 책은 출근길이나 점심 시간에, 시간이 필요한 책은 자기 전이나 주말에, 감수성 돋는 시집은 볼일 볼때 읽는다 (끙). 리듬감 좋은 책은 소리내어 읽는다. 눈으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읽어주면 최소 두배로 좋다.


다 읽고 나면 책의 일부를 원노트에 옮겨 적는다. 귀찮은 작업이지만 필사를 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감상문을 쓴다. 읽은 직후엔 생각이 엉켜 있어 오히려 쓰기가 힘들다. 읽기가 음식 맛을 보는 것이라면 쓰기는 온몸으로 취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멀찍이 관찰한 타인을, 쓰면서 한글자 한글자 흠뻑 받아들인다. 그렇게 나를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단단해진다.


2.

책을 고르는 기준은 있는듯 없다. 제목을 보고 궁금하면 읽는다. 이미 아는 내용이라 생각되면 시작조차 않는다. 물론 제목이 다가 아니기에 '안다'는건 내 착각이다. 그럼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책, 서문만 읽었는데 다 읽은듯한 책은 손에 잡히질 않는다. 보일랑말랑, 감질나야 한다. 겉모습에 약한 나다. 책 표지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것보단 단순한게 좋다.


어떤 책이든 시작이 어렵다. 그때 포기하면 좋은 책을 만나기 힘들다. 많이, 성급히 보기보단 조금, 꼼꼼히 읽으려 한다. 어렴풋하게 느끼던걸 콕 찝어주는, 내 마음을 읽는듯한 책을 만나면 반갑다. 확신에 찬, 야심으로 가득찬 책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책이 좋다. 미처 몰랐던 세상을 비춰주는 책에 설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전이 있는 책에 끌린다.


2-1.

(둘째 단락은 사실 여자 이야기다. '책'을 '여자'로 바꿔 읽어보자.)


3.

변화를 싫어한다. 새로운 것을 보면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여행을 가면 일단 긴장부터 한다. 그런 나에게 책은, 바깥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안전한 창구이다. 읽다가 감당 못하겠으면 덮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로 책을 집어든다.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단문의 세상이다. 긴 글은 환영받지 못한다. 완전한 문장이 아닌 해시태그로 말한다. 갈수록 호흡이 짧아진다. 시간 때우기용 간식거리만 찾는다. 사고하지 않는다. 내 힘으로 책장을 넘겨야 하는 능동적인 즐거움보단, 저절로 화면이 넘어가는 수동적인 즐거움이 편하다. 쉬운 사랑을 좇는 후자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자가 주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 또한 맛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란걸 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걸 한다. 선물할 일이 생기면 책 선물을 하고, 선물할 일이 없어도 책 선물을 한다. 책날개에 쓴 짧은 메모와 함께. 책을 읽고 나면 꼭 이렇게 티를 낸다. 당신도 같이 읽자는 소리다. 즐책 (즐거운 책읽기) 모임도 계속한다. 요즘 이만큼 충만한 시간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간다는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그 '맛'을 아는 이들이 하나둘 늘때마다 기쁘다.


책을 읽는다.


이다혜 말대로 '그저 좋아서' 읽는다. 우리가 죽기 전에 읽을 수 있는 책은 끽해야 천권이다. 것도 시간 많고 눈 밝은 총각일 때나 이야기다. 더 많은 이들이 읽고 쓰길 바란다. 꼭 글일 필요도 없다. 음악도 좋고 그림도 좋다. 남의 이야기 말고 '당신'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시간이 쌓일 때, 우리네 삶 또한 풍성해지리라 믿는다. 이야기가 없으면 삶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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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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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내게 '설'은 홍어다.

 

큰집 대문을 넘어서는 순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보지 않고도 믿을 수 밖에 없는 홍어의 미친 존재감을. 집안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는 홍어 삭힌내에 내 몸 구석구석의 세포가 눈을 뜬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질 수 없는 너의 향기. 설을 쇤지 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너를 마주한다. 애초에 회를 즐기지 않는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너. 이미 네 체취에 흠뻑 젖어있건만, 밥상 위에 적나라하게 발려있는 넌 또다른 얘기다. 도대체 어떤 위인이 날 것으로도 모자라 일부러 썩, 아니 삭혀먹기 시작한 것인지.

 

다들 덥썩덥썩 집어먹지만 내 젓가락만은 너를 피해간다. 이런 나를 내버려 두는 법이 없는 아부지. 사람들이 좋아하는덴 이유가 있는 법이라며 굳이 (강)권한다. 절레절레 하다가도 동생이 먹기 시작하면 (오 신이시여..) 결국 먹을 수 밖에 없다. 숨을 참고 초장에 듬뿍, 아주 듬뿍 담가 먹는다.

 

홍어는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걸까.

 

2.

내겐 종교가 홍어 같았다. 무슨 맛인지 영 알 수가 없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할머니 덕에 유아세례를 받았고, 초딩 3년 때는 인기 만화 '쥬라기 월드컵'까지 포기해가며 첫영성체를 받았지만, 머리통이 굵어지면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세상은 모순 투성이인데 신에게선 답을 찾지 못했다.

 

난 그저 부모 덕에 이렇게 편하게 사는데, 삶 자체가 고통인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약자를 억압하는 이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용기내어 정의를 말하는 이들은 보복을 당했다. 힘 있는 자들이 세워놓은 프레임 안에서 아둥바둥 사는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런 세상을 방치하는 신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왜 천주교를 믿느냐고 물어오면 뭐라 답할 자신이 없었다. 홍어는 명절 때마다 한점씩 집어주는 아부지라도 있지, 성당은 딱히 나오라는 사람도 없었다. 성경은 따분함 그 자체였다. 거기 나오는 이야기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의지하는게 싫었다. 약해 보이기 싫었다.

 

3.

"당신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원하지 않는 거죠. 당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줄 이야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라면 보다 높이, 멀리 그리고 다르게 보지 않아도 되니까. 당신들은 무덤덤한 이야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붙박이장 같은 이야기, 메마르고 부풀리지 않는 사실적인 이야기를."

 

<파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며 뜨끔했다. 애초에 난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구나. 속지 않겠다고 팔짱을 낀채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구나. 세상은 어쩌면 이해하기 전에 믿는게 먼저일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는게 아니라, 사랑하면 알게 된다고 썼구나.

 

홍어를 맛있게 먹기 위해선 일단 홍어가 맛있다고 믿어야 했다. 여전히 홍어'만' 먹는건 내키지 않지만 이제는 안다.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의 궁합에 홍어가 껴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아니 그래야만 삼합이라는 신묘한 삼위일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으면 평생 몰랐을 즐거움을 말이다.

 

내가 신을 믿는건 이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한번 믿어보는 것이다. '파이'라는 무의미한, 아니 무의미해 보이는 숫자의 나열에서 애써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내 하찮은 삶이, 내 보잘것없는 몸부림이 무의미하지 않길 바라며.

 

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원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

Believe the Unbelievable."

 

그것이 인생은 아닐까.

그것이 사랑은 아닐까.

 

평화를 빕니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뭔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뭔가를 덧붙이는 거예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 아닌가요?"

 

 - 파이 이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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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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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는 쉽게 사랑에 쉽게 빠진다,고 썼지만 그게 꼭 여자에 국한되는건 아니다.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요.) 나와 비슷한 남자들에겐 동질감에 끌리고, 나와 다른 남자들에겐 동경심에 끌린다 (그렇다고 남자는 다 좋다는 소리는 아닌데..). 대학 동창 오건호가 전자라면, 김준홍은 후자다. 빨간책방 이동진이 전자라면, 김중혁은 후자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김중혁을 처음 들었다. 소설가의 글이 아닌 말을, 이렇게 가까이서 듣긴 처음이었다. 쑥쓰러운듯 투박하면서도 서글서글한 목소리에 끌렸다. 그의 시시껄렁한 농담이, 그가 하는 이야기가 그저 좋았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그의 글이 궁금해졌다. 준백수일줄 알았더니 의외로 잘나가는 작가였다.

 

<뭐라도 되겠지>를 집어 들었다. 실망할까봐 크게 기대 안하려 했는데, 그가 작업한 표지부터 쏙 마음에 든다. 표지 전문가 김중혁스럽다. 책을 뒤집어보니 추천사마저 재밌다. 과연 김중혁 지인스럽다. 책을 펼쳐보니 시작부터 배꼽 잡는다. 내가 알던 김중혁이 요기잉네, 낄낄대며 책장을 넘긴다. 들뜬 기분으로 책을 덮는다. 아껴 읽어야지.

 

2.

난 절제왕이다. 본능에 충실하질 못한다. 감정에 휘둘리면서도 머리로 산다. 생각이 많을 수밖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뭐라도 되겠지'가 아니라 '뭐라도 해야지'다. 쓸데없는거, 잉여로운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무의미함을 견디지 못한다. 사는게 유의미하다 믿고 싶어 결국 유신론자가 되었다. 뭐가 불편해도 불편한 줄 모르고, 알아도 잘 참는다.

 

이런 나라서, 낭만파에 대책없이 끌린다. 남자든 여자든. 야망도 욕심도 계획도 없이 본능에 충실한 하루살이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유유자적하며 산다. 마치 인생을 허비해도,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다는듯. 한번 털고 일어서면 미련도 없다. 나름의 고충은 있겠으나 별 걱정도 안하고 티도 안난다. 뭐라도 되겠지라니, 어찌 그리 태평한지.

 

그런 김중혁이 좋아서, 애써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본다. 일단 잘생겼군 (콧구멍?). 키가 크고 수영을 좋아해. 말도 좋지만 글은 더 좋지. 읽고 쓰는걸 즐기고. 쑥쓰러움을 타는 편이야.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이해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믿지. 그럼에도 이해하려 용을 쓰네. 사는게 무의미하지 않길 바라. 농담을 좋아하고 농담을 좇을 수밖에.

 

3.

"농담으로 가득하지만 때로는 진지한 책. 술렁술렁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잠시 멈추게 되는 책. 글과 글 사이에 재미난 카툰이 들어 있어서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책. 다 읽고 나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책. 긍정이 온몸에 녹아들어서 아무리 괴로운 일이 닥쳐도 어쩔 수 없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끄덕끄덕, 삶을 낙관하게 되는 책"을 쓰고 싶었다는 김중혁.

 

나와 다른줄 알았더니 비슷하다. 나와 비슷한줄 알았더니 다르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묘미, <뭐라도 되겠지>엔 그런 재미가 가득하다. 소설가인 그에겐 미안하지만, 대놓고 얘기하는 그의 산문이 내겐 더 와닿는다.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무거울 수 있는 독특한 책이다. 포스트잇 테잎이 빽빽히 붙어간다. 곁에 두고 읽고 또 읽으려다 좋아하는 후배 줘버렸다. 널리 이롭게 퍼뜨려야 하는 책이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렸을 때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않은 채 그냥 지냈고, 그렇게 시간이 쌓였고, 서로를 이해하는 대신 함께 보낸 시간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거창한 이념보다, 사소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이 세상을 천천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

글 멋있다는 말보다, 글 웃기다는 말이 소중한 사람.

 

그런 그가 따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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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성당 친구들과 축구를 시작한지도 벌써 여러 해다. 몇몇이 재미로 공을 차던 것이, SAKA라는 이름을 지은 뒤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다. 내 실력은 여전하지만  - 턱없이 느린 발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발재간, 그리고 1분이면 완전 연소되는 '시리얼 체력'까지 - 있는 힘껏 달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땡큐다. 경기중 대부분의 시간을 입으로 뛰지만 그만큼 필드 안에서 일분 일초가 소중하다.

 

이런 나도 골을 넣은 적이 한번 있다. 역습 찬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5,6미터 좌측에 팀 동료가 수비수 하나를 달고 공을 몰고 있고 나 역시 나란히 미친듯이 골대를 향해 뛰고 있는 상황. 평소 같으면 두려운 마음에 '공이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동료가 그냥 끝까지 처리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을텐데, 그날 따라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압도했다.

 

골대는 점점 다가오는데 팀 동료는 수비수에 가려 보이질 않고. 어떡하지? 하는 와중에 공이 수비수를 넘어 나에게로 낮게 쫙 깔려온다. 두렵다. 어디로 차야겠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다. 되는대로 발을 뻗는다. 공이 왼쪽 골대 구석으로 붕 떠서 날아간다. 골대에 맞는다. 헐.. 굴절된 공이 반대편으로 빨려 들어간다. 동료들과 괴성을 지르며 기쁨을 나누는 그 순간을 내 글재주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 골에 기여한 것이라곤 참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공이 내 발에 닿기 전에 팀 동료의 완벽한 드리블과 어시스트가 있었고, 그 전에 상대팀에게서 공을 빼앗은 또다른 동료가 있었으며, 그보다 전에 상대팀이 패스 미스를 하게 만든 압박을 포함해, 경기 시작 순간부터 계속된 열한명의 끝없는 움직임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의 외침이 상대편 골대를 두드리고 두들겨 만든 골이니 말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쓴 줄리언 반스는 이를 "Chain of Individual Responsibilities"라고 한다.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된 배경엔 어떤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각자의 책임이라는 연쇄 사슬'이 이어져 있다고 본 것이다. 맥주잔 안에 불안하게 떠 있는 소주잔을 모두가 조금씩 채워가듯. 누군가 (때론 의도치않게) 시작한 그 사슬을, 또다른 누군가가 이어서 연결하고, 또다른 누군가가 계속해서 연결해 나간다. 결국 소주잔이 가라앉으면 마지막 사람에게 벌주를 몰아주듯, 우리는 마지막 사슬을 채운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손가락질한다.

 

 

세월호가 침몰했다.

 

수많은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이 숨졌다.

정부는 사고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인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것인지 헛발질을 거듭했다.

청와대는 "재난상황 콘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 했다.

굳이 사고 현장까지 와서 선장을 살인자로 지목했다.

"잘못되면 이분들이 물러나야"한다고 책임을 넘겼다.

안행부는 해상 재난은 잘 모르겠다며 책임을 미뤘다.

해수부는 눈치를 보느라 구조에 모든 것을 쏟지 못했다.

해경은 눈앞에 보이는 승객들만 소극적으로 구조했다.

선장과 선원들 역시 그들과 함께 먼저 탈출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선실 안에서 한없이 기다렸다.

안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이 거듭 나왔기 때문이다.

선장이 그러한 지시를 내렸고 누군가 그대로 전달했다.

선장은 배의 문제를 뒤늦게서야 관제소에 신고했다.

청해진해운은 선장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애초에 사고가 나지 말았어야 했다.

 

세월호는 위험한 지름길로 가면서 과속 운항까지 했다.

안개 속에 아무도 항구서 떠나지 않는데 홀로 출항했다.

배에 싣은 화물을 제대로 결박하지도 않았다.

적정 화물적재량의 무려 3배에 가까운 화물을 싣었다.

그 전에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를 무리하게 증축했다.

기존 세월호 선장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묵살됐다.

간부가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지만 처리되지 않았다.

복원력 검사에 탈락했지만 곧바로 쉽게 재통과했다.

일본서 18년 운행뒤 퇴역했던 배가 한국에 재취역했다.

이명박 정부가 선박 연령 제한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해수부는 청해진해운에 제주 항로 20년 독점권을 줬다.

유병언 전 회장은 재산을 빼돌려 청해진해운을 세웠다.

.

.

.

이 긴긴 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며 부질없이 드는 생각들.

이 중 단 하나. 단 하나의 사슬이라도 끊어졌었더라면.

그리고 어쩌면 나도 이 사슬 어딘가에 엮여있었던 건 아닐까.

 

혹시 아이들이 그렇게 불안에 떨면서도 선실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건, 위에서 이끌어 주는 가이드라인 밖으로 나가는게 더 두려웠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 밖으로 섣불리 한걸음 내딛었다가 넘어지고 혼날까봐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닐까. 여동생의 조그만 실수에도 심하게 다그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동생에게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줬다면, 우리가 서로의 실수에 조금만 더 관대했다면 달라졌을까.

 

혹시 배의 선장과 선원들도 제대로 된 안전 교육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해경들도 평소 구조 훈련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닐까. 비행기를 타면 안전 방송은 아예 듣지도 않고, 화재 훈련 때마다 투덜거리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세월호가 무리한 출항을 감행하고 과속까지 하게된건. 매일같이 "빨리빨리"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들 때문은 아닐까. 모두가 조금만 더 여유있게 살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리고 혹시 내가 이리도 분노했던 것은 '나는 잘못이 없다'는 마음 속 한켠의 안도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정부나 선장에게 책임을 전가해 나는 그 어떤 책임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세월호 사고를 지켜보며 미어졌던 내 가슴이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나도 사슬에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들과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3.14159265358979323846…

 

우리가 보통 3.14라고 부르는 파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 무의미한, 아니 무의미해 보이는 무한한 숫자들의 연속이다. 세월호에 대한 내 책임도 아마 저 소수점 한참 뒤에 있는 숫자 하나만큼 미미할지 모른다. 이 세상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파이의 크기 역시 딱 그만큼일지도.

 

하지만 우리가 가진 보잘것 없는 이 사슬 하나가 나비효과의 시작일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끔찍한 사고를 향해 쌓여가는 수많은 연쇄 사슬 가운데 대부분이, 누군가의 작은 노력으로 갈때까지 가지 않고 운좋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르는 것처럼.

 

줄리언 반스는 회한(Remorse)을 수치심이나 죄책감과는 다른. 그 둘보다 드물게 느끼지만 더욱 강렬하고. 더 복잡하게 응고된 원시적인 감정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제와서 어떻게 해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려서, 이미 너무 많은 피해가 입혀져 버려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그리고 '삶의 끝'이란 끝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의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직 젊다. 우리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열려 있다는 뜻이다. 파이와 같은 카오스의 세계에서. 내가 이루는 파이가 아무리 작고 미미하다 할지라도.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경기장 바깥에서 응원을 하고, 물통을 던져주는 것 뿐이라 할지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뛰쳐나갈 수 있도록. 나부터 바꿀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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