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1.

매달 두세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혼자 읽는 책 한두권, 함께 읽는 책 한두권. 예전엔 한권만 붙잡고 읽었다면 요즘엔 여러권을 번갈아 읽는다. 틈틈이 읽는 책은 출근길이나 점심 시간에, 시간이 필요한 책은 자기 전이나 주말에, 감수성 돋는 시집은 볼일 볼때 읽는다 (끙). 리듬감 좋은 책은 소리내어 읽는다. 눈으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읽어주면 최소 두배로 좋다.


다 읽고 나면 책의 일부를 원노트에 옮겨 적는다. 귀찮은 작업이지만 필사를 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감상문을 쓴다. 읽은 직후엔 생각이 엉켜 있어 오히려 쓰기가 힘들다. 읽기가 음식 맛을 보는 것이라면 쓰기는 온몸으로 취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멀찍이 관찰한 타인을, 쓰면서 한글자 한글자 흠뻑 받아들인다. 그렇게 나를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단단해진다.


2.

책을 고르는 기준은 있는듯 없다. 제목을 보고 궁금하면 읽는다. 이미 아는 내용이라 생각되면 시작조차 않는다. 물론 제목이 다가 아니기에 '안다'는건 내 착각이다. 그럼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책, 서문만 읽었는데 다 읽은듯한 책은 손에 잡히질 않는다. 보일랑말랑, 감질나야 한다. 겉모습에 약한 나다. 책 표지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것보단 단순한게 좋다.


어떤 책이든 시작이 어렵다. 그때 포기하면 좋은 책을 만나기 힘들다. 많이, 성급히 보기보단 조금, 꼼꼼히 읽으려 한다. 어렴풋하게 느끼던걸 콕 찝어주는, 내 마음을 읽는듯한 책을 만나면 반갑다. 확신에 찬, 야심으로 가득찬 책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책이 좋다. 미처 몰랐던 세상을 비춰주는 책에 설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전이 있는 책에 끌린다.


2-1.

(둘째 단락은 사실 여자 이야기다. '책'을 '여자'로 바꿔 읽어보자.)


3.

변화를 싫어한다. 새로운 것을 보면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여행을 가면 일단 긴장부터 한다. 그런 나에게 책은, 바깥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안전한 창구이다. 읽다가 감당 못하겠으면 덮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로 책을 집어든다.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단문의 세상이다. 긴 글은 환영받지 못한다. 완전한 문장이 아닌 해시태그로 말한다. 갈수록 호흡이 짧아진다. 시간 때우기용 간식거리만 찾는다. 사고하지 않는다. 내 힘으로 책장을 넘겨야 하는 능동적인 즐거움보단, 저절로 화면이 넘어가는 수동적인 즐거움이 편하다. 쉬운 사랑을 좇는 후자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자가 주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 또한 맛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란걸 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걸 한다. 선물할 일이 생기면 책 선물을 하고, 선물할 일이 없어도 책 선물을 한다. 책날개에 쓴 짧은 메모와 함께. 책을 읽고 나면 꼭 이렇게 티를 낸다. 당신도 같이 읽자는 소리다. 즐책 (즐거운 책읽기) 모임도 계속한다. 요즘 이만큼 충만한 시간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간다는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그 '맛'을 아는 이들이 하나둘 늘때마다 기쁘다.


책을 읽는다.


이다혜 말대로 '그저 좋아서' 읽는다. 우리가 죽기 전에 읽을 수 있는 책은 끽해야 천권이다. 것도 시간 많고 눈 밝은 총각일 때나 이야기다. 더 많은 이들이 읽고 쓰길 바란다. 꼭 글일 필요도 없다. 음악도 좋고 그림도 좋다. 남의 이야기 말고 '당신'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시간이 쌓일 때, 우리네 삶 또한 풍성해지리라 믿는다. 이야기가 없으면 삶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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