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쉽게 사랑에 빠진다. 여자의 얼굴, 손, 팔, 다리, 목소리, 냄새 등등등등등. 시각, 청각, 후각 가리지 않고 24시간 반할 준비가 돼있다. 이쁜 여자를 한번만 쳐다보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아예 못 보거나 최소 두번은 쳐다보는게 '남'지상정. 이쁘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한 번, 정말 그렇구나 감탄하며 두 번.
생김새를 몰라도 반한다. 아니 몰라야 더 쉽게 반한다. '환상 속의 그대' 때문이다. 소설 속의 '그녀는' 어김없이 '(이쁜) 그녀는' 이 된다. 맛깔나게 글을 쓰는 그녀, 목소리가 톡톡 튀는 그녀, 뒷모습이 아름다운 그녀는 이미 얼굴도 이쁜걸로 머리 속에 기정사실화 돼있다. 아무리 상상력이 빈곤한 남자도 가능, 하다. 이쁜게 뭐라고 참. 괴롭다 나도.
여자는 좀 다른것 같다. 아무리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이 정도는 아니다. 섣불리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경계를 한다. 도도하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자야 어떻게든 씨앗을 퍼뜨리는게 장땡이지만, 여자는 아무나 붙잡았다간 낭패를 보았을테니.

여자다 ㅎㅎㅎㅎㅎㅎ
"내가 믿기론, 사랑이란 여자의 입장에서 '능력있는 남자에게 빌붙어서 평생 공짜로 얻어먹고 싶은 마음'이고, 남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건강하게 낳아 양육해줄 젊고 싱싱한 자궁에 대한 열망'일 뿐이었다. 우울한 얘기지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인 것이다."
-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우리가 '사랑'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이 감정. 어찌나 강렬한지 털어내지 않고서는 못배기게 만들고, 글로 쓰든 노래를 하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게 만드는, 다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이 설레고 황홀한 기분. 딱히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딱히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신의 선물 혹은 저주.
허나 사랑의 밑바닥은, 그 시작은 정말 천명관이 써놓은 저게 다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내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호르몬이 슬쩍 씌워놓은 콩깍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콩깍지야말로 인류가 끝없이 번식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 아니겠는가. 어찌나 강력한지 아무리 우주선을 발사하니 뭐니 해도 원치않는 임신은 막지 못한다. 유한한 우리의 삶을 무한히 늘리는 법, 바로 생존을 위한 사랑이다.

누가 봐도 이대호 딸, 누가 봐도 이운재 딸
이 때문에 '부모의 사랑' 역시 과대평가 된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내 유전자를 지닌 더 젊고 잠재력 있는 생명체를 보전함으로써, 어떻게든 살아남고 번식하도록 설계된 본능을 우리가 사랑이라고 하는건 아닌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도 결국은 다 '나' 잘되라고 하는 소리, <인터스텔라>의 아비 쿠퍼가 목숨을 걸고 우주선에 탄것도 딸내미 머피를 구하기 위해서, 아니 내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해서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며 그게 다가 아니라는걸 깨닫는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멀리 읍내까지 내복을 사러 나오는 장면. 자꾸 큰 사이즈로 넉넉하게 달라시길래 한창 자라는 증손주들 선물인갑다 했더니 (스포주의) 아… 오래전에 세살, 여섯살 먹고 죽은 자식들 주려고 사신거더라. 살아있을 때 내복 하나 못해준게 마음에 걸리신다면서. 할아버지께 저승길에 전해달라고 훌쩍 거리시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금 먹먹해진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中
예전에 '결혼은 아무나하고 해서 그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게 핵심'이라는 황상민 교수의 얘기를 듣고 그렇지 싶었다. 최소한 이론상. 실제론 특별한 사람을 만나 아무나가 되버리기 십상이니까. 김어준 말마따나 결혼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인 줄 안 사람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이 두 분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오신 것이 아닌가.
"난 열아홉 살 먹고, 안늙은이는 열네 살 먹고 만났어요."
"그저 일꾼인 줄 알았죠. 어머니가 동상들 보고
'너희는 아재라 해라' 해서 나도 '아재, 아재' 그랬죠."
"처제들이 여섯인데, 다 어리긴 했지만
우리 안늙은이가 제일 이쁜것 같더라구요. 흐하하하핳ㅎㅎ"
귀엽게 앙앙거리는 할머니, 무심한 듯 애정 듬뿍 담긴 할아버지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님은 결국 강을 건너버렸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산소 곁에서 할아버지 옷과 먼저 떠난 자식들 내복을 태운다. 인터스텔라에서 저 멀리 우주 너머 딸 머피에게 전해진 메시지 S.T.A.Y. 처럼 할머니의 애절한 마음 또한 전해지겠지. 할머니가 훌쩍이는 것인지 관객들이 훌쩍이는 것인지 내가 훌쩍이는 것인지 먹먹한 가슴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인생이란)
"졸라 어려운 방정식을 풀었더니 답이 사랑이더라."
- 인터스텔라 왓차 한줄평
인터스텔라의 Endurance호처럼
참고 또 참으며 버티는게 인생이지만,
두 영화가 주는 답은 간단했다.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