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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평점 :
1.
남자는 쉽게 사랑에 쉽게 빠진다,고 썼지만 그게 꼭 여자에 국한되는건 아니다.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요.) 나와 비슷한 남자들에겐 동질감에 끌리고, 나와 다른 남자들에겐 동경심에 끌린다 (그렇다고 남자는 다 좋다는 소리는 아닌데..). 대학 동창 오건호가 전자라면, 김준홍은 후자다. 빨간책방 이동진이 전자라면, 김중혁은 후자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김중혁을 처음 들었다. 소설가의 글이 아닌 말을, 이렇게 가까이서 듣긴 처음이었다. 쑥쓰러운듯 투박하면서도 서글서글한 목소리에 끌렸다. 그의 시시껄렁한 농담이, 그가 하는 이야기가 그저 좋았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그의 글이 궁금해졌다. 준백수일줄 알았더니 의외로 잘나가는 작가였다.
<뭐라도 되겠지>를 집어 들었다. 실망할까봐 크게 기대 안하려 했는데, 그가 작업한 표지부터 쏙 마음에 든다. 표지 전문가 김중혁스럽다. 책을 뒤집어보니 추천사마저 재밌다. 과연 김중혁 지인스럽다. 책을 펼쳐보니 시작부터 배꼽 잡는다. 내가 알던 김중혁이 요기잉네, 낄낄대며 책장을 넘긴다. 들뜬 기분으로 책을 덮는다. 아껴 읽어야지.
2.
난 절제왕이다. 본능에 충실하질 못한다. 감정에 휘둘리면서도 머리로 산다. 생각이 많을 수밖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뭐라도 되겠지'가 아니라 '뭐라도 해야지'다. 쓸데없는거, 잉여로운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무의미함을 견디지 못한다. 사는게 유의미하다 믿고 싶어 결국 유신론자가 되었다. 뭐가 불편해도 불편한 줄 모르고, 알아도 잘 참는다.
이런 나라서, 낭만파에 대책없이 끌린다. 남자든 여자든. 야망도 욕심도 계획도 없이 본능에 충실한 하루살이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유유자적하며 산다. 마치 인생을 허비해도,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다는듯. 한번 털고 일어서면 미련도 없다. 나름의 고충은 있겠으나 별 걱정도 안하고 티도 안난다. 뭐라도 되겠지라니, 어찌 그리 태평한지.
그런 김중혁이 좋아서, 애써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본다. 일단 잘생겼군 (콧구멍?). 키가 크고 수영을 좋아해. 말도 좋지만 글은 더 좋지. 읽고 쓰는걸 즐기고. 쑥쓰러움을 타는 편이야.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이해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믿지. 그럼에도 이해하려 용을 쓰네. 사는게 무의미하지 않길 바라. 농담을 좋아하고 농담을 좇을 수밖에.
3.
"농담으로 가득하지만 때로는 진지한 책. 술렁술렁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잠시 멈추게 되는 책. 글과 글 사이에 재미난 카툰이 들어 있어서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책. 다 읽고 나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책. 긍정이 온몸에 녹아들어서 아무리 괴로운 일이 닥쳐도 어쩔 수 없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끄덕끄덕, 삶을 낙관하게 되는 책"을 쓰고 싶었다는 김중혁.
나와 다른줄 알았더니 비슷하다. 나와 비슷한줄 알았더니 다르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묘미, <뭐라도 되겠지>엔 그런 재미가 가득하다. 소설가인 그에겐 미안하지만, 대놓고 얘기하는 그의 산문이 내겐 더 와닿는다.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무거울 수 있는 독특한 책이다. 포스트잇 테잎이 빽빽히 붙어간다. 곁에 두고 읽고 또 읽으려다 좋아하는 후배 줘버렸다. 널리 이롭게 퍼뜨려야 하는 책이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렸을 때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않은 채 그냥 지냈고, 그렇게 시간이 쌓였고, 서로를 이해하는 대신 함께 보낸 시간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거창한 이념보다, 사소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이 세상을 천천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
글 멋있다는 말보다, 글 웃기다는 말이 소중한 사람.
그런 그가 따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