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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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놓고도 한동안 펼치치 못한 책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미뤄둔 책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읽은 책

읽다 보면 숨이 가빠지는 책
목이 메이고 심장이 뜨거워지는 책
왼쪽 가슴이 계속해서 아파오는 책

읽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책
이렇기 쉽게 타이핑하고 있는 내가
산다는 게 염치없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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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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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냐는 질문에, '지치고 싶지 않다'는 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쉽게 피곤해질 때마다 지겹기도 하고, 다른 초능력들은 너무 '쎄서' 사는게 무의미해질 것만 같으니까. "쇼미더머니"면 몰라도 "파워오버웰밍" 쓰고 하는 스타는 정말이지 재미 없으니까.

정세랑 작가의 <재인, 재욱, 재훈>에도 '귀여운' 초능력을 가진 삼남매가 등장한다. 서로를 따스하게 보듬어 주는 것도, 그렇다고 사이가 딱히 나쁜 것도 아닌, 흔하디 흔한 삼남매가 어느날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생긴 초능력으로 각자의 주변을 구하는 이야기다.

레토 슈나이더의 <매드 사이언스 북>을 보면 '나쁜 사마리아인' 실험 이야기가 나온다. 프린스턴 대학 신학생들을 세미나 발표자로 참석케 하고, 건물 A에서 건물 B로 가는 길에 아픈 연기자를 배치해 놓은 것이다. 어떤 요인이 그들을 착한, 혹은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만들었을까?

인성? 신앙심? 학교 성적? 세미나 내용? 신학교 재학 기간? 아니다. 시간이 많은 학생, 발표 시간 전에 여유 있게 출발한 학생일수록 도움을 줬다. 너무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결과에 '띵' 했던 기억이 난다. 양보라곤 없는 내 출근길 운전도 생각났다.

작가는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우연, 아주 조그만 초능력, 평범하고 작은 친절, 자주 마주치는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헬조선이라는 거북한 단어가 유행하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바쁨에 지지 않는 '미미한' 서로가 아닐런지.

밝고 가벼워 몸에 좋은 간식 같은 이 책 추천해 드립니다.

ps1. 정세랑 작가. 편집자 출신이다. 많이 읽다 보니 쓰게 되었다고 한다. 방송에 나와 긴장한 탓인지 조심스러운 듯 어수룩한 말투가 기억에 남는다. 타고난 '밝음'을 감출 수 없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저는 농담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동년배라 더욱 반갑고 응원하고 싶은 84년생 작가.

ps2. 노벨라. 정의를 찾아보니 A short novel or long short story라고 나온다. 짧은 소설 혹은 긴 단편이라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정의. 이 노벨라 시리즈를 기획한 은행나무 출판사는 "단편의 짜릿함, 장편의 여운"으로 소개한다. 작은 판형에 150 페이지 정도의 부담없는 분량도 좋지만, 표지가 하나같이 예뻐서 소장 욕심이 없는 나도 전부 구입해서 집에 두고 싶을 정도이다.

이 책 표지 역시 귀염귀염이 잔뜩 묻어 있는데, 각 삼남매의 초능력과 관련된 손톱깎이, 열쇠, 레이저 포인터가 앙증맞게 그려져 있고 "재인, 재욱, 재훈" 글씨 안에 파란 큐빅 같은 게 촘촘히 박혀 있다. 이 세상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덧없고 하찮지만 아주 가끔씩 빛나기도 하는 우리들을 그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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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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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생 결혼식날 아침. 그래도 동생 결혼식이라고 목욕탕까지 가서 때빼고 광내다 보니 준비가 늦어졌다. 친척들을 태운 아부지 차가 앞장 서고, 여동생을 태운 나는 그 뒤를 바짝 쫓아간다. 마음은 급한데 집 앞 사거리 신호는 왜 이리 안떨어지는지.. 빨간 불만 한없이 쳐다보고 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전진하는 아부지 차량. 의아해 할 새도 없이 '쾅' 하고 가만히 서 있는 택시를 들이받고 만다.

 

'아... 하필 오늘.'

 

아무리 가벼운 접촉 사고라도 사고는 사고. 조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진다. 곧 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가시는 아부지. 기사님이 창문을 내리지 않는지 밖에서 직접 문을 여신다. 그러곤 급한 우리 사정을 얘기하신듯 곧 아부지 차로 돌아와 명함을 찾으신다. 그사이 택시에서 내려 아부지 차로 걸어오는 기사님. 잔뜩 찡그린 표정이다. 하필이면 받은게 택시라니..

 

아부지께서 서둘러 명함을 건네고 출발하려는데 기사님이 차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결국 차문은 억지로 닫혔지만 이젠 아예 차 앞을 가로막는 기사님. 아부지는 아부지대로 차를 슬슬 밀고가는 바람에 본네트에 살짝 걸쳐진채 속수무책으로 떠밀린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결국 갓길에 차를 세운뒤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출발한다. 나중에 어찌될지 찜찜하지만 일단은 결혼식장에 가야했다.

 

2.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들어간다. 그 중 나와 호연으로 맺어진 사람은 호인, 악연으로 엮인 사람은 악인이 된다. 우리의 마음은 잉여 활동을 하지 않는다. 힘들고 위급한 상황일수록. 굳이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내가 익숙해져 있는 사고 방식으로 상대방을 재단한다. 그렇게 '악연'을 '악인'으로 만들고,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토로하는게 훨씬 간편하다. 

 

문제는, 어떻게 그럴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할만한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 무슨 일이든지 다 벌어진다. 시간에 쫓겨서, 일에 치이고 잠을 못자서, 피곤하고 배고파서,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에 지친 몸과 두려운 마음이 다른 누군가의 지친 몸과 두려운 마음을 만나면 무슨 일이든지 다 벌어진다. 힘들때 약해지고, 악해진 인간들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서로 상처주고 상처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다. 믿기 위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주고 받는 것이라면 먼저 주고자 한다. 섣부른 재단이 아닌 질문을 하고자 한다. 몰상식해 보이는 누군가의 행동이, 그의 인생을 죽 펼쳐놓고 보면 그럴만 해진다. 대화와 토론도 결국 상대방이 살아온 과정을 묻는 것이다. 그것이 때론 답답하고 더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할지라도,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사고는 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꼭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다. 그러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더 깊이 알아가는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악연을 악인으로 만들지 않고, 악연마저 호연으로 뒤집을 수 있는 호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3.

"절대적인 호인과 악인은 없다. 

찰나의 호연과 악연이 있을 뿐이다."

 자주 곱씹게 되는 '꽃보다' 김현철 선생의 말이다. 평소 어렴풋이 느껴오던 것을, 아니 그렇게 믿고 싶던 것을 명쾌하게 정리해주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아부지께 여쭤봤다. 사고난거 어떻게 되셨냐고. 경찰서에 다녀오셨단다. (헉). 사고 처리하고 기사님 전화번호를 물으셨단다. 만나서 좋게 풀고 싶다고.

 

경찰이 말리더랜다. 그럴 필요 없다고, 꽉 막힌 사람이라고. 괜히 전화해서 속만 상한다고. 그래도 전화하셨단다. 죄송하게 됐다고. 하루 종일 운전하면서 마음 상하셨을텐데 푸셨으면 좋겠다고. 나중에 직접 뵙고 미안한 말씀 드리겠다고 양해를 구하셨단다.

 

처음에는 툭툭 전화 받으시더니 금방 풀리더랜다. 오히려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고 송구스러워하며, 하필 새 택시 뽑은지 일주일 밖에 안되서 자기가 심했다고. 보험에서 다 처리해 주는데... 전화주셔서 고맙다고 하시더랜다.

 

그날 결혼식장 저만치서 보이던 아부지의 편한 미소가 생각났다. 무대 위의 아부지를 보면서 '저 사람은 그동안 참 수많은 호연을 만들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일을 아마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사족. A Small, Good Thing.

 

원래 단편집 '대성당'에 실린 <별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감상문을 쓰려다 스포일러 없이 전달하기가 힘들어 빼버렸다. 아들 생일을 맞아 케익을 주문한 엄마, 날짜에 맞춰 케익을 준비해 놓은 제빵사, 하지만 생일날 아침 차에 치여버린 아들, 그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아빠, 그리고 그 아들을 진료한 의사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레이먼드 카버가 쓰고,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하고,

빨간책방 이동진이 읽어주는 뭉클함.


직접 느껴보시길 :)

http://www.podbbang.com/ch/3709?e=213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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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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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임라인에 아가들 사진이 부쩍 올라온다. 결혼한 친구들이 어느덧 애엄마, 애아빠가 된 것이다. 사진을 넘기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를 닮은 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날 닮은 아이를 보는 기분은 어떨까. 욕심 같아선 줄줄이 낳고 싶지만 혼자 키울 것도 아니니, 라고 말은 하면서 이름은 넉넉히 생각해뒀다. 윤봄, 윤여름, 윤가을, 윤겨울. 대충 떨이로 지은 이름 같아도 나름 오랫동안 고민했다. 성과 어울리는 순 한글에 영어로도 쓰기 쉽게, 계절이 지나가듯 별일 없이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다섯째 아이>의 부모 데이비드와 해리엇 역시 아이 욕심으론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아이를 적어도 여덟은 낳을 것이라고 결혼 전부터 호언장담하는 이 부부. 심지어 데이비드는 모성애라곤 찾아보기 힘든 자기 엄마와 아내 해리엇은, 애초부터 다르다고 걱정하는 부모에게 당돌하게 이야기할 정도이다. '불굴의 모성애'를 지닌 해리엇과 함께라면 무엇이 걱정이랴. 그들이 그토록 꿈꿔왔던 화목한 가정 그리고 행복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꿈만 야무지고 대책은 없는 두 사람이지만 시부모의 금전적인 지원과 친정 엄마의 헌신으로 그럭저럭 가정을 꾸려나간다.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들이 일궈낼 미래를 생각하며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다. '팔남매 프로젝트' 역시 첫째 루크를 시작으로 헬렌, 제인, 폴까지 거칠 것이 없다.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벤은 '특별한' 아이다. 배 속에서부터 무자비한 발길질로 엄마 해리엇을 지독하게 괴롭히더니 (고통을 잊기 위해 진통제를 삼키고 부푼 배를 안은채 미친듯이 뜀박질을 하는 임산부를 상상해보라), 일찍 세상에 나와선 엄마 가슴을 뜯어 삼킬듯이 난폭하게 젖을 빨고, 걷기가 무섭게 개를 목졸라 죽이며 온 가족을 공포에 몰아넣는 아이.
 
문명을 거부하는 흉측한 괴물, 다섯째 아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2.
여느 때와 다름 없던 작년 7월 출근길 아침,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냈다. 얇지만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왠지 모를 불길함이 언제라도 덮칠듯 서성이는 소설이었다. 책을 덮고 심난한 마음으로 뉴스 앱을 켰다. 밤새 일어난 사건, 사고 소식이 날 반겼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의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되었고, 광주의 소방 헬기와 유럽의 말레이시아 항공기가 추락했다. 오늘이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1주기라고도 했다.
 
이메일을 확인하니 새벽 5시 17분, 우리 회사 CEO가 전직원에게 보낸 메일이 와 있었다. 소문으로만 돌던 구조 조정 관련 내용이었다. 만팔천명이라니. 6년전 입사할 즈음 금융 위기를 핑계로 정리되었던 숫자보다도 많다. 곧이어 내가 속해있는 운영체제 그룹의 대장도 메일을 보냈다. 오전 11시까지 개별로 연락이 갈 것이라 했다. 덤덤한듯 썼지만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를 좋아하는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에 도착해선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했다.
 
오후 두시가 다 돼서야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식사 후 메일을 확인하니 매니저가 갑작스럽게 팀 미팅을 잡아 놓았다. 서둘러 가본 회의실은 평소의 웃음기라곤 싹 빠진 무거운 공기로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속한 개발팀은 괜찮지만 테스트팀의 절반 이상이 해고되었다고 한다. 미팅을 나와 그동안 함께 일하던 한국인 형님부터 찾아뵀다. 항상 고단해 보이셨는데 오늘 오히려 홀가분한 모습이다. 코드 리뷰 보낼게 있었는데 안해도 돼서 좋다며 웃어 보이신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3.
십여년 전 셋째 고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전날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인사드리고 갈까 하다가 다음에 뵙지, 하고 말았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생전 처음 가본 빈소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촌 누나를 마주했다. 손을 잡고 뭐라 말을 하려던 것이 누나의 얼굴을 보고 콱 막혀버렸다. 겨우, 힘내세요 누나, 라고 말을 건네곤 위로를 한답시고 멍청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죽음이 아니었기에 괜찮으시겠지, 내심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했다. 안일한 내가.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었어요."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의 아내가 대답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소소한 행복, 일상이란게 얼마나 얄팍하고 깨지기 쉬운 것인지. 견고하게 쌓는다고 쌓았는데 거센 바람 앞에 어찌 그리 맥없이 무너지고 마는지.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에 저항할 의지마저 꺾여버린 채, 사는게 아닌 그저 살아지는 일상. 있는 힘껏 발버둥치면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쳇바퀴 돌 듯 어김없이 바닥을 치는 일상 아닌 일상.
 
4월 16일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의 '일상'은 오죽할까. 304명이라는 숫자에 가려져 있는 한명, 한명을 들출 때마다 아프지 않은 이름이 없다. 아이를 떠올리며 힘겹게 말을 잇는 유가족의 모습이 때론 불편하지만 잠자코 듣고 있는다. 그들은 그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니까.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토해내지 못하는 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으니까. 내 일상을 떼어 주는게 뭐 얼마나 힘든 일이라고. 매일이 장례식 같은 삶에 비하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4.
아주 오래전에 아부지께서 나와 내 동생 사주를 보고 오신 적이 있다. 그분 말씀이 내 동생은 무척 운이 좋은데, 나는 운이 별로 없다고 하셨단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것 같았다. 똑같이 치토스를 사 먹어도 꼭 동생 것에만 들어있던 '한봉지 더'. 어린 마음에 부럽다는 생각부터 들던 중 아부지가 한마디 덧붙이셨다. 대신 나는 노력을 하면 그만큼 이뤄진다, 했다고.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노력만큼 돌려받는, 아니 노력할 여력이 있는 삶도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지.
 
어떤 이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나태해지지 말라고, 남 탓 말고 불평불만 늘어놓지 말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내가 성공한 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잘난) 내가 부지런히 노력한 덕분이라고. 내가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것도 아마, 그런 자신감 혹은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해보니까 되더라 싶은, 노력이 날 배신한 적이 없는, 때때론 노력 이상으로 풀리던 삶이었으니까. 치명적인 불운 한번 겪어 보지 않은 평탄한 삶.
 
세월호 유가족들도 그러하진 않았을까. 2014년 4월 16일 이전까진 그러했을 것이다. 녹록친 않지만 그래도 근근이 기쁨을 주던, 살아갈 이유가 있던 삶.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남들한테 피해 안주고 내 할 일 하면서 살면 될 줄 알았다고.
 
우리 삶에도 언제든지 '다섯째 아이'가 끼어들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리 인간의 문명이 발달한들 틈새는 있기 마련일테니까. 문명을 거부하는, 문명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야만은 어떻게든 우리 안에, 우리 곁에 남아 있을테니까.
 
그렇게 문명이 닿지 않는 곳에 사람이, 닿아야 한다고 믿는다.
 
<다섯째 아이>를 읽던 밤,
세월호 생존 학생과 유가족들이
안산에서 서울광장까지
꼬박 하루를 걸어갈 때
 
길거리에 점점이 서서
생면부지의 그들을 안아주고
곁에서 함께 눈물 흘리던
 
'우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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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 아웃케이스 없음
마크 웹 감독, 조셉 고든 레빗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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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명사] 두 사람이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귐.

1.
영화 <500일의 썸머> 시작과 함께 흘러나오는 나레이션. '이 이야기는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알아두세요. 러브스토리가 아닙니다.' 그렇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이, 사랑은 동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믿는 썸머를 만난 이야기. 흔하디 흔한 연애 이야기. 더도 덜도 말고.


톰은 여리여리하고 소심한 성격의 초식남이다 (조셉 고든 '레빗' 팬들은 그를 '조토끼'라 부른다ㅋㅋ). 타고난 직감과 풍부한 경험을 지닌 여동생과는 달리, 연애도 여자도 잘 모르는 이 남자. 오로지 운명적인 사랑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썸머를 처음 보는 순간, 확신한다.

썸머에게 사랑은 산타클로스 같은 것이다.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환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토마시처럼, '에로틱한 우정'을 이야기하며 그 누구의 여자친구도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톰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심각한 관계는 원치 않는다고, 그에게 분명히 얘기한다.

허나 이미 썸머에게 푹 빠진 톰에게 그녀의 경고가 귀에 들어올리 만무하다.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랴. 그녀를 얻은 뒤 그의 출근길 모습은 절로 웃음이 나온다. 세상이 이리도 아름다웠던가. 가벼운 발걸음에 자꾸만 웃음꽃이 피어나고, 하늘을 날아갈듯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

2.
"사랑은 꼭 그 사람일 필요가 없는 우연을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운명으로 바꾸는 것."
<500일의 썸머> 이동진 한줄평

우연이냐, 운명이냐. 인생 한 번뿐이 살지 않는 우리가 어찌 알겠냐만은, 관점의 차이일 뿐 결국 같은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저 우연은 우리가 의미를 두지 않았고, 운명은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니까. 전자는 한없이 가볍고, 후자는 한없이 무겁다.

대부분의 (첫)사랑이 실패로 끝나듯, 톰과 썸머의 열애 역시 한여름 밤의 꿈처럼 덧없이 끝나고 만다. 결국 톰은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는 썸머를 견디지 못했고, 썸머는 그런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마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을 되돌려 보지만, 부질없다. 딱히 누가 잘못하지 않아도 끝날 수 있는게 연애니까.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게 이렇게나 힘이 든다. 판타지 덕분에 시작된 사랑이, 판타지 때문에 끝이 난다. 그녀와 하나되길 꿈꾸지만, 이 생에선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한다. 허은실 시인이 썻듯 "당신이라는 텍스트를 해독하려는 그 헛된 일에 사로잡혀 가능한 모든 사전을 펼친다. 인연의 아름다움은 그 무망한 노력에서 태어나는 것"이므로.

여름, 다음에는 가을이 오기 마련이므로.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시를 잊었을 때
그 시를 들려주는것"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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