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 아웃케이스 없음
마크 웹 감독, 조셉 고든 레빗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연애 [명사] 두 사람이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귐.

1.
영화 <500일의 썸머> 시작과 함께 흘러나오는 나레이션. '이 이야기는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알아두세요. 러브스토리가 아닙니다.' 그렇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이, 사랑은 동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믿는 썸머를 만난 이야기. 흔하디 흔한 연애 이야기. 더도 덜도 말고.


톰은 여리여리하고 소심한 성격의 초식남이다 (조셉 고든 '레빗' 팬들은 그를 '조토끼'라 부른다ㅋㅋ). 타고난 직감과 풍부한 경험을 지닌 여동생과는 달리, 연애도 여자도 잘 모르는 이 남자. 오로지 운명적인 사랑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썸머를 처음 보는 순간, 확신한다.

썸머에게 사랑은 산타클로스 같은 것이다.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환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토마시처럼, '에로틱한 우정'을 이야기하며 그 누구의 여자친구도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톰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심각한 관계는 원치 않는다고, 그에게 분명히 얘기한다.

허나 이미 썸머에게 푹 빠진 톰에게 그녀의 경고가 귀에 들어올리 만무하다.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랴. 그녀를 얻은 뒤 그의 출근길 모습은 절로 웃음이 나온다. 세상이 이리도 아름다웠던가. 가벼운 발걸음에 자꾸만 웃음꽃이 피어나고, 하늘을 날아갈듯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

2.
"사랑은 꼭 그 사람일 필요가 없는 우연을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운명으로 바꾸는 것."
<500일의 썸머> 이동진 한줄평

우연이냐, 운명이냐. 인생 한 번뿐이 살지 않는 우리가 어찌 알겠냐만은, 관점의 차이일 뿐 결국 같은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저 우연은 우리가 의미를 두지 않았고, 운명은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니까. 전자는 한없이 가볍고, 후자는 한없이 무겁다.

대부분의 (첫)사랑이 실패로 끝나듯, 톰과 썸머의 열애 역시 한여름 밤의 꿈처럼 덧없이 끝나고 만다. 결국 톰은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는 썸머를 견디지 못했고, 썸머는 그런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마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을 되돌려 보지만, 부질없다. 딱히 누가 잘못하지 않아도 끝날 수 있는게 연애니까.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게 이렇게나 힘이 든다. 판타지 덕분에 시작된 사랑이, 판타지 때문에 끝이 난다. 그녀와 하나되길 꿈꾸지만, 이 생에선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한다. 허은실 시인이 썻듯 "당신이라는 텍스트를 해독하려는 그 헛된 일에 사로잡혀 가능한 모든 사전을 펼친다. 인연의 아름다움은 그 무망한 노력에서 태어나는 것"이므로.

여름, 다음에는 가을이 오기 마련이므로.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시를 잊었을 때
그 시를 들려주는것"
- 류시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