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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 CJK - 죽은자를 위한 미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평점 :
한 때는 '낯선 풍경'이었던 것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느덧 '익숙한 배경'이 되어버릴 때가 있다. 백화점의 쇼윈도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선 매번 충격적인 '변신'을 해야한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중학교 시절, 텔레비전을 통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장면을 목격했다. 그 검버섯 구름의 광대함은 온몸을 전율시켰다. 하지만 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때마다 전쟁의 풍경은 점차 균질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네이팜탄을 폭우처럼 쏟아 부었던 베트남 전쟁의 풍경조차 익숙한 '배경'으로 전락했다. 일종의 B급 헐리우드 액션으로 남은 지나간 전쟁. 더 이상 나는 공포도 생명의 존엄도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살육의 현장은 일상화되었으리라.
진중권이 전쟁에 관한 책을 냈다. <레퀴엠>. '죽은자를 위한 미사'라는 부제가 붙었다. 표지는 한 이라크 어린이의 공포에 가득 찬 눈망울을 클로즈업했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절규'를 하는 듯 하다. 어쩌면 이 표지 한 장이 이라크 전쟁에 관한 모든 진실을 말하기라도 하듯. 진중권은 벤자민 브리튼이 작곡한 진혼곡 '전쟁 레퀴엠'을 차용하여, 지난 3월의 전쟁을 기술한다. 카톨릭 미사곡인 '레퀴엠'. 비록 그 곡조는 들리지 않지만, 상상만으로도 압도적인 장엄함과 엄숙함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진중권의 글도?
괜한 기우였다. 전쟁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전쟁 그 자체보다 더욱 갑갑하게 느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진중권은 특유의 재기 발랄한 화술을 구사하며 이라크의 후세인과 미국의 부시와 그리고 한국의 극우 반동들과 일대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그는 지식인 특유의 어려운 관념어들을 동원하지 않는다. 에밀 쿠스타리차 감독이 만든 '언더그라운드'의 주제곡이자 제2차 세계대전 때 빅히트를 일궈냈던 '릴리 마릴렌'의 애달픈 가사로 책의 포문은 열린다.
이어 저자 자신의 병영생활에 대한 생생한 체험이 다음 악장을 이어받는다. 숨고를 새도 없이, 진중권은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의 일원이 되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신'이 되기를 강요받았던 일본병사들의 막다른 삶과 현재를 오버랩하며 전쟁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진중권은 한 사람의 지휘자로 변신하여 이라크 전쟁과 근대 이후의 숱한 살육의 현장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한다. 진중권 휘하의 오케스트라의 열띤 연주는 '충격과 공포'장에서 그 클라이막스를 연출한다. '충격과 공포'라는 미(美)적 체험은 이제 '전쟁미학'으로 탈바꿈하여 우리의 일상에 내던져진다. '충격과 공포'의 숭고함은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전쟁미학'에 의해 '저주스러움'으로 탈바꿈한다. 이 저주와 공포를 만들어 낸 장본인들. 총지휘 '조지 부시', 연주 '펜타곤', 협연 '사담 후세인', 찬조출연 '한국의 보수반동과 그 이웃 나라들'.
그의 경쾌한 문장 사이사이에는 우리의 머리를 '도끼로 찍는' 전쟁의 본질에 대한 일갈이 범람한다. 현대전은 광대한 스펙타클을 창출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고,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이 되어 일상을 '전쟁의 배치'로 만들어 버렸으며, 전쟁의 목적은 '권력의 이해관계'에 복무할 뿐이며, 그 희생자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라는 저자의 말은 이미 말의 차원을 넘어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독자의 온몸을 후려친다.
진중권의 말처럼, '전쟁미학'이 창출해낸 새로운 '충격과 공포'라는 숭고함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는 그 전쟁과 철저하게 거리를 둔 '관객'이 되어야만 한다. 변태적으로 변형된 '전쟁미학'의 사슬을 끊으려 한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그 현장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를 어찌할 것인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무고한 희생자들의 피는 이제 더 이상 일상도 배경도 아니다.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를 끊기 위한 전쟁. 그 전쟁에 사용될 무기는 흉악하게 일그러진 괴물로 전락한 권력과 맞붙을 '용기', 바로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