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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관하여 - 비로소 가능한 그 모든 시작들
정여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그래도 마흔은 청춘이어라?
“어, 턱 밑에 설탕이 묻었어요!”
함께 점심을 먹은 후배의 말에 얼른 손바닥으로 턱 밑을 훔쳤다.
“아직 남아 있는데요!”
식당 한쪽 벽에 붙어 있는 거울을 봤다.
“야, 설탕이 아니라 수염이잖아!”
30대 초반인 후배는 멋쩍어하면서도 까무러치게 웃었다.
깨끗하게 면도할 것을. 그날따라 뭐가 그리 바빴는지. 검은 수염에 조미료를 뿌린 것 같은 내 턱을 관리하지 못했다.
사십보다는 오십에 가까운 나이다. 진작에 노화가 시작되었겠으나, 요즘은 몸 어디엔가 숨겨져 있었던 것들이 새살처럼 자꾸 밖으로 자라나 영토를 확장한다. 돌이켜보면 내게 마흔은 쇠락이자 처짐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면 그토록 멋진 ‘꽃중년들’이 많고도 많지만, 나는 점점 미쉐린타이어의 마스코트인 ‘비벤덤’을 닮은 몸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비벤덤은 귀엽기라도 하지.
모처럼 서점 들러 새로 나온 산문집을 살펴보다, 정여울의 <마흔에 관하여>를 집어 들었다. ‘마흔이라, 마흔이라, 마흔이란 말이지’하며 중얼거리다 책 표지를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았다. 마흔을 생각하면, 쇠락, 처짐, 허기, 권태, 아재, 꼰대, 소멸, 가을, 외로움, 쓸쓸함 등의 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데 <마흔에 관하여>의 표지를 보는 순간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꽃비가 사방으로 흩날리는 봄날의 어느 싱그러운 오후의 풍경을 형상화한 표지를 보다가 프롤로그를 읽기 시작했다. 아직 마흔의 초입인 저자는 뜻밖에도 내가 버티고 견디며 살아내 왔던 마흔과는 다른 마흔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마흔은 멀리서 그저 아련히 반짝이기만 했던 삶의 숨은 가능성들이 이제야 그 빛을 발하는 시기다.(7쪽)
작가의 말을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되새겼다. 마흔, 아련, 반짝, 삶, 가능성, 빛. 내 머릿속에서 연상되었던 단어들과는 너무나 상반된 단어들로 결합된 문장이었다. 궁금해졌다. 작가에게 마흔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가 사용한 문장으로 마흔의 의미를 정리해 보면 이런 것이다. 마흔은 “노년의 앞 페이지에 살짝 끼워진 부록”이 아닌 그 자체로 “설레고, 기특하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기이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내 안의 숨은 잠재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고독 안에서도 “슬픔이 아닌 안도감을” 느낄 줄 알며, “나 자신의 결핍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마흔이기도 하다. 더욱이 마흔은 “익숙한 나로부터 거리 두기”를 함으로써 “나답게 살 용기”와 “남다르게 살아갈 배짱”을 키우는 시기이자 콤플렉스마저 “구원의 오아시스”로 바꿔낼 줄 아는 현명함이 깃드는 때이다. 그리하여 마흔은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사랑이 찾아와도, 우리는 삶을 지켜낼” 수 있는 나이다.
어찌 이리도 다를까. 작가가 살아가는 마흔과 내가 보내왔고 보내고 있는 마흔은 달랐다. 나는 내게 너무 가혹한 징벌을 내리며 학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룬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나이, 연금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던 나의 지나온 마흔이 아팠다. 자신을 전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작가의 마흔살이를 조금만 깨물어 먹고 싶다.
<마흔에 관하여>는 그동안 읽어왔던 마흔에 관한 책들과는 그 색감과 질감이 달랐다. 내가 읽어왔던 마흔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처세술에 가까운 자기계발서였다. <마흔에 관하여>는 마흔을 살아가는 작가의 진솔한 삶의 향기가 듬뿍 담긴 일기장에 가깝다. 그래서 더 친밀하고 내밀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두 번째 청춘을 살아가는 거야, 아직 늦지 않았어, 나를 좀 더 아끼고 보듬어 주자, 잘 살아왔다고, 잘 버텨 왔다고, 그래도 아직 마흔이지 않느냐고, “비로소 가능한 그 모든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내라고.
마흔은 스물처럼 찬란하지는 않지만, 곰삭은 된장국처럼 구수하게 봄날의 냉이나물무침처럼 아릿하게 우리 안에 아직 남은 순수를 끌어올리고 우리 안에 가득 차오른 행복에 대한 갈망을 부추긴다.(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