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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운 집 - 한 아름다운 사회주의자의 삶에 관한 진솔한 기록.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이사이 책장을 덮고 진지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거나 누군가와 갑론을박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내처 달렸고,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이 책을 끼고 다녀야했을런지도 모른다.
식민지 조국에서 청년으로, 이 땅의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진부하긴 하지만 결코 외면하거나 간과할 수는 없는 문제이며, 현대사 속의 남로당이나 박헌영의 지위에 관한 문제(가령 박헌영은 종파주의자인가? 혁명의 순교자인가?) 지도와 대중의 문제, 혁명의 순결성과 품성의 문제.. 삶의 굽이굽이에서 그가 고뇌하고 천착했던 기록들을 더듬어 가는 길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구성에 있어 일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익히 아는 인물들의 등장이나 역사적 사실에의 진지하고 사실적인 접근들은 혹시? 하는 생각을 품게도 하지만 그래도 이는 픽션일 것이다.
그가 남로당 출신의 월북자이면서 박헌영을 전적으로 신뢰했었다는 것, 그로 인해 항무투의 혁명정신을 전통으로 삼는 북로당과 조직운동 중심의 활동을 했던 남로당 사이의 갈등관계에서 심정적 편향을 보이기도 하고 사적인 기록이라 때론 축약되고 비약된 면이 없잖아 있을지라도 한 인물을 통해 반세기를 아우르는 빼앗겼던 역사를 반추해 봄은 의미 있는 일이다.
반쪽의 역사는 결국 불구에 다름 아니다. 사상이나 이념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올바른 역사관이 정립되지 못한 사회는 죽어있는 사회다. 겸허한 자기반성과 이성적인 접근이 행해지고, 처절한 죽음들을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선행되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때 통일이든 혁명이든 다가오지 않을까? 두 살박이의 아장걸음으로, 조급증은 버릴 것.
비록 픽션이라 할지라도 이 책에 담긴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서술은 고증의 단계를 거친 것으로 보이며 관련 자료에의 접근이 제한적인 현실에서 작가가 많은 공을 들이고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 왔을 것임이 짐작된다.
혁명이란 모든 사람들이 잘 살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미완의 혁명 속에서 교훈을 찾고 인류가 성숙해 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온전한 사회주의를 내와야 한다고 말한다.
엄준한 자기비판으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는 실패는 했으나 그른 것은 아니라고, 매순간 삶을 사랑하고, 한계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노라고, 그 한계라는 것이 언젠가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반드시 무너질 것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의 희망은 그가 일생을 바쳤던 진리와 아직 오지 않은 세대, 그들의 순결함과 열정이다. 그의 마지막 유서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