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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 블루 아이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평점 :
모두에게 이유가 있다.
그렇게 근사한 문구는 처음이었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끔찍한 문구는 처음이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페일 블루 아이>는 영화로 처음 만났다.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을 때 가장 난해한 점은 영화 속 이미지가 투영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스스로 상상하지 못하고 배경이나 인물의 특징이 영화 속 이미지로 바로 떠오른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영화 속 장면들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영화 속 이미지들로 인해 소설의 묘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은퇴한 랜도 경위에게 어느 날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 생도 한 명이 그를 데리러 온다.
사관학교에 도착한 랜도 경위는 밤사이 그곳에서 자살한 생도가 있었고 누군가 그의 심장을 도려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장은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 했고, 랜도는 사특한 집단이 사관학교 안에 파고들었다고 생각한다.
우스꽝스러운 가죽 모자 밖으로 검은 머리 두 가닥이 삐져나와 눈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적갈색이 섞인 회색 눈은 얼굴에 비해 너무 컸다. 치아는 그와 반대로, 야만족 족장이 거는 목걸이에서 볼 수 있음 직하게 작고 정교했다. 나뭇가지처럼 비쩍 마른 그에게 잘 어울리는 섬세한 치아였다. 전체적으로 가냘픈 그의 체형 중에 이마만 예외라 모자라도 가려지지 않았다. 핏기 없이 큼지막한 이마가 아나콘다의 목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는 먹이처럼 모자 밖으로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가 등장하는 장면의 묘사는 아주 신랄하다.
나이는 들었으나 신입생인 사관생도 '포'는 랜도에게 접근해 이렇게 말한다
"범인은 시인입니다."
목매단 시체에서 사라진 심장
거세당한 시체에서 사라진 심장
600페이지가 넘는 깨알 같은 글씨가 촘촘하게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다.
19세기 음산한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는 신생이라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다.
그런 와중에 살인사건은 계속 벌어지고, 주변 농가의 동물들도 장기가 도려내지는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누군가 사악한 주술을 부리는 것 같다.
랜도는 사관생도들을 관찰하기 위해 '포'를 스파이로 삼는다.
"생도로 생도를 잡는 작전이로군요."
예리한 포.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랜도.
두 사람의 캐미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잘 어울린다.
점점 수사망을 좁혀가는 이들 앞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범인은 왜? 어째서? 심장을 도려내는 걸까? 그걸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
사탄 숭배 의식이라도 치르려는 걸까?
이 이야기엔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최초의 살인이 벌어진 교정에서 은근슬쩍 사라진 진실...
예리함이 넘치는 '포'는 그 사실을 알아낼까?
역사소설에 활력을 불어 넣는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가 접하는 모든 미스터리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에드거 앨런 포를 직접 출연시켜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탁월한 <루이스 베이어드>는 두꺼운 벽돌책의 무게를 덜어내 주는 필력을 가졌다.
영화 속에서 느낄 수 없었던 디테일한 심리를 책을 통해 느끼며 묘한 스릴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 이야기의 압권은
'포'가 발견해낸 추리에 있다.
그가 랜도 앞에서 자신의 추리를 펼치는 장면의 짜릿함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다.
절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은 바로 이 이야기에 쓰여야 한다.
"아무래도 제가 보기에는 랜도 씨가...."
"어떤 사람을 보호하려는 것 같습니다."
"누굴요?"
과연 랜도가 보호하려는 사람은 누구일까?
한 번 맞혀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