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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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러면 안 되는데 범인을 응원하게 되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게 왜 그리 끔찍한 일로 간주되는 걸까?

 

 

마치 동물의 왕국의 먹이사슬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릴리.

부모의 영향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13살짜리에게 치근덕대는 화가를 어른들에게 알리고, 피하는 대신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아이.

 

부모에게 늑대소녀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별났던 릴리.

사이코패스의 전형이었는데 환경마저도 너무 자유로웠던 릴리.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남과 여.

그런 줄 알았지만 이 이야기 어디에도 우연은 없었다.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랬다. 생생하게 살아 있고, 생생하게 혼자인 기분. 이 순간 내 유일한 동반자는 어린 나, 쳇을 우물에 밀어 넣은 아이뿐이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고 우린 서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의미였다.

 

 

보통 이런 스릴러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는 남자들의 전형인데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주인공 릴리는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그래서 그녀의 계획(?)이 완벽하기를, 잡히지 않기를 응원하게 된다.

이야기 말미에서 경찰과 맞닥뜨렸을 때는 너무 아쉬웠다.

그냥 참지 그랬니.

오늘만 잘 참았으면 무사했을 텐데...라는 당치도 않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나도 사이코 기질이 있는 건가? 하는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피터 스완슨의 글맛이야 익히 알고 있는 것이고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사놓고 이제야 읽은 나는

그가 마지막에 떨군 떡밥 때문에 조마조마하다.

 

세상엔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를 응원하게 되는건 법이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인 거 같다.

아니면 너무도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나게 읽고 나서

뭔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해 냈다.

릴리 킨트너.

무서운데 무섭지 않고, 사악한데 사악해 보이지 않고, 사이코패스인데 응원하게 된다.

이런 주인공은 그리 흔하지 않기에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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