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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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망할 년의 병! 파킨슨씨와 함께 하는 여정.

아르헨티나 작가의 글이 그 어떤 스릴러보다 더 스릴 있게 다가왔다.

 

엘레나의 딸 리타가 자살했다.

비 오는 날 성당 종탑에 목을 맸다.

사건은 자살로 마무리되었지만 리타의 자살을 믿지 않는 건 엄마 엘레나뿐이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이 흘러 알약이 녹으면서 몸속으로 퍼져나가 발에 이르는 것뿐이다. 그렇게만 되면 발도 자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

 

 

엘레나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등은 굽고 고개는 펴지지 않으며 침을 흘리고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약'이 필요하다.

엘레나는 리타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20년 전 빚을 받으러 집을 나선다.

그녀의 몸이 되어줄 이사벨을 찾아 20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파킨슨병은 중추신경계의 질병이다. 신경 세포가 퇴행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등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어 도파민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지 않아 발생한다. 이 병은 뇌가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려도, 도파민이 해당 신체 기관을 그 명령을 전달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고, 우울증과 치매 증상까지 겪게 된다.

 

이 우울하고 처참한 병에 걸린 엘레나는 리타의 간병을 받고 있었다.

리타에게는 은행원인 남자 친구가 있었고, 엘레나와 항상 티격태격 하지만 그건 엄마와 딸 사이에 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짝수 해에 여행을 다녔고, 홀 수 해엔 집을 고치거나 미룰 수 없는 일들을 처리하며 보냈다.

 

엘레나와 리타 그리고 이사벨은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이 이야기는 모든 여성들의 추리소설이다.

해결되지 않은 자신을 찾아가는.

 

엘레나의 생각은 빠르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지만 그녀의 몸은 느리게 천천히 움직인다.

역동적인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고통스러운 현실의 정체가 교차되면서 독자의 마음과 생각도 함께 널을 뛴다.

그래봐야 엘레나가 움직이는 범위 안에서지만...

 

고집스러운 엘레나의 면모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이사벨을 찾아가는 그 여정은 리타 없이 살아내야 하는 엘레나의 첫 발걸음이다.

무엇이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해내야 했으니까.

그래서 마지막에 활활 불타오르던 생명력이 바로 이 여정의 성공 때문인 것도 같다.

 

평생 남편만 알았던 엘레나는 이 병에 걸린 지금도 섹스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왜? 뭐 때문에? 그렇게 정절을 지켰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고집스럽지만 자신의 병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더 큰 시련도 감내할 인내심을 가졌다.

이사벨이 20년 전 리타를 만나서 도움 아닌 도움을 받고 자신의 삶을 살면서 평생을 그 날밤을 저주하며 살았던 삶도 결국 이겨내고 견뎌낸 여성의 삶이었다.

그럼 리타에게 주어진 삶은?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엘레나처럼 견딜 자신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힘겹게 한 발 한 발 엘레나와 함께 걸었다.

그녀의 시니컬함과 그녀의 노력이 정상인이라는 둘레에 빠져서 그 이상을 벗어나면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아온 나에게 잠시나마 그 길을 걷게 했다.

이사벨의 아픔 앞에서 늘 마주하는 그 권위에 눌려도 보고, 종교적 신념 때문에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한 리타의 선행(?)이 결과적으로 옳았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낙태에 대한 주도권이 왜 종교에 있고, 정치에 있고, 남자에게 있을까?

내 몸에서 자라는 생명에 대한 주도권은 그 생명을 품고 있는 여자에게는 왜? 어째서? 주어지지 않는 걸까!

 

병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고통 앞에서 왜 사람들은 견디고, 인내하라고만 할까?

왜 그게 너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는 일이 왜 자연스레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떠맡겨져야 하는 걸까?

아픈 사람들은 어째서 집에 있기를 고집할까?

지금 보다 더한 시련이 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겪어야 하는 보호자의 심정이 어째서 환자 보다 덜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엘레나는 알고 있다>

엘레나는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리타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가 오는 날은 절대 성당에 가지 않는다는 리타의 룰을?

리타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를?

 

난 살고 싶어요. 내 마음이 어떤지 알겠어요? 비록 몸은 이렇게 망가지고, 딸아이마저 앞세웠지만.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한다. 나는 계속 살기로 했어요.

 

 

따옴표 없는 대화들이 이야기처럼 스민다.

우리가 잃어버린, 해결되지 않은 것들을 찾아가는 여정의 추리소설.

아르헨티나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를 기억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건

망할 년의 파킨슨 씨와 함께 살고 있는 엘레나의 강렬한 의지 때문이다.

그 의지와 그 고집이 결국 모든 여성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짧고 굵은 세 여성의 서사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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