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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ㅣ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브램 스토커 지음, 진영인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평점 :
아름다운 여자는 무릎을 꿇고 무척 흡족한 모습으로 몸을 기울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관능적인 모습이 무척 흥분되면서도 혐오스러웠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짐승처럼 핥았다. 혀로 하얗고 날카로운 이를 핥는 동안 달빛 아래 붉은 입술과 혀가 촉촉하게 빛났다. 여자가 고개를 더 숙이자 얼굴이 내 입과 턱 근처까지 왔는데 내 목이 목표인 것 같았다. 여자는 감시 가만히 있었다. 혀로 이와 입술을 핥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뜨거운 숨이 내 목에 닿았다. 내 목 피부가 달아올라 욱신거리는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간지럼 태우는 손이 가까이 왔을 때처럼 피부가 곤두섰다. 달아오른 목 피부로 부드럽게 떨리는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날카로운 두 치아의 끝이 목 피부에 가만히 닿았다. 나는 나른한 황홀경에 빠져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두 번째 읽는 드라큘라에서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관능적인 유혹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아마도 첫 번째 읽었을 때는 내 머릿속에 담긴 드라큘라의 모든 아류들과 원작 비교하기가 풀가동되었기에 잘 감지되지 않았던 감정인 거 같다.
불사이면서도 되살아나기 위해 인간의 뜨거운 피가 필요한 괴물.
물론 피가 없어도 내내 잠들어 있을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드라큘라에겐 뜨거운 피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을 유혹해야 한다.
달콤하게.
겁먹지 않게.
자신에게 아낌없이 베풀 수 있게.
그리고 새로운 '동지'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끈적한 피
비린내 진동하는 뜨거운 피
보는 눈을 혼란스럽게 하는 붉은 피
드라큘라가 가는 곳마다 음산한 내음이 퍼진다.
사람들은 넋이 나가고, 무언가에 홀린 듯 자신을 내어 준다.
끈적한 블루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인간의 피를 취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욕망에 취해 인간은 이 괴물에게 자신을 내어준다.
그리고 갈망하게 된다.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장치해둔 달콤하고 황홀한 지배.
탐욕스러운 갈망과 욕구가 밤과 함께 찾아온다.
밤의 장막은 이 역겨운 공포를 스르르 감싼다.
유혹하듯 끈적이는 재즈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놓는다.
지금 드라큘라가 어딘가 존재한다면 그는 밤의 제왕으로 존재할 것이다.
끈적한 음악에 취해
끈적한 피 맛을 원해
끈적한 몸부림으로 죽음도 아니고, 삶도 아닌 중간계의 존재가 되어 밤을 맘껏 들이킬 테지..
인간으로서는 대항할 수 없는 괴물
심장에 못질을 해야만 영원한 안식을 줄 수 있는 괴물
그러나 누가 그 심장으로 향할 수 있을까?
브램 스토커는 이 무시무시한 괴물을 창조해 놓고
그에 필적하는 뚝심을 가진 반 헬싱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간 본성에서 가장 고결하고, 순수하면서도 진실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탄생시켰다.
괴물을 잡기 위해.
인간 세상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편지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상상력을 야기하고 하나의 편지를 전달하기가 수월치 않았던 시대를 떠올리며 조급해진다.
독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음 편지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이 편지들이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원작을 읽으며 많은 아류작들이 어떤 대목에서 끌렸고, 어떤 대목을 차용하고, 어떤 대목을 발전시켰는지 보인다.
드라큘라가 브램 스토커 이후에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동시에 느끼면서 이 작품의 위대함에 감탄하게 된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내게 고전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들었다.
예전엔 멋모르고 읽었다면 이젠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찾아내는 눈으로 읽고 싶었다.
처음 <드라큘라>를 읽은 건 열린책들 특별판으로 나온 책이었다.
화려한 삽화를 보는 재미로 그래픽노블처럼 읽었다.
두 번째 읽는 <드라큘라>는 윌북의 호러 컬렉션으로 텍스트에 몰입해서 읽었다.
같은 이야기라도 번역가의 번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해석들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문장의 순서가 바뀌어도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 새로웠다.
처음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드라큘라의 젠틀하면서도 세심한 유혹이 느껴졌고,
불굴의 의지로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인간 자체를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끌어모은 사람들이 보였다.
세상은 <드라큘라>같은 절대적 위험이 다가와도 조너선과 미나, 반 헬싱 같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물리칠 힘을 짜낸다.
<드라큘라>는 이야기 속에서 단지 괴물일 뿐이지만
불멸이라는 점에서 끝없이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존재와 같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자이자 불멸의 존재는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 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