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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평점 :
오웰의 정원에는 생각들과 이상들이 씨 뿌려졌고, 계급과 인종과 국적과 그에 내포된 전제들로 울타리가 둘러졌으며, 허다한 공격들이 여전히 뒷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물론 정원들은 탈정치적인 공간으로 옹호되기도 했다.
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얼만큼 알 수 있을까? 평생을 다 바쳐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한 작가에 대해 우리는 얼만큼 알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이 이야기 <오웰의 장미>를 읽어 보라 할밖에.
조지 오웰이 장미를 심었다.
정말 생소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인간적인 느낌이 든다.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의 정치색과 그의 신랄한 사회비평의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그가 장미를 심고, 정원을 가꾸고, 가축을 키웠다는 사실은 왠지 괴리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솔닛이 이 글을 쓴 이유도 그것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조지 오웰의 다른 점. 그것이 솔닛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탐구심이 <오웰의 장미>로 우리에게 닿았다.
다양한 해석들 앞에서 한 인간을 안다는 게, 한 작가를 안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웰은 시골 생활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은유와 잠언과 직유의 원천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많다.
그러나 오웰처럼 진심으로 정원 가꾸기와 가축 기르기를 농부처럼 한 작가가 얼마나 될까?
그것은 현실을 바라보고 비판하는 작가에게 어떤 힘을 주었을까?
어지러운 세상과 불공평한 현실과 답답한 정치적 현안들 사이에서 숨 쉴 틈을 발견하고 싶었던 오웰에게 장미를 심는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심오하게 파고들었지만 어쩜 오웰은 그냥 장미를 심었을지도 모른다.
솔닛이 거기에 그만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
오웰과 장미.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이미지를 모아서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를 파헤치는 솔닛의 글쓰기를 읽고 있자니 그의 글에 대한 열정과, 소재에 대한 탐구 의식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치열하게 쓴 글은 치열하게 읽힌다.
만약 오웰이 정원과 농장일에 관심이 없었다면 <동물농장>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다른 나무들은 베어졌지만 장미는 살아남아 오웰이 살았던 그 집에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다.
마치 조지 오웰이 아직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오웰의 장미>를 읽는 시간은 조지 오웰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덜어내는 시간이었다.
그가 정치적이고 사회비판적인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그는 자연을 즐기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으며, 자연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그를 다 알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진짜 오웰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오웰의 장미>를 읽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솔닛의 치밀한 글쓰기는 오웰로 시작해서 장미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한다.
장미를 통해 솔닛은 오웰의 긍정적인 면을 알렸다.
전쟁의 시대에 살았고, 여러 가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비판의식 가득한 작가 조지 오웰.
그에게는 장미로 대표되는 반전이 있었고, 그 반전 안에서 나는 오웰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게 되었다.
조지 오웰과 그가 심은 장미로 인해 파생된 많은 이야기들 앞에서 리베카 솔닛이라는 작가에 대한 생각을 더해 본다.
내가 알고 있는 솔닛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그녀가 오웰을 다른 시각으로 보았듯이 우리도 솔닛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찾아 다른 시각으로 그녀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오웰의 장미>를 읽으며 나는 솔닛의 흔한 것들 사이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그 시선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발품을 마다 하지 않는 노력과 치밀함에 감동 받았다.
조지 오웰이 살아서 이 책을 읽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1900년대의 화석화된 조지 오웰을 리베카 솔닛이 2000년대로 소환해 새로운 감각을 부여했다.
20세기 조지 오웰은 정치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작가였지만 솔닛이 소환한 21세기 조지 오웰은 자연친화적이고, 감성적이며, 노동에 진심인 작가였다.
나에게 <오웰의 장미>는 한 사람을 다각도로 살펴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작품이다.
누군가 나에게 심어준 고정관념 말고,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알아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