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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6월
평점 :
누구의 삶이든 다를 바 없겠지만, 카미유 클로델의 삶에는 여성으로서의 한계, 예술가의 소명과 욕망, 그리고 사랑과 실패, 병과 소외, 급변하는 시대의 풍경이 큰 물살로 어우러져 소용돌이치고 있다.
카미유 클로델에 대한 지독한 감정 이입이 도입부부터 느껴지는 <여기, 카미유 클로델>.
미술사에서 카미유가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만큼인지 모르지만 그녀가 로댕에게 끼친 영향력은 알아챌 수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미술계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기에 어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카미유 클로델에 대한 이 책에서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인 표현 때문에 로댕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카미유는 자신의 엄마에게 애정보다는 애증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진흙을 빗으며 자신의 재능을 표현했던 카미유는 가족들을 파리로 이주시켰다.
이것마저도 그녀의 엄마에게는 카미유를 미워할 충분한 이유를 더 가져다주었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깨닫는 일은 어쩌면 불운이며 어쩌면 행운이고 혹은 둘 다인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되고 싶었다.
로댕을 만나기 전부터 자신의 작품이 로댕과 비슷하다는 말을 듣은 카미유에게 로댕은 어떤 식으로 각인되었을까?
아버지 나이의 로댕과 열렬한 사랑을 한 카미유.
그것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사랑으로 포장한 종속의 관계였을까?
로댕은 카미유의 재능과 열정을 모두 가져갔다.
허울뿐인 약속은 종이 쪼가리에만 남았을 뿐.
어린 영혼을 갉아먹었던 건 아닐까?
당신이 이것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보다 이 형상을 빚으면서 느꼈던 내 고통이 훨씬 더 크니까요. 당신이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 즉 당신의 맹세와 약속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피투성이 돌 어딘가에서...
로댕과의 관계는 소문으로 번져 카미유에게는 상처로만 남았다.
가족들도 외면했고,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는 그녀 편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외톨이로 남은 카미유는 돌에 자신을 새겼다.
하고 싶은 말, 자신을 해명하는 말, 로댕에 대한 사랑과 울분과 분노와 애절함까지 모두 돌에 새겼다.
가능성에 한계를 긋는 시대의 관습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다 막아서더라도, 인생이 전혀 우호적이지 않을 때조차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그녀에게 그것은 조각이라는 사실만은 바꿀 수 없었다.
19살 처음 파리에 도착한 그녀는 매년 전시를 가졌다.
로댕을 존경했지만 로댕과 같다는 말은 듣기 싫었으니까.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과 로댕을 구별하는 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여자이기에 그녀를 인정하지 못한 사회적 환경이 그녀에게는 더 없는 모독이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의 작품들이 부당한 처사를 받는 것도 그녀에게는 모욕이었다.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 그 시대에는 틀린 것이었기에...
"이것들은 로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들이다."
"이것은 로댕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로댕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카미유의 바람이었지만, 세상은 늘 로댕의 그늘 아래 카미유를 놓아두었다.
그 모든 것들이 카미유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분노하고, 절망하고, 절규하며 그녀는 스스로를 고독에 가두었다.
가난과 자격지심은 그녀를 파괴로 몰아갔다.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킨 사랑은 그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파괴하게 만들었다.
카미유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예술적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아프다.
카미유의 입장에서 카미유를 그려낸 작가의 글들이 그 아픔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관심 없었던 내가 카미유 클로델이라는 이름을 로댕의 연인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한 나를 그 시대 카미유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과 동급으로 보이게 했다.
나는 <여기, 카미유 클로델>에서 카미유를 처음 알았다.
로댕의 뮤즈가 아니라, 예술가 카미유 클로델을 처음 만났다.
가난과 무지의 시대가
한쪽의 영혼에 빨대를 꽂아 쭉쭉 빨아먹은 사랑이
여자라는 꼬리표에 달린 세상의 편견이
이미 명성을 얻은 남자의 그늘에 가려진 외로운 예술혼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과정을 보았다.
표지에 담긴 결연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어두운 표정의 카미유 클로델의 모습은
그녀가 살았던 세상의 모든 짐이 담긴 표정이다.
완고했던 예술가의 불행은 어쩜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21세기에 그녀가 환생한다면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시대가 그녀를 묻어 버린 거 같다.
그녀의 작품을 직접 보면서 그 손길과 열정을 느껴보고 싶다.
이 책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대변해 주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