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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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 변씨가 남편을 이끌고 서울살이를 정리한 후 아산 친정으로 돌아온 결정은 대단히 현명한 처사였다고 분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도 그 결정을 통해 아산으로 이사했고 삼남 이순신을 무과 급제시켰으며 국난 극복의 종결자라는 칭송을 듣게 한 것이니, 후대인들로부터도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초계 변씨로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에 대해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자료를 모아서 쓴 책입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 성어도 있지만 맹모와는 다르게 초계 변씨는 기울어진 가산을 정리해서 친정이 있는 아산으로 이사하여 자녀들의 앞길을 도모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건천동(지금의 충무로 일대)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곳에서 순신의 형 요신이 서애 류성룡과 친구여서 그 무렵부터 류성룡과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변씨는 일찍부터 아들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성품에 맞게 진로를 정해두었던 거 같습니다.

남에게 구속받기 싫어하고, 전쟁놀이를 즐겨 하며 활을 잘 쏘았던 순신을 무과에 보내기로 생각합니다.

아산으로 이사를 결심한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조선시대에도 이름이 있었을 텐데 성씨로만 전해지는 부분에서 조금 서글펐습니다.

나라를 구한 장군의 어머님인데 이름 석 자 정도는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변씨가 손수 시행하여 발급한 <별급문기>는 1584년에 작성했던 문서를 화재로 잃어버리고 나서 1588 3월 12일에 다시 작성한 것이다. 원래는 이순신이 1576년 무과에 급제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어머니인 변씨가 노비와 토지를 증여한 서류다.

 

 

강단 있고, 계획성 있고, 꼼꼼했던 초계 변씨는 향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재산 분쟁의 소지를 아예 없애기 위해 이 문서를 작성하면서 자식들과 손자들을 증인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변씨는 대쪽 같은 성격과 집념이 있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남편과 장남을 차례로 잃고 재산도 화재로 날려 버렸지만 주저앉지 않았죠.

화재로 타버린 재산 증여 문서를 재작성한 모습만 보아도 그분의 심지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든이 다 된 나이에도 아들 순신이 자신을 걱정할까 염려되어 난리 통에도 아들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여수로 내려갈 결심까지 하시니 보통이 넘는 분이셨습니다.

여든이 다 된 나이에도 아들 순신과 손 편지를 주고받으셨다고 하는데 전해진 것이 없어서 아쉽네요.

 

초계 변씨에 대한 이야기지만 자료가 별로 남지 않아서인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염려가 곳곳에 남겨져 있네요.

아들이 막중한 임무를 맡은 와중에 자신을 염려할까 싶어 노구를 이끌고 여수로 내려가 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 초계 변씨.

그는 아들이 왜군의 간계에 빠진 조정에 의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자 아들을 구명하기 위해 서울행을 택했으나 그곳으로 가는 와중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은 걸까요?

순신은 풀려났지만 어머니의 이미 고인이 되셨습니다.

저자는 이순신 장군이 어머니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백의종군까지 해가며 목숨을 바쳐 전쟁에 임했다고 생각합니다.

 

초계 변씨의 이야기 보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에 가까운 책이지만 적은 자료로 초계 변씨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라를 구한 아들을 낳은 어머니" 초계 변씨.

위대한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셨던 분입니다.

이순신 장군에게 후대가 빚을 졌다면 우리는 그 어머니 초계 변씨도 기억해야 할 겁니다.

그분이 이순신을 무장으로 키우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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