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으로 빚은 집 - 1969 퓰리처상 수상작
N. 스콧 모머데이 지음, 이윤정 옮김 / 혜움이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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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허리춤까지 벗은 채였고 팔과 어깨에 재와 검댕을 칠해놓았다.

아벨은 달리고 있었다. 여명이 비치는 겨울 하늘과 기다랗고 환한 골짜기를 배경으로 그는 아주 조그맣게, 혼자서, 거의 정지한 듯 보였다.

 

 

1969년 퓰리처상 수상작 여명으로 빚은 집.

서문부터 문장 속에 빠지고 말았다.

이 글들엔 숭고한 무언가가 스며있다.

광활한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지고 인간들은 종족을 구분할 필요도 없이 작은 점에 불과했다.

그런 광활한 대자연을 품고 사는 인디언들.

자신의 자식들뿐 아니라 7세대 이후의 미래 자손들까지를 생각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았던 영적인 종족이 백인들의 총칼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 피를 이어 받은 아이들은 백인도 인디언도 아닌 채로 삶을 살아내야 했다.

저급한 그들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말들은 '문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점점 사라져갔다.

 

아벨은 아버지를 모른다.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프란치스코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아벨은 말 없는 소년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다. 두 문명 세계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전쟁은 그의 순수한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그가 전쟁에서 돌아온 그의 나라는 백인의 문명 아래 자신의 정체성마저도 희미해졌다.

자신을 말할 수 없는 아벨.

자신의 세상을 표현할 길 없는 아벨.

거대한 자연은 침묵했고, 거대 문명은 그들을 잡아먹었다.

 

인디언이 쓴 영문소설은 처음이다.

내가 아는 인디언은 서부영화 속에서 사람의 머릿 가죽을 벗기는 야만인들이었다.

중동의 모든 사람들이 테러범처럼 여겨지는 오늘날처럼.

백인의 문명은 자신 들것 외에는 아무것도 용인하지 않는다.

남의 문명을 미개한 걸로 치부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미개인이라는 사실을 더 많이 깨달았다.

여명으로 빚은 집을 통해...

 

그는 변하길 원치 않았거나 아니면 변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아벨은 탱크 앞에서 춤을 췄다.

백인의 형상으로 찾아온 뱀을 칼로 찔렀다.

조상들의 방식을 따랐을 뿐이었지만 문명의 법은 그걸 이해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닌 채

백인들의 문명 속에서 백인처럼 살아내야 하는 인디오들의 삶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그들의 언어로 살아야 했던 조상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벨이 살았던 시대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았던 세상은 같은 세상이었고

아벨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정체성을 잃고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아벨을 이해하려 했고, 도우려 했고, 그를 지키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은 그 사람들로 인해 상처가 아물게 되고, 마음이 따스해지게 마련이다.

 

그는 그들을 돕고 싶었다.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그는 그들이 그에게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 건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는 압도적으로 다가왔던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책 안에서 펼쳐지는 풍경들에 숨이 막힐 거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손끝에서 표현되는 삶들은 처절하게 슬프다.

그 슬픔은 책을 읽는 동안 점점이 커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먹먹해진다.

 

이것들, 떠나오기 전의 모든 것들을, 그는 온전하고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은 최근의 과거로, 늘 갑작스럽고 뒤죽박죽인 시간이자 끔찍한 고요와 불일치로 가득한, 의미 없는 몇 날들과 몇 해였다.

 

 

두 세계에 발을 담그고, 두 문명을 이해하고 자란 사람의 시선은 단순한 듯 복잡하고 복잡한 듯 단순하다.

그리고 읽는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느리게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되는 작품이다.

 

여명으로 빚은 집을 읽으며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문명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스며들게 된다.

하나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이고 하나는 생소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우리를 경계에 서게 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시간대에 있으므로...

 

아벨은 인디언이었다.

그는 인디언이었을 때 가장 자유롭고, 가장 그 다웠으며 가장 생명력이 있었다.

 

아벨이 자신을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저들의 저급한 언어로는 자신을 변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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