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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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통역은 '들리지 않는 사람'만을 위함이 아닌 '들리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들리는 사람'중에는 이런 의식이 없는 사람이 이따금 있다.

 

 

책을 읽는 동안 6년의 시간이 흐른다.

아라이는 미유키와 결혼하고 딸 히토미를 낳는다.

그리고 히토미는 아라이가 우려했었던 상황이 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 히토미.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이 작품은 단편소설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사건에 치중하지 않고 별개의 이야기들이 시간차를 두고 이어진다.

이야기들 사이로 시간이 흐르고 인물들은 나이 들어가고, 그들의 상황은 바뀌어 간다.

 

 

아라이의 조카 스카사의 방황,

미와의 사춘기.

히토미에게 인공와우 수술을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

이런 개인사들 사이사이 통역 의뢰를 맡게 되면서 부딪히는 현실의 벽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농인 부부의 산부인과 방문기에서 아라이는 여성 통역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마땅찮아 하는 부부의 심정을 이해하고 병원 수속만 도와주지만 그들이 의사와 필담으로도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긴급상황이 발생하고 아라이가 그들에게 달려가지만...

 

 

병에 대해서는 의사와 환자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데 의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환자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는지를 확인하지 않는다.

쫓기는 시간에 많은 환자를 만나야 하는 의사의 고충도 있겠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촉'을 동원해 의사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심정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게다가 힘든 병일 때에는 의료용어나 그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통역이 필요하지만 의료지식을 가진 통역인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다.

 

 

들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수화 통역은 그래서 청인들이 많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평생 소리라는 개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아는 사람들이 하는 설명은 도대체 얼마나 와닿을까?

게다가 수화는 하나의 사인이다.

모든 말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짧은 에피소드에 담긴 답답한 현실이 마음을 짓누르는 기분이다.

 

 





장애인 고용 부문으로 회사에 입사한 야요이.

처음 입사시엔 수화 통역사를 붙여주고 최대한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지만 갈수록 그녀의 주위는 냉랭해지고, 승진에서도 누락되고, 사람들은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

야요이는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건다.

 

 

 

그녀가 원하는 건 '약자를 위한 지원'이 아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바라고 있다.

 

 

회사에서 제공한 통역사는 같은 회사원으로 수화 모임에서 수화를 배운 경험이 있는 사람이지만

야요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화를 한다.

각종 회의나 전달사항들도 야요이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녀가 발성도 하고 입모양을 읽는다는 걸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신경함을 덮는다.

소외되고, 방치된 야요이의 외침이 가슴에 점점이 남는다...

 

 

저는 있는 힘껏 들리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민폐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든 입 모양을 읽어 내려고,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어 전하도록. 저는 그렇게 해서 열심히 함께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들리는 사람들은, 당신들은 조금도 옆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다수의 의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은 묻히기 쉽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HAL의 이야기는 다수가 소수를 어떻게 포장하고, 광고하고, 이용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사이에서 자신의 의지를 잃지 않았던 HAL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를 읽는 동안 아주 조금 들리 않는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들은 거의 모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가 좋은 이유는 나의 무신경을 건드려주었기 때문이다.

사회, 의료, 법 모든 분야에서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장애는 타고나는 것보다는 후천적으로 얻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복잡하고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각종 사건 사고는 평범하게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삶을 뒤바꿀 수 있는 요인이다.

그들이 함께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하는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복지는 나라에서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이 시리즈가 계속해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말'을 대신해주는 시리즈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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