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바스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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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는 지휘자를 포함해 나머지 모든 오케스트라를 받치는 기본 골격 같은 겁니다. 비유하자면 웅장한 건물을 세우는 토대라고 할 수 있죠. 오케스트라에서 바스를 빼버리면 바빌론의 언어 혼란 같은 대혼란이 생기고, 누구도 왜 음악을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일명 소돔과 같은 곳이 되어 버립니다.

커다란 악기 콘트라베이스, 콘트라바스, 더블베이스.

모두 같은 악기의 이름이다.

콘트라베이스는 우리나라에 번역되었을 때 혼합되어 쓰인 말이고, 더블베이스는 영어권에서 부르는 명칭이고 본래의 이름은 콘트라바스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콘트라베이스로 명칭 되었었는데 이제는 콘트라바스로 원래의 이름을 찾았다.


옛날 좀머 씨 이야기를 필두로 쥐스킨트를 알게 되면서 그의 책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었던 그 시절엔 이 콘트라바스에 대해서 그저 푸념 정도로만 생각했다.

인기 없는 악기를 다루는 인기 없는 남자의 별 볼일 없는 푸념.

나이가 들어 이 책을 재독하면서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쥐스킨트의 이야기를 다시 해석하게 되었다.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 원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콘트라바스 연주자였다.

화려한 소프라노를 돋보이게 해주고, 수많은 악기들의 뒤에서 간간이 음을 넣어 그들을 받쳐주는 역할.

항상 필요하진 않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역할.

사회의 중추는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들...


콘트라바스는 태초의 악기입니다. 태초의 소리를 낸다는 말이죠.





방음이 잘 된 공간이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공간이다.

외부와 차단되어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그곳은 바로 콘트라바스를 위한 곳이기도 하다.

악기의 음이 낮고 굵은 콘트라바스는 독주가 불가능한 악기다. 그럼에도 까다로운 악기이기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은둔자 쥐스킨트에게 어울리는 악기이자 공간인 콘트라바스의 무대.


이 작품은 모노드라마로서 연극 무대에 가끔 오른다.

이야기 속의 콘트라바스 연주자는 맥주로 목을 축이며 관객에게 이야기한다.

콘트라바스의 위용에 대해, 그의 쓸모에 대해, 자신의 짝사랑에 대해, 자신의 결심에 대해.

이 모든 이야기엔 세상을 바라보는 쥐스킨트의 신랄함이 담겨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느껴지는 세상의 이치...

이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였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읽혔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 일을 하게 되었고,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굳이 물을 필요는 없겠죠.


각가의 이유로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자리가 있다.

원했던 자리던 원치 않았던 자리던.

각자가 맡아야만 하는 자리.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다.

묵묵히.


쥐스킨트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 사람들도 그 일을 원해서 하는 건 아니라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는 거라고.

돋보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며, 거추장스럽고, 자리만 차지하는 거 같아도

그들이 없으면 완벽해지지 않는다고.

그러니 당신이 지금 누리는 모든 안락함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수고로움이라고.


조근조근 이야기하다 흥분하고, 사랑에 빠진 연민을 보여주다 갑자기 극적인 결심을 하지만

결국 똑같은 나날을 보내고 같은 일상으로 되돌아올 거 같은 콘트라바스 연주자.

언제나 일탈을 꿈꾸지만 언제나 제자리인 콘트라바스 연주자.

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걸 느끼게 되면 그가 호기롭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내기를 바라게 된다.

콘트라바스 연주자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항.

그것이 불러올 반향이 어떠할지는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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