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지 않은 공무원이었지만 뇌물은 받지 않았다.
동료들을 싫어하고 경멸했지만 그럴만한 진짜 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 틀을 짜 놓고 그 안에서 세상과 인간을 재단했던 한 인간의 비뚤어진 삶을 보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기에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세상 속에서 부딪히며, 사람들 사이에서 유영하며 삶을 살아내기보다는
단절과 고립으로 자신을 벌주기를 택했던 사람의 끝없는 독백이 나를 지치게 했다.
도스또예프스끼 식의 심리 스릴러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어쩌면 묻지 마 살인범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가 21세기에 살았다면.
하지만 그는 러시아에 살았고
계급이 있는 시대에 살았으며
그를 피해 가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살았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고립 시키고 책을 읽는다.
책이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었고
자격지심에 자양분이 되었으며
사람 대신 소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주었다.
책 속에 쓰인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던 지하인.
스스로가 잘 못 되었음을 알고 있는 그는 세상에 자신을 내놓기 보다 땅속으로 은둔하기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자기를 알아달라고 글을 쓴다.
언제나 모순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는 그의 모습이 답답하다.
남에게 무시당하는 건 못 참아 하면서도 만만해 보이는 사람은 한없이 무시해 버리는 그 태도.
갑자기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이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뛰쳐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믿지 못하고
서로를 경멸하며
항상 등질 이유만을 들이대고
나중에 후회하면서도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반목하는 이들.
도스또예프스끼는 21세기 미래형 인간을 만들어 냈다.
지하 생활자는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읽기가 힘들었나 보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이야기하는 글에는 알레르기가 있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