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 게임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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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자르려면 이즘이 필요하다.

 

 

아오시마제작소는 연간 500억 엔의 이윤을 내는 중소기업이다.

탄탄한 기술력으로 입지를 다져온 회사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미국 발 경제 위기로 인해 타격을 입은 일본 경제도 여기저기서 수출량이 줄어들면서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막강한 영업력과 자본으로 밀어붙이는 경쟁사 미쯔와가 후려치는 가격으로 아오시마의 숨통을 조인다.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유한 미쯔와 때문에 사면초가인 아오시마제작소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그리고 아오시마에겐 연패를 자랑하는 연간 3억 엔의 비용이 드는 야구팀이 있다.

존폐의 위기에 놓인 야구팀은 얼마 전 감독이 사표를 내고, 투수와 4번 타자를 데리고 미쯔와 전기로 이적해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 고등학교 야구 감독이었던 다이도가 오고, 선발 선수들을 베테랑들을 빼고 신입들로 채운다.

회사와 야구팀은 창립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다.

과연 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이케이도 준은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로 이름만 알고 있는 작가였다.

기업 소설의 대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 작가의 필력이 참 담백하다.

그 담백함으로 이야기하는 곳곳에 인간에 대한 기본적 배려가 담겨 있어서 뭉클했다.

 

위기에 직면한 기업이 어떤 리더를 두었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의 생사는 달라진다.

사장으로서의 호소카와의 고뇌와 어떻게 해서든 공정하게 구조조정에 임하려는 중간 간부 미카미의 모습은 냉정한 기업인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들의 어깨엔 많은 이들의 삶이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칼자루를 자신을 위해 휘두른다. 반도 같은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모든 걸 희생시키는 쪽으로 밀고 가지만 호소카와는 모두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려고 노력한다.

겉으로만 보면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존폐 위기의 야구팀과 작은 기업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비용 대비 효과를 검토해야 할 시대에 접어든 지금, 이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

이게 세대의 변화가 아니겠나'

시대의 흐름은 얼마나 냉정한가. 그리고 그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자신은 얼마나 나약하고 허무한 존재인가.

 

 

담백한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긴장감과 시시각각 죄어오는 압박의 기운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주주들과 함께 고생한 회사원들의 안위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경영진들의 고뇌 앞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회사와 사원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약 반도 같은 사람만 있다면 이 세상은 살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추구하면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다. 라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짧게 등장하는 인물들 마저도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게 다 해결되지만 독자가 생각하는 바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이야기의 묘미가 있다.

약간의 반전이라고 할까?

 

야구팀의 이야기보다 기업팀의 이야기가 훨씬 쫀득했다.

그들의 방식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담겼다. 겉에서 보는 구조조정은 잔인하고 무분별하게 보인다.

마구잡이로 보이는 구조조정 그 안에서도 분명 고뇌하고 고뇌하던 미카미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분명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오시마가 왜 야구팀을 만들고, 그것을 소중히 키워왔는지를.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아무리 열세에 놓여 있더라도 최후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순수하게, 존엄하게, 강렬하게...

 

살면서 잊어버린 감정들이 문득 깨달아질 때가 있다.

본질을 깨달을 때의 감동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루스벨트 게임은 야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 스코어는 8 대 7이라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에서 나왔다.

인생의 묘미도 이것에 있다.

 

열심히,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흔들릴 때마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이 먼저인 사람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맛'에 이케이도 준의 이야기를 읽는가 보다.

 

야구장에 갈 수 없는 이 시대에 책으로 멋진 야구 경기를 읽었다.

일본 기업 문화의 극과 극을 보았다.

호소카와 같은 리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호소해본다.

 

누군가에게 혹~ 한 제의를 받았거나

누군가를 잘라 버릴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모두가 어떤 것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심연을 키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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