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손에 죽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이 두려운 마음을 더 두렵게 했을 것이다.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릴 때의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거 같다.
영조는 어째서 귀하게 얻은 아들을 갓난 아기 때부터 궁인들에게만 맡겨 두었을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골이 깊어지고 임오년의 그 일이 생기기까지 혜경궁 홍씨는 아마도 무수한 생각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남편은 더 이상 왕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아들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것이다.
한중록엔 그런 이야기는 안 나온다.
자신의 한스러운 처지와 정조의 효심과 친정 식구들의 충성심만을 나열했을 뿐이다.
사도세자가 어떻게 뒤주에서 죽게 되었는지도 그때의 정치 상황이 어떠했는지도 나와있지 않다.
화완옹주가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함으로써 욕심이 생겨 자신의 친정을 음해하고, 세손이 외가를 등지게 했으며 세손이 아들을 낳지 못하게 세자빈과의 사이도 안 좋게 만들었다고 한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자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혜경궁 홍씨가 그 살벌한 상황에서 아들을 지켜내고 자신의 목숨도 지켜낸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녀가 아주 정치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뒤주에 갇혀 남편이 죽었음에도 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렸으니 그것이 보통 아녀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영조의 사랑으로 버무려놨으니 그것 또한 굉장한 정치력이다.
자신은 몇 번이고 죽으려 했지만 세자 때문에 모진 목숨을 이어왔다고 썼다.
자신의 친정은 모두 나라에 충성했고 한 치의 욕심도 없었다고 썼다.
영조의 사랑이 넘쳐서 과분하다고도 썼다.
하지만 사도세자를 구하기 위해 무엇을 했다는 내용은 없다.
남편이 병들어 감을 지켜보면서 무슨 일이 있을지 예감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를 먼저 포기한 건 그녀였다.
한중록을 예전부터 읽고 싶었다.
진실을 알고 싶었기에.
혜경궁 홍씨의 기록은 긴 목숨을 이어온 사람의 변명 같은 거였다.
그날의 진실은
그날 사라졌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