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이유정 지음 / 북스토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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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이란 이름으로 인지했던 이유 모를 행동, 이유 모를 사회, 이유 모를 수많은 것들에 물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이전에 스스로 물음이란 걸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는 근종이 아님을! 덕분에 반성 없이 묵인했던 많은 불평등을 반성했고, 식탁 위, 냉장고 안 등 손과 눈길이 닿는 많은 것들에 담긴 모순을 인지했다.

 

 

 

20대 후반 결혼을 앞둔 그녀는 자궁근종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예비 신부에게 출산을 이유로 수술을 권했던 병원을 나와 스스로 자신의 병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까지

주변의 반응은 다채롭다.

 

 

여자애가 어떻게 하고 다니는데, 그런 종양이 생기는 거야?

 

 

자궁근종은 여자들의 자궁에 생기는 종양이다.

크고 작은 종양들은 거의 모든 자궁에서 자라고 있다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문제가 되는 건 그 종양이 10Cm를 넘어가도록 계속 자라는 게 문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체크해야 하고 종양이 커지게 되면 불가피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어느 부위에 어떻게 생겨나는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쨌든 이 종양이란 여자의 행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여자 어른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자궁근종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려는 의지가 담긴 책이다.

그 의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병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각종 논문과 자료를 찾아서 읽고, 공부했다.

근종은 호르몬과 관계가 있었다.

나도 자궁근종을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의사를 만났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지만

만약에 의사가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당장 수술을 했을 것이다.

이 책의 작가처럼 근종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이 책엔 근종에 대해서 공부하고, 그것을 줄이거나 자라는 속도를 느리게 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의 경험담이 담겨있다.

환경 호르몬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먹거리를 조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도 담겨있다.

이 모듯것들을 읽어 가면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인데도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내 몸에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의심하지 않고 남들이 좋다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환경 호르몬에 대해서도 정말 별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의 많은 것들을 관습이라는 관점으로 당연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비판적 사고 없이 여성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여성성이 훼손되었음'이란 무의식적 낙인을 찍었다. 문화란 이름으로 사고방식을 결정짓는 과정에 대한 비판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성 질환에 대한 편견.

이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상처들은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그저 습관처럼 내뱉는 말들은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습득한 말들이다.

자라오면서 여자 어른들이 하는 말을 여과 없이 저장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말들이 무의식적으로 나오지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못 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자궁근종을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내가 막연히 부당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심각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늘 그러려니 하고 생활에 묻어 버렸던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묵살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개선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작가의 모습에 뭉클해졌다.

누군가의 이러한 노력들이 울림이 되어 나처럼 그저 생각만 하고 말았을 사람들의 귓가에 종소리가 되어 울린다면

앞으로의 삶의 질이 조금은 나아지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생리통이 유달리 심했던 작가는 근종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생리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도 해본다.

면 생리대를 쓰고, 좋은 먹거리를 먹고, 혈액순환이 잘 되게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생리통의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생리통 역시 모든 여자들이 당연하게 겪는 것이라 생각하고 유난 떨지 말라고 배웠다.

정말이지 생리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해서 그날, 빨간 날, 홍언니, 공산당이 쳐들어왔다 등등으로 부르며 여자들끼리만의 은어로 소통하던 것들이 우습게 느껴진다.

 

 

생리통을 생리통이라 말하지 못하고, 생리를 생리라 말하지 못했던 홍길동의 누이들이여!

 

이 책은 나도 모르게 뒤집어쓰고 있었던 관습적인 것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내 몸에 대해서도 바르게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다.

 

 

그녀가 자궁근종을 극복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이제야 알아가는 이야기다.

그녀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 몸에 이상이 오기 전에

내 몸이 비명을 지르기 전에

내가 나를 챙겨야겠다.

 

 

그리고 병원은 정말 한 군데 이상 다녀봐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

기왕이면 좋은 인연으로 만나면 그만큼의 고통을 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를 돈으로 보는 의사 말고, 정말 환자의 고통을 공감해 주는 의사를 만나기를 소망한다.

 

 

자궁근종 하나로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

수술을 미루고 1년 반 정도 자신의 몸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은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아프지 않고 내 삶을 바꾸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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