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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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줍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프다. 프놈펜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곳 사람들은 남들이 내다 버린 것들에서 삶을 일구고자 오늘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늘의 배고픔을 덜기 위해 내일의 희망과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다.

 

캄보디아 프놈펜.

그 안에서도 스퉁 민체이. 이곳은 쓰레기 매립장이다.

그곳에 움막을 짓고 쓰레기를 주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상 리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녀에겐 기 림이라는 남편과 니사이라는 아들이 있다.

부부가 하루 종일 일해도 하루 살이 삶일 뿐. 나아지는 형편은 아니다.

게다가 니사이는 늘 설사를 달고 살고, 매달 집세를 받으러 오는 괴팍한 노인네는 성질이 고약하다.

 

소피프 신.

집세를 걷으러 다니는 이 노파는 늘 술에 절어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에게 매달 집세를 주면서 시달리는 상 리에게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동화책 한 권이 두 사람의 인연을 바꿔 놓은 운명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매캐한 공기와 희뿌연 연기가 책을 읽는 내내 주위를 맴돌았다.

기 림과 상 리는 그 와중에도 어찌나 착실하고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지 눈물을 흘리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다.

상 리는 그런 남편을 자신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책 한 권.

집세를 걷으러 왔다 그 책을 보며 오열하는 소피프.

그런 소피프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상 리.

 

이 기적 같은 일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아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이야기를 쓴 아버지.

어째서 나는 이 이야기를 캄보디아인이 썼다고 생각했을까?

왠지 유려한 글을 읽으면서 상 리가 글을 배워 쓴 자전적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역시 책을 다 읽고 작가에 대해 읽기까지 이 책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은 쓰레기 매립장과 아들을 위해 글을 배우려고 한 어머니라는 키워드만 가지고 어리석게 덤벼댄 나의 조급함이 일으킨 착각이었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서도 한치의 의심도 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만큼 이 이야기가 몰입도가 좋았기 때문이다.

 

소피프 신만 빼고는 모두 다큐멘터리에 얼굴을 비친 사람들이다.

책의 뒷면에 그들의 사진이 있다.

그곳에서도 그들의 미소는 해맑다.

 

나도 글을 읽는 게 약을 대신한다거나 몸을 낫게 해준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뭔가를 기대하게 하고 무언가와 맞서게 하는 힘을 길러 준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아이가 용기를 얻을 거라 믿고 싶어요.

 

아들은 계속 아프고, 상 리는 소피프를 통해 글을 배운다.

그러면서 점차 소피프에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집세나 받으러 다니는 괴팍한 여자는 과거에 대학교수였다. 문학을 가르치는.

소피프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상 리와 소피프의 수업 시간에 언급되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

이제 책을 알아가는 맛을 알게 된 내게 문학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그들의 절절한 삶 속에서 글을 배운다는 건 어쩜 누군가에겐 웃기는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대리만족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도전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상 리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지 않고 지지해준다.

 

가난은 서로를 갉아먹기도 하지만 서로의 품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렸다.

 

글을 깨우치면서 느끼는 희열.

글을 알게 됨으로써 알게 되는 깨달음.

글을 통해 깊어지는 생각의 사슬.

상 리를 통해 나도 점점 생각의 깊이가 깊어진다.

 

어쩌면... 스퉁 민체이에서 사라진 건 당신 자신일 수도 있어요.

 

 

소피프에게 던진 상 리의 일갈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일지 모른다.

자신을 잊고 현실에 수긍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

 

소피프의 과거에서 캄보디아의 과거를 본다.

내전으로 인한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크메르루주 군대가 프놈펜을 장악하고 일어난 학살에서 모든 것을 잃고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린 소피프의 이야기에서 한국전쟁을 떠올린다.

비슷한 아픔을 공유한 캄보디아에 대해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이 책에 대한 고마움이다.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은 자신의 이름도 잃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했다.

자신을 살려준 이들을 위해 살아냈던 영혼은 철저하게 자신을 망가뜨렸지만

결국 희망이라는 그물에 걸려 자신의 마지막 제자를 키워낼 수 있었다.

 

그 후로 내내 대가를 치르며 살아왔지.

선택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해. 반드시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까.

좋든 나쁘든.

 

현실에서 길어올린 감동이었다.

스치듯 지나칠 그들의 일상에서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의 솜씨가 아름답다.

책을 읽고 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어떻게 주어진 삶에 감사해야 하는지

어떻게 앞으로의 삶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서로를 믿고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 있든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풍요롭다.

상 리에겐 희망이 있었고, 그 희망은 이루어 줄 인연을 연결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오래되고 깊은 상처의 틈을 아무려주었다.

세상은, 사람은, 문학은 그렇게 서로를 이어가는 인연의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움은

그래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죽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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