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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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여자를 좀더 안전한 그의 종자 마을로 데려가야 한다. 기이한 힘을 지닌 여자이니 아직 임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한 능력이 있는 남자를 데려다주면 그녀의 능력을 가진 아이를 낳을지도 모른다.

 

 

 

 

40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정령.

인간의 몸을 취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한때 인간이었지만 더 이상 그 무엇도 아닌 존재 도로.

그는 자신 같은 능력을 가진 인간들을 모아 마을을 이루고 그들을 교배시켜 더 강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그에게 포착된 여자가 있었다.

아냥우.

그처럼 오래산건 아니지만 죽지 않는 여자였다.

자유자재로 변신도 가능했고, 힘도 무척 센 여자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치유사였다.

 

 

아냥우는 자신의 일족을 도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도로를 남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혼자 남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그와 힘을 합치면 자신의 자손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도로가 그녀에게 가지고 있는 계획을 몰랐기에 가능했던 상상이었다.

 

 

 

 

 

 

 

 

 

 

 

 

 

 

 

 

 

그는 이 여자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최고의 야생종이다. 이 여자의 피가 섞이면 어떤 혈통이든 강해질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강해질 것이다.

 

 

 





도로에게 아냥우는 교배종일 뿐이었다.

강력한 혈통을 생산해 내는.

인간성을 점점 상실해가는 도로에게 질려가는 아냥우.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도로를 멀리하지만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결국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그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짚어낸 이는 도로도 아냥우도 아니었다.

도로의 아들이자 아냥우의 남편인 아이작이었다.

그들 사이를 관통하는 건 고독이었다.

죽음을 초월한 존재들인 두 사람은 결국 죽어가는 자신들의 후손들 앞에서 언제나 혼자였다.

능력이 있는 자이건, 능력이 없는 자이건 결국 인간은 죽게 마련이었다.

그 죽음 끝에 남는 건 도로와 아냥우 뿐이었다.

그것을 직시하고 그들이 사이좋게 서로를 받아들이며 함께 하기를 바랐던 건 아이작이었다.


당신과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일시적일 뿐이니까. 내가 가진 것은 당신뿐이니까. 앞으로도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당신뿐일지도 모르니까.

당신이 끔찍하게 역겨운데도.



아프리카를 떠나 도로가 마련해 놓은 정착지인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에도 아냥우는 자신의 이름을 고집한다.

사람들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바꾸라 권해도 아냥우는 '태양의 여자' 라는 뜻의 자신의 이름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여자한테는 자기만의 것이 있어야 해.




도로는 자유자재로 인간의 몸을 취해 나타난다.

아냥우는 스스로 어떤 생명체로도 변신을 할 수 있다.

같은 거 같은데 다르다.

도로가 변신을 하기 위해서는 살인이 필요하고

아냥우가 변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의 구조를 바꿀 뿐이다.

도로는 모든 폭력과 그 위에 세워지는 질서를 대표한다.

자기 잣대로 만든 질서.

그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게 속박하는 질서.

자신에게 복종하게끔 만드는 질서.

그래야만 그 질서 안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자유로운 거 같지만 결국 억압받고 구속되는 인간사다.

아냥우는 치유와 사랑 안에서 자신의 일족을 만들어 간다.

신뢰와 사랑과 화합으로 만들어진 질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도로의 등장으로 어지럽혀지던 아냥우의 질서는 그대로 사라질까?

흑인의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 같다. 내겐.

도로의 생명은 죽음 위에서 탄생한다.

아냥우의 생명은 생존에 최적화되게끔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결과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도로는 그저 교배용으로만 본다.

아냥우는 사람 그 자체로 이해하고 보듬는다.

이 이야기가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라면 폭력과 죽음을 치유와 화합의 손길로 아우를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서로 간의 협약을 맺었으니까.

그것이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필요악일 테니.

흑인의 고된 역사 이야기에서 이토록 멋진 판타지가 나올 수 있다니.

그것도 1980년대에서.



나는 페미니스트, 흑인, 거대 도시에 사는 은둔자, 그리고 열 살때의 꿈을 잊지 않고 여든 살이 되어서도 계속 글을 쓰고 있기를 꿈꾸는 작가이다.




책을 덮고 그녀의 말을 다시금 되새긴다.

그렇게 가지 않고 지금도 살아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지 궁금한 날이다.

죽지 않고 계속 산다는 건 어떤 것인지

그 모든 고독을 끌어안고 계속 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세상 어딘가엔 도로도 아냥우도 마냥 존재해 있을 거 같다.

어쩜 우리는 그들의 뿌리에서 빠져나온 교배종일지도 모른다.

나날이 진화되어 조금씩 삶의 뿌리를 연장해 나가는.

그럼에도.

여자는 자기 것이 있어야 한다는 아냥우의 말이 계속 생각에 남는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알아 가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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