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요리책을 냈던 이 소설가는 그 영역의 끝을 모르겠다.

이번에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라는 미술 에세이를 냈으니까.

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1989년부터 2013년에 걸쳐 여러 유명 잡지에 실린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첫 장에 등장하는 제리코의 이야기는 마치 단편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재난을 미술로. 라는 부제가 붙은 이야기는 제리코가 그린 그림을 낱낱이 분석한 자료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 그림에 그런 숨은 이야기가 있었다니 그림만 보았었던 나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은 사실화였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신화나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 아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그렸다.

그렇게 알고 보니 그림이 예사로이 보아지지 않는다.

 

 

 

 

 

일화주의자 프로이트.

지그문트의 손자인 루치안 프로이트는 자신을 생물학자라 표현했다.

 

그는 당면한 순간의 현실을 그렸다.

그는 자신을 생물학자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동물학자로 표현한 그답게 그의 행동들은 괴짜적인 측면이 많다.

여성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현실의 모습이 아닌 더 나이 든 모습으로 표현했다.

민낯 보다 더한 깊이를 들여다봤기 때문일까?

좀 더 사실적 느낌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포토샵을 전혀 거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진처럼 프로이트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던 거 같다.

 

어쩌면 때가 되면 이 모든 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예술 작품은 언젠가는 작가의 전기를 벗어나 자유로이 떠돈다는 특징이 있으니까.

 

 

이 책엔 16명의 화가의 이야기와 한 편의 전시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화가에 대한 이야기. 는 그림 에세이에 늘 등장하는 소재이다.

그러나 모두 감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에세이에 그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인데

반스는 그 에세이조차도 그답게 접근했다.

소설 같고, 에세이 같고, 다큐 같고, 기록 같은 아주 사적인 산책.

그래서 이것이 에세이인지 부분적인 단편소설인지 헷갈린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그림을 들여다보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도대체 그림에서 무엇을 느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도대체 그림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야 화가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탐구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줄리언 반스의 그림과 화가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분석을 다룬 책.

 

 

이 책은 저 둘 사이의 경계에 있는 책이다.

아마도 좀 색다른 그림 에세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그림과 화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을 테고

나처럼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재밌는 일화가 담긴 에세이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적절하게 균형을 잡은 이 에세이는 그림을 보는 시각에 어떤 부당한 선입견을 주진 않는다.

그저 화가의 그림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 뿐이다.

 

줄리언 반스라는 소설가의 그림 보기는

그래서 한 편의 예술영화를 본 기분을 갖게 한다.

미술 산책이란 제목처럼 줄리언 반스와 그림이라는 공간을 함께 산책한 느낌이다.

 

다른 날 이 책에 언급된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나는 줄리언 반스를 떠 올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거 같다.

그건 반스가 원하는 그림 감상이 아닐 테니까.

그는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하길 원할 것이다.

자신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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