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해피엔딩
크리스틴 해밀 지음, 윤영 옮김 / 리듬문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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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필립 라이트.

장래 코미디언이 되는 게 꿈.

현재에도 꾸준히 개그 감각을 높이려 애쓰고 있음.

나쁜 일들이 차례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의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워낙 사소했기 때문이다.

 

 

이 개그감으로 충만한 소년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들은 무엇일까?

학교에서 설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가로세로 180cm인 에디를 만나는 것?

허영스럽지만 예쁘고, 필립의 개그를 받아 쳐주던 엄마가 이상해진 것?

짝사랑 루시가 눈길도 안 주는 것?

단짝 친구 앙이 그를 거들떠도 안 보고 루시와 사랑에 빠진 것?

애정 하는 코미디언 해리 힐에게 무한정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을 하나도 못 받은 것?

이 소년의 이야기는 마치 버석거리는 사막에 내린 단비 같다.

언제 젖는지도 모르게 촉촉하게 적시는 감동의 단비.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웃음을 주려 하는 모습이 어떨 땐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을 때 좌절하는 모습은 귀엽고도 슬프다.

그래도 필립을 통해서 나는 다른 감정 하나를 알게 되었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비관하고, 자신을 괴롭히거나 타인을 향해 분노를 내뿜는 사람이 있다면

필립처럼 그 상황을 유머로서 모면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는걸.

특히나 어른도 아닌 아이로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나 현실을 농담 한 마디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건

어른의 눈높이에서 볼 때 어이가 없거나, 애들은 어쩔 수 없다거나, 쯧쯧 거림으로 넘어가곤 하는데

그것은 정말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

아이의 엉뚱한 말이나 행동은 그것을 감당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어른들은 알아야 한다.

이 어리고, 철없고, 연약해 보이는 소년 필립은

누구보다 강단 있고, 따스하며, 유쾌한 아이다.

그리고 굉장히 어른스러운 감동적인 아이다.

속절없이 어느 순간 터지는 울음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상황이 슬프고, 아프고, 애처로워서가 아니라

그 너머의 필립의 마음이 헤아려져서 터진 눈물이었다.

미다스(Midas)의 철자를 재배열하면 '난 슬퍼'(I'm sad)가 된다는 걸 아는가? 정말 기이하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슬퍼졌기 때문이다.

 

 

엄마가 이상해진 이유가 암에 걸렸기 때문이라면 식상한 이야기가 될 테지만

누가 뭐래도 해피엔딩엔 식상한 이야기가 없다.

식상한 걸 특별하게 만드는 필립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가 엄마 베개에서 발견한 건 조그맣고 복슬복슬한 동물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 잘못 보았음을 깨달았다. 그건 조그맣고 복슬복슬한 동물이 아니라 엄마의 머리카락이었다. 엄마는 남은 머리카락이 빠지는 걸 막아 보려는 듯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 웃기면서 동시에 정말 슬펐다.

 

 

필립은 집에만 틀어박혀서 밖을 나서지 않는 엄마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나는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다.

열두 살 소년이 생각할 법한.

아니.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할 일을 감행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어른스러워서

그리고 그다음의 행동이 너무 아이스러워서 가슴이 절절해졌다.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누가 뭐래도.

청소년 소설인데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 같다.

아이들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

우리가 아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아이의 생각과 마음은

이미 어른들을 넘어서서 어른보다 더한 어른일 수 있다는 이야기.

비슷한 나이의 조카들을 이제부터 다른 시선으로 보아야겠다.

그 아이들에게도 열두 살의 인생이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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