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 응가 할 시간이야, 크롱! 뽀로로 생활 동화 시리즈
키즈아이콘 편집부 엮음 / 키즈아이콘(아이코닉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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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계속 읽고 좋아하기까지 하면서도

("크통책 보자" 하면서 이 책을 가지고 온다.) 

아직도 변기에서 "뿌지직"만큼은 격하게 거부하고 있는 울 아들..

가장 신나하는 대목은 역시(ㅋㅋ) 뽀로로 친구들의 응가가 떠 있는 변기 물을 내리는 장면이다.

언젠가 니 응가를 그렇게 떠나보낼(?)수 있길 엄마는 바라고 또 바란다.

 

책 내용도 재미있고 tv에서 보던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서 아들도 좋아한다.

뿌지직, 하는 장면과 포비가 방귀를 껴서 해리가 기절하는 장면에는 배를 잡고 넘어간다. ㅎㅎㅎㅎㅎ

(아니면 엄마의 재연이 너무 웃겻던 걸까?)

암튼, 변기와 친해지고,

방귀가 뽀롱뽀롱 나오기 시작하면 응가하러 가는거야, 정도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변기훈련용으로 나온 다른 책들도 몇 권 보긴 했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이 아이에게 가장 친숙해서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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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세트 - 전2권 사랑의 기초
알랭 드 보통.정이현 지음 / 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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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식상하지만 공감한다.

두 사람이 만나 연애를 하다 헤어진다, 이는 식상하다.

"다른 곳에서 발생해 잠시 겹쳐졌던 두 개의 포물선은 이제 다시 제각각의 완만한 곡선을 그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허공에서 포개졌던 한순간이 기적이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이는 공감한다.

 

준호와 민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겪었고, 대한민국의, 아니 전세계의 연애적령기(?)에 든 사람들은 겪었거나 겪는 중일거다. 연애가 핑크빛만은 아니라는 것. 그 디테일함에 살짝 불편해지기까지 한다. 처음엔 서로에게 몰입하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과정. 그 멀어짐이 자연스럽게 고착되어가는 과정의 디테일함. 떠올리기만 해도 공감을 넘어서서 지긋지긋해지려고 한다. 그런 공감 이상의 것을 끌어냈다면 잘 쓰여진 소설인건가?

 

난 알랭 드 보통이 쓴 '사랑의 기초-한남자'에 더 집중했다. 그건, 현실적으로 결혼을 다루고 있는 보통의 소설이 더 와닿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알랭 드 보통을 다른 작가들보다 격하게 존경해서인지, 나도 알수가 없다. ㅋㅋ

 


 

한 남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전적 소설을 쓴다는 알랭 드 보통이 결혼에 관해 쓴 책. 너무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읽어줘야 할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역시나 손에 잡히기가 무섭게 책 구석구석을 접어가며 몰입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쓴 소설이라지만, 이전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자체는 평범하다. 벤과 엘로이즈의 결혼생활.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 뻔함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지혜와 통찰을 건져내는 능력.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보통이 아니다.

 

내 감히, '결혼 안 해본 사람은 몰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지금은 생겼다고 말해본다. 신혼초의 광택나는 가구들과 막 장만해 첨단을 달리는 가전제품들이 아니라, 생활의 먼지가 쌓여가는, 때로는 한거풀씩만, 때로는 켜켜이 먼지가 쌓여가는 오래된 가구처럼 익숙하고 심지어 지겹고, 심지어 확 바꿔버리고 싶은(그러나 그러진못하는) 그 익숙함과 일상성.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바램이 서로 주고받는 다수의 실망과 다툼 속에서 점차 다져져버리는 것, 금방 산 솜사탕을 손으로 탁탁 다져 작은 설탕 덩어리처럼 만들어버리는 것, 결혼을 그렇게 진술한다면 너무 비관적이고 어둡기만 한걸까?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익숙함"과 "일상성"이 주는 안정을 높이 평가해볼 수도 있다. 그건 분명.. 좋은 점이 더 많다.

 

"이렇게 벤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특유의 고충을 알게 되었다."

라고,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이라는 것의 달콤하지 않은 이면을 말한다. 연인이든, 부부이든, 이 사람의 주장은 사랑에도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처럼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고 사랑이란 일 특유의 고충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결혼생활의 갈등이 해결되는 상태를 원한다면, 답은 없다."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대수롭지 않은' 디테일이란 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경험상 이게 신혼초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알고 싶지도 않고, 나랑 맞지 않는 저 사람의 디테일들, 3개월여의 조정(?)끝에 우리 부부는 그게 "치명적"이지 않은 이상 서로를 바꾸지 않기로 하자고 합의했었다. 부부사이의 갈등이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려는 지칠 줄 모르는 완벽주의적 야망"이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른의 사랑은 아이일 때 어떻게 사랑받았는지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상상해보는 것이어야 한다."

아이일 때 받는 부모로부터의 사랑은 아이에게 뭐든 희생적이며 전적으로 모든 걸 쏟아붓는 사랑이다. 아이는 커가면서 그런 사랑을 기대하지만 타인에게서 부모만큼의 사랑을 기대할 수 없다는(혹은 자신도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할수는 없다는) 마음아픈 깨달음의 연속이다. 배우자 역시도 상대방을 위해 "전적"으로 희생하지 않으며 그런 추세는 세대가 변하면서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그러니, 이 말이 옳다. 제대로 사랑하려면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생각해봐야 하리라. (그렇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부모가 되기 전엔 상상조차도 못하는 것들이다.)

 

"진정한 용기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약한 모습에 좌절하여 상처주지 않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죄에 오염되었다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이 책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은 구절이다. 고맙습니다. 제게 힘을 주시네요.

 

이쯤에서 알랭 드 보통의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자.

"결혼의 곤란한 점은,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도 느낄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것들 투성이라는 겁니다. 결혼한 사람들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쁘거나 행복한 순간도 가끔은 있지만, 많은 시간 그것은 짐작보다 훨씬 더 씁쓸하고 고달프고 무미건조하고 짐스럽습니다. 결혼은 노동과 마찬가지로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기쁨을 찾아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죠. 저는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부부들을 위한 책, 동지적 연대감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래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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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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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은 kiss & tell

 

 

계획에 없이 불쑥 내 독서리스트에 끼어들어온데다가(선물이었음)

하필 책 읽을 시간을 기어이 "사수"해야만 읽어지는 상황도 한 몫해서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가 아니었더라면 읽다가 중단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엔 오히려 소위 말하는 '이상형'이란 게 없었는데

나이 들면서 그런 게 생긴다. (나도 안다. 이상형은 말 그대로 '이상'일 뿐이다.)

암튼, 그래서 내 이상형을 압축된 언어로 표현하자면 "예민한 천재"다. ㅋㅋ

다소 까칠하고 예민하지만 하늘이 내려준 재능으로 예술적인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사실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살긴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정신적 교류이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저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과 차 한잔 나누는 정도랄까?

알랭 드 보통이란 사람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작가라는 사실과 그의 소설들, 그리고 사진에서 보여지는 이미지 때문에 그 이상형 리스트에 오래전부터 올라가계신 분이다. ㅋㅋ(참고로, 최근에는 지드래곤이 추가됐다. ㅎㅎㅎㅎㅎㅎ)

 

 

예전 애인에게서 "공감능력부족"이라는 딱지가 붙어 차여버린 주인공이, '공감능력'이란 걸 키워보고자 한 인물의 전기를 써보려고 시도한다는 내용이다. 그 인물은 새로운 여자친구 이사벨인데 어찌나 속속들이 적어놨는지 맨 마지막에 이사벨에 관한 퀴즈를 풀 땐 나도 만점을 받았다. 주인공 역시 만점을 받았기 때문에 이사벨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마지막엔 이사벨 자신조차도 잘 모르는 이유로 차인다.ㅋ

 

 

그 부분에서 내가 공감했던 건,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 남자주인공처럼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왜 헤어져야 하는지 모를거라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나처럼)이사벨이 왜 헤어지려 하는지 자신 조차도 잘 모르고 있지만 쉽게 수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쉽게 말해 남자와 여자의 '언어(말로 된 언어 뿐만 아니라 몸짓, 행동, 말 뒤에 숨은 의도)'가 다르다는 점이 공감을 하니마니 하는 주제의 키워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이사벨의 말 뒤에 숨은 미묘한 뜻을 나는 잘 알아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에게는 그게 어려울거라는 걸, 그리고 이건 현실세계에서 정말 자주 마주치는 흔하디흔한 남녀간의 의사소통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여자의 언어는 까다롭고 미묘하고 꼬여있고 간단치 않다. 싸울 때의 대화를 곰곰이 되씹어보면 답이 나온다. 나는 빙산의 일각만 말을 하고 대부분의 할 말은 마음 속에 꽁꽁 숨겨놓고 알아주길 바라다가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펑, 하고 터져버린다. 산책하러 가고 싶어? 라고 묻는 건 의사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산책하러 가자는 뜻이다(이 예문은 책 속에도 나옴). 여자의 언어는 상황에 따른 추측이 필요하다. 고양이와 개의 의사소통이 이럴까? 수많은 싸움 끝에 내가 깨달은 건, 남자한테 이야기할 때는 직설화법으로 할 것! 이다. 돌려서 말하지 말고 원하는 걸 말하기. 기분이 상할까봐, 혹은 그냥 떠보고 싶어서.. 이런 이유로 돌려말해봐야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었다. '산책가자' 그렇게 말하면 응, 또는 아니, 라는 답이 나오고 상황이 딱 끝나는 거.. 그게 가장 쉽고 마찰없는 "남자랑 의사소통하기" 법인 것 같다.(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혀둠.)

 

 

어쨌거나, 한편으론 나랑 공감하기 위해 누군가가 내 전기를 써줄 사람이 있다면 참 행복하겠구나, 하고 느낀다. 이사벨.. 주인공의 여자친구이고 특별하다 싶은 큰 사건을 겪어본 적 없는, 다시 말해 평범한 여자지만 주인공이 전기를 써보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억지로라도 이사벨에 관해 알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여자 입장에서는 가상해보였다고나 할까? ㅋ 저렇게까지 공감하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도대체 내 주변에는 얼마나 있는 거냐고. 있긴 한거냐고.

 

이사벨에 관한 이야기가 약 70%를 차지한다면 남은 몫의 대부분은 "전기" 그 자체에 관한 고찰이다. 전기가 시간적 순서대로 쓰여져야만 하는가? 전기는 얼마만큼의 구체성을 갖고 얼마만큼의 양으로 쓰여져야 하는가? 기억이란 것은 어째서 불쑥 찾아오는가?(프루스트적으로?)

 

 

갑자기 내 앞에 뚝 떨어진 책이라서 큰 기대하지 않고 담담히, 혹은 차분히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서 이럴 바에 안 읽는 게 낫겠다고 책장에 꽂아버릴 뻔도 한 책이지만 역시 알랭 드 보통이었다.

 

책장에 알랭 드 보통의 신간이 꽂혀있다. 으흐흐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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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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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2주가 다 지났다. 리뷰를 하려면 아예 다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제 기억이 희미해졌다. 그래도 난 이 책을 읽을 때 참 좋았다. 그 느낌은 기억한다. 보라색 책, 보라색 책갈피줄, 아담한 사이즈.. 읽으려고 책을 펴면 보라색의 그 줄이 책갈피 사이에 단정하게 놓여있었다. 혹시 이것도 은교의 이미지를 본따느라 나름 신경쓴 부분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말은 꽤 늦게 들었다. 내 생활이, 그런 소식을 접할 수 있을만큼 한가롭지가 못하다. 9시 뉴스를, 소파에 푹 파묻혀 처음부터 끝까지(날씨까지) 보는 게 소원 중의 하나다. 심야에 tv를 켰더니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에서 영화 은교를 말해줬다. 궁금증이 확 일었다.

 

소설 은교를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영화 은교가 제작되고 있었다. 은교, 이적요시인, 서지우. 셋의 이미지가 점점 견고해져서 난 내가 영화를 한 편 보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내가 만든 상상속의 영화와 현실의 영화는 얼마나 다를까 궁금했다.

 

박해일, 깜짝 놀랬다. 박해일이 이적요 시인 역을 맡았다. 사실 화면 속의 그 노인이 박해일이라는 걸 알기 전에, 저 할아버지 배우는 누구일까 유심히 봤다. (박해일은 다른 역인 줄 알았다.) 영화 속의 이적요 시인은, 연극 인물 같았다. 할아버지 인줄은 알겠으나 분장한 티가 역력한, 전형적인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있는 배우의 얼굴. 그래서 뭐랄까, 피시식, 하고 김이 새는 기분..?

 

난 영화를 안 봤다. 사실은 못 봤다. 시간이 없어서.

그래도 그냥 내 상상속의 은교에 만족하기로 했다. 영화 은교가 개봉할 때쯤에 검색창에 은교를 치면 노출 수위를 묻는 질문들이 줄줄이 딸려나왔다. 난 그게 몹시 불쾌했다. 책도, 그 질문을 올린 여러분들이 바라시는 만큼, 야하다. 하지만 분명 그 이상의 뭔가가 있고 그래서 난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소설가 박범신씨를 아주,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야하다, 라는 표면 밑 깊숙이 숨겨진 그 뭔가를, 과연 영화에선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아니 표현이 가능하기나 한걸까?

 

난 은교에게 반해버렸다. 주인공 은교가 아니라 이 책, '은교'라는 책 자체를 아끼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몇주째 내 책상 위에서 치우지 못하고 있다. 책장 윗부분을 삼각형으로 접어놓은 몇 페이지들...을 계속 읽고 또 읽고, 책장에 꽂지 못하고 다시 책상에 올려놓는다.

 

"감수성이란 번개가 번쩍하는 찰나, 확 들어오는 그 세계를 단숨에 이해하는 섬광 같은 것일진대,.."

(감수성을 이렇게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나는, 제 육체의 뜰 안에 비밀의 방을 품고 있는 어떤 '처녀'를 오직 그리워하면서,..."

(마치 시같은 문장들.. 이게 그런 문장이다. 야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그렇다고 대답해줄수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이 그런 1차원적인 수식어로 그칠만큼 단순한가.)

 

"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사람, 은교에게 집어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

(!!!!!!)

 

욕망, 이라는 관점에서보면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인간성, 인간다움, 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고 용서가 되는, 그런 것들이 있다. 나는 소설의 역할중 하나가, 그런 관점의 스펙트럼을 넓혀줌으로써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편견이 없어지고 선입관이 없어지는 이해와 소통의 과정을 이끌어내는 것.. 그래서 난 책 안 읽는 사람을 싫어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안 읽어서 편협한 사람을 싫어한다. 소설 은교를 통해서 나는 마음의 지평을 조금 더 넓혔다고 느낀다.

 

 

 

"은교. 아, 한은교. 불멸의 내 '젊은 신부'이고 내 영원한 '처녀'이며, 생애의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 애처롭게 발밑을 밝혀주었던, 나의 등롱같은 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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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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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읽었다.

바쁜 와중에 정말 틈틈이 읽었다. 너무 바빠서 그 '틈'을 다른 일에 양보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없는 틈을 만들어 내가며 독서시간을 사수했다면, 진짜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프롤로그부터 심상치 않았다. 단숨에 훅, 빨려들어가서 끝날 때까지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의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다가 다시 부스스 일어나 거실에 앉아 어두운 조명 밑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흡인력이란 이런 것인가!!

 

단순한 추리소설의 수준을 뛰어넘게 만드는 건 이야기의 무게랄까, 결코 가볍지 않은 문체와 묘사 덕분인지 휘리릭 읽어넘길 수도 없었다. 자꾸 상상하게 만들었다. 세령호, 세령댐, 세령마을, 한솔등, .. 그러고보니 이 작가는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거대한 공간을 직접 설계했다. 무대와 무대설정이 상당히 뛰어나다. 난 실제로 그곳이 존재한다고 착각했고 다 읽고 나면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앞표지 안쪽에 지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자세히 설계했으면 지도라도 첨부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고 리뷰에 적을 뻔했다.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읽다가 지도의 존재를 알게 됐고, 허탈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그 지형을 상상하려고 부족한 공간지각능력으로 끙끙거리진 않았을텐데. 하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더 자세히 상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숨을 멎게 만든다. 순간순간,.. 혹시 책 읽다가 나도 모르게 인상 쓰고 읽은 적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난 미간에 주름이 진해져버린 것 같다. ㅠㅠ

딱 하나, 실제 사건인가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소설 속 악마같은 오영제가 아내를 한계령에 버린 것,, 예전에 기사를 읽은 것 같다. 부부가 여행을 갔다가 남편이 아내를 한계령에서 밀어버리고 도망쳤는데 그 아내가 살아돌아왔다는 기사..확실치 않지만 '그 남편 완전 놀랬겠는데, ㅋㅋ'하고 우리 남편한테 기사를 읽어준 기억이 난다. (한계령이 맞나? 암튼, 무슨 ~령이었는데..ㅋㅋ)

 

댐 건설 때문에 수몰된 마을, 아직 호수 바닥안에 그대로 있을 마을 구석구석의 모습, 상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 마을, 그 호수를 배경으로 한 살인사건과 7년여의 복수,.. 짙게 깔린 안개가 호수를 덮고 있는 회색 이미지..

아.. 정말 소설에 쓰인 조그만 장치 하나 버릴 것 없이 대단한 소설이다.

살인사건 자체보다 더 무서운 건, '이미지'라는 걸 깨닫게 된다. 피가 낭자한 감각적인 이미지보다 세령호 깊숙이 물 속에 잠겨있는 마을, 그 마을의 버스 정류소나 문패를 상상하는 게 더 무섭다. 책을 읽기만 했는데 영화를 본 것 같으니, 참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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