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한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 책을 읽게 된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베스트셀러라서, 라기 보다, 지금 한참 영화상영중이라서, 라기 보다, 매일마다 뉴스를 장식하는 제목이라서, 이기 보다.. 그저 책값이 내려서 앗싸, 하고 주문했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유명한 줄 몰랐던 순진한 아기엄마.. 였던 거다.

 

아마 내 기억으로 미국에 있을 때 이 책이 나왔고, 공지영 작가라면 모든 작품을 다 읽을만큼 팬은 아니지만 작가에 대한 굳은 신뢰랄까(이 사람 책은 사도 돈 아깝지 않아, 두고두고 읽을 책이야..같은), 그래서 어차피 내 스스로에게 스테디셀러가 될거라면 신간일 때 굳이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내 생각이기 때문에 인터넷서점 보관함에만 2년을 모셔뒀던 거다. 그러다 이번에 그 인터넷서점에서 생일쿠폰이 날아와서 몇 권 사야겠다 싶어 보관함을 뒤지다가 도가니가 20% 세일하는 걸 보고 냉큼 장바구니에 넣어버린거였다.

 

잠시 동생한테서 온 책들을 읽느라 도가니는 책장에 "곧 읽어드리지요"칸에 꽂혀있었는데 갑자기 뉴스에서 도가니가 어쩌구저쩌구..하는 거다. 그래서 이게 그 도가니야? 하고 확인해봤더니.. 아, 난 내용도 모르고 작가 이름만 보고 책을 구매하는 사람인거다!!!

 

이 책을 읽는 몇일 동안 뉴스에서는 그 광란의 도가니의 실제 인물(천벌받을 놈들)들에 대해, 장애인 인권에 대해 내내 떠들고 있었다. 세간의 반응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개인적이고 좁은 차원에서부터 그 생각을 정리하면,

하.. 이 공지영이란 작가는 일단 자신이 정의로운 일을 하고 말고의 차원을 떠나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라는 생각. 자신의 글이 의도했던 방향으로 사회적 관심을 끌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작가로서 얼마나 보람될까, 한 인간으로써 얼마나 살맛날까, 하는 부러움.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책이 나온지 2년이 지났는데, 책값이 20% 떨어질 동안의 사회적인 관심, 그리고 동명의 영화가 나온지 몇일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달이 안 된 것 같은데 그 영화가 일으킨 이 신드롬. 흠.. 역시 영화가 대중들에겐 더 먹힌단 말인가..

 

작가의 말 중에 "삶과 현실은 언제나 그 참담함에 있어서나 거룩함에 있어서나 우리의 그럴듯한 상상을 넘어선다."라는 말이 있다. 본의 아니게 tv에서 이 책의 내용을 접하면서 뒤늦게 도가니를 읽게 됐지만, 그래도 내 눈에 새겨지는 이 내용들은 자꾸만 옆에서 새근새근 자는 내 아이의 얼굴을 뒤돌아보게했다.

상상일 뿐인데도, 내 새끼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막막해지는거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용에 대해서는. 우스갯소리로 하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이건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실은 자주, 패배한다. 이번만은,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이번 만큼은 진실이, 짓밟힌 순수한 영혼들이 승리하기를 온 마음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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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데이비드 K. 쉬플러 지음, 나일등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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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서로 읽음) 

invisible in America..?

실상은 월마트에서도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주 전형적인 예로, 늦은 저녁에 마트에 가면 아이들을 줄줄 데리고 마트에 오는 어린 부모들을 만날 수 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바지를 입고 눈썹에 링을 달고 있는 대머리 백인 아빠, 파자마 같은 바지를 입고 샌들을 질질 끌고 엄청 피곤해보이는 얼굴과 몸짓의 어린 엄마. 두세명의 아이들은 입이 떡 벌어질만큼 지저분하다. 도대체 아이들에게 옷은 빨아입히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양말만 신고 마트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부모가 계산하는 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껌을 만지작거린다. 위생개념, 공중도덕,. 과연 밖에서 저 정도라면 저 사람들이 사는 집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우린 미국에서 그런 사람들을 꽤 자주 본다.

 

working poor. 일하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

자유와 기회의 땅,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축에 드는 미국에서

아무리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렇지만 그런 미국을

바닥에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빈곤층에 대한 고찰이다.

유색인종, 싱글맘, 이민자, 백인 빈곤계층, 이들의 구성은 다양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뤄서 퓰리처상을 받은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빈곤문제를 개인적 차원과 사회구조적 차원으로 균형있게 다룬다.

 

빈곤의 원인으로는 미국의 높은 living standard(예를 들자면, 미국에선 아무리 가난해도 차가 필요하고 tv를 봐야함), 사회적 안전망의 부실, 건강보험제도의 함정, 개인적인 문제들(건강, 나태함, 교육부족, 알콜 혹은 약물중독 등등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그 해결을 위해서도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그러한 시각으로 빈곤문제를 점차적으로 해결해보려는 시도가 미국 내에서도 없진 않다. 그 예로 보스턴 모 병원의 소아과(정확히 기억안남 ㅜㅜ)에서는 소아과의사, 복지전문가, 정신과 전문의, 변호사 등이 한 팀을 이루어서 영양이 극도로 결핍되거나 만성적인 천식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돕고 있다. 쉽게 말하면, 최저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부모들이 아이에게 깨끗한 주거환경을 제공해줄 수 없고, 그 때문에 아이의 천식은 낫지 않고, 천식 때문에 아이는 학교에 제대로 출석하지 못해 교육수준이 뒤떨어지게 되고, 아이가 천식발작이라도 일으키면 병원에 가기 위해 직장에서 빠져나와야 하고, 그러다 보면 또 해고되고,... 이런 악순환에서 어느 한 고리라도 끊어보기 위해 변호사가 고용되어 건강한 주거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집주인에게 곰팡이 청소, 배관시설 점검 등의 압력을 넣는 식이다. 혹은 아이의 사정으로 인해 작업장에서 잠시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을 소아과 의사가 그 부모의 직장상사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식이다. 미국인답지 않게, 매우 깊은 개입이랄까.

어찌됐건, 그런 노력으로 상황은 나아지지만 문제는 너무 더디고 약하다는 거다. 보다 근본적이고 보다 힘센 권력(정부)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쩔 수 없이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계층이 존재해야 하므로 미국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내가 읽으면서 한숨을 푹푹 쉴 정도로-너무 비참하다. 생활수준이 높은 미국이기에 그 그림자가 더 짙은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어찌보면 딱딱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을 몇 주동안 손에서 떼지 못한 채 정말 열심히 읽었는데, 미국인들과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느낌이다. 내가 보고 느낀 것만으로는 이들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았었다. 아울러 빈곤문제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좀 더 학문적(?)으로 빈곤문제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어떻게, 는 비밀이다.ㅋ)

우리나라 번역본으로도 ("워킹푸어") 나와있는 걸로 안다. 아무래도 한국과 미국은 아주 많이 다르지만 그 차이 속에서 한국의 빈곤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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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idow for One Year (Hardcover)
Irving, John / Modern Library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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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소설을 읽은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 동안 이런 영어 쓰는 이야기꾼을 만나보진 못했다. 끝없는 이야기의 실타래 실타래 실타래..

미국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읽기 시작해서 몇일전 겨우 마지막 한장을 아껴 읽을 때까지..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빽빽한 페이퍼백.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쓰려면 작가의 상상력은 어느 정도나 되어야 할까.

이 책엔 몇 명의 소설가가 나오는데 주인공인 Ruth Cole의 소설에 대한 철학은, 절대로 경험담을 쓰면 안된다, 는 거다. 소설가의 생명은 상상력이라는 거다. 과부가 되어보기도 전에 과부의 이야기를 써서, 소위 " 니가 과부 심정을 알아? " 라는 요지로 진짜 과부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했던 그녀가, 마지막 작품(소설 속에서의 마지막)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쓴다. 네덜란드의 매춘부거리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된 살인사건. 목격자지만 유명한 여류작가이기도 하기에 목격자로서의 진술도 하지 못한채 미국으로 돌아와버리지만 몇 년 후 나온 소설 작품속의 그 창녀 방에 대한 묘사 때문에 훗날 남편이 될 경찰에게 자신이 목격자라는 심증을 심어주게 된다.

한편 자신의 경험만을 소설로 쓴 Eddie라는 인물. Ruth의 엄마 Marion과 열 여섯의 나이에 사랑에 빠져, 거의 40년이 흐른 후 재회할 때까지 그녀에 대한 기억으로 살아가는 우유부단한 남자 소설가.

 

사실 이 소설은 그게 다가 아니다.

1부와 2부.

1부는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1958년의 여름, Ruth가 네 살 되던 해의 이야기이다. 사고로 십대의 아들 둘을 한꺼번에 잃은 Ted와 Marion부부, 아들의 사고 이후 태어난 Ruth, 그리고 summer job을 찾아 Ted의 조수로 오게 된 Eddie의 이야기. Ted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지만 지독한 바람둥이이고 주로 그닥 행복하지 않은 엄마들을 유혹해 작업실로 끌어들이는, 골때리는 남편이다. 아들을 잃고 아픔만으로 살아온 아름다운 Marion은 Ted를 떠날 생각을 하고 이를 눈치챈 Ted가 교활하게도 Eddie를 이용해 Ruth의 양육권을 빼앗으려고 한다. 하지만 Marion은 애초부터 딸을 양육할 생각이 없었고, 차곡차곡 계획을 세워 이들 가족을 떠나버린다. 딸을 버린 비정한 엄마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아들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딸까지 잃을까봐, 그래서 딸을 사랑하는 것조차 두려웠다는 게 마음아프기도 하다.

 

2부는 유명한 소설가로 성장한 Ruth와 그닥 이름을 날리지 못한 Eddie, 그리고 주변인물들과 그들의 소설작품에 대한 이야기. 아마 우리나라 번역본에서는 1부 2부가 낱권으로 나와있지 싶다.(정확한 정보는 아님)

 

그 많은 이야기를 다 추릴 수는 없고, 다만 내가 잊을 수 없었던 몇 장면은 기록해두고 싶다. 사실은 마치 그 상황, 그 장면, 그 감정과 배우를 내 눈으로 직접 본 것같은 착각마저 든다.

정말 코믹했던 장면으로 Ted가 Mrs.Vaughn과 바람을 피우다가 차버렸을 때 그 부인(뭐라 읽어야할지 모르겠음)의 무시무시한 추적씬.. 눈에 보이는 듯한 현실감과 배꼽잡게 만드는 유머감각이 동시에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하필 그 날은 Marion이 떠나는 날이었고 Ruth가 손가락의 실밥을 풀고, 액자집에 가서 소중한 사진을 찾는 날이었고, Eddie가 그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복잡한 날이었는데, 그 사건들을 얽힘없이, 논리적으로, 또한 상징적으로,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처음으로 와, 이 작가 대단하다, 하고 느낀 대목이다.

 

그리고 1장의 "the leg"라는 절. 그 유머러스하던 작가는 여기서 너무도 잔인해진다. 두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Eddie에게 설명해주는 동화작가 Ted.

피도 눈물도 없이 느껴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을 "Ted"라 지칭함으로써 듣는이로 하여금 말하는 이의 크나큰 마음의 상처와 어쩌면 잔인하기까지 한 자신의 상처를 핧는 방식에 대해 진저리치게 만든다. 다리.. 아들의 다리..둘째 아들의 신발이 널부러진 걸 보고 그 신발을 신겨주기 위해 살아있는 줄로 알았던 아들에게 다가간 엄마가 본 것..

그 잔인성은 참 이중적인 면이 있는데, 어쩜 저리 남의 이야기 하듯 할까, 하면서도 그 자신은 "남 얘기"를 하듯 말함으로써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애쓰는 것인지, 오히려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엉엉 우는 것보다 더 처절한 면이 있다는 점이다.   

 

그 잔인함은 훗날 Ruth에게 운전을 가르치면서 한번 더 발휘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길에서 시선을 떼지 말아라, 조수석을 바라보지 말아라, 눈물이 흐른다던지, 화가 난다던지 해서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계속 가지 말고 반드시 차를 옆길에 대도록 해라.. 이게 Ted가 딸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었고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그 동안 Ruth가 궁금해하던 오빠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Eddie에게 말했던 방식 그대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운전하던 딸이 흥분하고 눈물을 흘려도 오로지 앞을 바라보며 운전하게끔, 참으로 잔인한 테스트였다.

(또 훗날, Ted에 대한 Ruth의 복수도 비슷한 방법으로 실행된다. 복수라기엔 뭐하지만, 아빠가 무척이나 상처입을만한 이야기를 3인칭 시점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해내려간다. 물론, 아빠한테 운전 시켜놓고. 그 애비에 그 딸 ㅋㅋ--이게 웃을일만은 아닌게, 아빠가 자살해버린다. ㅜㅜ)

 

약 30년이 지난 후 만난 Ruth와 Eddie, Ruth가 1958년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걸 도와주는 Eddie. 두 아들의 맨발과 함께 찍힌 Marion의 사진에 얽힌 Eddie의 사연과, 그 액자 유리에 베인 Ruth의 손가락 상처..여기서도 작가의 이야기솜씨가 빛을 발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아깝도록 재미있고 감동이었다.

 

이 책 속에는 또 다른 책들이 몇권 숨어있다. Ruth와 Eddie의 소설들, 그리고 Ted의 어린이를 위한 작품들인데, 그 중에 한 권은 정말로 출판된 것인지 책 뒤에 한페이지짜리 광고도 눈에 띈다. 사실, 진심으로 그 책 갖고 싶다.  제목이 A Sound Like Someone Trying Not to Make a Sound인데 물론 Ted Cole이 아니라 John Irvin의 작품이다. 이 책의 내용이 소설 속에서 소개되는데 어린이 동화라지만 나조차도 가슴이 두근두근, 스릴이 느껴지는 게 과연 소설 속에서 말하던, 어른이 되어도 갖고 싶은 책인거다. 미리 읽었더라면 미국에서 사왔을텐데, 아쉽다.

 

간만에 길게길게 리뷰를 남기게끔 만드는 책을 만났다. 쓰고 싶은 말은 굴뚝같은데, 너무 두서없고 애 보면서 쓰느라 2박3일이 걸리는 통에 그 때의 감동과 느낌은 반은 날아가버렸다. 그래도 처음 이 책을 샀을 때의 느낌, 어디서 불법 제본한 것처럼 허름한 표지와 디자인(헌책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에 실망한 것 치고는, 굉장한 만족감이다. 권해주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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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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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검색하다 이 책에 대한 어떤 네티즌의 리뷰 중

"너무나도 공익적인 결말"이라는 말에 심히 공감했다.

뭘 기대했더란 말인가..

어째서 "착하게" "바람직하게" 결말을 맺는 것에 대해

이렇게 풍선 바람빠지는 듯한 허탈감을 갖게 되는 걸까?

 

작가는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얼마나 솔직함에 대한 오해를 받아야 하는 걸까?

작가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면서 뇌에 이상이 있었다고 한다.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 버드의 아들이 뇌 헤르니아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면서, 버드가 고뇌하고 회피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런 감정을 느낀 걸까,

아니면 이런 감정이 있을 수 있음을 상상한 걸까?

어느 쪽이든, 다시한번, 불편하게 만드는 솔직함이다.

(작가는 이걸 소재로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다고 한다.)

 

버드의 꿈은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있는 동안 아프리카의 지도를 구입하면서

버드의 꿈과 현실이 교차한다.

결혼 후 가족이라는 감옥에 갇혔다고 여기지만,

"아직 감옥의 뚜껑이 열려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태어날 아이가 그 뚜껑을 꽝 하고

내리덮어 버릴 것이다."(p.14)라고

생각하는 버드. 아프리카 여행의 가능성은 멀게 느껴진다.

 

게다가 태어난 아이는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고

버드는 아내에게 비밀로 한 채 이 아이가 죽기를 바란다.

큰 병원으로 옮겨, 수치로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선

스스로 손을 더럽힐 수 없으니 병원에서 어떻게 해줄수 없는지

은근슬쩍 의사에게 마음을 내보인다.

병원에서는 설탕물이나 연한 분유를 먹이면서

시간을 끌다가 쇠약사하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하지만 아이는 잘 자라주고,

현실도피를 위해 애인의 집으로 숨어들었던 버드가

결국 손을 더럽혀 줄 다른 의사를 찾아 애인과 함께 헤매던 중

'갑자기' 삶에 맞서 용감해지기로 한다.

 

"아기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는,

속임수 없는 방법은 자기 손으로 직접 목을 조르거나,

아니면 그를 받아들여 기르는 것, 두가지 뿐이야.

애초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거지."

(p.271)

 

그 부분이 이해가 안되면서도

한편으론 삶 속에서 갑작스레 대면하게 되는,

자기 속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마음 속에 해답을 갖고 있지만,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

어쨌든 '자기기만'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건 이해가 되지만,

소설 속의 아이는 뇌 헤르니아가 아니었고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결말은

앞서 말한 것처럼 왠지 좀 불편하다.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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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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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편 '깃털'을 다 읽고 나서

이게 뭐야, 하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 때문에

혹시 뭔가 놓쳐서 그런가 싶어 연달아 두번을 읽었다.

덕분에 오늘 아침 남편이, 이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인 사장님 집에 뭔가를 갖다주러 다녀와서는

"깜짝 놀랬어. 그 집에 공작이 있더라. 풀어놓고 키우더라."

라고 말했을때

"응, 원래 공작은 도망도 안 가고 집도 잘 지켜." 라고

아는 척 할 수 있었다. (남편이 '그런 것도 알고 있었어?' 의

눈빛으로 날 쳐다봤었지.ㅋㅋ) 

 

처음 만나는 레이먼드 카버.

원서로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깔끔하고 군더더기없는' 언어라니 더더욱 기대된다.

(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우아한 척 늘어지는 문체 싫어한다.)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그 중 "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 편이 살아남는다면 제가 정말 행복할 겁니다. " 라고

작가가 말했다고 한다. 그 두편은 참 잘, 살아남았다.

 

사실은, 정말은,

첫번째 작품('깃털들')에서 익숙치 않은 감정에 어리벙벙했었다.

정말 "이게 뭐지?"였다.

짧은 글을 읽는 동안 무슨 단서하나 놓친 게 없었는데

다 읽고 나니 뭔가 놓쳐버린 듯,

뭔가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드는거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중독되고 나니 굉장했다.

연이어 다른 단편들을 읽고 일관되게 느껴지는 것은

인생에서 한 토막을 딱 잘라내어 도마위에 올려놓은 듯한 느낌?

그런 순간이 있다.

별 것 아닌 한 시간, 별 것 아닌 하루, 별 것 아닌 사건이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인생에 큰 의미를 차지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큰 의미가 굳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어느 순간 눈을 감으면

그 때 그 시간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삶'이란 것에 대해

반추할 수 있게 만드는 순간.

그런 것들을 포착해 낸 여러 작품들이다.

 

작가자신이 강추(?)한 두 작품은 과연 뛰어났다.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잔잔한 여운.

그 외에도 난 "열"이라는 제목의 단편도 좋았다.

 

거창한 스토리, 엄청난 반전, 참신한 소재..

이런 것들이 없어도

충분히 짧은 글로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책.

레이먼드 카버의 글, 굉장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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