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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평점 :
사진을 검색하다 이 책에 대한 어떤 네티즌의 리뷰 중
"너무나도 공익적인 결말"이라는 말에 심히 공감했다.
뭘 기대했더란 말인가..
어째서 "착하게" "바람직하게" 결말을 맺는 것에 대해
이렇게 풍선 바람빠지는 듯한 허탈감을 갖게 되는 걸까?
작가는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얼마나 솔직함에 대한 오해를 받아야 하는 걸까?
작가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면서 뇌에 이상이 있었다고 한다.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 버드의 아들이 뇌 헤르니아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면서, 버드가 고뇌하고 회피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런 감정을 느낀 걸까,
아니면 이런 감정이 있을 수 있음을 상상한 걸까?
어느 쪽이든, 다시한번, 불편하게 만드는 솔직함이다.
(작가는 이걸 소재로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다고 한다.)
버드의 꿈은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있는 동안 아프리카의 지도를 구입하면서
버드의 꿈과 현실이 교차한다.
결혼 후 가족이라는 감옥에 갇혔다고 여기지만,
"아직 감옥의 뚜껑이 열려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태어날 아이가 그 뚜껑을 꽝 하고
내리덮어 버릴 것이다."(p.14)라고
생각하는 버드. 아프리카 여행의 가능성은 멀게 느껴진다.
게다가 태어난 아이는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고
버드는 아내에게 비밀로 한 채 이 아이가 죽기를 바란다.
큰 병원으로 옮겨, 수치로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선
스스로 손을 더럽힐 수 없으니 병원에서 어떻게 해줄수 없는지
은근슬쩍 의사에게 마음을 내보인다.
병원에서는 설탕물이나 연한 분유를 먹이면서
시간을 끌다가 쇠약사하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하지만 아이는 잘 자라주고,
현실도피를 위해 애인의 집으로 숨어들었던 버드가
결국 손을 더럽혀 줄 다른 의사를 찾아 애인과 함께 헤매던 중
'갑자기' 삶에 맞서 용감해지기로 한다.
"아기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는,
속임수 없는 방법은 자기 손으로 직접 목을 조르거나,
아니면 그를 받아들여 기르는 것, 두가지 뿐이야.
애초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거지."
(p.271)
그 부분이 이해가 안되면서도
한편으론 삶 속에서 갑작스레 대면하게 되는,
자기 속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마음 속에 해답을 갖고 있지만,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
어쨌든 '자기기만'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건 이해가 되지만,
소설 속의 아이는 뇌 헤르니아가 아니었고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결말은
앞서 말한 것처럼 왠지 좀 불편하다. 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