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박종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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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세대전쟁

이 책만큼 현재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책이 있나 싶다. 연금제도, 금융위기를 탈출했을 때의 과정, 부동산에 대한 세금 정책 등 우리 나라 경제에 대한 통찰력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흡사 토플러의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주장에 통계를 인용하면 신빙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모든 부분에 통계가 숨겨져 있고, 잘하는 나라와 못하는 나라의 정책에 대한 정확한 비교를 하고 있어 책에 대한 믿음이 상당히 깊어졌다.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간극을 정확히 설명한 책이다. 특히 이 부분에 있어 미국의 예도 들었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정치권에서 당선되기 위한 표심 잡기의 선정성 정책에 대한 예가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예를 들어 예산은 없는데 노인들을 위해 노령연금을 더 준다는 정책들 말이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복지 정책을 더 펼 수 있겠는가? 세수가 모자라면 더 걷을 방법을 강구할 것이고 더 걷지 못한다면 다른 쪽 예산을 끌어써야 한다. 이 끌어오는 부분은 대부분은 젊은 세대들의 복지 혹은 영유아의 복지 자금에서 끌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도 이야기 하지만 자식 사랑이 극진한 우리나라에서 이 부분은 예외인가부다. 직접적인 내 자식의 돈이 아니라면 그냥 받고 싶다는 주의인 것 같다. 북리뷰를 쓰기 전에 SNS를 통해서 인상깊은 문장들을 올렸었다.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정부는 65세 이상 노인 436만명에게 3 7,145억원의 사회보장비를 지출하였다. 노인 한명이 한 해 85만원의 복지혜택을 보았다. 이에 비해 844만명이나 되는 6~12세 어린이 인구에 대한 사회보장비는 고작 1,691억원으로 어린이 1인당 복지혜택은 한해 2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부동산에 대한 세금은 취득세와 양도세 같은 거래 중심에 있다. 이는 은퇴한 세대보다 집을 처음 구입하는 젊은 세대에게 불리한 구조이다.
프랑스는 보유한 자산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부유세를 도입하고 있다.

간접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7 47.3%에서 2010 53.1%로 증가. OECD 국가들은 간접세 비율이 평균 40%”

SNS에 올린 건 이 세 문장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이 치면서 봐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런 저자와 만났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식견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주는 메시지가 아주 많다. 이 중 한가지라도 제대로 이해한다면 앞으로의 세대전쟁이 아니라 세대 화합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도 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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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의 수학콘서트 플러스 - 개정판
박경미 지음 / 동아시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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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수학콘서트 플러스

수학이 수에 대한 학문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린 학교 교육에서 수학을 문제 풀이의 학문으로 배웠다. 로그(log), 씨그마(), 리미트(limit) 등 요괴한 수식들을 단 한 두 줄의 정의로 이해하고(?) 문제를 풀었다. 사실 저 리미트는 저 단어가 맞는지 틀리는지 나도 모르겠다. 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수학이라는 학문을 접하지 않는다. 학교 이외에서 필요한 수학은 사칙연산 (+, -, /, x) 뿐이다. 제곱근도 이차함수도 소수도 필요하지 않다. 근데 왜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을 배워야 할까? 계산기만 있으면 편히 살 수 있는데. ! 펀드나 주식시장에서는 평균과 표준편차, 미분과 적분은 하더라. 근데 이건 뭐 보고서에 나오는 것이니 내가 알 필요는 없다. 그럼 도대체 우리가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

피타고라스가 너무도 위대한 분이기에 이 분을 알기 위해서? 아니면 여타 학자들의 학문을 모아서 가르칠 딱히 학문이 없어서? 내가 보기엔 생각의 확장 혹은 응용력을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수학문제를 풀기 어려웠을 때가 있었다. 공부 잘 하는 친구한테 물어보니 그 친구는 수학은 꼼수(?)라는 표현을 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하면 풀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난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했지만, 실제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니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그 친구는 꼼수라는 표현을 했지만 실제로는 응용을 해보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꿈보다 해몽이지만.

디지털 세계를 사는 우리들은 수학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0 1로 이루어진 2진법을 이용해 컴퓨터는 자신만의 언어로 수학을 대하고 있다. 우리가 쓰는 컴퓨터 앱, 웹 등 모든 프로그램은 2진법을 사용한다. 우리가 알기 쉽게 그래픽을 입혀서 우리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시계는 참 더 복잡 미묘하다. 12진법? 맞나? 24진법인가? 시간 말이다. 시간은 요로케 24진법을 사용해 하루를 나타낸다. 그리고 분과 초는  60진법을 사용해서 요상하리만큼 잘 돌아간다. 차도 그렇다. Km/h로 나타내는데 km 10진법을 h인 시간은 60진법을 나타내니 말이다. 이게 뭐 틀렸다해도 내가 이해하는 건 이렇다.

인공위성을 날려 올릴때는 더욱더 복잡한 수학이 적용된다고 들었다. 학문이란 것이 다 저마다의 영역과 전문 분야를 갖고 있듯이 수학이란 학문도 자신만의 공고한 영역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참 어렵다는 것이다. 수학이란 학문을 우리 생활에 가깝게 연결하면 더 좋지 않을까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수식으로 하트를 그리는 식이었는데, 난 그냥 손으로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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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십자가 1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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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붓다의 십자가

책을 읽고 리뷰쓰기가 가장 어려운 분야가 소설이다. 줄거리를 쓰자니 책의 내용을 스포하는 것같고 그렇지 않고 쓰려니 그냥 내 생각만 쓰는 것 같아서 쫌 그렇다.

그래서 그냥 내 느낌대로 써볼란다. 붓다의 십자란 제목은 많은 부분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직관적인 이해를 좋아하는 나에겐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 종교가 없는 나에게 십자가가 기독교가 기원이다. 천주교가 기원이다 이야기 하지 말아달라. 종교가 없는 나에겐 기독교이던 천주교던 아무 상관 없으니까 의 콜라보인가? 뭐 두 종교가 혼합되어 나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시대의 누군가가 종교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책이라고 펼쳐보았다. 하지만 전혀~~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이 이야기는 몽고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시대의 이야기이다. 힘없는 왕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양반님내들은 백성들을 버리고 강화도로 도망을 갔다. 국가의 수뇌부들이 국민들을 버리고 도망을 간 것이다. 백성들은 속수무책으로 도륙을 당했다. 전쟁의 상흔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힘없이 설움에 눈물로 하루 하루를 지세우는 수 밖에.

이런 상황에서 인간성을 찾을 수 있을까? 살기 위해 몽고군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짓눌러야 살 수 있는 상황인데.

책을 읽다가 울화통이 터진 건 이런 전쟁 상황에서 무슨 대장경이고 나발이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전란이 참 많았다. 이런 많은 전쟁으로 역사서들이 불타버렸고 많은 문화재도 소실되었다. 이런 상황들이 지속적으로 발생을 했다면 군사력을 키우거나 외교력을 키워야 하거늘 늘쌍 저 지랄 맞을 양반님내들의 당파싸움만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설 특집으로 방영된 광해라는 영화에서는 그깟 사대의 예가 뭐라고? 그깟 것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더 소중하다.” 고 이야기 한다. 영화를 보면 왕과 사대부들이 공자니 논어니 뭐시기니 입에 발린 소리만 참 잘한다. 그런 소리는 누가 못할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지.

역사를 보존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후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무슨 역사의 보존과 문화를 정립하냐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야 역사고 문화고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이 책의 구성과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난 다만 이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고난한 삶이 더 가슴 아플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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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선대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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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약자의 입장에서 강자를 이기는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상만을 보고 뒷걸음치지 말고 그 현상을 잘 분석해보란 것이었다.

첫 번째 다윗과 골리앗을 분석한 이후의 글들은 머리에 잘 남지 않았다. 너무도 유명한 일화니 다윗과 골리앗을 살펴보자. 골리앗은 210센티미터나 되는 거물이었고, 다윗은 양치기 목동이었다. 양치기 목동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꺼란 생각을 누가 했을까?

여기서 고대 군대의 종류를 살펴보자. 고대 군대에는 세 종류의 전사가 있었다. 첫 번째는 기병으로 말 또는 전차를 탄 군인이고, 두 번째는 보병으로 갑옷을 입고 칼과 방패를 든 군인이 있고, 세 번째로 발사병인 포병이 있다. 발사병에는 궁수와 투석병이 속해있다. 다윗은 이 발사병인 투석병에 속한다고 봐야겠다. 양치기를 하면서 맹수를 만났을 때 다윗을 투석을 하여 맹수를 쫓아냈다. 이 당시 보병은 갑옷을 입어 몸을 움직이는데 힘들었다고 한다. 투석병인 다윗은 기동성을 이용해 투석을 하였다. 메이져리거의 공이 머리로 날라온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아찔할는지. 공이 아닌 돌이 날라온다라고 보면 그 위력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골리앗의 체구를 보고 겁을 먹었지만 주특기 (지금 표현으로)가 다른 다윗은 골리앗과 대결하기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군인끼리 대치한 상황에서 다른 군인들은 현상을 살펴본 것이 아니라 현상만을 보고 겁을 먹었지만 다윗은 현상을 분석하고 그 현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골리앗과 부딧쳤다.

우린 일상에서 참 많은 골리앗들을 만난다. 사업에서 그럴 수도 있고, 직장에서도 그렇다. 어느 순간에는 직장의 상사일수도 있고, 어떤 때는 자신이 담당자가 된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세일즈에서 이와 비슷한 일화가 있다. 바로 벤더피라는 사람이다. 미국의 작은 광고회사의 사장인데 자신보다 큰 회사가 광고주를 빼앗으려 했었다. 과연 이 작은 회사가 어떻게 큰 광고회사를 이겼을까? 벤더피는 자신이 가진 강점을 광고주에서 어필했고 결국 벤더피는 광고주와 계속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예전에 강점혁명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오래 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요지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발전시키라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쉽다. 그리고 보면 쉬운 길이 있는데 우린 자꾸 어려운 길로 가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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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집짓기 - 마흔 넘은 딸과 예순 넘은 엄마의 난생처음 인문학적 집짓기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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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habitat

나이가 들면서 아파트처럼 누가 만들어준 집이 아니라 직접 집을 지어 살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보면 기존 집을 리모델링하여 지붕이 정원이 되는 휴식의 공간이 탄생한다. 정형화된 생각에서 벗어나 집이라는 공간이 꿈을 꾸는 공간이 되니 이 얼마나 멋진 건축의 기술인가. 저자는 인문지리학자 이푸 투안의 공간과 장소의 구별을 설명했다.

공간(space)이 한 개인에게 무의미한 곳이라면, 장소(space)는 한 개인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곳이다. 가령,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어떤 사건이나 감정과 연관되어 있는 곳은 공간이 아니라 장소이다. 그래서 삶은 장소 만들기의 과정이다. 자기만의 안온한 장소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이 장소는 여러 곳이 될 수 있으나 이 책에서는 집으로 한정해 둔 것 같다. 물리적인 주택(housing)과 달리 집(home)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개발하고 그 사람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는 장소이다.” 이 문장만큼 집(home)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있을까 싶다.

우린 가끔 편안한 장소를 발견하곤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 갔던 곳 혹은 가족들과 함께 여행했던 곳 이것도 아니면 그냥 혼자 편안함을 느꼈던 곳. 이런 곳을 장소애(topophila)를 느끼는 곳이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장소애는 장소(topos)에 대한 사랑(phila)을 뜻하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의 감정이 소용돌이친 것이지 장소는 장소 그대로 있었던 곳이다. 우리의 감정으로 장소에 대한 사랑을 색칠한 것뿐이다. 가끔 이 색칠은 현재 나의 색과 겹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심적으로 불안정을 느낄 때 내가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꼈던 장소를 찾지 않나 싶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간혹 주인공이 없어진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데 주인공이 어디에 있는지 유추해서 찾아낸다. 그 곳은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으로 색칠해 놓은 곳이다. 사랑스러움의 색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색도 있다. 하지만 그 곳은 그가 의미를 부여하고 색을 칠해 놓은 곳이다.

이러한 장소정체성을 가장 근본은 집(home)이다. 집은 우리가 생활하는 가장 근본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집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드믈다. 없으면 안되지만 없어졌을 때 소중함을 찾는 뭐 그런 느낌이랄까?

집은 물리적인 공간이다. 그럼 가정은 물리적인 공간일까? 정신적인 공간일까? 가정은 한 가족이 생활하는 물리적인 공간이라고 한다. 같은 단어인데 뉘앙스는 좀 다른 것 같다. 가정관리학과는 있는데 집관리학과는 없지 않은가. 가정은 물리적인 공간인 집에 가족 구성원의 생활(의식주)를 합쳐놓은 느낌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이지만)

살아가기 위한 공간이다. 살기 위한 공간이다.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편안함을 느끼고, 가족 구성원 모두를 위한 배려 깊은 집이 되어야 하겠지? 집을 만든다면 아파트 같은 수직적인 공간이 아닌 가족 모두를 위한 수평적인 삶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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