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공유 - 최고의 의사결정을 위한 크라우드소싱의 힘
리오르 조레프 지음, 박종성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초유기체(super-organism)는 꿀벌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각 꿀벌이 자신의 일을 하다가 집단이 결정을 할 때,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꿀벌의 이야기가 클라우드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책의 제목은 생각공유이다. 생각을 공유하는 방법은 많다. 같이 회의나 토론을 할 수도 있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확장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 중 이 책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생각공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누구에게나 익숙한 SNS을 이용해서 나의 생각을 올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는 최근의 트렌드와도 관련이 있지 싶다.

프리챌, 다음, 네이버 등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가 있었다. 사람들은 카페에 모여 공통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초보자에게는 정보를 전달했다.

지금도 해외직구나 스마트폰 같은 경우에는 카페를 이용해서 공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트렌드는 SNS를 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해외직구 같이 대량으로 구매해서 가격적인 이득을 보지 않는 경우, 사람들은 카페보다 SNS을 더 선호한다.

카페는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SNS는 나의 이야기를 올리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다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면 좋아요, 공감, 공유 등을 하게 된다.

개인화된 사회현실을 대변해주는 것이 요즘의 SNS라 생각한다.

이런 사회관계망에서 생각공유를 하기엔 무척 힘이 든다.

나의 질문에 다른 사람들이 무관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관계망에 질문을 올릴 때 제대로된 질문을 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핸드폰을 바꿀 때가 왔는데요. 애플 마니아라서 아마도 새 아이폰을 사게 될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핸드폰을 바꿀 때가 왔는데요. 제가 제일 중요시하는 건 작동이 빨라야 하고 카메라가 좋아야 한다는 거에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올렸을 경우, 전자는 유도하는 질문이고 후자는 지혜를 구하는 질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는 클라우드를 이용한 생각공유로 일상, 건강, 커플 등 실제 세계에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클라우드에 접속한 사람은 실제 사람이기에 왜 가능하지 않겠는가? 단지 이런 질문을 받고 대답해주는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인간관계처럼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하고 있다.

집단지성의 힘에 대해서는 반론할 여지가 없다. 다만, 나와 연결된 사람이 너무 적거나 너무 많으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모은다 하더라도 그리 유용한 정보는 되지 못할 것이다.

생각을 공유한다는 건 결정을 하기 위함이다. 그 결정이 잘되던 못되던 결정을 한 사람의 몫이다.

간혹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삶이고 내 인생인데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일까?

물론 이 책은 합리적 의사결정의 한 방법으로 클라우드를 통한 생각공유를 말하고 있다. 그 이상은 각자 개인의 몫이니까.

생각공유를 하다가 내 시간까지 공유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진핑 - 국정운영을 말하다
시진핑 지음, 차혜정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한중일 정상회담을 한단다. 이제는 한일중 정상회담이라고 한다. 중국보다 일본이 먼저다. 그래 가나다순으로 말한다면 일본이 먼저 와야지. 그런데 지금까지는 왜 한중일 정상회담이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아직까지 나에겐 한중일 정상회담이 더 친숙한 표현이다. 역사교과서부터 시작해서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까지. 우리나라에겐 일본은 먼 나라다. 하지만 행정부의 수반은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시진핑 국정운영을 말하다를 읽으면서 서글펐다. 한 나라의 수반이라 한다면 자신의 국가가 어떤 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국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견지해야 하는지 시진핑은 그것을 잘 보여줬다. 허나 우린 어떤가?

다른 나라의 정상회담 내용을 발표하면서 질문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했던 말을 지금 자신이 반박하는 모양새다. 우리도 시진핑 같은 국가 수반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다. 그래서 답답하고 그립고 그렇다.

이 책은 시진핑이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연설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연설문은 누군가에게 말하는 형성이다. 자신의 생각과 앞으로의 비전 등 시진핑은 중국 국민을 위한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아주 잘한다. 수첩에 적어서 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읽어보면 그의 생각과 국민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잘 들어나는지 안다. 누구처럼 멍~ 때리지 않는다.

인민은 역사를 창조하고 노동은 미래를 열어 줍니다. 노동은 인류 사회의 진보를 추진하는 근본적인 역량입니다. 행복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꿈 또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를 실천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려면 반드시 인민에 의존하고 언제나 인민을 위하며,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 창조적인 노동에 의지해야 합니다.” (p 64)

이 말은 시진핑이 2013년 전국 노동모범 대표들과 나눌 때 한 말이라고 한다. “인민은 역사를 창조하고 노동은 미래를 열어 줍니다.”라는 문장. 인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한 개인의 효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역사가 아니고, 역사는 인민이 만든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자. 시진핑의 이 한 문장은 역사를 바라보는 지도자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문장이다. 효심의 역사 말고, 인민의 역사 말이다.

중국의 꿈을 홍보하고 설명하는 작업은 당대 중국의 가치관과 밀접히 연결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중국의 꿈은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의 가치 인식과 가치 추구를 의미하며, 소강사회의 전면적 달성,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실현을 의미하며, 모든 사람이 중국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하며, 중화민족이 단결하여 노력하는 최대공약수를 의미하며, 중화민족이 인류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보다 큰 기여를 하고자 하는 진정한 염원을 의미합니다.” (p 202)

봤나? 한 나라의 통치자라면 이런 연설은 해야 하지 않나? 자신의 국가체제, 국가가 나가야 할 길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나?

결론적으로 배우기를 즐겨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원들은 학습을 통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학습을 통해 미래를 열어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간부들, 우리의 당, 우리의 국가와 민족이 발전하려면 학습하는 기풍을 대대적으로 조성하여,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며 실천하고, 실천하며 또 실천해야 합니다.” (p 496)

시진핑의 연설은 주옥 같았다. 우리도 이런 지도자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다. 국민에게 고개 숙였던 대통령, 다른 나라에서는 고개 숙이지 않았던 대통령.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했던 대통령이다.

이어도가 우리 영토가 아니라고 하고, 역사를 뒤 바꾸려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고 참담하게 읽었던 책이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한다고 한다. 두렵다. 무엇을 내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고마해라, 마이 엿 먹었다 아이가.

시진핑의 이 문장이 가슴 속 깊이 파고든다.

정치는 민심을 따를 때 흥하고 민심을 거스를 때 망한다.” (P 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인간의 아름다운 소멸을 말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강영안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여름 이대에서 플라톤 아카데미 ‘Beautiful Life - 아름다운 삶과 죽음’이란 강의가 있었다. 거의 모든 강의를 직접들었다. 책으로 읽으니 정리가 잘되어 있어 그 당시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이해할 수 있었다.

 

‘Beautiful Life - 아름다운 삶과 죽음’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죽음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삶, 생명과 탄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탄생과 삶을 살아가지 않고 죽음을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잊고 살아간다. 매일 매일의 삶이 너무 바쁘고 버겁기에 죽음을 잊는다. 하지만 잊고 있는 어느 순간 죽음은 우리 앞에 와 있다.

 

누구나 죽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멀리 내보내기만 할까? 그것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결국 지식과 상식, 통념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고 인정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경험하지 않았기에 죽음을 말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겠지.

 

심정지 혹은 뇌사 상태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죽음을 경험한 것일까? 죽음은 생명의 영원한 단절이다. 이들이 심정지 후 80년을 살았다 치자. 한 평생에 5분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데 이것이 죽음일까? 정지가 아닌 지속이기에 이를 죽음으로 봐야 할까? 현대의학이 심정지를 죽음으로 본다면, 이들이 경험한 죽음을 왜 믿지 않을까?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현대의학의 죽음의 기준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우리는 죽음을 모르고 말하기에 무성한 추측만 남는다. 하지만 생명을 가진 누구나 경험해야 하기에 죽음의 준비는 해야 하지 싶다.

 

‘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영혼, 친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김애령 교수는 친구란, ‘너는 누구인가?’를 묻는 사람이라고 했다. 너에 대해서 알고 싶고 너가 누구인지를 지속적으로 묻는 사람. 그가 친구라고 했다.

삶을 살아가는 중간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는다. 나에 대해서 묻고 나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완벽한 축복일 수 있을 것이다.

 

친구가 중요한 이유는 절망에서 찾을 수 있다. 정재현 교수는 ‘왜 사는가?’라는 물음은 우리가 잘 살고 있는 경우에는 던지지 않는다고 했다. “질병, 가난, 이별, 실패, 좌절, 고통 등을 겪을 때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고 했다.

 

맞다. 일상이 평온할 때,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은 잠시 접어둔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나의 삶을 고민하고 방향성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삶은 성숙된다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 이마 이 과정을 여러번 거치면, 심적으로 힘들지는 몰라도 삶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은 더 공고히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이데거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간은 죽을 힘을 갖고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죽을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죽는다(sterben)는 것은 죽음에 대해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상 오로지 인간만이 죽는다. 다른 생물들은 단지 분해된다. 그들은 멸망(verenden)으로 인해 그 의미를 캐지 않는다.”

 

길거리에 피어 있는 꽃에게 왜 사냐고 물어보라. 그들은 왜 사는지 말하지 않는다. 생명이 주어졌기에 충실히 오늘을 사는 생물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왜 사는지를 묻는다. 참 이상한 종이다.

지구의 전체 수명을 놓고 보면, 한 인간이 사는 시간은 점보다 작을 수 있다. RNA와 DNA가 우리를 복제하면서 실험(?)을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한 개인의 삶은 어떤 의미도 지닐 수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냐는 것이다. 철학적, 생물학적 질문이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이런 질문은 질문의 힘을 갖지 못한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을 뛰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현실에선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누워있겠지만.

 

오늘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과 죽음, 이런 질문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단 하나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나 참 잘 살았다. 행복했다.’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 어제와 같은 오늘. 삶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잠시 잊게 해준, 평온한 오늘. 오늘 난 행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꾼 비즈니스 모델 70 - 르네상스 메디치가부터 21세기 스타트업까지
미타니 고지 지음, 전경아 옮김, 이동현 감수 / 더난출판사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북리뷰] 세상을 바꾼 비즈니스모델 70

비즈니스 모델이란 기존의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확장하기 위한 일련의 개념이며, 그 목적은 다양화복잡화•네트워크화에 대응하기 위함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확장하기 위한 일련의 개념이라는 말부터 이해하기 힘들다.

내가 생각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비즈니스는 결국 돈을 얼마나 잘 버느냐? 그리고 시대적인 흐름에 어떻게 잘 따라가느냐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 정말 많은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다. 이렇게 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는 이유는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기업 밖의 환경이 변화하면 기업도 변화해야 하기 때문인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의아한 점은, 기업은 환경이 변화하기 전에 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 때문이다.

필름 산업으로 흥했던 코닥이 디카시장에 대응을 하지 못해서 망했다는 말도 있지만, 1975년에 코닥은 디카 시장에 진입을 했다. 이후 코닥에 대한 평가는 여러 말이 있기에 개인적인 판단에 맡긴다.

중요한 점은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도 망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책에 밑줄을 여러 번 쳤는데, 대부분 00의 법칙처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언급과 공정 또는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한 법칙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론이 주류를 이뤘다. 너무나 많아서 무엇을 딱히 언급할 수 없다.

그런데 책의 후반부에 <조이의 법칙>이 눈에 들어왔다.

<조이의 3가지 법칙>

1.     머리가 좋은 사원은 일을 하지 않는다.

2.     가장 머리가 좋은 인간은 대부분 기업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는다.

3.     따라서 혁신은 밖(기업의 외부)에서 탄생한다.

조이의 법칙은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이의 법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머리가 좋은 사원은 일을 하지 않고, 회사를 위해서 일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또한 혁신은 기업에서 탄생하지도 않는단다.

그럼 회사는 직원들에 대해서 믿을 가질 수 없지 않을까? 조이는 핵심적이고 창조적인 일부 업무를 담당해야 할 우수한 인재일수록, 회사를 그만두고 기업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인재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주의하자고 말하고 싶었단다.

결국 비즈니스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의미겠지?

이를 좀 바꿔서 보면 훌륭한 인재는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해 회사를 나간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회사는 우리 주변에 많다. 뭐 낸중엔 다 똑같은 회사가 되고 있지만.

요즘은 누구나 혁신을 말하고, 누구나 자신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다고 한다. 그런데 다들 자신만의 혁신모델과 비즈니스모델이 있는데, 왜 기업의 인재상은 똑같을까?

자신만의 인재상이 없는 비즈니스모델은 누구를 위한 모델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북리뷰] 걸 온 더 트레인

제목 그대로다. 기차 안에 한 여성의 이야기다. 기차. 기차는 정시에 움직인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시간을 정한 것도 교통수단 때문이라고 어느 책에서 이야기 한 것 같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10시에 출발한 기차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는 시간이 러시아 시간과 우리나라 시간이 다르다면, 기차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이라나? 여튼 뭐 그렇다고.

이 이야기에서 기차가 나온 이유도 어쩌면 누구나가 약속된 시간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주인공인 레이첼이 술을 마시는 것도 것은 이 약속된 시간을 흐트리고 싶은 의도가 아니었을까? 뭐 개인적인 견해는 이렇다고.

레이첼, 메건, 애나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이야기. 우리는 각자의 시선에서만 세상을 본다. 아마 요즘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SNS도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이 올리는 사진을 보며, 타자의 삶을 부러워하기도 하겠지. 타자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올리는 사진을 보며 이 사람은 이렇게 사는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레이첼의 시선으로만 보는 세상은 한계가 있다. 메건과 애나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바라보는 레이첼은 술을 마시고 있다. 의식과 무의식, 사고가 혼돈이 된다. 혼돈이 바로 술이 아닐까 했다. 나도 필름이 자주 끊겨서 이 느낌을 안다. .

레이첼은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을 본다. 보겠지 우리도 그렇잖아.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항상 보는 사람들이 있잖아. 버스도 마찬가지고.

레이첼은 제스와 제이슨이라는 사람을 보았고 이 두 사람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제스와 제이슨은 레이첼이 보고 느낀 것 같은 사이는 아니었다. 제스라고 부른 사람은 매건이고, 제이슨이라고 부른 사람은 스콧이다. 매건이 실종되었다. 그리고 범인은 누구일까?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의 소재라고 생각한다. 뭐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레이첼의 시선에서 본 세상은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것이라고 느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대중교통에서 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모습을 반추에서 나의 모습을 대입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아마도 이 책은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차라는 소재와 술이라는 소재는 이런 일상에 흣날리는 미스트 같은 역할이라고 보았다.

정해져 있지만 정해짐을 거부하는 모습 같은 것. 항상 일정한 시간에 운행하는 기차 속. 이것은 우리의 일상이라는 톱니바퀴를 의미하는 듯했다. 그리고 술. 그 일상이 과연 나의 일상일까? 내 일상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인들 대다수가 살고 있는 일상. 그 일상에 성애가 끼듯, 뿌연 기시감을 들게 하는 술. 상반대 된 소재를 끌어 들였기에 더욱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