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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양장) ㅣ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지극히 종교적인 집안의 이단아로 20여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결코 그 종교적 굴레를 벗어나지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광신도 집안"이라 자조섞인 어투로 불러오던 그 집안의
어쩔 수 없는 일원으로 "역시" 나도 별 수 없다는 진단을
스스로에게 내리며 늘 패배적인 감정에 젖어야만 했다.
어쨌거나 난 여전히 패배적이긴 해도 지극히 종교적인 날라리로,
종교적 메세지나 종교적 이야기 따위를 너무도 싫어해왔다.
그게 베스트 셀러류의 것이라면 더더욱.
"로마 교황청에 한 가지 보고가 들어왔다" 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내가 읽은 부류의 소설은 아니었던 것이다
......
포르투칼의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견한 신심 깊은 한 주교의 충격적인
배교 소식을 들은 그의 제자들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 저명한 주교는 '구멍 매달기'라는 고문을 받고 배교를
결심했다고 전해졌는데, '구멍 매달기'라는 고문의 실체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고문이 혹독하다고 해도 그가 배교를
했다는 것만큼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랬다. 그 고문이 그냥 혹독한 것이기만 했다면.
이상하게도 사람의 신념이란 어려움에 처하면 처할 수록,
위기와 고난에 부딪히면 부딪힐 수록 더욱 강해지는 법이니까.
그럴 수록 자신을 지키고 신념을 지켜낼 힘은 샘솟는 법이다.
그러나 다케나카 우네메라는 일본 행정관이 고안한
일명 '구멍 매달기'라는 이 고문은 그들의 신념을 지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어떤 직접적이며 육체적인 고문도 없었지만,
신의 존재 자체를 회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사랑을 의심하고 부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고문은 충분히 효과적이었고, 충분히 혹독했다.
......
빠른 속도감과 긴장을 늦추지 않는 필체..
그리고 지극히 종교적이며, 지극히 종교적이지 않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