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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제목 한번 거창하다. 표지에서 주는 투박한 종이의 느낌이 따뜻함도 주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거부감도 준다. 아마도 이 책이 정치적인 내용을 품고 있지나 않을까 싶은 묘한
느낌이었던것 같다.
우연히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이라 하는 것을 알게되었고, 호기심에 순전히 호기심에 책을
읽었다.
순전한 호기심에 접한 책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대단한 책이었다.
이 책은, 비록 연대기 순으로 정리되어있기는 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나, 혹은
어떤 특정 생각에 대해서 작가의 생각을 쓴 글이 아니다.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를 모은
것이다.
글들을 읽다보면, 대단한 것은 저자뿐만이 아니다. 저자의 편지를 받았을 그 많은 가족들이
하나같이 존경스럽다. 무기징역이란 혹독한 징역을 살고있는 저자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과
관심(특히나 혈연관계가 아니었지만,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가족의 구성원이 된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들의 지적 수준이 그러하다
이 두꺼운 책 내용 어디에도 감옥살이에 대한 투정이나 불평 불만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무기징역을 살게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이나, 체념 따위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이제 곧 나갈꺼라는 헛된 희망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옛 선비의 도도한 자세가 엿보인다.
아무도 손가락질 할 수 없으리만큼 떳떳하고 - 그렇다고 거만하거나, 스스로를 높은 자리에
놓지 않으면서 - 감옥에 앉아서도 오히려 바깥 사람을 걱정한다.
이 책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억울함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자기개발을
게을리해서는 안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책을 읽는 내내 현재의 나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내가 놓인 상황탓만 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니 한심스럽기 그지 없었다.
더불어 아래의 내용을 가슴속에 깊이 새겨넣었다.
"열다섯 해는 아무리 큰 상처라도 아물기에 충분한 세월입니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동안을
시종 자신의 상처 하나 다스리기에 급급하였다면, 그것은 과거 쪽에 너무 많은 것을 할애함
으로써 야기된 거대한 상실임이 분명합니다. 세월은 다만 물처럼 애증을 묽게 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옛 동산의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 것' 또한 세월의 소이입니다."
아픈 기억에, 억울한 기억에 나 자신을 너무 침잠시켜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