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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 위에 눕다 - 내 삶에 클래식이 들어오는 순간
송지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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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발걸음을 맞추며 클래식의 세계로 이끄는 다정한 에세이다. 클래식을 묘사한 서정적인 표현들을 읽다 보면 음악이 기대돼 서둘러 들어보고 싶다가도, 음악을 들으면 그 안에 담긴 아득한 옛이야기가 궁금해 다시금 글에 시선이 가닿았다. 

글을 읽었을 때 분명 나는 햇살이 내리쬐는 산책길 위에, 물결이 반짝이는 바닷가에, 고요한 미술관 안에 서 있었다. 그러나 클래식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좀 더 본질적으로 그 공간에 깊이 들어가 있었다. 클래식이 이토록 신비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가사가 없다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순간, 클래식이 비워둔 공간 속으로 나의 경험이 알맞게 들어선다.

“클래식 음악에 가사가 없고, 가사가 있으면 그 가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렵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클래식 음악에 가사가 없고, 가사가 있으면 그 가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7쪽)

그동안 클래식은 한적하고 유려할 것이라 막연하게 여겨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짙은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음악으로 진심을 전한 음악가들이 있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단조로운 형식의 당대 발레 음악과 다르다는 이유로 ‘백조의 호수’에 혹평을 받은 후 오히려  더 극적인 은율의 곡을 선보인 차이콥스키, 그리고 죽음의 끝에서 소나타 32번을 피워낸 베토벤. 

이 책에 등장하는 음악가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노래하는 듯싶다. 당신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걸 깨닫기를. 그래서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이 만끽하고 탄식하기를.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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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위대한 공학자 50인 - 혁신으로 세상을 바꾸다
폴 비르.윌리엄 포터 지음, 권기균 옮김 / 리스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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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에 기여한 공학자들의 생애를 담아내 옛날이야기 읽듯 술술 읽히는 책이다. 과학 원리를 쉬운 문체로 녹여냈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두 다뤄 세계사까지 배울 수 있다. 각 페이지마다 사진이랑 그림이 수록된 일종의 인물도감이라 소장해두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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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의 오리무중 트리플 23
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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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의 단편을 담은 박지영 작가의 소설집이다.


각각의 단편은 노동, 취향, 죽음에 깃들어 있는 자본의 원리와 그 안에서 끝없이 훼손되고 구분되고 퇴색하는 인간의 본원적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터에서 한 개인의 자아가 상실되는 과정을 담은 테레사의 오리무중, 취향에도 계급이라는 날카로운 이빨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올드 레이디 버드, 죽음을 상품화함으로써 흐려지는 애도의 본질을 표현한 장례 세일까지. 저자는 이처럼 자본과 인간이 혼재된 미로 속에서 집요하고 고요히 출구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우리의 세계는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가격이 책정되는 세상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계로 건너가지 못하는 올드 레이디 버드영우의 세상도 그러했다. 하지만 정작 고양이는 그런 식으로 모두에게 공평했다. 나쁜 동네 산책을 하는 길 위의 사람들 곁에서, 공평한 추위와 공평한 어둠을 나누며.”(132) 또한, 아버지의 죽음에까지 자본의 원리를 적용해야 했던 장례 세일현수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데 애써 하는, 어떤 가격을 매겨도 공정하지 않은 완벽히 불공정한 선의.”(203)가 존재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이처럼 자본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우리는 상대를 쉽게 왜곡하고 섣불리 판단하지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순간을 통해 도움을 나누고 위로를 받는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테레사의 오리무중에서 테레사는 자아실현을 명목으로 외부와 단절하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한다. “혼자여야 고귀할 수 있는 자아라면, 그게 진정 고귀한 게 맞나. 그런 자아실현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57)

 

세 개의 단편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주경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언제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인물이다. 저자가 주경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요소에 힘없이 휘둘리는 인간의 불완전성,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연대의 가능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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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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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현수영의 단짝 친구인 안혜리는 동급생들에게 서열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며 모욕을 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런 그녀의 행위를 돕는다. 그러던 어느 날손에 닿은 생명체는 모두 케이크가 되어버리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저주를 오직 쥐나 고양이에게만 사용한다는 그의 선택을 통해 인간이 지닌 선과 악이란 무엇인지 생각한다.

 

사람에 등급을 매기는 안혜리에게도 차에 치인 고양이를 묻어주며 기도문을 외우는 마음이 존재했었다. 남자의 달콤한 케이크도 결국에는 생명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쯤 되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계는 점점 희미해진다. 인간이 지닌 선과 악은 한데 뒤섞이고 뭉쳐지면서 하나의 케이크로 재탄생 되고, 어느 부분이 선이었고 악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선과 악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는 영역에 놓인다. 따라서 완전한 고결함이나 명백한 추악함도 존재하지 않는, 철저히 상대적인 개념으로만 해석된다.


우리는 단지 그 마음들을 끊임없이 저울에 달아가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무게를 가늠해보는 횟수가 늘어나다 보면 어떤 것들은 조금씩 선명해진다. 가령, 적어도 사람은 케이크로 만들지 않는다는 남자의 신념이라던가 케이크가 된 동물들에게 느끼는 죄의식, 안혜리를 더 이상 돕지 않기로 한 주인공의 결심이 그러하다. 해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려는 선택들.

 

무엇이 선에 가깝고 또 악에 가까운지 또다시 무게를 달아본다. 그리고 나는 어느 쪽을 택할지 생각해 본다. 물론 그것 또한 상대적일 뿐이겠지만.

 

마음 편히 연민하고 싶은 것들은 그러기 어려울 만큼 더럽거나 이상하거나 사납고, 반대로 악취와 더러움 속에 숭고함이 숨어 있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 가는 것이 마냥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싫은 것이 마냥 나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195)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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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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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렌클이 자연과 그녀의 사랑스러운 가족들 곁에서 보낸 기억을 정성스럽게 엮어낸 에세이이다.


이 책에는 매 순간의 작별들이 담겨 있다. 뱀에게 잡아먹힌 토끼, 그녀가 사랑하는 봄과 가을이 끝나가던 계절, 외할머니의 캐러멜 케이크, 그리고 이제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엄마의 모습. 그러나 마치 영원할 것처럼 계속되는 탄생들이 그녀를 위로한다. 알에서 부화한 파랑새들, 떨어진 도토리가 내린 뿌리, 제왕나비 애벌레의 움직임, 새로운 인연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이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음을, 모든 것은 고리를 이룬 채 살아간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호젓한 겨울의 추위가 있어야만 봄의 따뜻함을 찬미할 수 있다. 밤을 비추는 달의 서늘함을 마주했기에 떠오르는 태양이 타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음과 삶도 그러하다.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찬란하게 빛을 낸다. 그러므로 우리의 두려움은 죽음이 아닌,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자신에게로 향해야 한다


엄마가 블루베리 머핀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내가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요. 엄마 인생의 매일매일, 내가 엄마에게 블루베리 머핀을 만들어 줬다면 좋았을 거예요.”(248) 


아마 그녀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내 주변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그리고 그들에게 꼭 다정한 온기를 건네주기를.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어둠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 약간의 선량함을 숨기고 있다. 예기치 않던 빛이 반짝이기를, 그리하여 가장 깊은 은닉처에서 그것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면서.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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