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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스케치하다 - 윤희철의 건축 스케치 기행
윤희철 지음 / 린(LINN)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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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유럽 여행 계획도 오래도록 짜곤 했는데.

계획이 계획으로만 끝나버려 대리만족을 위해서인지

시중에 출간된 유럽 여행기나 인터넷 블로그의 유럽 여행 후기를 열심히 읽었었다.


그렇게 책이나 후기를 읽다보니, 또 다른 로망이 생겼다.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누구나 다 사진을 찍는데,

그건 너무 쉽고 흔한 방법.


그림을 그리는 것이 참 멋있고 좋아보이더라.

그림 잘 그리는 사람(여행 가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여행의 기록을 그림으로 하는 사람들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때 '오기사' 님의 블로그도 알게 되고 책도 읽게 됐던 것 같다.


그렇게 '유럽 여행'과 '여행 가서 그리는 그림'이라는 나의 두 가지 로망을 동시에 채워주는 책,

<유럽을 스케치하다>

건축을 전공해서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다는 저자는...

전공이 하나 더 있는데, 또 하나의 전공이 성악?!?!?!?!?!?!?!?


아, 정말, 이렇게 다재다능한 사람 정말 놀랍다.

항상 스케치북을 들고 다닌다는 저자.

사진 찍는 사람들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나니는 것과 같겠지?

소지품을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늘 필통과 다이어리, 핸드크림, 립밤을 갖고 다니는데... 건조한 사람?ㅋㅋㅋㅋ

목차 앞에, 이 책에 실린 그림 전부가 작게 정렬되어 있다.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은데, 이 그림들로 엽서를 만들어 책과 함께 팔아도 좋을 듯.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슬로베니아, 터키, 체코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여행하며 그린 그림과 그 건물에 대한 설명이 있다.


여행 책이나 TV의 여행 프로그램을 볼 때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보는 것도 좋고 내가 다녀온 곳을 보는 것도 좋다.


나도 이 책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목차를 보며 내가 다녀온 곳이 있나 찾아보는 거였다.


다행히 있긴 있었다.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


나는 성의 내부를 봤개 때문에 이 그림 같은 전체모습은 보지 못했지만.ㅋ



그리고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내가 찍은 사진 속의 저 다리가 그림 속의 다리인 듯.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



사진을 찾아보니... 일부밖에 없다. ㅡㅡ;;

저땐 정말 사진을 발로 찍었나.ㅠㅜ



지금 다시 내 카메라를 들고 간다면 당시보다 훨씬 잘 찍을 수 있을 텐데.

너무 사진도 못 찍고 무엇을 찍어야 할지 잘 모를 때 독일에 다녀와서 넘넘넘 아쉽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예쁜 그림들을 보는 것도 좋고 그 그림을 보며 다시 유럽 여행을 꿈꾸고

내가 다녀온 곳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내보는 것은 좋았지만.


글의 내용이 지극히 설명문스럽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좀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이 녹아있는 글이었으면 더 좋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앞으로 유럽을 여행할 사람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도 같다.


책에는 대체로, 너무도 유명해서 안 가본 사람들도 모두 알 만한 건축물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내가 몰랐던 곳이 있어서 유심히 봤다.


오스트리아의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언젠가 오스트리아에 가게 된다면 꼭 들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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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문제로 아이와 싸우지 않는 훈육법
마틴 라지 지음, 하주현 옮김 / 황금부엉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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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밖에" (마루로 나가자는 말)

마루에 나오자마자 하는 말은 "디즈니주니어" (디즈니주니어 채널 틀어달라는 말)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집에 있는 시간에는 거의 TV를 켜놓고 본다.

주말에는 하루종일 TV 보는 걸 못하게 하려고 외출하는 지경.


그동안은 '우리는 적어도 아이에게 스마트폰은 쥐어주지 않는다'는 걸 위안으로 삼고,

식당이나 지하철 안에서 아이가 스마트폰 덕분에 조용히 하는 모습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는데 이런 우리집 모습을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본다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하겠네.


하라가 집에 있는 동안 TV를 켜놓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문제성은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너무 괴로웠다.

아이에게 너무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TV문제로 아이와 싸우지 않는 훈육법>

아이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행동과학자라는 마틴 라지의 저서이다.

책의 목차만 대강 살펴봐도...

TV가 얼마나 아이에게 유해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TV를 켜는 순간 뇌의 기능은 꺼진다.

TV는 마약과 같다.

TV는 아이들의 언어능력, 놀이능력, 창조력, 상상력, 집중력을 앗아간다.

TV는 폭력성과 반사회적 행동을 키운다.

TV는 신체적인 건강에도 이상을 준다.

등등 TV의 해악은 이루 말할 것 없이 많고.


이 책이 괴로운 건 그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 무수한 연구자료와 실험 결과와

현장 교사, 학부모들의 경험을 통한 증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한마디가 와닿았다.


"Set Free Childhood"


아....TV는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하고 결정적인 시기인 어린시절을 가두는, 나쁜 놈!

그리고 TV나 컴퓨터 등의 미디어가 교육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착각이라는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앞으로 학교에도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될 확률이 거의 백 프로라던데.

학생 아니라 유아들을 위한 디지털 교구들도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결론은 단 하나.


아이의 디지털 미디어 사용은 늦을수록 좋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남편에게 내용을 이야기했더니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도 어릴 때 TV를 봤고 지금도 보고 있지만 그리 큰 문제가 된 것 같진 않아."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말에 동감한다.


TV나 게임은 술과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과하지 않은 양을 마셔서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양을 마셔서 득이 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술을 마신다고 모두가 알콜중독이 되는 것은 아니고

담배를 피운다고 모두가 폐암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그게 건강에 결코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남편은 본인에게 문제가 없었으니 그 심각성을 모르는 듯해서 답답하다.

결혼을 준비할 때부터 TV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는지.

심지어 지금은 TV를 한 대 더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내 속을 긁고 있다.


그러나 남편이 한 다음 말은 공감이 되기도 한다.


"TV 안 좋은 거 누가 모르나? 근데 TV를 안 보여주면 그 시간에 부모가 계속 무언가를 해주며 같이 놀아야 한다는 건데, 그게 힘들어서 그런 거잖아."


그래...

그게 문제다. 그래서 TV를 켜게 되는 거고.


 


책에서도 어느 정도 해결 방안과 대안을 제시해주긴 하지만

그 방법은 여전히 멀고 어렵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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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알레르기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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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도 못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다가올 때가 있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이 책의 일부를 인용해놓은 것을 보고,

책의 제목도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얼마 후에 직접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오빠알레르기>를 비롯해서

<차고 어두운 상자>, <맥스웰의 은빛 망치>, <엔진룸>, <급류 타기>, <딸기>, <명화>,

이렇게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읽다보니, 작가의 스타일이 좀 느껴진다.

대체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많았고 여성 화자가 많았다.


그리고 첫 문장이 굉장히 강력하다.

어떤 내용일지 호기심을 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ㅎ


 

주인공들은 특별할 것이 없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다만 좀더 상처 받은 사람들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좀더 짠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세상에 상처 받지 않고 짠하지 않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나?

그런 사람은 없다는 대답을 가정한다면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다.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급류타기'를 하는 것처럼

간신히 서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빠 알레르기>를 읽으면서는... 절로 웃음이 났다.

내 얘기 같아서.ㅋㅋㅋㅋㅋ


책에서 표현한 것처럼 '알레르기'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오빠가 아닌 사람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게 참 듣기 싫더라.

그게 뭐 남성의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여성의 보호기제라 생각되어서

등의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뭔가 오글거린달까.

특히 나이 많은 사람이 오빠라고 부르는 건 정말 너무 간질간질한...


그래서 나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혈연관계의 진짜 '오빠'를 제외하곤 오빠라는 말을 쓸 일이 거의 없었는데 만약 지금 당시의 '오빠'들을 우연히 만난다고 해도 '오빠'라고 부르지는 못할 것 같다. 선배님이나 선생님 등으로 부르지 않을까 싶다.ㅎ


오빠 아닌 오빠들에게 오빠라고 쓰는 상황에 대해 내가 이렇게 민감한 건 지나친 일인가. 17쪽

나도 남자지만 오빠가 낭만으로 포장될 때가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하겠어. 선배라고 부르던 어떤 후배가 어느 날 오빠라고 불렀는데, 이상하게 걔한테 잘해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웃기지? 걔는 내 보호 아래에 있어야 할 것 같고 나는 걔보다 힘이 세져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 관계는 동등한 게 아니잖아. 후배와 나는 관계의 균형을 잃은 게 아닌가 싶다. 29쪽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했거든. 자기가 믿었던 게 다 허방 같다는 거야. 여성성을 포기해야만 남자들과 똑같지는 않더라고 비슷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대. 34쪽

 

<차고 어두운 상자>의 주인공은 빚 독촉을 받고 있는 대필 작가.

그녀 인생에 빚은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숙명과도 같은 것.

그래서 그녀의 죽음을 확인시켜준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사채업자였다.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학자금 대출이다 뭐다 빚으로 시작하는 요즘 세대의 슬픈 현실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사랑도 할 수 없는.... 삼포세대, 오포세대의 단면 아닌가.


 

습이 가진 가방과 구두와 넥타이와 머플러는 그가 지금껏 지녀왔듯 앞으로도 버리지 않고 오래 사용할 것 같았다. 나는 습의 연인이 되어 그의 곁에서 조금씩 낡고 허름해져도 좋을 것 같다는 감상에 빠져들곤 했다. 나는 첫눈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못 견디게 피로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독해졌다. 59쪽

​가난이 권태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그래서 가난 때문이다. 62쪽


<맥스웰의 은빛 망치>의 주인공은...

이 소설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게 아니라면, 밖에서 그녀를 바라본다면,

사실 정상은 아닌 여자다.


이별을 인정하지 못해 (다른 여자와 결혼한) 전 애인을 찾아가고 그것도 모자라 그의 아내를 때리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어서 모임 회원의 전 애인을 단체로 스토킹하고

결국 그 사람이 자살까지 하게 만들고...


정신적 결핍이 너무도 확실하게 보이는데, 그녀 스스로는 자신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바람은 집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여자의 목소리는 질량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무겁고 단단한 공깃돌 같은 음절들이 마룻바닥으로 투두둑 흩어지는 듯했다. 79쪽

여자는 혼잣말을 했다. 현실도 그래.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잘 모를 때가 있잖아. 81쪽

​여자는 자신만 세상에서 외따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와 따뜻한 밥을 같이 먹고 싶었다. 언제나 그 누군가는 X여야만 했다. 여자는 자신의 바람이 집착일 리 없다고 믿어왔다. 99쪽


이 책의 소설들이 재미있는 건 이런 거다.

소설이 주인공의 관점에서 서술되다보니, 한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다른 거다.


주인공은 다른 사람을 이상하다 생각하는데,

주인공 주변 사람들은 주인공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엔진룸>도 그러했다.


주인공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안의 이웃 사람들이,

주인공이 같이 탄 줄 모르고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깜짝 놀라는데.


주인공의 행동을 보면 이웃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얼토당토하니한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실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상상 속의, 가상의 자신을 만들어 놓고

거짓말을 하며 집을 보러 다니는 걸 보니.. 내가 아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간혹 이상적인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자기 만족을 하는 것 같은.

하지만 그게 탄로나도 자기 잘못은 아니다. 그렇게 됐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네가 알아?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너같이 예쁜 손톱을 가진 여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어. 그건 누구의 잘못 때문도 아니야. 어쩌다 그렇게 됐단 말야. 어쩌다 보니……. 135쪽


 

<급류타기>의 화자는 남자이다.

이 책의 소설들 가운데 유일하게 화자가 남성이고 결혼했다.

나머지 책의 주인공들은 결혼도 안 했고 애인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


소설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암울하다.

<맥스웰의 은빛 망치>에서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고 이 소설 <급류타기>에서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다.

주인공의 처남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그냥 들어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와 있지 않아 떨어져 죽었고 주인공의 누나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하철이 들어올 때 취객이 밀어서 죽었고...

주인공이 일하는 회사는 농약 회사인데 툭하면 농약을 마셨으니 해독제를 보내라는 전화가 온다.


이토록 우리는 수많은 죽음에 노출된 채 살고 있고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그게 현실이라고.....


 

누군가 주검을 대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잘못 살아오고 있었던가, 살아온 날들을 뉘우치게 된다고 했다. 영훈의 생각은 달랐다.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도처에 깔려 있는 위험들이 그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마치 세상살이가 위험과 장애가 널려 있는 급류 타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복되면 죽는다. 광고 속 급류 타기는 경쾌한 레포츠지만, 현실 속 급류에 휘말리는 건 놀이가 아니다. 144쪽


 

요즈음 영훈은 안전선 안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마다 매우 자주 누나가 생각났고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등을 밀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154쪽

 

<딸기>는 흔치도 않은 '딸기 알레르기'를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인데..


이 소설의 '딸기 알레르기'도 그렇고 <오빠 알레르기>의 '오빠 알레르기'도 그렇고.

'알레르기'가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가 만들어낸 질병이라는 점에서

이걸 읽으니 딱 내 친구가 생각났다.

꽃게나 새우 등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었던 내 친구.


집이 지방이었던 그 친구는 공부 때문에 서울에 사는 이모집에 잠깐 얹혀살았단다.

하루는 식탁에 간장게장이 올려져 있기에 먹었는데.

이모가 그건 자기 딸이 먹을 거였다고 왜 네가 먹냐며 눈치를 주었다고.

그 일이 있은 후에 게, 새우 알레르기가 생겼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서러웠으면....


나는 그해 봄부터 딸기 알레르기가 생겼다. 어떨 때는 딸기만 생각해도 살갗이 발갛게 부풀었다. 해마다 봄은 오고 약도 듣지 않는데 딸기는 세상에 나온다. 손등이, 팔뚝이, 목 주변이 만개한 꽃으로 뒤덮여 꼭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알레르기가 멈춘다. 그때마다 입 안 가득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가 난다. 239~240쪽 

 

 

<명화>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집'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로 계속 등장한다.

그런데 그 집들은 하나같이 낡았고 금이 갔고 정전이 되고 방음이 안 되고 냄새가 나고,

수시로 최루탄이 떨어지고... 안락하지 않다.


위태로운 우리의 삶과 같다.

그래서 더 좋은 집을 찾아다니고(<엔진룸>의 주인공) 지금 집을 떠나고 싶어하지만(<명화>의 언니) 여의치 못하다.


"명화야, 언니는 이 집을 떠날 거야. 이 집을 떠난다는 건 나에게 새 삶이 시작된다는 거야. 나, 좋은 마음을 갖고 살 수 있을 거 같아. 정말 아무도 안 미워하면서." 253쪽

 

하지만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래, 우리는 모두 이런 삶을 살고 있지.

나만 그런 건 아니야.


작가의 말처럼,

작가가 구축해 놓은 세상 속에서 태어난 인물들을 통해

독자는 조금 위로를 받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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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
슝둔 지음, 김숙향.다온크리에이티브 옮김, 문진규 감수 / 바이브릿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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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다양한 이유로 각기 다른 시기에 죽음을 맞이하지만.

대개는... 나이가 들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노후대책 같은 이야기도 하는 거고..

또는 나는 장수하고 싶지는 않다. 70이나 80까지만 살고 싶다... 뭐 이런 이야기도 하는 거고.


다들 그렇게 막연한 믿음을 갖고 살고 있을 텐데,

어느날 갑자기 큰병이 찾아온다면.....


과연 나는 웃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책의 제목부터가 관심을 갖게 했다.


<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


비록 이 제목은 한국에서 번역해서 출판하며 새로 지은 제목이고

원제는 '꺼져줄래 종양군!'이라지만

그 제목에서도 작가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보인다.

 

작가는 중국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에 비호지킨 림프종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병에 걸렸고

일 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그 일 년 간의 투병 일지...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책이라 재미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안타까움이 계속 자리잡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투병 생활을 인터넷에 연재하며 화제가 되었는데.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내 미소가 세상의 먹구름을 걷어내주길 바랄게, 당신을 위해!"라고 말하는

그 예쁜 마음씨가... 더더욱 슬펐다.

스물아홉, 나는 스물 아홉 때 무얼 하고 있었던가.

대학원 과정 마치고 중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바뀐 낯선 환경에서, 갑자기 내게 주어진 엄청난 업무량에 ​날이 잔뜩 서 있었다.

그때 나는 작가처럼 내가 처한 상황을 ​밝게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여유 같은 건 찾을 수가 없었는데....​

 

첫장부터가 웃겼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웃음이 나게 그렸다.

병원에 가서도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메이크업과 의상에 신경쓰고

의사 몰래 병원을 나가서 놀다오고

잘생긴 의사에게 관심을 보이고...

슝둔의 병원 일상도 너무 재미있어서 웃으며 읽다가...

처음으로 큰 고통이 찾아온 순간.

갑지가 눈물이 솟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도....

그렇게 울컥하게 만들었다가 또 웃게 만들고.

그러다가 또 슬프게 만든다.

딸을 간호하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에 자꾸 감정이입이 되고....ㅠㅜ

그 와중에 좋은 점을 찾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도 기특하고 장하다.​

자신이 아픈 바람에 친구들이 다 모일 수 있어서 전화위복이라니....ㅠㅜ

 

이런 사람이 좀더 오래 이 세상을 살았어야 했는데.

넘 안타깝다.


하지만 죽기 전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슝둔의 긍정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지고 있으니,

나도 그 영향을 받았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맞겠지.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추천사를 썼지만

윤태호 작가의 추천사가 딱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저자의 불행으로 위로받으려는 나는 얼마나 초라한가.

하지만 아니, 그렇지 않다.

눈물나게 웃으며 컷을 따라가다 보면

희망을 목격하고 확이하는 나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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