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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
조남예.김승일 지음 / 북크루 / 2022년 4월
평점 :
절판
교복 입고 학교 다니던 시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배웅하면서 살짝 내 귀에 대고 속삭이셨다.
"학생, ooo번 버스가 오면 우리 어머님께 좀 알려줘. 어머니가 글을 모르셔서..."
어려운 부탁은 아니어서 쉽게 들어드리기는 했지만 어린 마음에 속으로 이해가 안 되기는 했다.
'한글은 못 배울 수 있었겠지만 숫자 몇 개 외우는 것도 어렵나??? 글자를 읽을 수 없으면 이런 불편함도 있구나.'
워낙 우수한 독자적 문자를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사전적 의미의 '문맹'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무언가를 배우기에 유리한 '학생'이라는 내 처지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냥 '왜 못 배우지? 불편하겠다'고만 생각했던 어린 날의 나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떠올렸다.
이 책을 읽고.
올해 75살이 되신 조남예 할머니.
몇 년 전까지 한글을 모르고 사셨다.
한글 공부를 하시면서 시인을 만나 시 공부도 하시고, 그 결과물이 책으로 탄생했다.
조남예 시집 <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
글을 모르는 삶이란 어떨까. 글을 알게 되면 그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조남예 시인의 시 중 단 한 행으로 알 수 있었다.
'밝아졌다.' - 시집에 실린 첫 번째 시 <한글을 배워서>
한글을 배워서 밝아졌다.
이 한 문장부터 뭉클했다.
글을 모르는 세상은 어둡구나. 그래서 글을 모르는 사람을 '까막눈'이라고 했던가.
시인은 한글을 배우고 자신의 이름을 처음 쓰게 되었을 때 너무 기뻐서 울었고
자식들 손주들 이름을 쓰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 다 쓸 수 있게 되어 소원을 이루었다 했다.
이 글의 맨 처음에 쓴 나의 경험과 같은 상황도 시인은 이렇게 썼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글자를 모르니까 캄캄했어요'
74세 할머니가 한글 공부를 하며 쓴 시라는 책 설명을 보았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감동적인 시집이었다.
어려운 단어, 어려운 표현 하나 없고 다른 시집보다 훨씬 얇은 시집이지만
이 시집을 읽고 나면 조남예 할머니의 삶이 촤르륵 펼쳐진다.
어려운 집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조남예 시인을 이모 집에 맡기고 동생만 데리고 재가하고
이모 집에서 힘든 일을 하며 학교에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만 하며 살다가
결혼하여 2남 1녀를 낳아 키우고.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힘든 농사일인데 물난리에 산사태도 겪고....
그렇게 고달픈 삶을 살아온 오랜 시간 동안,
가난의 고통과 설움,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글을 알지 못하는 불편함과 배우고 싶은 열망을
마음속에 얼마나 힘들게 꾹꾹 눌러 담으셨을지.
마침내 글을 배우자 안에 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시'로 터져나왔고
그 시가 나를 울렸다.
(아.. 정말 뭉클한 시가 너무 많아서 여기에 옮기고 싶은데,
스포가 될까봐 못 옮기겠다.)
올해로 75살. 아무리 지금보다 더 의학이 발달해도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적을 시인은 그럼에도 지금 소원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고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힘들게 살았으면 온통 세상이 원망스러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너무 좋고 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진다 노래한다.
아직 살 날이 훨씬 많이 남은 나는 요새 자꾸 비관적, 방관적이 되어 가고 있었는데....
이 시집을 읽고 다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
이건 살짝 다른 얘기지만, 나는 '시'에 열등감이 있다.
좋아하는 몇몇 시가 있긴 하지만 '시'는 늘 내게 멀고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두드리는 시가 가득한 시집을 내셨다니
조남예 할머니는 대단한 시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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