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ㅣ 달달북다 1
김화진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평점 :
북다 출판사의 첫 번째 단편소설 시리즈 ‘달달북다’
‘달달북다’ 시리즈는 지금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12인의 신작 로맨스 단편소설과 작업 일기를 칙릿, 퀴어, 하이틴, 비일상의 키워드로 나누어 매달 1권씩, 총 12권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그 첫 번째 작품은 김화진 작가님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예요.
김화진 작가님은 작가 데뷔 이전부터도 민음사의 한국문학 편집자로 널리 알려진,
특유의 재치와 감각으로 많은 팬을 몰고 다니(?)시는 분이죠.
저는 김화진 작가님의 <나주에 대하여>를 읽었는데,
거기서 '대파'가 너무 충격적으로 신선해서...ㅋㅋㅋ
김화진 작가님의 칙릿 소설은 뭔가 달라도 다를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책을 읽었어요.
단조로운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 모림과 떡집 아들 찬영의 만남.
이 소설 역시 30대 모림의 일과 사랑을 그리고 있으므로 칙릿 소설의 범주인 건 맞지만
기존에 접해온 작품들과는 조금 결이 달라요.
칙릿이라 하면 소설도 있지만, 〈브리짓 존스의 일기〉, 〈섹스 앤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내 이름은 김삼순>, <싱글즈> 같은 영화나 드라마도 떠오르는데.
이런 작품들을 가만 생각해보면 대체로 주인공이 직장(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처음에는 좀 미숙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리저리 채이고 실수하고 오해받고 해결하고 결국에 큰 성과를 이루어내며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곁을 지키면서 티내지 않고 주인공을 도와주던 능력캐 남주와 커플이 되는 결론이잖아요?
그런데 그 일에서의 성공이라는 게 굉장한 도전과 열정을 기반으로 하는 게 보통인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의 모림은 조금 달라요. 오히려 모림보다 늦게 입사한 같은 직장의 친한 친구인 승아에게 승진이 밀렸는데 억울해하거나 질투심을 갖지 않아요.
🔖 나는 언제나 그때그때 재밌는 것들을 대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덮어두거나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언제나 뭔가가 고프지 않은 동시에 고팠는데, 그게 아마도 사랑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있기는 있는 동시에 없는 것만 못하게 있는 것이다. 45쪽
🔖 이제 뭘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46쪽
🔖 나는 큰 얼음에서 쪼개져 떠내려가는,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조금씩 작아지는 얼음 조각에 탄 무리에서 가장 아둔한 펭귄 같다. 54쪽
🔖 내가 잘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아니야. 다만 지금 그러고 싶지 않을 뿐이거나 잘 살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잘 살고 싶은 게 아닌 것인지도 몰라. 그렇지만 나도 잘 살고 싶어. 누구보다....... 나 자신의 기준에서 59쪽
사랑도 일도, 그에 쏟아야 하는 열정은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거잖아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고, 그것이 막연한 불안감을 가져오고, 어떤 일에 큰 감정적 에너지를 쏟는 것을 힘들어하는(혹은 원치 않는) 요즘 세태를 잘 반영한, 현실적인 소설인 것 같아요.
그리고 꼭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엄청 세속적으로 조건 좋고 능력 있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열심히 자신의 능력으로 업무 성과를 올린 여성도 꼭 결국에는 신데렐라처럼 만들어 버리는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그냥 '회사원' & 부모님과 함께 하는 '자영업자'인 게 맘에 들더라고요.
아니, 우리 주변에 일반 사원이 훨씬 많지, 본부장님이 많냐고요~!
판타지가 아니라서 더 두근거리기도 했던 것 같아요.
모림과 찬영이 공원에서 만나서 처음 말 거는 장면은 심쿵 ㅎㅎㅎㅎ
자주 가는 동네 떡집 아들을 공원 산책하다가 만나고,
통성명을 하고 스몰토크를 하면서 점점 친해지는 과정이 넘 자연스럽고 설레더라고요.
꼭 벼락처럼 내리꽂는 운명같은 사랑은 아니어도,
이렇게 서서히 스며드는 사랑도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 반복적인 삶은 괴롭지만, 변화 또한 괴롭다. 그럼에도 그런 괴로움은 한번 겪어볼 만한 것 같다. 환경을 뒤집을 수 없다면 내면을 뒤집어 보면 된다. 사랑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56~57쪽
그렇게 서서히 스며드는 둘의 사랑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 아줌마,
결말에서 크게 놀랐습니다!!!!
반전미까지 있는 신선한 칙릿 로맨스,
김화진 작가님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입니다. ^^
+
32쪽 어째서 자신이 믿던 것을 저버리는 식으로 사람은 바뀌는 것인지, 자세한 것을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그것은 무척 어른의 태도 같았고, 어쩌면 사랑은 누군가의 비밀을 품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68쪽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 자체로 어떻게 사랑해요? 나는 그런 방법을 몰라요. 나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요. 어떤 이유라도 만들어야 사랑할 수 있어요. 내 사랑에는 이유가 필요하다고요.